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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층의 사회 불만은 어떻게 젠더 갈등인 양 왜곡됐는가?

이 글은 12월 2일 노동자연대TV가 주최한 온라인토론회 ‘젠더 갈등, 어떻게 볼 것인가?’(영상 보기)에서 필자가 한 발표를 일부 수정한 것이다.

청년층의 ‘젠더 갈등’ 문제가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젠더 갈등 문제는 대략 2018년부터 사회적·정치적 쟁점이 돼 왔는데, 대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인들이 부동층이 많은 청년층의 표심을 공략하려고 달려들면서 최근 더 부각되고 있다.

그동안 젠더 갈등의 원인과 해결책을 놓고 여러 얘기가 나왔다. 먼저 정치인들과 언론이 흔히 ‘젠더 갈등’의 수준을 과장한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일명 ‘이대남 대 이대녀’ 구도가 그렇다. 몇몇 단편적인 여론조사 결과를 갖고 마치 20대 남성 전체와 20대 여성 전체가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말하는데, 이는 엄청난 과장이다.

물론 그렇다고 젠더 갈등이 그저 허구적인 담론일 뿐인 것은 아니다. 일부 여성 개인들과 일부 남성 개인들 사이에 실제로 갈등이 일어난다. 이것을 정치인들과 주류 언론이 부풀리는 것이다. 그 이유는 청년들이 사회와 권력자들에게 갖고 있는 불만을 호도하고 다른 데로 향하도록 만들려는 것이다.

대규모 실업과 불평등 때문에 청년층의 불만이 크다 ⓒ조승진

이런 주장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젠더 갈등의 원인을 설명해 보겠다.

20대 남성 역차별론

20대 남녀 갈등의 원인이 20대 남성이 차별받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국민의힘 대표 이준석 등 우파 정치인들과 민주당의 일부는 문재인 정부의 친여성 정책으로 20대 남성이 차별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유주의자 일부도 이런 주장에 동조한다.

많은 사람들이 올해 4월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한 원인을 이렇게 해석했다. 즉, 20대 남성이 문재인 정부의 친여성 정책에 반발해 국민의힘 오세훈을 지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올해 재보선에서 민주당의 지지 하락은 성별과 연령대를 불문하고 나타난 특징이었다. 그것은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에 대한 심판이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20대의 지지도 성별 격차가 있긴 해도 동반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20대의 지지는 동반 하락하는 추세였다

민주당 패배의 원인이 문재인 정부의 친페미니즘 때문이라는 이준석의 주장은 청년층의 불만을 호도하며 성별로 이간질한 것이다.

우파는 여성의 지위가 예전보다 나아진 반면 요즘엔 페미니즘 때문에 오히려 젊은 남성이 역차별당한다고 한다. 남성 차별의 사례로 군 의무복무, 여성할당제 등이 꼽힌다.

오늘날 젊은 여성이 더는 차별받지 않을까? 여성의 교육 수준이나 성취를 보면 얼핏 그런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채용과 승진 상의 차별, 임금 불평등, 여성 신체의 상품화와 왜곡된 이미지 등 차별이 엄존한다. 20대 여성 다수가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여기고, 지난 몇 년간 성차별 항의 운동에 많이 참가한 이유다.

20대 남성이 차별받느냐에 대해서는 혼란이 더 크다. 남성 차별은 흔히 우파가 하는 주장이지만, 우파만이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 평등을 옹호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남성이 차별받는다고 보는 사람이 꽤 된다.

그러나 이는 ‘차별’을 사회 전체에서 특정 집단이 차지하는 낮은 지위로 보지 않고 시장 경쟁에서 개인들이 겪는 불리함으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차별 개념을 느슨하게 쓰면, 여성이 사회에서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차별과 천대를 겪는다는 점이 흐려지기 쉽다.

병역 의무

남성에게만 부과된 병역 의무가 남성 차별이라는 주장을 살펴보자. 청년 남성들이 힘든 군 복무를 한다는 것 자체와, 하고 나와도 별 보상이 없는 것이 핵심 문제다.

그러나 한국 남성들이 병역 의무로 고통과 불이익을 받는다고 말하면 몰라도, 여성처럼 (체계적인) 차별을 받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한국 국가가 남성에게만 병역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여성을 우대해서가 아니다. 한국군 육군이 중요한 친제국주의 지정학의 조건에서 신체 조건상 남성이 군 자원으로 더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여성은 출산과 양육을 우선해야 한다고 간주한 결과다.

병역 의무에 대한 남성들의 불만은 많은 여성도 충분히 공감한다. 군대 사병들의 열악한 처지와 인권 침해를 생각해 보면 특히 그렇다.

그래서 병사의 처우를 크게 개선하는 것과 함께, 군 복무 기간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필요하다. 다만, 그 보상이 여성이나 장애인 등 군 미필자 집단에게 피해가 전가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1999년 헌재의 위헌 판결로 폐지된 군 가산점제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여성할당제

‘남성 차별’의 또 다른 사례로 꼽히는 여성할당제 같은 여성 우대 조치 문제를 살펴보자.

