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드러나는 군사 쿠데타 기획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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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과 경찰의 경쟁적 수사, 언론들의 취재 경쟁, 민주당의 폭로까지 뒤섞여 12월 3일을 전후로 쿠데타 준비·실행에 관한 사실들이 더 알려지고 있다.(쿠데타의 밤을 시간대 순으로 정리한 것은 이 기사를 보세요 👉12·3 군사 쿠데타(미수)의 밤을 재구성해 본다)
물론 이 와중에도 윤석열 일당이 수뇌부를 장악한 KBS 등은 새로운 폭로들을 제대로 다루지 않거나 축소 보도하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지고 검증된 것들을 종합하면 몇 가지 핵심적인 사실들을 알 수 있다.
첫째, 쿠데타 음모·실행의 핵심 관련자들은 윤석열이 계엄을 통한 쿠데타 실행 의지가 매우 강했음을 인정하고 있다. 비상계엄 선포 당일도 윤석열은 오후 10시 계엄 선포, 오후 11시 계엄 포고령 발표 등을 미리 짜 놓고 국무회의를 소집했다. “총을 쏴서라도 국회 문을 부수라,”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직접 지시한 것도 윤석열이다.
둘째, 그럼에도 상당한 기관과 인물들이 쿠데타 모의에 동조했다. 국방부와 군부 내 핵심 요직, 총리와 주요 장관들, 경찰 수뇌부 등이 계엄 선포 전에 은밀히 지령을 받고 그대로 움직였다. 복수의 쿠데타 가담자들이 “검찰과 국정원이 도와줄 것”이라는 지시를 상부로부터 받았다고 진술했다. JTBC는 국회가 있는 여의도를 관할하는 영등포경찰서가 전부 국회 봉쇄 지원에 나서서 민생 치안 신고를 죄다 무시했다고 특종 보도했다.
셋째, 쿠데타는 급작스럽게 기획된 것이 아니다. 윤석열 외에 쿠데타 모의의 핵심들로 파악된 국방장관 김용현, 방첩사령관 여인형, 정보사령관 문상호 등은 총선 패배가 확실시되던 3월에도 윤석열과 회동을 해 계엄 실시 관련 대화를 나눴다. 주로 김용현의 지시를 받고 움직인 걸로 보이는 전 정보사령관 노상원도 적어도 지난해부터 비선을 가동하며 움직였다. 그가 무속인 행세를 한 것도 신분 위장이었을 거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넷째, 쿠데타 모의 주도자들은 의회 민주주의와 대중의 민주적 권리 행사에 극도의 반감을 가졌다. 윤석열은 야당이 다수당이 된 국회, 정권 퇴진 운동, 노동조합을 척결 대상으로 여겼다. 이는 윤석열·김용현 등의 이후 언행에서도 확인된다.
다섯째, 국무위원들은 소극적 방관자가 아니었다. 복지부는 계엄 선포 직후 국립병원 7곳에 폐쇄 명령을 하달했다. 문화체육부가 관리하는 서울 한국예술종합학교도 밤늦게 기말고사를 준비하던 학생들을 쫓아내면서까지 학교를 폐쇄했다. 한예종은 문화체육부가 관리하는 건물이고, 그 건물은 옛 국정원이 사용하던 곳이다. 이 모두 풀려야 할 의혹들이다.
여섯째, 윤석열 일당은 유혈 사태도 불사할 계획이었다. 전 정보사령관 노상원의 수첩에서 체포 대상 인사들을 “수거”하거나 “사살”한다는 표현이 발견됐다. 계엄군이 실탄 1만 발을 갖고 출동했다고 알려졌지만, 주력 부대인 1·3·9 공수여단의 실탄 불출 규모는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국립병원 폐쇄 명령도 요인 살해, 무력 진압, 유혈 사태에 대비한 조치로 의심할 만한 정황이다.
일곱째, 2차 계엄을 실행하려 한 정황이 많다. 4일 새벽,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채택 후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무장 계엄군이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 앞에서 수시간 동안 대기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수방사가 4일 새벽 국회의장 공관 쪽 CCTV를 100여 회 넘게 들여다 봤다는 보도가 이미 나왔었는데, 그 이유가 밝혀진 것이다.
