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IST
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

이 글은 4월 26일에 같은 제목으로 열린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영상 보기)의 발제문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은 세계가 강대국 간 갈등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실감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제는 확연히 서방과 러시아의 대결이 돼, 확전과 핵전쟁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 또, 미·중 갈등이 첨예해지는 가운데 대만을 둘러싼 양측의 무력 시위가 거의 상시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더구나 최근 윤석열 정부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대만 문제에 관한 발언을 놓고 러시아와 중국이 격앙된 반응을 보이면서 우리는 우리나라도 그 갈등들에 깊숙이 얽혀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거대한 갈등들은 마르크스주의에 큰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마르크스는 사회의 핵심 분단선이 계급이라고 했다. 그러나 국제 질서는 계급이 아니라 국가들의 위계 질서로 이뤄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그 질서를 결정하는 것은 계급 투쟁이 아니라 국가들 간의 투쟁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국가간 불평등과 쟁투는 자본주의 사회 이전부터 있었다.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은 오늘날 이런 거대한 갈등들이 어떻게 자본주의의 역학과 연결돼 있는지를 설명하고 해결책을 제안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제국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그렇다면, 우선 마르크스주의는 제국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살펴보자.

흔히들 제국주의를 강대국이 하는 깡패짓으로 소박하게 이해한다. 그런 단순한 의미라면 제국주의는 자본주의보다 훨씬 오래된 것이다. 4천 년 전에도 자신의 우위를 이용해 주변국들을 복종시킨 제국들이 있었다. 가령 아카드 제국, 아시리아 제국, 바빌로니아 제국 등의 이름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제국주의를 그렇게 포괄적으로 정의하는 것은 전혀 유용하지 않다. 상이한 역사적 시기의 상이한 역학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뭉뚱그려서는 특별히 설명해 주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이 말하는 제국주의는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부터 나타난 현상을 뜻한다.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런가?

무엇보다도 강대국들의 지정학적 경쟁과 영토 확장이 유례없이 격화됐다. 물론 과거에도 제국들 간의 경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제국주의적 경쟁은 그 범위와 파괴력, 빈도 등 온갖 면에서 질적으로 달랐다.

당시 영국은 인도 전체와 중동 대부분, 아프리카 일부를 아우르는 제국을 건설했다. 프랑스는 북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로 진출했다. 러시아는 서쪽과 남쪽으로 국경을 확장했다. 그 과정에서 인도로 연결되는 중앙아시아에서 영국과 지배력 획득 경쟁을 벌였다. 뒤늦게 비로소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기 시작한 일본은 1879년 오키나와를 병합했고, 1904년에는 러시아와 전쟁을 벌였다. 아프리카를 둘러싼 유럽 열강의 경쟁도 치열했다.

바로 이런 경쟁이 제1차세계대전의 배경이 됐다.

레닌과 부하린 등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왜 세계가 이처럼 엄청난 갈등 격화와 대규모 전쟁으로 치닫는지 설명하려 했다. 그들의 분석 대상이 된 현상은 여러 제국들의 경쟁이었다.

이 점은 제국주의를 약소국에 대한 강대국의 횡포로 보는 좌파들의 소박한 사고 때문에 중요하다.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좌파들은 흔히 제국주의를 미국의 횡포로 축소시킨다. 그러나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제국주의를 기본적으로 강대국들 간의 경쟁 시스템으로 이해했다.

제국주의에 대한 또 다른 오해는 제국주의를 식민 지배로 한정해서 보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식민 지배가 대부분 종식된 오늘날, 제국주의는 과거지사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고전적 제국주의 시기에조차 식민 지배가 전부는 아니었다. 영국은 미국 남부와 중국, 라틴아메리카 등 자기의 식민지가 아닌 곳에서도 막강한 해군력과 제조업 우위, 금융 제도에 대한 지배력을 바탕으로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또, 미국은 식민지 개척보다는 이런 ‘비공식 제국’을 더 선호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덜 제국주의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은 당시 지정학적 경쟁의 중요한 플레이어였다.

이처럼, 제국주의를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보는 관점이나 식민 지배로 한정하는 관점 등은 모두 제국주의의 본질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모두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와 분리해서 본다는 중요한 약점이 있다.

반면, 마르크스주의적 제국주의론을 발전시킨 레닌과 부하린은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을 토대로, 자본주의의 발전이라는 맥락 속에서 제국주의를 이해했다.

제국주의를 낳은 변화들

레닌과 부하린은 제국주의를 낳은 세 가지 변화를 지적했다.

첫째, 자본의 집중이다. 경쟁과 경제 위기의 결과 작은 기업들이 큰 기업에 흡수되어, 소수 기업들의 덩치가 엄청나게 커진다.

