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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건설 일용직 청년 산재 사망:
실족사로 덮으려는 사측, 편드는 경찰

“스물 여섯 나이에 가족을 부양하겠다고 일당 벌러 나갔던 태규가 왜 이렇게 허망하고 억울하게 죽어야 하는지 가슴이 찢어집니다.”

4월 19일 기자회견에서 고(故) 김태규 씨의 누나가 애끓는 마음을 쏟아냈다.

고 김태규 씨는 4월 10일 수원의 한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가 5층 높이에서 떨어져 처참한 모습으로 사망했다. 용역업체를 통해 일용직으로 현장에 나갔던 김 씨는 화물용 엘리베이터에 올라 탔다가 사고를 당했다.

시공사인 은하종합건설은 각종 법 규정과 안전 수칙들을 위반했다.

산업안전보건규칙은 2미터 이상 높이의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운행할 때는 노동자가 안전하게 승강할 수 있는 건설작업용 리프트를 설치하도록 하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는 미승인 상태였고, 위험천만한 고층 작업인데도 문을 완전 개방한 채 운행됐다.

일용직 노동자들은 안전모·안전화·안전벨트를 지급받지 못했다. 시공사는 “하루만 나오는 용역에게는 원래 그렇다”고 뻔뻔하게 나왔다. 같은 현장에서 일했던 김태규 씨의 친형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안전모를 주워다 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는 이처럼 열악한 현장에서 비롯한 것이지, ‘발 헛디딘 개인의 실수’ 탓이 결코 아니다.

제대로 수사하라

사고 현장에는 작업을 지시하고 있던 시공사 소속 책임자 문 씨가 있었다. 김태규 씨는 화물이 실리지 않은 상태의 엘리베이터에 혼자 올라타, 열려 있는 문 쪽 벽면에 서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불필요하고 위험한 일이었다.

만약 문 씨가 이를 지시한 것이라면 왜 그랬는지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문 씨를 포함해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의 진술이 엇갈리거나, 시공사가 사건 현장을 훼손해 증거를 인멸하려 했다는 정황도 있다.

그런데도 경찰은 이런 의심쩍은 점들을 대충 넘기고, 회사의 설명대로 사건을 종결하려 했다. 억울하게 사망한 젊은 노동자가 아니라, 저임금 일용직 노동자들을 위험으로 몰아 넣으면서 이윤을 벌어들인 건설 회사의 편에 선 것이다.

유가족들은 수사 관련 정보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대로라면 일부 처벌이 이뤄지더라도 솜방망이나 꼬리 자르기 식으로 끝날 수 있다.

유가족들은 억울함을 토로하면서 제대로 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수원 지역 청년들의 단체인 ‘일하는 2030’ 등이 유가족에게 연대하면서 자칫 묻힐 뻔 했던 사건이 널리 알려질 수 있었다.

정부와 경찰은 유가족의 호소에 즉각 응답해, 제대로 된 수사와 처벌에 착수해야 한다.

실업, 그리고 청년의 죽음

특성화고 졸업생이었던 고 김태규 씨는 많은 또래들과 마찬가지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일명 ‘막노동’이라고 불리는 건설 일용직으로 내몰렸다.

김태규 씨와 비슷한 처지의 20대들은 꾸준히 늘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일용직에 종사하는 20대 수는 2012년 18만 7000여 명에서 2018년 25만 3000명으로 훌쩍 증가했다.

건설 일용직 안전교육 이수 자료를 통해 추정한 20대 건설 일용직 종사자 수는 2013년 3만여 명에서 2016년 10만여 명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이 기간은 실업률이 두 자릿수를 넘어선 때이기도 하다.

건설 현장은 한 해 500여 명이 산재로 사망하고 그중 250여 명이 추락사하는 ‘죽음의 현장’이다. 20대 건설 노동자가 늘어난 만큼 20대의 산재 사망도 늘었다. 2017년 건설업에서 사망한 20대 초반(18~24세) 노동자만 13명에 달했다.

건설 일용직 노동은 기술이나 경험 없이 짧은 시간 일해서 돈을 벌 수 있다. 실업 상태인 20대 남성들이 학원비나 생활비를 벌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인력 사무소로 몰려드는 이유다.

그렇게 여름엔 땀 흘리고 겨울엔 손 얼어 가며 하루 종일 일하면, 인력 사무소에 소개비를 떼 주고 남은 일당 10~11만 원 남짓 손에 쥔다.

건설 회사의 탐욕만이 아니라, 한 해에 수백 명씩 죽어 나가는 전쟁터 같은 건설 현장을 방치하고 자본가들의 이윤부터 보호하는 정부와 경찰, 심각한 청년 실업 등 고 김태규 씨의 안타까운 죽음은 이 사회의 여러 단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산재로 사망한 발전소 하청 노동자 고(故) 김용균 씨처럼 수많은 20대 청년들이 ‘위험의 외주화’로 내몰리는 것도 같은 배경 속에 있다.

김태규 씨의 유가족은 말한다.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아들·딸, 누군가의 동생이 또 이렇게 죽고 진실이 감춰질 것을 생각하면 태규 죽음의 진상 규명은 우리 가족만의 일이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 책임자 처벌과 투명한 재수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 줄 것을 대통령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4월 25일 대정부 촉구 기자회견)

문재인 정부는 “산재 사망 절반 줄이겠다” 말만 늘어놓지 말고 김태규 씨 유가족의 절절한 요구부터 들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