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명 사망’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벌금 고작 300만 원!:
사측은 면죄부 받고 정부는 나 몰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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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일, 삼성중공업에서 골리앗 크레인과 부딪힌 지브 크레인이 넘어져 하청 노동자들이 깔린 끔찍한 사고가 벌어졌다. 이 사고로 6명이 죽고 25명이 다쳤다. 지금도 이 사고를 목격한 수많은 하청 노동자들이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5월 7일 창원지법(판사 유아람)은 사측에게 면죄부를 주는 판결을 내렸다. 삼성중공업 대표 이사는 검찰이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법원은 삼성중공업 사측과 당시 조선소장 등 상급 관리감독자들의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에 대해 무죄를 판결했다. 검찰이 제기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들 중 일부만 인정해 벌금 300만 원 형을 선고했다. 관련 하청 업체의 사장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반면, 일부 노동자들의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는 모두 인정됐다. 형벌 수준도 사측보다 높다. 사실상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긴 것이다.
법원은 아래와 같은 형식적인 이유로 면죄부 판결을 내렸다. 우선, 사측이 안전 규정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할 일을 다했다는 식이다.
“규정이나 지침은 그 존재만으로는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기능이 없고, 결국 작업자들이 이를 철저히 준수함으로써 실제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럼 노동자들은 왜 안전 규정을 준수하지 않았나? 법원의 설명은 그저 노동자들이 의무를 “게을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문보다 당시 사고를 목격한 하청 노동자의 폭로가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사측이] ‘관행이다’, ‘어쩔 수 없다’, ‘시간에 쫓기니까 언제까지 이 일 못 끝내면 손해가 된다’ 하면서 압력을 넣죠. … [그러면 관리자가] ‘해야 되는데’, ‘오늘까지 끝내야 하는데’ 이렇게 하면 밑의 사람은 안 잘리려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고요.”(《나, 조선소 노동자》, 2019, 코난북스)
사측이 이윤 때문에 노동자를 몰아간 것이 사고의 핵심 이유였다. 당시 사고 현장에는 5월 말까지 인도해야 할 해양플랜트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그래서 사측은 노동절 휴일에도 1만 명이 넘는 하청 노동자들을 투입해 일을 시켰다. 당연히 노동자들은 빨리 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안전 투자는 뒷전이었다. 사고 당시 크레인끼리 충돌을 방지하는 안전 장비가 설치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실제로 장비가 고장 나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다. 삼성중공업에서는 2007~2017년 10년 동안 비슷한 크레인 충돌 사고가 7건이나 발생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개선 조처는 이뤄지지 않았다.(《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 조사위원회 사고조사보고서》)
법원은 사측이 안전 장비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지, 충돌 방지가 가능한지, 다른 조선소들에도 그런 장비가 있는지 등을 따져야 한다며 사측을 두둔했다. 심지어 법원은 삼성중공업이 고용노동부와 해외 기관의 안전 관리 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치켜세웠다. 그러면 그런 기업에서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은 뭔가!
게다가 법원은 상급 관리감독자들에게는 “일방적·추상적인 지시·감독권만 있을 뿐 … 구체적·직접적 주의 의무가 있다고는 볼 수 없다”면서, 사측의 꼬리 자르기도 그대로 수용했다.
이번 판결이 나오기 불과 며칠 전인 5월 3일과 4일에도 삼성중공업에서는 중대재해가 일어나 하청 노동자 한 명이 죽고 한 명이 크게 다쳤다. 사측은 5월 3일 산재를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이 와중에 법원은 노동자들의 생명을 대가로 사측이 이윤을 더욱 뽑아내도록 날개를 달아 준 것이다.
위선
이번 판결은 문재인 정부의 산재 감축 약속이 얼마나 위선적이었는지도 잘 보여 준다. 삼성중공업 중대재해가 일어났던 2017년 산업안전의 날 기념식에서 문재인은 이렇게 말했다.
“산업 현장에서 그 어떤 것도 노동자 생명과 안전보다 우선될 수 없다. … 산업 현장 위험을 유발하는 원청과 발주자가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게 하[겠다.]”
그러나 최근 정부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누더기로 만들어 통과시키더니 그것조차 후퇴시킨 시행령을 발표했다.
2017년 11월 문재인 정부는 삼성중공업과 STX조선에서 벌어진 중대재해를 민간과 함께 조사하겠다면서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 조사위원회’를 만들었다. 지난해 9월 이 조사위원회가 내놓은 《사고조사보고서》는 조선업 중대재해의 중요한 원인을 몇 가지 지적했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원청 사측의 책임을 회피하게 만드는 논리도 펼쳤다. 사측이 하청 업체들의 작업을 전부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법원 판결도 이와 비슷한 논리로 현장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총이, 한계가 분명한 정부 주도 조사위원회에 참여하고 문제적 내용이 담긴 《사고조사보고서》에 이름을 올린 것은 아쉬운 일이다. 민주노총은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공청회 자리에서 조사위원회를 비판하기도 했지만, 그 이상의 대응은 하지 않았다.
일터에 만연한 산재 문제를 완화하고 여러 노동운동 단체들이 제기하고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이 이뤄지려면, 문재인 정부에 맞서 독립적인 투쟁을 발전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