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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릭스, 미국 주도 국제 질서의 대안이 될까?

8월 23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 ⓒ출처 GovernmentZA(플리커)

8월 22~24일 남아공에서 브릭스(BRICS) 정상회의가 열렸다. 브릭스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 5개국의 모임이다.

이번 회의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 아르헨티나, 에티오피아 등 6개국의 가입이 승인됐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UAE 같은 주요 산유국들이 신규 가입국이 되면서, 브릭스의 존재감이 전보다 커지게 됐다. 미국에게는 결코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브릭스 확대는 중국과 러시아가 강하게 추진한 결과다. 중국은 미국과의 경제적·지정학적 경쟁에 대응하려고 상하이협력기구, 브릭스 등 새로운 국제기구를 발전시키려 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경제 제재를 받고 있어, 브릭스를 확대해 돌파구를 찾고자 한다.

중국은 6개국 가입을 계기로 브릭스 규모를 키우는 데 박차를 가하려 한다.

원래 ‘브릭스’는 2001년 미국 ‘골드만삭스’가 당시 떠오르는 신흥 경제들을 묶어서 만든 용어였다. 이후 해당 국가들이 2009년 첫 정상회의를 하면서 브릭스는 진짜 5개 신흥국들의 모임으로 발전했다.

그런데 미·중 갈등이 격화하고, 주요 신흥국들의 경제적 위상이 높아져 오면서 브릭스의 성격과 위상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미국·중국·러시아의 제국주의적 각축전은 몇몇 신흥국들에게 운신의 폭을 넓힐 기회를 제공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런 양상이 더 진전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미국이 국제 금융 시스템에 대한 지배력을 이용해 러시아 등에 제재를 휘두르자, 여러 국가들이 달러의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제재로 인한 위험을 줄이고 싶어서다. 중국·인도·튀르키예 등은 러시아산 원유를 값싸게 수입했는데, 러시아는 달러가 아닌 다른 화폐로 결제하는 비중을 늘렸다.

특히 중국은 위안화 국제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 그래서 올해 들어 브라질은 무역 거래에서 위안화를 사용할 수 있게 했고, 아르헨티나는 중국과 위안화 통화 스와프를 맺었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달러가 부족해진 국가들에게 위안화 결제가 해법으로 부상한 것이다.

브릭스가 창설한 신개발은행(NDB)은 달러를 대체할 새로운 공동 화폐를 논의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런 배경 속에 많은 국가들이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에 모였다.

미국 견제

윤석열의 친미·친일 외교를 비판하는 사람들 중에는 국제 질서가 미국 우위에서 다극화된 질서로 변하고 있으므로 한국 외교가 브릭스 등으로 폭을 넓혀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더 나아가 확장된 브릭스 등 중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질서가 미국 제국주의를 견제할 대안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브릭스는 기존 패권에 대항할 새로운 세력이 될 수 있을까?

분명 2000년대 들어 브릭스 경제들이 많이 성장했고, 그래서 이제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브릭스 5개국의 국내총생산(GDP) 총합은 서방 강대국들인 G7 국가들보다 더 많아졌다.

하지만 이런 변화의 의미를 과장해서는 안 된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는 “명목 달러 기준으로는 여전히 브릭스의 GDP 총합이 G7에 많이 뒤처진다”고 지적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으로 따지면 격차는 더 크다.

게다가 브릭스 국가들의 경제력도 상당히 불균등하다. 세계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17.6퍼센트인데, 나머지 4개국은 다 합쳐도 6.1퍼센트에 그친다. 신규 가입국들이 가세해도 양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브릭스 내부를 들여다보면 각자 동상이몽임이 드러난다. 예컨대 이번 정상회의에서 브릭스 5개국은 참가국 확대에 가까스로 합의했으나, 그 과정에서 이견이 드러났다.

