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게재
‘남직원만 야간 숙직, 차별 아냐’ 인권위 결정 논란:
여성 야간 숙직은 진정한 성평등과 아무 관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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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2월 20일) 국가인권위가 ‘남직원만 야간 숙직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진정을 기각해, 관련 논란이 뜨겁습니다. 인권위는 ‘여성에게 일률적으로 야간 숙직 근무를 부과하는 것은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평등에 불과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최미진 〈노동자 연대〉 기자가 관련 주제로 CBS 〈김현정의 뉴스쇼〉(영상보기)에 출연해 패널 토론한 영상과 더불어 2018년 말 서울시 여성 숙직 방침에 반대하며 쓴 글을 재게재합니다.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는 내년 1월부터 여성 공무원에게도 숙직을 시키려 한다. 그간 여성은 일직(주말·공휴일 오전 9시~오후 6시)을, 남성은 숙직(평일 오후 6시~다음 날 오전 9시)을 맡고 있었다.
서울시는 남성만 숙직을 담당한 것이 “형평성”에 어긋나 “역차별 우려”를 낳았다며 이런 조처를 합리화한다. 그동안 여성 공무원 비율이 늘어나면서 남녀 간 당직 주기 격차가 1.7배까지 벌어져, 남성 공무원들의 어려움이 커졌다고 덧붙인다.
서울시의 정치적 위상을 고려하면 이 방침이 다른 공무원들로도 확산될 수 있음이 우려된다. 게다가 서울시 발표는 ‘여성들이 권리만 누리고 의무는 다하지 않는다’는 일각의 ‘역차별’ 주장에 힘을 실어 줄 수 있다.
그러나 서울시의 이번 방침은 진정한 성평등과는 아무 관계 없다. 이것이 ‘역차별 해소’라는 주장은 평등에 대한 완전한 오해일 뿐이다.
우선, ‘요즘은 오히려 남자가 차별받는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고, 여성 차별의 현실을 흐린다.
여성이 남성의 대학진학률을 앞지른 지 오래이고,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이 증가했어도 여성 노동자는 여전한 임금 격차, 높은 비정규직 비율, 경력 단절, 낙태죄, 직장 내 성희롱과 성폭력 등을 겪어야 하는 처지이다. 무엇보다 여전히 여성이 양육과 가사의 주된 책임자로 남아 있다. 그래서 여성 노동자들은 일생 동안 차별을 감수해야 한다.
이는 자본가들과 자본주의 국가가 현재와 미래의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엄청난 부담을 주로 노동계급과 서민층 가족에게 전가하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이처럼 체제에 내재한 성차별을 직시하는 것이 출발점이 돼야 한다. 형식적인 법률적 성평등이 쟁점이 아니다.
이렇게 특정 집단이 체제 내재적 차별을 받는 상황을 무시한 채 똑같이 대우하는 건 진정한 ‘평등’이 아니다.
신체적 차이
노동조건과 복지 문제에서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차이를 고려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여성의 야간 노동 제한이 대표적 사례다. 여성 숙직 문제도 이런 맥락에서 접근해야 옳다. 서울시는 당직 업무에 남녀 구분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다.
첫째, 여성은 야간 숙직 시 벌어질 수도 있는 물리적 안전 위협에 남성보다 취약하다.
이미 여성 숙직제가 도입된 곳에서 다양한 안전 사고가 벌어졌다. 민원인들이 여성을 남성보다 더 만만하게 여겨 시비를 걸 수도 있다. 야간에 주차 단속 업무를 하는 여성 시간제 공무원들도 남성 취객의 괴롭힘에 시달리곤 한다. 성폭력이나 성추행의 위험도 있다. 경찰관이 여성 전용 숙직실에 들어가 음란행위를 하다 적발된 일도 있었다.
둘째, 여성 노동자가 육아와 가사의 주된 부담을 떠안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이런 현실을 무시한 채 남성과 ‘등등하게’ 숙직을 시키면 여성 노동자들의 곤경이 가중될 뿐이다. (서울시는 만 5세 이하 양육자 등을 당직에서 제외하겠다지만 이는 이번 방침의 문제점을 약간 완화하는 것일 뿐, 여성 노동자의 노동강도 강화라는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셋째, 상당수 여성은 남성과 달리 임신·출산을 경험한다는 생물학적 차이도 간과해선 안 된다. 이는 사회의 유지와도 관련돼 있기 때문에 국가 차원의 여성 노동자 건강 보호가 필요하다.
혹자는 임산부만 보호하면 되지, 왜 모든 여성을 보호해야 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여성 노동자가 야간 노동에 자주 시달리면 임신·출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야간 노동이 잦은 병원 여성 노동자들은 유·사산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임기 이후 여성의 몸에 일어나는 변화가 여성의 몸과 마음을 스트레스에 취약하게 만드는 것도 남성과 다른 점이다. 따라서 단지 임산부뿐 아니라 모든 여성 노동자에게 보건상 유해한 업무는 금지해야 한다.
