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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퇴진 운동 극우 팔레스타인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긴 글

서평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는 유사 민주주의다

윤석열의 군사 쿠데타 기도와 극우 운동의 부상으로 한국에서도 민주주의의 위기가 매우 현실적인 문제가 됐다. 미국에서 트럼프가 재집권한 것과 서구에서 극우·파시즘 세력이 성장하는 것은 민주주의 위기 문제가 세계적인 현상임을 보여 준다.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마이클 샌델 지음, 와이즈베리, 440쪽, 20,000원

특히 한국에서 윤석열 일당과 극우 세력들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군사 쿠데타를 지지하면서도 한사코 자신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벌인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 우파들은 예나 지금이나 독재와 반공주의를 정당화하는 용어로 ‘자유민주주의’를 사용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자유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좀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는 이런 성찰에 분명 도움을 주는 책이다. 이 책은 《정의란 무엇인가》, 《공정하다는 착각》 등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이 1996년에 출간한 《민주주의의 불만》을 2022년에 대거 개정한 책이다.(한국어판은 2023년 출판)

샌델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오랫동안 불편하게 공존했다”고 말한다. “자본가들의 정치적 지배력 행사”와 “노동자를 착취하고 시민으로서의 능력을 감소시키는 자본주의의 경향성”이 민주주의를 형해화시키며 결국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특히 2016년에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미국 민주주의가 흔들린 사건은 20세기 후반에 추진된 신자유주의가 “불평등과 해로운 정치를 증폭”시킨 결과라고 진단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는 세계화, 금융화, 능력주의를 특징으로 한다고 꼽는다.

세계화와 금융화가 발전하면서 기업들은 생산에 투자하고 일자리를 늘리기보다 세계 곳곳으로 자본을 이동시키며 자산 투기에 열중해 큰돈을 벌었고, 자본을 이동시키겠다는 위협으로 노동자들에게 실직과 임금 동결, 복지 삭감을 강요했다.

샌델은 “‘시장의 마법’이 해결책”이라고 받아들인 정치 세력이 레이건·대처 같은 우파만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미국 민주당의 클린턴과 오바마(이미 카터 정부도) 그리고 서구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도 “대안이 없다”며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였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시장의 결정에 맡긴다는 결정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결정”이었고, 이 결정이 대다수 사람들을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예컨대, 금융 자본주의의 탐욕이 금융위기를 불러왔을 때 버락 오바마 정부는 대형 은행들에게 막대한 공적자금을 지원하면서도 일반 국민들이 살던 집에서 쫓겨나는 문제는 방관했다. 그 후 공적자금 투입 덕분에 회생한 대형 은행의 임원들은 수억 달러의 보너스 잔치를 벌였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결국 부자와 권력자에게만 유리하게 작동하는 정치 현실을 목도하며 평범한 사람들은 기성 정치 체계를 불신하게 됐다. 그러나 지배자들은 불평등의 심화 문제를 개인의 능력에 따른 ‘공정한’ 몫 때문이라고 포장하는 ‘능력주의’를 주장하며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의 ‘무능력’과 ‘태만’을 탓했다.

이 같은 능력주의의 오만함은 시민들에게 굴욕감을 안겨 줬다. 워싱턴 정치가의 이단아 트럼프는 이 굴욕감과 정치 불신을 악용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경제 권력 독점

이처럼 샌델은 신자유주의가 심화시킨 불평등 문제가 어떻게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을 키웠는지 지적하지만, 그의 문제의식은 단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자본주의에서 경제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어떻게 민주주의와 자유 등에 영향을 미치는지 깊이 성찰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기성 정치권은 경제 정책을 둘러싼 민주적 논쟁을 무의미한 것처럼 취급했다. ‘경제적 번영’을 위해서는 세계화와 금융화의 흐름에 맞춰 시장이 시키는 대로 해야만 한다는 것이 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의 유명한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이를 “황금 구속복”이라고 설명했다. “황금 구속복을 입은 나라들의 여당과 야당 사이에 어떤 질적 차이가 있는지 파악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일단 이 옷을 입은 나라에게 주어지는 정치적 선택지는 펩시콜라와 코카콜라밖에 없다.”

그러나 샌델의 지적처럼 경제 정책에 관한 민주적 논쟁이 사라지면, “부유하고 힘 있는 사람들이 관리하고 지휘하는 시장이 여러 질문에 대한 답을 결정하도록 방치하는” 결과가 발생한다.

자본가들이 경제를 지배하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게 된다 ⓒ출처 drooker.com

샌델 스스로가 자유주의 전통과 대비시키는 미국의 공화주의 전통에서는 정치뿐 아니라 경제에서의 권력 집중화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적이라고 믿었다. 샌델은 이 문제를 신자유주의 훨씬 전인 미국 건국 시기부터 최근까지 경제 정책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를 살펴보며 훨씬 더 깊게 파헤친다.

예컨대, 제퍼슨 대통령 시기에 벌어진 자영농 육성이냐 제조업 육성이냐 하는 논쟁, 링컨 대통령 시기 노예제 폐지를 둘러싸고 나타난 ‘임금노동은 노예노동과 얼마나 다른가’ 하는 논쟁, 19세기 말 노동조합 설립과 투쟁 권한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지 하는 논쟁과 노동기사단이 거대 산업의 국유화를 제기한 맥락, 독점 방지를 위한 입법 논란 등도 모두 자본가들의 경제 권력 독점이 민주주의를 얼마나 침해하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의에서 드러나는 샌델의 문제 제기는 결국 ‘임금 노동은 “자유 노동”인가, 아니면 임금노예제일 뿐인가’ 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마르크스의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마르크스의 답은 “임금노예제”이다. 생산수단을 전혀 소유하지 못하는 노동계급은 노동력을 팔지 못하면 “굶어 죽을 자유”밖에 갖지 못하며, 개별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팔 자본가를 선택할 수 있지만 결국 자본가 계급 전체에는 예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샌델의 답도 유사하다. 샌델은 이 책 전체에서 “어떤 사람이 고용주 밑에서 평생 일하면 그에게는 민주적인 시민의식에 필요한 독립적인 판단력과 정신이 형성되지 못한다”는 점을 거듭 피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샌델의 해법은 마르크스의 것과는 크게 다르다. 샌델은 민주주의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으려면 경제를 민주적으로 통제해 경제 권력을 가진 자들이 사회에 책임을 지게 만들고, 시민의식을 활성화해 공적 삶에 개인이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해법은 샌델의 분석과도 모순돼 보인다. 샌델 스스로가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적대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훼손하는지 지적하면서도 해법으로는 사회 모든 구성원에게 좋은 것을 추구한다는 ‘공공선’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조화시키려 하는 샌델의 시도에서 나오는 것이다.

샌델의 해법은 보잘것없지만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어떻게 훼손하는지 하는 그의 질문은 지금 매우 적절하다. 다만 이 책이 미국 역사에서 벌어진 논쟁들을 세세하게 살펴보고 있어서 특히 한국 독자들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레닌의 《국가와 혁명》 같은 마르크스주의 저작들을 함께 읽는다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한 간명한 설명과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명확한 해법을 찾는 데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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