그러면서 그런 대기업들이 특정 산업과 심지어 경제 전체를 주무르게 된다. 그런 소수 대기업들은 국가와 긴밀하게 얽힌다.

둘째 변화는 자본의 국제화다. 방금 전에 자본의 집중에 대해 얘기했는데, 그렇게 덩치가 커진 자본들은 자기 나라 안에서는 더 성장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이윤을 얻기 위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한다.

그 결과 자기 나라 안에서는 경쟁이 줄어들지만, 세계 시장에서는 자국 국가와 결합된 더 거대한 단위들이 더 격렬한 경쟁을 벌이게 된다.

이러한 거대 자본들 간의 국제적 경쟁은 국가간 지정학적 경쟁과 맞물리게 된다. 반도체 경쟁이 제국주의적 경쟁과 연결되는 요즘 상황을 떠올리시면 되겠다.

국제 무대에서 경쟁하는 기업들에게는 국가의 도움이 절실하다. 강력한 국가일수록 약소국으로부터 더 많은 이권을 얻어 낼 수 있다. 해외 투자를 지키기 위해서도 강력한 국가가 필요하다. 또, 자본들이 아무리 국제화하더라도 그 본사는 대개 자기 출신국에 있다. 그래서 그들의 경쟁력을 높일 조건들을 마련하는 일은 그 국가의 권력에 달려 있다.

한편, 국가 관료들은 그들대로 기업들의 경쟁력을 키울 이해관계가 있다. 기업들이 성공적일수록 첨단 무기를 개발·구입하거나, 세금으로 국가 운영 비용을 마련하는 것이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계 시장을 둘러싼 기업들의 경쟁은 국가들의 군사적·영토적 경쟁과 맞물린다. 그리고 자본들과 국가의 상호의존 관계가 강화된다.

그런데 여기서 국가간 경쟁과 쟁투를 직접적인 경제적 이득 문제로 축소시켜서는 안 된다. 예컨대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을 단지 우크라이나의 곡창 지대나 미국 군수산업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본다면 단순하고 조잡한 설명으로 흐르게 된다.

제국주의 전쟁은 대개 영향권을 지키거나 전략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이 결국 경제적 경쟁에도 이롭기 때문이다.

제국주의를 낳은 세 번째 변화는 레닌이 말한 불균등 발전이다. 이는 몇몇 국가가 남들보다 먼저 발전을 이룰 뿐 아니라, 후발 국가들이 선발 주자들을 따라잡기도 한다는 뜻이다.

이런 자본주의의 역동성 때문에 기존의 국가간 세력균형이 유지되지 못하고 기존 강자들과 신흥 강자들 사이에 쟁투가 끊이지 않는다. 기존 패권국 미국이 신흥 강국 중국에 위협감을 느끼는 요즘 상황을 떠올리시면 되겠다.

이 같은 불균등 발전은 제1·2차세계대전의 배경이 됐다. 영국은 19세기까지 최강의 제국주의 국가였지만,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미국과 독일의 도전에 직면했다. 이 두 나라는 제조업 생산에서 영국을 앞질렀고, 특히 독일은 이를 바탕으로 군비를 확장해 영국의 해군력을 위협했다. 이처럼 경제적 및 지정학적 도전이 영국에게 제기되면서 제1·2차세계대전이 벌어진 것이다.

오늘날의 제국주의

이처럼, 제국주의의 핵심은 자본의 집중과 국제화와 불균등 발전에 따라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이 결합되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제국주의를 이렇게 이해한다면 제국주의는 본질적으로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소련 몰락 이후, 미국은 국가간 힘의 분포가 균등하지 않으며 계속 변하는 불균등 발전을 점점 더 의식해 왔다. 그래서 자신의 패권에 도전할 신흥 강자가 나타날까 봐 줄곧 우려해 왔다.

군사력 면에서는 미국을 따라올 자가 없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미국은 상대적으로 쇠퇴해 왔다. 미국은 이를 군사력으로 만회하려 했다. 중동에서 벌인 ‘테러와의 전쟁’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미국은 2001년 9·11 공격을 계기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고 거기에 친미 정권을 세웠다. 그럼으로써 미국의 힘을 재확인시키려 했다. 또, 중동산 석유에 대한 지배력을 장악해 그에 의존하는 다른 주요국들을 다잡으려 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은 실패했고 미국은 수렁에 빠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8년에는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가 터졌다. 이 위기는 미국의 경제적 쇠퇴를 더 분명하게 드러냈다.

반면 중국은 이 기간에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며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미국이 2008년 위기의 진앙이었던 데 반해, 중국은 위기에서 빨리 탈출했다. 시장 개방을 통해 신자유주의 세계 질서에 스스로 편입했던 중국은 이제 세계 최대 제조업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군사력도 빠르게 증강했다.

