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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총선:
파시스트 3위, 신민중전선 1위 그러나 투쟁은 계속돼야 한다

결선 투표 출구조사 결과에 환호하는 파리 사람들

7월 7일 일요일 저녁(현지 시각)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총선 결과를 들으러 모인 프랑스인들은 안도와 기쁨을 표했다.

출구조사 결과는 파시스트 정당인 국민연합(RN)이 의회 다수당이 되고 당대표 조르당 바르델라가 총리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켰다.

출구조사 결과는 오히려 신(新)민중전선이 가장 많은 의석을 확보하는 것으로 나왔다. 신민중전선은 장뤼크 멜랑숑의 정당인 ‘복종하지 않는 프랑스’와 녹색당, 공산당,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사회당 등이 모인 선거연합이다.

출구조사 결과는 신자유주의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의 선거 연합이 2위를, 마린 르펜과 바르델라가 이끄는 파시스트 정당은 3위를 할 것으로 나타났다.

최종 개표 결과도 출구조사 결과대로 나왔다. 신민중전선이 전체 577석 중 180석을 확보했고, 마크롱 일당은 168석을 확보해 2위를 했다. 르펜의 정당 국민연합은 143석을 얻어 3위를 했다. 그러나 이는 지난 총선 때 국민연합이 확보한 88석보다 의석이 두드러지게 는 것이다.

주류 우파 정당 공화당은 60석을 얻는 데 그쳤다.

총선 결선 투표일인 7월 7일 밤 출구조사 결과가 나온 뒤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 모여 노래를 부르며 환호하고 있는 프랑스 민중들 ⓒ제공 김문경

이런 결과는 국민연합에 타격일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연합은 정부에 진출해 가뜩이나 권위주의적이 된 국가 기구를 더한층 강경하게 만들 기회를 감지했다. 국민연합이 그 기회를 살렸더라면 무슬림, 이민자, 흑인 등 모든 소수 인종에게 지옥 같은 상황이 펼쳐졌을 것이다.

출구조사 결과에 사람들이 환호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출구조사 결과는 대부분의 프랑스 사람들이 국민연합의 통치를 원치 않음을 보여 줬다. 그리고 파시스트들을 저지한 가장 강력한 요인은 지난달 80만 명 규모의 거리 시위와 이후 이어진 반(反)파시즘 운동이었다.

이는 투표율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번 총선 결선 투표의 투표율은 67퍼센트였는데, 이는 2022년 총선 때의 46퍼센트, 2017년 총선의 43퍼센트보다 높아진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렇게 보도했다. “최초의 선거 결과 예측이 나오자, 선거 결과를 축하하러 모인 국민연합 지지자들 사이에서 경악과 안타까움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지난주 1차 투표 이후 깃발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던 사람들이 망연자실해 침묵에 빠졌다.

“샴페인 거치대는 파리의 국민연합 지지자들이 서로 패배의 쓰라림을 달래는 자리가 됐다.”

그러나 이 선거 결과로 파시스트의 성장이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국민연합은 이전 어느 선거에서보다 많은 의석을 확보했다. 그리고 신민중전선은 마크롱의 후보들이 많은 의석을 확보하도록 자기 후보를 사퇴시킨 탓에 진정한 좌파적 정책을 펼 기회를 스스로 날려 버렸다.

신민중전선은 역겨운 마크롱 정부 인사들에게 투표하라고 호소했다. 그중에는 인종차별적 탄압 정책의 설계자인 내무장관 제랄드 다르마냉, 연금 개악안을 기초한 전 총리 엘리자베트 보른도 있다.

신(新)민중전선의 양보 덕에 의석을 부지한 마크롱(가운데) 일당들 ─ 전 총리 엘리자베트 보른(좌)과 내무장관 제랄드 다르마냉(우)

다르마냉과 보른 모두 당선됐다. 그러나 신민중전선에 합류한, 혁명가들의 정당 반자본주의신당(NPA)의 후보 필리프 푸투는 낙선했다.

