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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민주적 기관이 아니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탄핵 심판을 기약없이 미루자, 반윤석열 대중은 이제는 헌재의 행태에 분노하면서 헌재를 규탄하기 시작했다.

탄핵 인용(파면)이 돼야 마땅한데도 선고가 계속 지연되는 것은 탄핵 기각(윤석열 복귀) 가능성이 만만찮다는 신호로 여겨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윤석열 석방 이후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 참가자들의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졌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헌법재판소를 믿자는 발언이 압도적이었다. 3월 15일 전국 집중 집회에서 이태호 비상행동 공동운영위원장은 헌재가 1987년 민주 항쟁의 승리로 탄생한 “87년 헌법”의 산물이라며 신뢰를 표했다.

그러나 3월 19일 집회에서 한 청년은 헌재가 “내란 세력을 방임하고 있다”며 직격했다.

수천만 명의 파면 염원을 헌재 재판관 단 3명이 좌절시킬 수 있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사진공동취재단

1987년 개헌 때 만들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민주주의 친화적 기관이라 말할 수 없다.

애초 헌법재판 제도는, 3권분립이라는 미명하에 선출된 의회의 입법권을 선출되지 않는 권력자들이 견제하려고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재판 권한이 대법원에 있든, 헌법재판소처럼 별도 기관에 있든 말이다.

이 점은 헌법재판소 신설을 1987년 개헌 협상 때, 당시 독재 정권의 여당인 민주정의당이 제안했다는 점에서도 엿볼 수 있다.

본질적으로 헌법재판소는 매우 보수적인 고위 사법 엘리트로 구성됐다. 헌법재판관은 15년 이상 법조인 경력이 있고 판사 자격이 있는 사람들로 자격이 엄격히 제한됐고, 9명 중 3명이 대법원장, 3명이 대통령에 의해 지명된다. 심지어 대법원장은 그 자신이 대통령에 의한 임명직이다.

독립 헌법기관이라지만, 9명 전원이 대통령의 임명장을 받아야 한다. 그 점을 이용해 최상목은 국회가 지명한 마은혁 후보를 헌법재판관에 임명하지 않고 있다.

이런 기구이니 보수적 판사들이 주로 임명돼 왔다. 이런 엘리트 판사 9명이 공직자 탄핵 심판, 정당 해산 같은 중요 사안에 결정권을 가진다. 이 점은 헌재 설치의 목적이 민의가 국가기관에 반영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선출된 국회의원의 3분의 2 이상이 불신임한 대통령을 단 9명이(더 구체적으로는 단 3명이) 살려 낼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도 민주주의가 아니다.

8차례나 국보법 합헌 판정

실제로 헌법재판소는 거의 일관되게 보수적 판결을 내려 왔다. 진보적 판결이 예외적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는 1991년부터 2023년까지 총 8차례나 국가보안법 (전체도 아니고 그 일부인) 제7조에 합헌 판정을 내렸다. 국가의 사상 통제권을 헌법상 표현의 자유보다 우선한 것이다.

군부 정권의 연장이었던 노태우가 전셋값·집값 급등으로 인한 지지율 추락을 면해 보려고 알량한 토지공개념 제도로 내놓은 개발이익환수 등도 헌재는 위헌으로 판결했다. 심지어 이미 폐지된 법에도 부자들과 재벌 건설사들의 아우성으로 위헌 판결을 해 확인사살을 했다. 사유재산권을 공공의 이익보다 우위에 놓은 것이다.

2003년 노무현 정부가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에 파병한 것이 침략 전쟁을 부인한 헌법에 위반된다며 제기된 헌법소원에 대해서도, 파병이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그때 헌재는 통치행위론을 인정했다. “[파병은] 대통령이 내린 고도의 정치적 결단, 이른바 통치행위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다.” 윤석열의 계엄에 대해서도 내려질 수 있는 판결이다.

2004년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관습 헌법’에 반한다며 위헌 판정을 했다. 관습 헌법의 문헌적 근거는 조선 초기에 집필된 경국대전이었다. 전제군주정을 위한 법문서가 선출된 의회의 입법권보다 우선이라고 판결한 것이다.

2016년에는 동성애를 차별적으로 처벌하는 군형법 제92조의6 조항에 합헌 판결을 내렸다.

우파 정부하에서는 정권을 돕는 판결도 자주 내렸다. 이명박 때는 방송 장악을 위해 날치기한 미디어법을 인정해 줬다. 박근혜 때는 현직 교사만 전교조 조합원 자격이 있다고 판정해 당시 정권의 전교조 법외노조화를 지원했다.

노무현 탄핵 기각, 박근혜 탄핵 인용, 낙태죄 위헌 등은 순전히 거대한 대중 투쟁의 압력에 따른 예외적 판결이었다.

헌법재판소를 믿지 말아야 한다. 대중의 염원을 거슬렀을 때 더 큰 반격이 있을 거라는 두려움을 줘야만 친민주주의 대중이 원하는 결정을 강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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