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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꺾이지 않았음을 보여 준 브릭스 정상회담

러시아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다른 사람 빠뜨릴 함정 파지 마라, 너 자신이 빠질 것이다.” 서방 정치인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용해 러시아의 피를 말려 죽이겠다고 선언할 때 곱씹어야 했을 말이다.

지난주 브릭스 정상회담으로 미국과 영국은 또 한 번 체면을 구기게 됐고, 영국 노동당 총리 키어 스타머는 모멸감을 느껴야 했다.

10월 23일 러시아 타타르스탄 자치공화국의 수도인 카잔에서 열린 제16차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가한 각국 대표자들 ⓒ출처 brics-russia2024.ru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러시아 카잔시(市)에 모인 각국 정상들을 환대했다. 거기 모인 국가의 인구를 모두 합하면 세계 인구의 절반에 이른다. 푸틴은 각국 대표단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극 세계를 구축하는 과정이 진행 중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시릴 라마포사와 인도 총리 나렌드라 모디는 스타머의 영연방 정상회담(영국 제국 옛 식민지 국가들의 회담) 초청을 무시하고 그 대신 러시아에 간 것이었다. 푸틴이 고립됐다는 말이 무색하다.

푸틴은 미국이 지배하는 세계 금융 질서에 맞서 새로운 국제 결제망 구상의 운을 띄웠다. 이 결제망 “브릭스 브리지”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디지털 화폐를 사용하고, 전 세계 은행들이 수조 달러를 결제하는 데 사용하는 국제 결제망 스위프트(SWIFT)를 대체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 제재로 스위프트에서 배제됐다. 그 때문에 이번 브릭스 정상회담에 참가하는 각국 대표단은 신용카드가 통하지 않으니 현금(가급적 달러·유로화)을 지참하라는 말을 들었다.

‘카네기 러시아·유라시아 센터’의 알렉산드라 프로코펜코는 이렇게 설명했다. “러시아 정부는 더 나은 세계 금융 인프라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 이 인프라는 기존 인프라와 비슷하지만, 러시아를 배제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는 매우 중요한 조건 하나가 달려 있다.”

하지만 이 행보가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일까? 서방의 정책 입안자들은 그 함의를 분명 우려하고 있다.

이번 브릭스 정상회담은 미국의 헤게모니와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자본주의 세계 질서가 위기에 처한 것을 배경으로 열렸다.

1945년 이후 미국 제국주의는 유럽 식민 제국들의 제국주의와는 차이가 있었다. 미국 제국주의는 자유 시장과 자유 무역에 기초한 세계 질서를 구축하고자 했다.

이 질서에는 언제나 경제적 차원과 군사적 차원이 빠지지 않았다. 미국은 1944년 창설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을 이용해 경쟁국·동맹국·약소국에 자기 힘을 투사할 수 있었다.

이 “브레튼우즈” 체제에 따라 미국은 달러 환율을 고정하고 자국 기업들에 유리한 교역 조건을 조성할 수 있었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1970년대에 붕괴했지만 그 후로도 미국은 IMF와 달러화의 기축 통화 지위를 이용해 자유 시장 정책들을 관철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일은 미국의 군사력으로 뒷받침됐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 군사력은 군사 동맹 나토와 전 세계 수백 곳에 있는 미군 기지를 통해 발휘된다.

1991년 냉전이 끝났을 때 미국은 유일하게 살아남은 초강대국이었다. 그러나 뒤이어 미국이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 패배한 것은 미국의 경쟁자들에게 각자의 이해관계를 내세울 수 있다는 신호가 됐다.

그리고 세계 자본주의 내에서도 변화가 일었다.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 같은 국가들이 점차 중요한 국가가 되고 있다. 이들은 석유 생산자일 따름이던 과거에서 벗어나 산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현재 미국 제국주의는 중동, 동아시아의 중국, 우크라이나에서 대(對)러시아 대리전이라는 삼중의 위기에 처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가 고립되기는커녕 서방이 막대한 양의 무기·재정 지출을 감수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러나 브릭스 세력에게는 한계가 있다. 첫째, 중국 등의 국가들은 달러의 지위 하락을 반길 테지만, 푸틴의 이번 구상에는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보였다.

그 국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지 않으려 주의 깊게 처신해 왔는데, 그랬다가는 미국이 자기네들에게도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둘째, 미국 헤게모니에 맞서 응집력을 발휘할 대안이 브릭스 정상회담에서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회담 참가국들은 브릭스를 각자 대화나 나눌 기회로 여길 뿐 모두 일치단결해야 하는 프로젝트로 여기지는 않는다. 부분적으로 이는 제국주의 경쟁의 동학 때문에 브릭스 회원국들끼리도 서로 경쟁 관계에 놓이곤 하기 때문이다.

셋째, 새로운 “다극 세계”도 기존의 단극 세계와 꼭 마찬가지로 인명을 앗아가는 위험한 세계고, 지역적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결코 낮지 않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국가 간 세계적 경쟁 체제다. 미국 아닌 제국주의 열강을 편 드는 것이 미국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대안일 순 없다. 그 열강도 자기 나름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가 있다.

미국 제국주의에 맞설 대안은 전 세계에서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투쟁의 일환으로서 자국 정부에 맞서 싸우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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