다르마냉은 급진파를 배제한 거국 정부 수립을 재빨리 촉구했다. “어느 누구도 총선에서 승리했다고 자부할 수 없다. 방금 전까지도 TV에서 엄청나게 허세를 떨었던 멜랑숑 씨야말로 특히 그럴 수 없다.

“유권자들은 변화 염원을 드러냈다. 나는 공화주의 우파가 여전히 매우 강력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어쩌면 우리는 이 공화주의 우파에 좀 더 문호를 개방해야 할 수도 있다.”

다르마냉의 “공화주의” 경찰은 일요일 밤 파리에서 국민연합의 패배를 축하하러 거리에 나온 수천 명의 시위대에 최루탄을 쏘고 곤봉을 휘둘렀다.

신민중전선은 그간 효과가 전혀 없는 것으로 드러난, 주류 정당들의 “공화주의 전선”의 또 다른 버전을 구축했다(아래 박스 기사 ‘프랑스 파시스트들의 간략한 성장사’를 보시오).

선거 이후 총리를 세우기까지 종잡을 수 없는 협상이 이어질 듯하다. 거기서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는 온건 좌파 성향의 인물이 총리가 되는 것일 것이다. 그조차도 마크롱과 그 일당들의 승인을 받아야 할 것이다. 신민중전선 내에서는 뼛속까지 주류 정당인 사회당이 59석을 확보해, 74석을 확보한 ‘복종하지 않는 프랑스’에 크게 뒤지지 않았다. 녹색당은 28석을, 공산당은 9석을 확보했다.

신민중전선은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던 사회당을 소생시키는 인공호흡기 구실을 한 것이다.

그러나 파시스트가 꾸준히 부상하는 조건을 마련한 것이 바로 사회당과 그 지지자들의 정책이었다.

그리고 친기업 정책을 시행하는 정부는 파시스트들이 똘똘 뭉친 특권층에 맞선 평범한 사람들의 대변자를 자처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지난 일요일 르펜이 국민연합의 승리는 “미뤄졌을” 뿐이라고 연설한 까닭이다. 르펜은 이렇게 말했다. “파도가 커지고 있다. 이번에는 충분히 커지지 않았지만 계속 커질 것이다.”

이번에는 파시스트들이 좌절을 맛봤다. 그러나 좌파는 전략을 바꿔야 한다.

인종차별 반대 단체 ‘연대의 행진’은 옳게도 이렇게 지적했다. “우리는 지역사회와 일터, 거리에서 연대하고 단결할 때 가장 강력하다.”

‘연대의 행진’은 7월 14일 일요일 혁명기념일[프랑스 혁명의 시발점이 된 바스티유 감옥 습격을 기리는 날]에 인종차별과 식민주의[누벨 칼레도니, 즉 카나키에 대한 식민 지배를 뜻함 ─ 역자]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추진하고 있다.


카나키 독립 지지 후보 승리

지난 몇 달 동안 프랑스의 남태평양 식민지 카나키(“누벨 칼레도니”)의 사람들은 시위, 파업, 소요를 벌여 왔다.[관련 기사 본지 506호 ‘프랑스의 남태평양 식민지 누벨칼레도니(뉴칼레도니아)에서 독립 항쟁 분출하다’]

이번 총선에는 카나키 독립을 지지하는 토착 선주민 출신 후보가 출마해, 결선 투표에서 친프랑스 후보를 누르고 의석을 얻었다.

에마뉘엘 치바우는 1986년 이래 처음으로 프랑스 국회에 입성한 카나키 독립 지지 후보다.


파시스트 부상의 배경

네 가지 주된 요인이 프랑스에서 파시스트들이 부상하는 밑거름이 됐다. 이것들은 모두 여전히 중대한 쟁점이다.

