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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미키 17〉:
소모품의 반란, 반우파적이고 저항 친화적인 영화

인체 실험 바이러스를 직접 흡입하기 위해 비행선에서 내린 주인공 미키. 그는 우주 식민지 개척을 위해 ‘실험용 쥐’처럼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일에 투입된다 ⓒ출처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미키 17〉 스틸컷

봉준호 감독의 영화 〈미키 17〉이 2월 28일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했다.

〈미키 17〉은 에드워드 애슈턴의 SF소설 《미키7》을 각색했다. 소설 《미키7》 에선 역사를 전공한 청년 미키가 좋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스포츠 도박을 하다가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진다.

영화 〈미키 17〉 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미키는 식민지 개척 프로그램에 자원하게 된다. 영화의 배경은 소설보다 훨씬 가까운 미래, 2054년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행성 탐사선에 승선하려면, 스펙도 좋지 않고 ‘빽’도 없는 미키는 “익스펜더블(Expendable 소모품)”이 되는 수밖에 없다.

익스펜더블은 죽었다가 재생되길 끝없이 반복하는 극한 직업이다. 기억과 성격은 “백업”되고 신체는 “바이오 프린터”로 재출력된다.

소모품

익스펜더블은 자본주의(시대/체제/사회, 뭐라 부르든)에서 노동자의 처지와 같다. 생존을 위해 죽음을 감수해야 한다. 회사에 저당 잡힌 시간 동안 자신의 신체와 의식에 대한 자율성을 거의 빼앗긴다.

자본의 입장에서 착취하고 폐기하고 대체하는 소모품 같은 존재다.

ⓒ출처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익스펜더블이 된 미키는 바이러스 감염과 백신 개발을 위한 인체 실험 등 극도로 위험한 일들, 기계가 할 수 있지만 익스펜더블이 하면 비용 절감에 더 효과적인 일들에 투입돼 죽는다.

하지만 미래에도 고통을 줄이는 기술은 없거나, 있어도 비싸거나 아까운 건지 이 미래의 하층 노동자에게는 그런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익스펜더블은 죽기 직전까지 모든 고통을 다 느껴야 한다.

매번 죽음의 문턱을 넘기까지 잔인한 고통과 시간을 견디고, 겪으며, 미키는 4년 3개월 동안 16번 죽는다.

과학 기술의 발달이 불멸의 슈퍼 히어로를 만들긴커녕 끝없는 형벌에 시달리는 노예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익스펜더블은 탐사선 인원의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일들을 해내는 중요한 존재인데도 가장 멸시당한다. 사람들은 익스펜더블이 다치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소수자이기도 하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속 익스펜더블인 미키의 처지에 대해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구의역] 스크린도어에서, [SPC] 제빵 기계에” 죽어 간 청년 노동자들을 언급했다.

높은 중증외상 발생률은 노동자의 노동 환경(생활 환경)과 가장 밀접하다. 현실에선 기업과 정부만 악당이 아니라 의료 기관까지 악당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가 다뤘듯이 대형 병원들 역시 이윤에 혈안이 돼 중증외상 치료를 도외시한다.

자본주의

자본가가 원하는 ‘기억’(지식·기술)과 ‘성격’(순응·근면)을 지닌 다른 ‘신체’가 대체할 수 있다면 노동자의 죽음 따윈 자본주의의 지상 과제(이윤 추구) 측면에서 하찮은 일이다.

따라서 진정한 사이코패스는 기업이다. 자기 본위로 사람을 부리고 착취하고, 범죄에 능하고(상습 사기·분식 회계·환경 파괴 등), 독재적이며, 노동자를 병들거나 다치거나 죽게 할 뿐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그러면서(가습기 살균제 등) 죄책감과 공감 능력이 전혀 없다.

탐사선의 총책임자 마샬은 독재자다. 우주 식민화 프로젝트와 탐사선 내부의 비용 절감 조치들은 마치 현실에서 일론 머스크의 탐욕과 트럼프 정부의 긴축 정책을 뒤섞은 듯하다.

마샬은 “나탈리스트” 교인이라서 익스펜더블을 “영혼 없는 괴물”이라고 특별히 더 혐오한다.

그는 트럼프 같은 나르시스트이자 기독교 극우, 파시스트와도 비슷하다. 또, (촬영은 2022년에 끝났지만) 이 독재자와 배우자 커플은 윤석열과 김건희 부부를 떠오르게도 한다.

일반적으로 지배계급은 비윤리적이고 반사회적이고 자기도취적으로 행동한다. 사회에 엄청난 피해를 끼치고 있으면서도 나르시시즘(자기도취)이라니, 구제 불능이다.

탐사선이 “약속의 땅”, “순백의” 얼음 행성에 도착하자 극우 독재자 마샬은 정착민 식민주의를 노골화한다. 원주민 생명체들에 대한 “인종청소”를 획책한다.

반란

처음부터 미키를 인간으로 대해 준 나샤에 관해선 소설에 더 자세히 나온다. 나샤의 가족은 난민이고 내전으로 폐허가 된 행성에서 이주해 와서 차별과 천대를 받는다.

17번째 죽음을 당할 뻔한 미키는 기업 조직의 안일함 등으로 “중복 출력”된다. 이는 중범죄다. 이제 미키 17과 18, 둘 다 폐기될 수 있다.

그러나 나샤는 18명의 미키가 다 달랐다고 말한다. 오래전에 사라진 원본 미키가 지닌 인격의 다양한 측면들처럼 말이다. 게다가 모든 존재는 환경과 경험의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한다.

결국 익스펜더블 미키와 이주민 나샤가 반란을 주도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영화는 제아무리 기억과 DNA가 복제된다고 해도 인간이 내리는 판단, 결단은 여전히 불확정한 주관의 영역임을 보여 준다.

정착민 식민 지배 체제는 전복된 건지, 인간 사회 내부의 불평등 문제는 어찌 될지, 다른 행성의 토착 생명체들과 인간 사회는 평등하게 공존할지... 영화의 결말은 여러 의문들을 남기지만, 아무튼 극우의 세계적 성장 시대에 공개된 〈미키17〉은 봉준호 감독의 옛 영화 〈괴물〉처럼 반우파적이고 저항친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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