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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 극우 팔레스타인 윤석열 탄핵 운동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긴 글

쿠데타 미수의 밤:
치밀하고 잔혹한 계획과 실패 과정을 돌아 본다

〈MBC〉, 〈시사인〉, 〈뉴스타파〉 등이 최근 검찰 수사 결과 등을 인용한 보도를 보면,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정치적 반대파 제거와 의회 기능 파괴라는 목표가 뚜렷했고,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준비됐다. 미·중 갈등으로 인한 지정학적 위기 속 강제적 국론 통합(국내 반대파 탄압) 필요성이 주된 동기였다.

비상계엄 시 체포 대상이었던 14명(이재명 민주당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등)의 명단은 2024년 초 이미 윤석열, 김용현(당시 대통령 경호처장), 여인형(당시 방첩사령관) 사이의 대화에서 거론됐다.

윤석열은 “현재 사법체계하에서는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비상조치권을 사용하여 조치를 해야 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고 한다.

계엄이 진작에 준비되고 있었다는 다른 증거는 바로 노상원(전 정보사령관)의 역할이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노상원은 윤석열의 검찰총장 시절부터 대통령 만들기 계획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과 김용현이 충암고 선후배로 가까워진 것도 이맘때다. 김용현과 노상원은 진작 가까운 사이였다.

윤석열은 2023년부터 비상대권의 야욕을 품고 있었다 ⓒ출처 대통령실

노상원은 윤석열을 배경으로 군 인사 브로커를 하며 사람들을 포섭했다. 노상원은 포섭 대상이던 육군 2기갑여단장 구삼회에게 이렇게 과시했다. “[김용현과 대통령 만나러]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고. 내가 이런 사람이야.”

구삼회는 12월 3일 계엄 선포 당시 경기도 판교 정보사 100여단에 와서 대기했던 자다.

윤석열은 2023년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 운동 무력 진압(계엄) 음모의 핵심 피의자인 당시 기무사령관 조현천의 귀국과 안전을 보장해 줬다. 윤석열 자신이 그 수사 책임자였다.

당시 계엄 문건 작성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김관진을 재등용한 것도 이때다. 쿠데타에 가담한 사령관들이 모두 2023년 말 그 자리에 임명됐다.

그들 모두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이다. 육사 졸업생들로 이뤄진 육사구국총동지회는 쿠데타 실패 후 구속된 김용현에게 응원 화환들을 보냈고, 이번 대선에서 김문수를 지지했다. 윤석열 일당은 계엄사령관에도 해군 출신 합참의장 김명수를 건너 뛰어 육사 출신 육군참모총장 박안수를 임명했다.

육사(군인) 출신은 아니지만 김관진, 김용현 등과 연결되는 인물은 실장보다 실세라는 국가안보실 제2차장 김태효다. 이 자는 특별한 요주의 인물이다. 김태효는 계엄 선포 직후 주한미국대사와 통화한 인물이고 계엄 당시 북파공작원부대를 동원하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 자들 모두 지금 수사 대상이 아니다.

치밀한 사전 준비

2023년에는 계엄실무편람을 개정하면서 합동참모본부의 계엄 선포 요건 검토 의무를 삭제하고 국무총리 승인 절차도 축소했다. 국방부가 총리를 통해 대통령에게 곧바로 건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실제로 그렇게 진행됨).

총선 참패 후 다시금 정권의 극우화를 재개한 지난해 8월, 윤석열은 김용현을 국방장관으로 지명해 쿠데타 계획을 본격 개시했다.

특히, 계엄 명분을 만들려고 북한에 대한 의도적 도발을 몇 차례나 실행했다. 백령도 포격, 평양 드론 침투 등이 대표적이다. 북한이 보복으로 오물 풍선을 대거 내려보내자 오물 풍선에 대한 원점 타격을 검토한다는 말이 나왔다. 합동참모본부(합참)도 이에 동조한 의혹이 있다.

10월 1일 국군의 날 요란한 열병 행사를 진행해 군의 위세를 과시한 그날 저녁, 대통령 관저에서 윤석열, 김용현, 이진우(당시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당시 특수전사령관), 여인형(당시 방첩사령관)이 회동했다.

한 달 뒤 11월 9일 김용현은 여인형에게 14명 체포 명단을 전달한다. 같은 날, 노상원은 문상호(당시 정보사령관)와 그의 참모들에게 특수 작전 수행 인원을 선발하라고 지시했다. 한 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장악, 한 팀은 중앙선관위 직원 35명을 “수거”해 부정선거 자백을 받아내는 임무였다. 시체를 담는 백 3000개가 준비되는 것도 11월이다.

12월 1일 특전사, 수방사, 방첩사 등에 국회, 중선관위 등 점거 목표지 6곳 리스트와 계엄 시 즉시 출동할 부대를 대기시켜 놓으라는 지시가 하달됐다.

12월 3일 당일, 실탄 휴대 무장 병력 1,500명이 출동했다. 박정희나 전두환의 쿠데타보다 출동 규모가 더 컸다. 출동 부대들도 모두 정예 부대들이었다. 친위 쿠데타의 이점을 살린 것이다.