이준석은 20대 남성을 위한 정책이라며 여성할당제 폐지를 주장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의 무능을 여성할당제로 임명된 여성 장관들 탓으로 돌렸다. 다행히 이런 노골적인 성차별 주장에 찬동하는 청년은 적다.

이런 주장보다는 여성할당제가 공정성에 위배된다는 논리가 청년들 사이에서 훨씬 많이 받아들여진다. 채용 관련 여성 우대 정책이 공정성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선, 여성할당제에 대한 과장이 많음을 봐야 한다. 여성할당제가 20대 남성들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것은 참말이 아니다. 정당 비례대표 선거(여성 후보자를 50퍼센트 추천)와 일부 고위직을 제외하면, 여성할당제가 시행되는 곳은 별로 없다. 민간 기업의 채용 과정에 여성할당제는 없고, 국공립대·공기업 등 일부 분야에서 성별 균형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정도이다.

공무원 채용 과정과 일부 공기업에서 양성평등채용목표제를 시행하지만, 남성에게 불리한 제도는 아니다. 남성이나 여성이 합격자의 30퍼센트 미만일 경우 일정 기준에 부합하는 지원자를 추가로 합격시키는 방식이므로, 성별로 인한 탈락자가 생기지는 않는다.

공기업의 여성 고용 비율이 2019년 기준 16.7퍼센트밖에 안 되므로, 여성의 비중이 낮을 때는 성별 균형 제도가 여성 우대 정책의 효과를 낸다.

하지만 공무원 채용에서는 이 제도가 여성 우대 정책이라고 하기 어렵다. 이 제도의 혜택을 보는 사람은 여성보다 남성이 더 많다. 인사혁신처 자료를 보면, 2003∼2011년까지는 양성평등채용목표제에 따른 추가합격자로 여성이 더 많았으나, 2012년부터는 남성이 더 많았다. 2015~2019년 추가 채용 인원은 남성이 약 76퍼센트를 차지했다.

공무원 채용시 성별 균형 제도의 수혜자는 여성보다 남성이 더 많다

이처럼, 여성할당제 때문에 청년 남성이 일자리를 빼앗긴다는 생각은 근거가 취약하다. 하지만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불만과 불안감을 느끼는 청년 일부가 그런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다. 경쟁 때문에 원자화된 개인들은 집단적 투쟁을 통해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면 보수적 사상으로 이끌리기 쉽다.

능력주의가 공정한 경쟁 원칙이라는 주장에도 문제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계급에 따라 개인들이 얻는 기회의 차이가 크다. 개인들이 능력에 따라 공정한 경쟁을 벌인다는 것은 착각이고, 사회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될 뿐이다.

젠더 갈등의 원인으로 20대 남녀의 의식 격차도 거론된다. 흔히 ‘이대남은 안티 페미니즘, 이대녀는 친페미니즘’으로 과장한다.

그러나 청년층 남성 중에는 페미니즘에 불만 있는 사람들이 적잖이 있긴 해도, 청년의 다수가 안티 페미니즘인 것은 아니다. 여성 차별의 현실 자체를 부정하며 차별을 옹호하는 안티 페미니즘은 청년 남성 중 소수에 불과하다.

‘시민의식 조사자료’(한국민주주의연구소·한국리서치) 등을 토대로 한 ‘20대 남성 현상 다시 보기’(최종숙, 2020년) 논문은 이렇게 지적한다. “20대 남성의 성평등 의식은 3040세대 남성보다 더 높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20대 남녀의 성평등 의식 격차도 다른 세대 남녀에 비해 크다고 하긴 어렵다.”

젠더 갈등의 원인 — 지배자들의 전략; 이간질 통한 각개격파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에 대한 청년층의 환멸을 자기네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려고 젠더 갈등 프레임을 이용한다. 윤석열은 당 경선 과정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성폭력 무고죄 처벌 강화 등을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여성이 차별받는 현실과, 청년 남성의 삶이 악화된 이유를 호도하고자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다. 실업, 양질의 일자리 부족, 주택난, 빈곤 등 청년 대중이 크게 고통받는 문제는 여가부의 성평등 정책 때문에 생겨나거나 악화된 게 아니다.

사실 문재인의 ‘페미니즘’은 실질적 개혁은 거의 없는 생색내기에 가까웠다. 그래서 청년층 여성을 포함해 많은 여성이 불만을 갖게 됐다. 낙태, 여성 고용과 임금 등의 조건 개선 미비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청년층 내의 젠더 갈등은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와 경쟁, 그리고 지배계급의 ‘이간질 통한 각개격파’ 전략에서 비롯한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열악한 조건과 천대 때문에 많은 청년이 불만과 울분을 느낀다. 자신의 삶과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거나 부족할 때, 권력자들이 성별로 이간질하면 여성과 남성의 분노가 서로를 향할 수 있다.

실업과 빈곤이 단지 청년층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20대에서 두드러진다. 올 상반기 15~29세 확장실업률(25.4퍼센트)은 30대(11.7퍼센트), 40대(9.8퍼센트)보다 월등히 높다. 2030 내의 자산 격차도 크다. 문재인이 불평등을 해소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불평등이 심화됐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20대의 분노가 큰 이유이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 확대된 실업과 불평등

실업과 빈곤, 일자리 불안정, 주택난 등은 대다수 청년 여성과 남성의 공통된 불만이다. 이것은 청년 개개인들의 노력 부족 탓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와 그 사회 구조의 산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는 심각한 불평등이 있고 장기 불황은 이런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킨다.

