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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국민의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처리 합의:
알맹이 없는 껍데기 안에서 더 후퇴하다

1월 3일에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청소 작업을 하던 하청노동자가 기계에 몸이 끼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벌어졌다.

그런데도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1월 8일 국회에서 애초 정부안보다도 더 후퇴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통과시킬 예정이다.

두 당은 1월 5일에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에서 기업주 처벌 수준을 낮추는 데 합의했다. 1월 6일 다시 소위를 열어 최종안을 확정·의결할 것이라고 했는데, 5인 미만 사업장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이날 오전에는 소상공인 업체(상시 노동자 10명 미만, 업장 면적 1000제곱미터 이하)와 학교를 ‘중대시민재해’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잠정 합의했다고 한다. 50인 미만 사업장 법 적용 유예 등은 논의 중이라고 한다(1월 6일 18시 기준).

이번 합의를 보면, 사망사고를 낸 책임이 있는 경영자의 선고 범위가 ‘징역 1년 이상 또는 벌금 10억 원 이하’이다. 이는 12월 28일 정부가 제시했던 ‘2년 이상 징역 또는 5000만~10억 원 벌금’과 비교해, 징역형의 하한선을 낮추고 벌금형의 하한은 없앤 개악안이다. 법인에 대한 처벌 하한선도 없앴다. 정의당과 민주노총,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 등은 양당 합의 내용을 비판했다.

“독소조항을 빼야 한다”면서 온전한 법 제정에 줄곧 반대해 온 국민의힘과 합의를 시도했을 때부터 이와 같은 후퇴는 예견된 것이었다. 자본가들의 이해관계를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정당이 기업주들의 책임을 제대로 늘리자는 것에 반대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공수처법 개정처럼 정권을 위기에서 구출하려는 법은 단독으로 강행하면서도, 탄력근로제 확대 등 노동개악과 기업 지원을 우선한 예산안은 국민의힘과 합의해 처리해 왔다. 노동자 안전을 위한 법 제정 요구도 국민의힘 핑계를 대며 미루려고 했다. 그래서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여태까지 여당이 그 많은 법을 통과시켰는데 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꼭 야당이 있어야 하느냐’고 일침을 놓자 민주당 원내대표 김태년은 어떤 대꾸도 하지 못했다.

피해자와 가족들의 고통 또 외면하려는 문재인 정부 1월 4일 국회 앞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재난참사 피해자 기자회견’ ⓒ이미진

경총 등은 ‘사업 못 하게 하는 법’이라며 우는 소리를 하지만, 정부안은 오히려 중대재해기업‘보호’법이라는 비난을 받아 왔다. 정부안은 기업주가 책임져야 할 범위를 대폭 좁히고, 원청·발주처 책임은 아예 면하게끔 했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어렵게 한 것이다. 법 위반 시 벌금 하한액을 대폭 낮추고 상한액을 마련하는 등 여러모로 문제투성이였다. 그마저도 50명 미만 사업장은 4년, 50~100명 미만 사업장은 2년 동안 적용을 유예하기로 했다.(관련 기사: 본지 350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정부안: 기업주 책임도, 처벌 수준도 대폭 후퇴 … “껍데기만 남았다”)

그래서 단식 농성을 해 온 유가족들은 “정부안은 알맹이 빠진 껍데기”라고 즉각 반발했었다. 심지어 중소벤처기업부(장관 박영선)는 1월 4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적용을 2년 유예하는 사업장 범위를 50~300인 미만으로 늘리자’는 의견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정부 자신이 얼마든지 더 후퇴할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이다.

정부 통계로 연평균 2000명이 산재로 사망한다. 지금도 매일 5~6명이 죽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렇게 저렇게 처벌 범위를 다 빼고 나서도 법 적용을 2년, 4년 뒤로 미룰 거면 도대체 지금 법안을 서둘러 제정하는 이유는 뭔가?

문재인 정부의 책임

1월 5일 법안소위가 열린 날 오전 국회 단식농성장 앞에서는 산재피해당사자와 유가족들이 직접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꼭 담겨야 할 내용과 취지를 설명하는 긴급 간담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정부안이 담지 않은 내용들 — 하한형 형사처벌 도입, 원청과 발주처 처벌 조항 포함, 50인 미만 작업장 유예 조항 삭제, 반복된 사고와 사고은폐 기업에 인과관계 추정 등 — 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1월 5일 합의 내용을 보면, 여당은 또 한 번 가족들의 바람을 외면했다.

뻔뻔하게도 민주당 대표 이낙연은 1월 8일 본회의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을 처리하기로 했다면서 이것이 “노동존중 사회의 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추운 날씨에 단식농성 중인 산업재해 희생 유족들을 이제라도 귀가하게 해 드려야 한다”고도 했다. 몰염치의 극치다.

문재인 정부의 진정한 관심은 기업의 이윤 지키기에 있다. 정부는 친기업 정책과 노동개악으로 이를 실행해 왔다. 노동시간을 늘리고 기업주들의 임금 부담을 줄일 탄력근로제를 확대했다. 반면, 공공부문 직접고용 정규직화 약속은 나 몰라라 한다.

고 김용균 씨의 안타까운 죽음이 있고서 2년이 지났지만 2019년과 2020년 8월까지 발전소 노동자 67명이 산재 피해를 당했고 그중 91퍼센트가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문재인 정부는 산재사망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2020년 산재사망자는 전년도보다 더 늘어났다. 산업재해는 법의 미비뿐 아니라 정부의 의지 부족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강태선 세명대 안전보건공학과 교수는 “사회적 압력 없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만 제정된다면 현장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경향신문〉 1월 6일자)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 안전은 뒷전에 두고 비용 절감과 이윤을 우선하는 체제가 산업재해 피해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있다. 문재인은 이런 체제를 수호할 임무에 맞게 국가를 운영해 왔다. 기업주들만이 아니라 정부도 책임을 져야 마땅한 이유다.

많은 노동자와 유가족들의 바람대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온전히 제정돼야 할 뿐 아니라, 정신 나간 체제의 우선순위에 정면 도전하는 투쟁을 건설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