브라질 대통령 룰라는 “브릭스는 미국과의 경쟁 체제를 구축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중국·러시아와는 분명 온도차가 있는 입장이다. 인도 정부도 중국에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국가들이 브릭스에 대거 들어와 중국의 영향력이 높아지는 것을 경계했다.

브릭스 국가들은 주요 쟁점들에서 이해관계가 상충할 때가 있고, 심지어 중국-인도 간 국경 분쟁처럼 첨예하게 갈등을 빚기도 한다. 지금 브릭스는 이런 갈등을 효과적으로 조정하기에는 통일성이 떨어지는 기구다.

지난달 〈파이낸셜 타임스〉 칼럼니스트 앨런 비티는 이렇게 지적했다. “브릭스가 제재나 군사 개입으로 오만하게 힘을 휘두르는 미국에 대한 불만으로 뭉친 압력 집단으로 남는다면, 딱히 건설적이지는 않을지언정 응집력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브릭스가 뭔가를 주도하려 한다면, 서로 엇갈리는 경제 전망과 전략적 이해관계가 강력한 원심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에서는 ‘공동 화폐’ 논의가 의제에서 빠졌고, 무역 결제 등에서 달러 비중을 낮추고 현지 화폐를 늘리는 방안만을 논의했다.

분명 세계 시장에서 달러의 위상은 전보다 못하다. 중앙은행들의 외환 보유액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이 1999년 71퍼센트에서 2021년 현재 59퍼센트로 줄었다. 또한 미국의 월스트리트가 지배하는 국제 금융 시스템이 앞으로 조금씩 파편화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달러와 다른 통화의 위상 차이는 여전히 압도적이다. 지난해 전 세계 외환 보유액에서 위안화는 2.7퍼센트에 불과했다. 위안화나 ‘브릭스 통화’가 달러의 우위에 도전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먼 것이다.

제국주의

브릭스의 확장이 당장 기존 국제 질서에 커다란 균열을 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세계는 서방 강대국들이 세계경제를 주름잡던 시절과는 분명 달라졌고, 미국의 패권이 앞으로 지속될지 의문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이런 변화는 결코 진보와 안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주요국들의 경제적·지정학적 쟁투가 더 치열해질 것이다.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은 이번에 남아공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항상 개발도상국과 호흡과 운명을 같이하며 과거에도, 현재에도, 앞으로도 영원히 개발도상국의 일원일 것이다.” 자신들은 제3세계를 수탈했던 서방과는 다르다는 얘기다.

그러나 중국이 원하는 새 국제 질서도 결코 호혜와 평등의 질서는 아닐 것이다.

예컨대 중국은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개발도상국들에 막대한 차관을 제공하고 이를 상환하지 못하면 종종 그 대가로 주요 기간 시설에 대한 통제권을 가져갔다.

스리랑카가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은 스리랑카 자본주의를 ‘남아시아판 두바이’로 성장시키려 했던 스리랑카 지배자들, 특히 스리랑카 정치를 수십 년간 주물러 온 라자팍사 가문과 우호적 관계를 맺고 스리랑카에서 대규모 인프라 사업을 벌였다.

그러나 2017년 스리랑카가 함반토타 항구 건설에서 진 빚을 갚지 못하자 중국은 그 운영권을 가져갔고(인도양에서의 전략적 이익을 노린 것이기도 했다) 이는 현지인들의 저항을 촉발했다. 이런 식으로 스리랑카 정부가 지게 된 막대한 부채도 지난해 대중 항쟁의 배경이 된 경제 위기의 한 요인이 됐다.

이처럼 훗날 우여곡절 끝에 브릭스가 중국의 의도대로 응집력 있고 유력한 국제 기구로 발전한다 해도, 그것은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중국의 도전을 뒷받침할 새로운 제국주의적 기구에 불과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 제국주의에 맞선 대안은, 미국에 대립하는 경쟁 강대국들이 아닌 반제국주의적 대중 저항에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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