지배계급은 이윤을 보호하려고 불황의 고통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전가해 대중의 삶을 악화시킨다. 그러면서 성, 인종, 성적지향 등의 차이를 이용해 특정 집단의 사람들을 차별해서, 대중의 불만이 자기네를 향하지 않고 체제의 희생자들을 비난하게 조장한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젠더 갈등을 해소하려면, 노동계급을 성별로 갈라놓는 주장과 실천을 거부하며 폭넓고 비종파적인 방식으로 대중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여성과 남성이 단결해 투쟁하면서 자신감을 얻으면,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분열시키는 사상의 영향력이 약화될 수 있다.

청년 여성과 청년 남성은 공통된 불만이 있기에 정부나 기업주들에 맞서 계급적으로 단결해 싸울 수 있다.

당연히 여성 차별에 맞서야 한다. 물론 여성운동이 성폭력 쟁점 중심으로 벌어지고 남성 개개인을 규탄하는 경향은 극복돼야 한다. 투쟁의 초점을 여성의 처지 개선, 성차별적 사회 구조와 체제, 지배계급 권력에 맞춰야 한다.

여성 차별이 사라지는 사회를 만들려면, 성차별에 맞선 투쟁이 여성만의 투쟁이 아니라 보통의 남녀가 함께 참가하는 대중 운동이 돼야 한다.

여성 해방은 착취받고 차별받는 모든 사람들의 해방과 분리될 수 없고, 여성 차별에 맞선 운동은 결국 자본주의 체제에 도전하는 운동의 일부가 돼야 한다.

급진 페미니즘과 좌파의 약점

젠더 갈등이 부각된 데에는 급진 페미니즘 측의 약점도 작용한다. 물론 주된 책임은 지배계급에 있다. 하지만 여성 차별에 맞서는 세력이 그 표적을 잘못 맞추면 효과적인 저항을 건설하지 못하고 오히려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데 일조할 수 있다.

여성단체들과 젊은 페미니스트 사이에서는 급진 페미니즘의 영향력이 크다. 급진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권력 관계로 규정하며 암묵적·명시적으로 남성 일반을 잠재적 가해자, 여성 일반을 피해자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또, 역사유물론적 인식이 없기에 차별에 반대해 흔히 도덕주의적으로 대응한다. 심지어 여성에게 무조건적인 도덕적 권위를 부여하기도 한다.

많은 급진 페미니스트들이 폭력이나 성범죄 사건을 다룰 때 이런 태도를 드러낸다. 그들은 남성 개인들과 여성 개인들 사이의 갈등을 모두 ‘여성 혐오’로 치부하며 남성 일반을 도매금으로 매도한다. 이런 주장은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크게 득세했다.

이런 접근은 계급적 단결을 저해한다. 실제로 급진 페미니즘 일각의 과도한 주장과 실천은 평범한 청년 남성 상당수의 반발을 낳았다. 이런 상황은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이 낳은 환멸과 결합돼 우파에게 득이 돼 왔다.

급진 페미니즘의 논리를 더 극단적으로 밀어붙여 남녀 분리주의를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2018년 불법촬영 항의운동의 조직자들이 그런 사례였다. 물론 그 운동에 참여한 수많은 청년 여성들이 다 그랬던 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 운동은 진정 급진적인 대중 운동이었다. 온건한 주요 여성단체 지도자들과 달리 문재인 정부와 권력 기관들을 거침없이 비판했다. 그래서 노동자연대는 그 운동을 지지했다.

안타깝게도 그 운동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단일 쟁점 운동의 한계와 함께, 운동 조직자들이 남성 참가를 금지하고 배척하면서 연대와 효과적인 저항 건설에 난점이 있었다.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는 노골적 분위기 때문에 청년층 남성 사이에서 상당한 반발도 낳았다.

좌파는 이런 상황에서 계급적 단결을 도모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경험을 보면, 온건파·급진파 가리지 않고 좌파들 대부분은 급진 페미니즘의 개념들을 대폭 수용하거나 그에 굴복하고 주류 여성운동을 추수하면서 오히려 젠더 분열에 일조했다.

게다가 많은 좌파들은 성 관련 분쟁을 이용해 경쟁 좌파나 라이벌 인물에게 ‘성폭력 가해’ 낙인을 찍으며 배척하고 연대를 파괴하기도 했다.

이런 분열주의는 가뜩이나 분열된 좌파를 더욱 분열하게 만들어 기층 노동운동을 약화시키고, 성평등을 전진시킬 수 있는 계급적으로 단결된 진정으로 급진적인 노동자 운동을 건설하는 데 장애물이 되고 있다. 문재인의 개혁 배신을 우파가 이용해 득을 보는 토양이 조성된 현 상황에 부분적인 책임이 있음을 좌파들은 자성적으로 돌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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