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2년 반·김용균 사망 1주기:
줄잇는 산업재해, “사망자 수 절반” 약속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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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3일 정부는 “혁신 성장 및 기업 환경 개선”을 위한 규제 완화 계획을 내놨다.(제26차 경제활력대책회의) 가습기 살균제 대참사 등을 계기로 제·개정됐던 화학 물질 관련 법안들도 도마 위에 올려 놨다. 화학 물질에 관한 인허가 기준을 완화해 주는 것이다.
정부는 일찍이 한일 갈등과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응해야 한다며 이런 얘기들을 흘려 왔다. 그런데 지소미아에서 두 손 두 발 다 든 지금, 노동자 안전을 위협할 규제 완화는 밀어붙이고 있다.
요란한 빈 수레
문재인은 임기 내 산업재해 사망자 수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지난해 통계상 산재 사망자 수는 전년 대비 늘어난 2142명에 달한다. 업무상 질병으로 인한 사망에 대해 산재 인정률이 높아진 것은 개선이지만, 사고사도 줄지 않고 오히려 약간 늘었다.
이 실감 나지 않는 숫자 속에, 1년 전 참혹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던 24살 청년, 고 김용균 노동자가 있다.
정부·여당은 올해 1월 국회를 통과한 개정 산안법을 “김용균 법”,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법은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였다.
유해 작업의 도급을 금지했다지만 고작 4가지 화학 물질에 제한돼 있다. 김용균을 포함한 제조업이나 건설업, 조선업 등의 사고성 재해와 거의 관련이 없다.
게다가 일시적, 간헐적인 작업이거나 고용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받은 경우는 예외로 한다며 뒷문을 열어 줬다.
원청의 책임을 강화했다고도 하는데, 그 책임 범위도 여전히 협소하다. 처벌 기준이 낮아 실효성에도 물음이 제기된다.
중대재해 발생 시 정부가 기업에 작업 중지를 명령하는 기준을 더 까다롭게 하는 개악도 포함돼 있다.
더구나 정부는 지금 개정 산안법을 더한층 누더기로 만들 하위법령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내년 1월 개정 산안법의 시행에 맞춰 하위법령도 올해 안에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키려 한다.
이에 더해 정부는 최근 이 하위법령에 화학물질 관련 보고서의 심사 기간을 대폭 단축하는 내용도 포함시킬 수 있다고 시사했다.
이런 꾀죄죄한 법안 개정에 김용균의 이름을 갖다 쓰며 생색 내는 것은 역겨운 위선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올해 초 산안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너덜너덜해진 결과물에 대해 자유한국당을 탓했다. 물론 산안법은 국회에서 원안보다 곳곳에서 더 후퇴했다.
그러나 더 핵심적인 개정 산안법의 문제점들은 대부분 원안 자체에 들어 있었다. 예컨대 도급 금지에 이런 저런 예외를 둬 뒷문을 열어 준 조항은 그 모체인 2013년 한정애 민주당 의원의 일부 개정안 거의 그대로다.
산재 지뢰밭
산업재해의 피해는 일부 산업·부문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무·서비스직과 생산직, 내국인과 이주노동자 가릴 것 없이 많은 노동자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외주화 확대, 다단계 하청구조 속에서 산업재해의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하청 노동자의 산업재해를 실질적으로 줄이려면 외주화를 원천 금지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 외주화 자체가 노동자에게 들어가야 할 비용을 줄이고 기업주들이 이윤을 더 가로채도록 돕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가 여전하면 사장들의 계산기 위에서 안전을 위한 비용은 제일 먼저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구조를 없애긴커녕 비정규직 양산의 장본인 구실을 하고 있다. 문재인은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가 아니라 저질 비정규직 일자리를 늘렸고, ‘자회사 전환도 정규직화’라는 억지를 부리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한 줄기 희망을 짓밟았다.
건설 현장은 불법 다단계 하도급과 산재 사망의 온상이다. 건설 노동자들은 매년 500~600명씩 죽어 나간다. 이 지옥 같은 현장에 점점 더 많은 청년들이 유입되고 있다. 올해 4월 김용균의 또래인 26살 김태규 노동자가 수원의 건설 현장에서 추락해 사망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수주 물량에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다니는 조선업 하청 노동자들도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다. 9월 20일에는 현대중공업에서, 9월 26일에는 대우조선에서 하청 노동자가 10톤 넘는 철제에 깔리거나 머리가 껴서 사망했다.
또, 문재인은 대선 후보 시절 한 해 노동 시간을 1800시간대로 대폭 줄여 장시간 노동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주52시간제를 탄력근로제 확대로 무력화시키고 있다. 이미 뇌심혈관계질환으로 대표되는 과로사는 한 해에 300~450여 명에 이른다.
우체국이 대표적이다. 국내 집배 노동자 노동시간은 연간 2700시간이 넘고, 매년 노동자 10여 명이 과로사한다. 34살 청년 노동자가 돌연 심장마비로 사망한 일을 포함해 올해만 13명이 과로로 사망했다.
이외에도 학교 비정규직, 배달, 청소, 병원, 반도체, 마트 등 산재 ‘지뢰밭’이라 할 곳들은 다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다.
이윤이 아니라 생명과 안전
그러나 처벌은 미미하다. 2009년 1월~2019년 6월 사이 산안법 위반 사건 중 실형 선고는 0.6퍼센트(35건)에 불과하고 무죄 처리가 6퍼센트에 이른다. 벌금 상한선은 1억 원이지만 실제로는 수백만 원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2017년 5월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는 올해 5월 7일 벌금 300만 원짜리 사고였다고 판결이 났다.
문재인의 대선 공약이던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은 온데간데 없고, 개정 산안법에 노동자들이 요구한 처벌의 하한선 도입조차 반영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산재 사망 절반으로”라는 약속은 실질적 조처 없는 입발림에 지나지 않았다. 정부의 진정한 관심은 노동자의 생명이 아니라 기업의 이윤 지키기에 있다.
안전한 일터를 만들려면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작업 중지 등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또, 그런 동력을 대정부 투쟁으로도 모아냄으로써 정신 나간 자본주의의 우선순위를 뒤흔들어야 한다.
기업처벌법 제정이나 산안법 개선도 이윤 우선 논리에 단호하게 도전하는 투쟁이 뒷받침돼야 실현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