이처럼 성별에 따라 생물학적 차이가 있고 여성이 실질적 차별을 받는데도 그것을 무시하는 것은 진정한 평등이 아니다. 오히려 여성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노동강도 강화일 뿐이다. 이를 ‘성평등’으로 오해해선 안 된다.
연대와 희생
물론 남성 노동자들의 숙직 부담이 커지는 것을 해소할 대안(공무원 대폭 확충 등)이 필요하다. 그런 대안을 남녀 공무원 노동자들이 쟁취하길 바란다. 이 참에 숙직을 폐지하자는 주장도 있다. 결국 그렇게 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성취되기 전까지 제기되는 사용자들의 여성 숙직 강요 문제를 회피해선 안 된다.
성별에 따른 신체적 차이가 존재하므로, 이를 고려한 정책이 필요하다. 이런 조건에서는 신체적 조건이 더 유리한 남성 노동자가 여성 노동자를 향한 연대를 보여 줘야 한다. 때로는 이번 숙직 문제처럼 불가피하게 남성 노동자가 약간의 손해를 감수할 수도 있어야 한다.
남성 노동자들이 형식적인 “형평성”을 앞세워 이를 거부하면, ‘남성 노동자들이 여성 차별의 현실을 무시하고 이기적으로 군다’는 불만이 커져 오히려 여성 일각에서 남성 노동자들에 대한 분리주의가 생겨날 수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노동계급의 단결을 해쳐, 장차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단결된 투쟁에 이롭지 않다.
여성 노동자의 노동강도 강화를 방치하면, 당장은 남성 노동자들의 부담이 조금 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결국 남녀 노동자 모두의 조건을 하향 평준화하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사용자들은 한 부문의 조건 악화를 지렛대로 전반적 노동조건을 떨어뜨리는 수법을 써 왔다.
“서울시는 여성 공무원 숙직을 철회하라!” 공무원노조 서울본부는 최근 이 방침의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런 목소리가 확대되길 바란다.
2001년 여성노동법 개정 논란에서 돌아볼 점
이번 논란과 유사한 논쟁이 2000~2001년 여성노동법 개정 과정에서 벌어졌다. 당시에도 여성 노동자의 야간·휴일·시간외 근로 제한을 대폭 완화하는 ‘모성 보호’ 제도 개악이 쟁점이었고, 그때도 개악의 주체는 집권여당인 민주당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모성 보호’ 제도 개선을 약속했지만, 기업주들과 우파 야당의 반발을 핑계로 이내 대폭 후퇴했다. 당시 민주당 한명숙 의원은 유급 출산휴가 기간을 늘리는 대신, 여성의 야간·휴일·시간외 근로 제한 규정을 대폭 완화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문제는 당시 ‘여성노동법개정연대회의’의 일부로서 법개정 운동을 하던 여성 운동 지도자들이 이 개악을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것으로 합리화했다는 점이다. 민주노총과 당시 서울여성노조 등은 이에 반대하며 ‘여성노동법개정연대회의’를 탈퇴했다.
당시 한명숙 법안을 지지한 여성 지도자들은 여성 보호 정책이 오히려 여성의 고용 기회를 제한하고, 임금 수준을 낮추며, 승진 등에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모성 보호’ 부담을 지기 싫어 여성 노동자 고용을 꺼리거나 차별하는 사용자들의 주장을 수용한 것일 뿐이다. 물론 여성단체들도 임산부 보호는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임산부가 아닌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 강화는 수용했다.
당시 민주노총과 좌파 단체들의 주장처럼, 여성노동법 개정의 진정한 본질은 노동시간 연장(‘유연화’)을 통한 여성 노동자 착취 강화였다. 이는 김대중 정부와 민주당이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계급에 떠넘기려 한 신자유주의 공격의 일환이었다. 이런 전체적 맥락을 볼 때, 더더욱 법개정에 분명히 반대해야 했다.
여성 운동 지도자들은 남녀 노동자 모두 노동시간이 단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성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개악을 지지하면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명백한 모순이었다. 이는 여성 운동 지도자들이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이 아니라 친자본주의 개혁파 민주당 정부와 협력해서 개혁입법을 성취하는 것을 최우선순위로 두면서 생겨난 문제이다.
이 경험을 교훈 삼아야 한다. 형식적 ‘성평등’ 논리로 여성 노동자 착취를 강화하는 방안에 여성·노동단체들은 조금치도 동조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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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의견에 답합니다: 야간 노동은 남녀 모두에게 해로우니 ‘여성 숙직 반대’를 내세워선 안 된다는 견해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