  • 집권한 주류 좌·우파 정당들은 파시스트의 인종차별에 대응해 인종차별적이고 이민자와 무슬림을 억압하는 법률들을 도입했다. 이는 파시스트의 부상을 저지하기는커녕 파시스트들을 고무하고 그들의 정책이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만들었다.
  • 주류 좌파는 파시스트에 맞서 우파·신자유주의 후보들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자들은 파시스트들을 저지하는 방벽이 되기는커녕 긴축 정책을 시행해 파시스트들에 대한 지지를 키웠다.
  • 좌파들과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국민전선(FN, 국민연합의 전신)이 아직 군소 정당일 때 그들에 맞서 효과적인 공동전선을 건설하지 않았다. 그리고 좌파들과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다수는 국민전선을 파시스트라고 부르기를 거부했다.
  • 충분히 큰 투쟁적 좌파가 없는 탓에, 생활고와 불평등에 분노한 노동자들과 영세 자영업자들이 지지를 모을 대안적 초점이 형성되지 못했다. 그 결과 그 분노의 일부가 파시스트 지지 쪽으로 유실됐다.

프랑스 파시스트들의 간략한 성장사

1972년: 퇴역 군인이자 알제리 저항군을 고문한 장마리 르펜이 파시스트 정당인 국민전선(FN)을 창당했다. 알제리 전쟁 참전 군인들과 제2차세계대전 때의 나치 부역자들이 르펜의 정당에 합류했다.

1986년: 국민전선이 최초로 국회에 진출했다. 르펜도 이때 의석을 얻었다.

1987년: 르펜이 홀로코스트를 “사소한 역사적 사건에 불과하다”고 묘사했다.

1988년: 르펜이 대선 출마해 14.4퍼센트를 득표했다. 국민전선은 기존의 인종차별과 이민자 공격, 유대인 혐오, 성소수자 혐오에 더해 이슬람과 무슬림 이민자를 공격했다.

2002년: 르펜이 대선에서 17퍼센트 득표해 우파 후보 자크 시라크와 결선에서 경합했다. 좌·우파 정치인들은 시라크가 파시즘의 부상을 저지할 효과적 방벽이 될 것이라며 시라크 지지로 결집했다. 시라크는 당선됐지만, 파시스트들은 계속 성장했다.

2012년: 장마리 르펜의 딸 마린 르펜이 대선에 출마해 18퍼센트를 득표했다.

2014년: 국민전선이 지방의회 11곳을 장악하고, 유럽의회 선거에서 25퍼센트를 득표해 선두를 달렸다.

2017년: 마린 르펜이 대선에 다시 출마했다. 아버지 장마리 르펜을 출당시킨 지 2년 후의 일이다. 마린 르펜은 대선 1차 투표에서 21퍼센트를 득표했지만 결선 투표에서 에마뉘엘 마크롱에 패했다. 좌·우파 다수는 마크롱이 파시즘의 부상을 저지할 방벽이 될 것이라며 마크롱 지지로 결집했다. 마크롱이 당선됐지만, 파시스트들은 계속 성장했다.

2022년: 마린 르펜이 당명을 국민연합(RN)으로 바꾸고 대선 1차 투표에서 지난 번보다 많은 23.2퍼센트를 득표했다. 좌·우파 다수는 마크롱이 파시스트 부상을 저지할 방벽이 될 것이라며 마크롱 지지로 결집했다. 마크롱이 당선됐지만, 파시스트들은 계속 성장했다.

2022년: 국민연합이 국회에서 89석을 획득하는 중대한 돌파구를 열었다.

202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조르당 바르델라가 이끄는 국민연합이 31.4퍼센트를 득표해 1위를 했다. 마크롱은 조기 총선을 발표했다. 마크롱은 좌파를 분열시키고 자신이 “합리적” 선택으로 부각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6월 30일 총선 1차 투표에서 국민연합과 그 일당은 33퍼센트를 득표했다. 국민연합이 다수당이 돼 바르델라가 차기 프랑스 총리가 될 위험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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