이후 미국은 중국의 도전에 대응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려 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고, 트럼프 정부 들어 비로소 본격화됐다. 바이든은 이를 더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피부로 느낄 정도로 세계가 불안정해지고 긴장이 높아졌다.

오늘날 미·중 갈등은 흔히 신냉전으로 불린다. 그러나 냉전과의 결정적 차이가 있다. 소련과 달리, 중국은 세계 시장 질서에 편입되면서 부상했다. 세계 주요 경제들과 중국은 상호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래서 동맹을 끌어들여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미국의 정책은 뜻대로 되고 있지 않다. 미국의 주요 동맹들에게 대중국 투자와 무역은 매우 중요하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많은 미국 기업들이 중국에 투자하고 있고, 여전히 미국 경제는 중국에서 오는 싼 수입품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미·중 갈등은 제1차세계대전에서 격돌한 영국과 독일의 관계와 더 유사하다. 당시 영국은 독일의 최대 수출 시장이었고, 많은 독일 기업들은 영국의 금융가에서 투자 자금을 조달했다.

이러한 경제적 상호의존이 전쟁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영국과 독일의 경제적 상호의존은 오히려 모순과 갈등을 더 심화시켰다. 당시 독일은 앞서 얘기했듯이 영국에 경제적 도전과 군사적 도전을 모두 제기했다.

오늘날 중국도 비슷한 상황이다. 중국이 당장 미국을 대체하는 세계적 패권국이 되려 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제조2025’로 기술 부문에서 미국의 우위에 도전하려 한다. 또한 초음속미사일 등을 개발해 자신의 주변 지역에서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계를 무력화하려 한다.

제국주의론의 의의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의 의의를 지적하면서 발제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제국주의론은 자본주의가 계속되는 한 인류가 끔찍한 전쟁의 위협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제국주의 문제를 둘러싼 논쟁의 역사를 보면, 이런 결론에 반대하는 주장이 늘 제기됐다. 자본주의 전개 과정에서 나타난 이러저러한 변화 때문에 이제 제국주의는 끝났다는 것이다. 좌파에서도 이런 주장이 제기돼 왔다.

제1차세계대전 때 독일 사회민주당 지도자 카를 카우츠키가 그런 주장을 폈다. 카우츠키는 전쟁이 경제를 망치기 때문에 자본가들이 전쟁을 중단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를 넘어, 전쟁 없는 초제국주의 단계로 나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카우츠키가 그런 주장을 하고 겨우 4반세기 지나 또다시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그 후에도 초제국주의론의 변형들이 거듭 제기됐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전쟁을 벌여 그것이 틀렸음이 입증됐다.

제국주의 전쟁을 이해하지 못하면 심각한 정치적 무장해제 상태에 빠질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을 통해 우리는 제국주의자들이 내세우는 명분의 이면에 있는 패권 경쟁을 꿰뚫어 볼 수 있다.

현재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권위주의’ 진영의 대표자로 지목하면서, 민주주의를 지키자는 명분으로 동맹국들을 결집시키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환상을 가질 이유는 없다. 미국은 최강의 군사력으로 패권 유지를 위해 무슨 짓이든 할 태세가 돼 있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다. 이런 미국에 맞서는 것은 중요한 과제다.

그런데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좌파들 중에는 반대로 중국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적잖다. 중국 지배자들이 새로운 ‘다극적 질서’를 대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환상을 가질 이유가 없다. 중국은 신자유주의 질서에 편입해 자국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방식으로 경제를 성장시켰다.

미·중 갈등은 상이한 질서 간의 대결이 아니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 내의 제국주의적 갈등이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꽤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의 힘이 상대적으로 쇠락하고 중진국들의 경제적 비중이 커진 것이 이런 주장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이런 주장은 미국에 협조하면서도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한국 지배자들의 처지를 반영한다. 이런 주장은 어떤 적절한 균형점 위에서 줄타기를 하는 일부 지배자들에게 노동계급이 지지를 제공해야 한다고 함축한다.

그러나 제국주의적 갈등이 갈수록 첨예해지는 상황에서 그런 줄타기는 십중팔구 커다란 모순에 부딪힐 것이다.

게다가 줄타기가 성공한다고 해도 그것은 노동자 투쟁을 약화시킬 것이다. 노동계급이 지배계급 일부와의 협력을 위해 투쟁을 자제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 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이는 노동계급이 위기의 대가를 치르게 만들 것이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을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는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제국주의 체제를 끝장내려면 자본주의의 무덤을 팔 노동자 투쟁이 필요하다.

이메일 구독, 앱과 알림 설치
‘아침에 읽는 〈노동자 연대〉’
매일 아침 7시 30분에 보내 드립니다.
앱과 알림을 설치하면 기사를
빠짐없이 받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