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자본주의 질서의 수호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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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8일 헌법재판소가 해고된 교사의 조합원 자격을 부정하는 교원노조법 2조가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헌법재판소는 작년 12월 통합진보당을 해산하는 악랄한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지난 4월 30일에는 이적행위, 이적단체 가입, 이적표현물 제작·소지·반포·취득을 금지한 악명 높은 국가보안법 7조 1항, 3항, 5항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헌법재판소의 일련의 반민주·반노동 판결은 헌법재판소의 계급적 본질을 밝히 드러내고 있다.
자유주의자들뿐 아니라 진보 진영 내에서도 헌법재판소가 1987년 6월 항쟁으로 탄생한, 한국 민주주의의 산물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이런 견해가 지배자들에게 나쁠 것도 없다. 선출되지 않는 국가 기구에 민주적 외피를 씌어 헌법재판소의 계급 편향적인 판결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민주화의 산물이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1987년 헌법 개정 논의를 위한 8인 정치 회담에서 신군부 집권당인 민정당이 먼저 제안했다. 애초에는 여야 모두 위헌법률심판권을 대법원에 맡기는 방식을 제안했으나, 8월 초 민정당 당헌특위 전체회의와 중앙집행위원회를 거치면서 지배자들이 위헌법률심판,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의 권한을 헌법재판소에 넘기자는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야당은 처음에는 반대하다가 헌법소원제도를 포함시키는 것을 조건으로 합의했다.
서경석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적했듯이, “헌법재판소를 6월 항쟁의 위대한 성과물로 보는 것은 넌센스다. 어쩌면 앞으로 닥칠 상황을 내다본 보수적 이데올로그의 논리를 민정당이 수용한 결과일 수 있다. 왜냐하면 목전에 둔 총선에서 강성 야당의 화려한 등장을 목격했고, 직선제 개헌을 외치는 함성과 점점 커져가는 노동자의 목소리로 보수 여당이 의회를 장악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었고, 여소야대의 의회를 견제할 국가기구의 필요성이 매우 커졌기 때문이었다(‘민주화 이후 헌법체제와 헌법정치’, 한국민주주의의 현실과 도전, 한울아카데미, 2007)”
당시 야당은 헌법소원제도 도입이 민주적 성과라고 치켜세웠지만, 법무부가 헌법재판소 관련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법원의 판결을 헌법소원의 대상에서 제외시켜버렸다. 헌법재판소가 스스로 인정하듯이 “변호사 강제주의로 인한 비용 부담과 까다로운 심판청구 요건(헌법재판소20년사, 헌법재판소, 2007)”으로 일반 국민이 헌법소원을 신청하기도 어렵다.
헌법재판관의 자격을 법관 자격이 있는 15년 이상 경력자로 한정하고, 헌법재판관 9인 중 대통령이 3인을 임명, 대법원장이 3인을 지명, 국회가 3인을 추천하도록 해 헌법재판소가 보수적 사법 관료 중심으로 운영되도록 안전 장치를 마련해 놨다.
헌법재판소가 등장한 과정을 보면 레닌이 《국가와 혁명》에서 “자본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공화제에서 인물이나 제도나 정당이 아무리 교체된다 하더라도 자기의 권력에는 하등의 동요도 없을 만큼 견고하고 확실하게 자신의 권력을 확립한다” 하고 지적한 게 떠오른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
헌법재판소는 우파들이 행정부도 장악하지 못하고, 의회에서 다수당의 위치도 차지하지 못할 때 우파들이 기댈 언덕이었다.
2004년에 헌법재판소는 노무현의 대선 공약이었고,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로 통과된 ‘신행정수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관습헌법에 위배”된다는 코미디 같은 판결을 내렸다. 어떤 통제도 받지 않는 9명의 사법 관료들이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의 결정까지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에 거센 탄핵 반대 시위로 인해 대통령 탄핵 결정은 감히 못 내렸지만, 노무현이 “선거법을 위반”했고, 현행 선거법을 ‘관권선거시대의 유물’로 비판한 것과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안한 것이 “대통령의 헌법 수호의무 위반을 어겼다”며 탄핵 사유가 된다는 황당한 판결을 내렸다.
물론, 헌법재판소가 단지 우파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노무현이 이라크에 한국군을 파병한 것이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규정한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2005년에 노무현 정부가 공무원노조를 가혹하게 탄압할 때 “공무원의 노동운동을 금지하고 있는 지방공무원법의 관련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선출되지 않는 사법 권력이 큰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현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특징이다.
미국 헌법 입안자들은 민주주의를 싫어했다. “만일 다수가 공통의 이해관계로 단결하면 소수의 권리가 불안정해질 것(‘건국의 아버지’인 제임스 매디슨)”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1787년에 미국헌법이 제정될 때 선출되지 않은 미국연방대법원에 법률심사권을 부여해 정책 결정과 입법에 관여토록 했다.
1935년에 미국연방대법원은 루즈벨트가 추진한 핵심적인 뉴딜 입법들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단 9명의 연방대법관이 2000년 미 대선에서 승패를 가를 플로리다 전면 재검표를 위법이라고 중단시켜 결국 고어보다 54만 표 더 적게 얻은 부시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마술적 힘을 보여 줬다.
미국의 연방대법원이나 한국의 대법원, 헌법재판소 등은 대중 위에 군림하며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보호해주는 자본주의 질서의 수호 기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