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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 18톤 무게에 머리 껴 사망:
‘빨리 빨리!’ 압박과 외주화가 낳은 참사

사고가 발생한 현장 모습 ⓒ현대중공업지부
9월 20일 현대중공업에서 하청 노동자가 중대재해로 숨졌다. 재해자는 대형 가스탱크의 압력 테스트를 위해 임시로 달았던 18톤 무게의 육중한 철제 뚜껑(테스트 캡)을 다시 떼어 내기 위해 용접 부위를 절단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용접 부위가 제거된 테스트 캡이 아래로 꺾이면서 재해자를 덮쳤고, 본체 철판과 테스트 캡 사이에 목이 낀 채로 끔찍하게 사망했다.

사고 정황을 보면 사측이 얼마나 안전을 무시했는지 알 수 있다.

우선, 이런 작업을 할 때에는 반드시 크레인(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옮기는 장비)으로 테스트 캡을 잡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고 현장에는 크레인이 없었다. 크레인은 언제 왔는가? 사고가 난 뒤 2시간 정도 지나서야 시신을 수습하러 왔다! 너무나 화나는 일이다.

중공업에서 크레인은 생산에 매우 밀접하다. 작업하는 여러 곳에서 동시에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한 번 사용하려면 오래 기다려야 한다. 크레인 업무를 외주화한 이후에 사용 절차가 복잡해져 더 사용하기 어려워졌다고 한다.

그러나 매번 이렇게 크레인을 기다렸다가는 작업 속도가 느려진다. 결국 크레인 없이 위험하게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사측의 공사 기간 단축 압박이 위험한 작업을 초래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사고가 발생하기 전, 똑같은 테스트 캡 분리 작업이 14번이나 있었지만 모두 크레인 없이 진행됐다. 다행히 그동안에는 저장 탱크와 테스트 캡이 꽉 맞물려 있어서 크레인이 없이 용접 부위를 제거해도 테스트 캡이 바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15번째 작업에서는 터질 일이 터지고 말았다.

이번 사고는 외주화와도 관련 있다. 사측은 하청 노동자들을 고용해 안전 수칙도 무시한 채 위험한 일을 시켰다. 해당 작업을 원청이 담당할 때는 크레인을 동반한 상태에서 작업해야 한다는 ‘표준작업지도서’가 지켜졌지만, 이번 사고에서는 지켜지지 않았다고 한다. 회사가 “그동안 테스트 캡이 잘 빠지지 않았으니 이번에도 안 빠질 거야. 용접 부위부터 제거해!”라고 말했을 때 하청 노동자가 이를 거부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사고 현장에는 꼭 있어야 하는 관리감독관도 없었다. 압력 테스트 작업은 공사의 거의 마지막 작업이다. 그래서 사측은 관리감독자들에게 다른 일을 지시했다고 한다. 아직 위험한 일이 남아있었는데 말이다.

그동안 사측은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그 원인을 개인의 안전불감증 문제로 몰곤 했다. 9월 25일 또 크레인 사고가 나서 노동자 한 명이 다쳤을 때도, 사측은 개인의 부주의를 탓했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책임 전가다. 노동자가 겪는 위험과 재해의 이면에는 자본의 이윤 추구가 있다.

문재인 정부도 책임이 있다. 고 김용균 씨 사망 이후에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하라는 수많은 사람들의 요구가 있었지만, 오히려 정부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누더기로 통과시켰다. 또, 5월 중대재해 발생 시 작업중지에 관한 지침을 개악했다. 그래서 2년 전에는 산재 사망이 발생했을 때 노동부가 공장 전체에 작업 중지를 내렸는데, 이번에는 해당 공정에만 작업 중지를 내렸다.

9월 23일 금속노조와 조선업종노조연대는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사측을 규탄했다. 이들은 하청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원·하청 사업주 구속, 위험의 외주화 금지법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작업중지 지침 등 개악된 노동 안전 제도 전면 재개정을 요구했다. 금속노조는 이를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

9월 26일에는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가 10톤 짜리 철판 블록에 깔려 숨졌다. 이윤을 위해 안전을 희생시키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이런 끔찍한 사고가 반복될 것이다. 그런 체제를 노동자에게 강요하는 사측과 정부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