군·경찰·검찰

정보사의 중선관위 장악 팀은 계엄 선포 두 시간 전 이미 선관위 앞에서 작전 준비를 마쳤고 국회와 다르게 계엄 선포 10분 만에 중선관위를 장악한다. 체포·고문을 위해 방첩사가, 선관위 서버 조사를 위해 검찰·국정원이 올 것이니 협조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이날 출동한 방첩사 간부는 새벽에 대검 부장검사들과 통화했다.

야당과 노동계, 언론인들에 대한 체포조는 국방부 조사본부, 경찰, 방첩사 등이 협조해 대규모 팀을 꾸렸다. 국회 경비대는 서울경찰청장의 지시를 받아 국회의원이 국회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국회 장악 주력 부대는 특전사와 수방사였다. 특전사와 수방사는 계엄 시 자동으로 계엄군으로 편제되지 않는 부대로 계엄 시에도 계엄사령관이 아니라 합참의장의 지휘를 받게 돼 있다. 김명수는 이를 알면서도 김용현의 지휘를 묵인했다. 김명수도 북한 도발 문제를 포함해 쿠데타 지지 또는 방조 의혹 대상인 것이다.

주동적 책임을 부인했던 박안수도 국회 장악이 뜻대로 안 되자 “전방 부대를 빼야 할 것 같다”며 검토를 지시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미 강원도 양구 등에는 육군 21사단, 22사단이 움직였다.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된 후에도 윤석열은 곧바로 계엄을 해제하지 않고 3시간 반이나 버텼다. 이것은 재차 계엄을 선포하려고 가용 부대 체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최초 투입 부대들도 사실상 부대원들의 사기 저하와 지시 불이행으로 철수하는 마당에 국회 계엄 해제 결의 통과 이후 출동한 후속 부대들의 작전 수행이 잘 될 리 없었다. 국회 앞에는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이고 있었다.

선출되지 않은 관료들

사실 그날 계엄을 뒷받침하려고 군대만이 움직인 것이 아니다.

계엄 해제 결의에 조직적으로 불참하고 그것을 지휘한 국민의힘 추경호 등 국힘의 전현직 지도부 모두 수사 대상이 돼야 한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윤석열에게 현장 보고를 한 자도 있었을 것이다.

12월 3일 계엄 선포 전 모인 국무위원 11명 모두 자신은 계엄에 반대했다고 주장했지만, 어느 누구도 공개 반발을 하지도, 직을 내던지며 반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국무회의 회의 전후 과정이 촬영된 CCTV에서는 총리와 장관들이 그동안 진술한 것과 다른 장면이 많다며 경찰은 한덕수·최상목을 출국 금지했다.

사실 윤석열 내각 성원들의 행동을 보면, 계엄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말을 전혀 믿을 수 없다.

계엄사령부가 구성되지도 않았는데 계엄 선포 직후 재판권을 군부로 넘기는 문제로 대법원이 긴급회의를 연 것처럼, 윤석열의 계엄 관련 업무 지시 문건을 보지도 않았다는 최상목, 이상민 등은 실제로는 계엄 관련 지시를 이행했다.

최상목은 즉시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과 회의를 열고 계엄 정부를 위해 유동성(자금)을 무제한 공급하겠다고 한밤중에 발표했다.

소방본부는 언론사 단전·단수 조치 협조 요청이 오면 협조하라는 지시를 계엄 선포 후 이상민에게서 받았다고 밝혔다.

한덕수와 최상목은 윤석열 국회 탄핵 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내란죄 수사 특검, 윤석열 파면을 위한 헌재 재판관 임명을 거부했다.

법무부 장관 박성재는 쿠데타 실패 당일에 행안부 장관, 법제처장 등과 안가 회동을 한 당사자다. 각각 검찰과 경찰을 지휘하는 장관들이다. 정권 피해를 최소화하는 사태 수습 방안이 논의됐을 확률이 높다. 한편, 김문수의 이날 행방은 여전히 묘연하다.

윤석열 직무 정지, 행안부 장관 사퇴로 인사권자가 사실상 없는 상태인데도 경찰 내 윤석열 라인들이 요직을 차지했다.

윤석열 석방에 협조하고, 비화폰 서버 압수수색 영장, 극우 구속영장 신청 등을 대놓고 사보타주해 온 검찰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기관의 고위급 실무자들은 찾아내기도 어렵고, 작당해 저항하면 제거하기도 쉽지 않다. 국방부조차 12월 4일 계엄 해제 후에도 일주일이 넘도록 총 출동 규모를 파악하지 못했다. 새 정부는 국가기관의 안정을 위한다며 어설프게 타협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극우 쿠데타 지지 세력을 숙정하지 않으면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이미 과격해진 이들이 국가를 정화한다며 재도발을 할 것이다. 군부 수사 방해, 윤석열 석방, 서부지법 폭동자들에 대한 봐 주기 판결, 윤석열 퇴진 운동 탄압은 그 씨앗들이다.

2024년 12월 3일 밤 쿠데타에 맞서 국회 앞에 모인 시민들 ⓒ이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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