관련해서 육군 최정예 전차부대인 제2기갑여단장 구삼회가 12월 3일 쿠데타 기도의 또 다른 지휘본부였던 국군정보사령부의 판교 100여단 사무실에 있었던 점도 수상한 정황이다.
주한미국 대사관이 12월 3일 당일에 어떻게 움직였는지 등 풀어야 할 것은 그밖에도 많다.
북파 공작 요원이 왜?
2차 계엄 관련해선 암살 전문 부대인 HID(일명 북파 공작 부대) 요원들의 행방 의혹이 있었다.
국가정보원 제1차장 출신인 박선원 민주당 의원, 이광희 민주당 의원 등에 따르면, HID 요원 35명은 계엄군으로 차출됐다가 무장한 채 미복귀 상태로 있다가 12월 25일에야 복귀했다고 한다. 그러나 요원들의 신분이 보안 사항이라 실제로 복귀했다고 안심할 순 없다.
박선원 의원에 따르면, HID 요원들은 40명이 차출돼 그중 5명이 3일 밤 정보사 판교 사무실로 이동했다. 이들의 임무는 계엄 선포 후 다른 선발 특수 요원들과 함께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선관위 직원들을 체포·압송하는 임무였다. 이들은 계엄 해제 후 복귀했다.
그런데 나머지 35명은 행적이 묘연하다는 것이었다. 이광희 의원에 따르면, 35명은 총기와 C4 폭탄 등을 휴대하고 5~10명씩 팀으로 흩어져 윤석열 국회 탄핵 절차가 시작되면 F-35A 전투기가 배치된 청주 공군기지나, 사드 기지, 대구공항 등을 폭파해 소요를 일으키는 임무를 맡았다고 한다.
실제 그 정도 소요가 발생했다면, 윤석열이 직무정지 됐다고 해도 권한대행이 얼마든지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을 것이다.
김용현의 변명
한편, 쿠데타 주범의 하나인(윤석열의 공동정범) 김용현이 12월 26일 변호사를 통해 기자회견을 했다. 쿠데타 기도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내용이었다.
김용현 측은 그 와중에도 MBC, JTBC 기자들은 참석하지 말라고 해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완전 무시하는 발상을 드러냈다. 자신에 대한 검증과 비판을 거부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계엄의 밤의 진상에 관한 중요한 진술이 나온다.
하나는, 김용현 자신이 계엄 포고령 1호 초안을 작성했으며, 거기에 ‘통행 금지’가 포함돼 있었으나 윤석열이 검토하면서 삭제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김용현이 비상계엄 실행 계획을 한덕수에게 먼저 보고했다는 것이다.
김용현은 재판을 의식해 이번 비상계엄이 헌법과 계엄법이 규정한 절차를 따른 통치 행위였다고 강변하려 한 것 같다. 이는 윤석열이 12·12 대국민 담화에서 표방한 것으로 윤석열 옹호파들의 핵심 논리다.
그러나 무장한 계엄군을 비무장 민간인 수백 명이 직접 목격했고, 대치 장면을 전 세계 수억 명이 시청했는데, 이제 와서 군사 쿠데타 시도가 아니었다는 것은 황당하고 군색한 변명일 뿐이다.
도리어 민주적 기본권을 금지한 포고령을 윤석열이 직접 검토·승인했다는 사실을 실토한 셈이다.
김용현이 한덕수에게 계엄 실시 계획을 보고했다는 것은 그런 일이 없었다는 한덕수의 답변과 모순되는 진술이다.
그러나 한덕수는 비상계엄 선포 2시간 전에 윤석열의 계엄 의사를 확인한 뒤 자신이 나머지 국무위원들을 불렀다고 스스로 답했다. 한덕수가 비상계엄의 절차적 합법성을 위해 협조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계엄 선포 직후 복지부와 문체부의 즉각적인 국립병원·한예종 폐쇄 조치들은 그런 의심의 정황 증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