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또다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짓밟은 헌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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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8월 30일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현행 병역법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가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을 옹호한 것은 2004년 합헌 결정에 이어 두 번째다.
군대를 거부하고 양심을 지키려 한다는 이유로 매년 젊은이 8~9백 명을 감옥에 가두는 반인권적 행태를 헌재가 또다시 정당화해 준 것이다.
헌재 결정 요약문은 온통 안보에 대한 우려, 병력자원 손실 등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 투성이다. 자본주의 체제 유지의 보루인 군대를 강력하게 유지할 수 있다면, 양심의 자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다.
2004년 헌재가 같은 결정을 내릴 때는 그나마 대체입법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면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결정에는 대체복무제 도입 등 대체 입법의 필요성을 지적하는 부분조차 도무지 찾아 볼 수가 없다. 이런 후퇴는 정부의 심각한 정치 위기와도 관련 있는 듯하다. 안보와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조함으로써 정부에 대한 반감과 저항을 단속하고, 권력 누수 현상을 막아 보려는 것이다.
야만
이번 판결은 수 차례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을 중단하라고 요구한 유엔 등의 권고를 무시한 것이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2006년부터 세 차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입법을 권고했고, 유엔 인권이사회도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자 1백 명에 대해 “이들에게 유죄 선고를 한 것은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인권규약 제18조 1항이 정한 사상, 양심, 종교의 자유 위반”이라고 의견서를 낸 바 있다.
나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2009년에 1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돼야 했다. 이때 양심과 현실 사이에서 얼마나 많은 번민을 했는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수많은 청년들이 군대를 거부하는 양심과 현실의 탄압 사이에서 말 못할 고뇌에 빠져 있다. 헌재의 결정은 이런 청년들에게 벼랑 끝에서 떨어지라고 등 떠미는 격이다.
한국전쟁 이래 1만 5천여 명이 양심적 병역거부로 수감돼 왔으며, 현재 전 세계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한 수감자의 90퍼센트가 한국에 있다. 언제까지 이 야만은 계속돼야 하는가. 하루 속히 양심적 병역거부가 인정되고, 대체복무제 등이 도입돼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징병제가 폐지돼야 한다. 이미 부유한 자들의 자식은 다 면제받고 있지 않는가. 이는 명백한 계급차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