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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탄핵 운동 팔레스타인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극우에 맞선 맞불 집회가 필요하다

서울서부지법 폭동 가담자들이 국가에 의해 처벌받고 있지만, 극우의 위험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전 국방장관 김용현은 폭동 가담으로 구속된 자들을 “애국 전사”로 호칭하며 영치금을 입금했다.

서부지법 폭동의 배후 의혹을 받고 있는 전광훈은 여전히 광화문에서 수만 명이 참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또 다른 극우 세력인 ‘여의도파’는 2월 1일 부산에서 대규모 집회(1만여 명 참가)를 열었다. 극우 시위를 수도권 밖 지역으로 확대한 것이다.

게다가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지지율은 박빙 상태다. 국민의힘은 ‘극우 세력을 안고 간다’가 아니라 ‘극우 세력에게 안겨 간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급속하게 극우화하고 있다.

대중의 저항으로 윤석열의 군사 쿠데타를 좌절시킨 게 불과 두 달 전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황이 반전된 듯한 인상을 준다.

극우는 왜 거리를 차지하기를 원하는가?

지금 극우는 거리에서 충분히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지 않다. 극우는 거리 시위를 통해 지지자들을 규합하고 노골적인 냉전주의와 반민주주의를 선동하고 있다. 윤석열을 반대하는 세력을 “친중 극좌 매국 카르텔”이라고 비난한다.

1월 19일 서부지법 폭동. 거리 시위와 폭력이 극우에게 자신감과 응집력을 준다 ⓒ출처 유튜브 락TV

극우는 냉전주의적 선동을 통해 한국 사회가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위기 의식을 퍼뜨린다. 그럴수록 극우 지지층 사이에서 두려움이 커지는 효과를 낸다.

그런데도 전광훈 집회의 지척에서 열리는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 집회에서는 극우의 친미/혐중/반북 및 국가보안법 지지 선동에 대한 비판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거리는 극우 운동이 배양되는 공간이다. 극우가 새 간부층을 형성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확신에 찬 극우로 만들 수 있느냐 하는 것은 그들이 거리를 지배하고 목표물을 위협하거나 성공적으로 공격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비록 한국의 극우가 아직 파시즘으로 진화하지는 않았지만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1879~1940)가 파시즘과 관련해 지적한 점은 경청할 만하다. 대규모 거리 시위와 폭력이 파시즘 운동에 동원된 이질적 인자들에게 응집력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파시즘이 이용하는 것은 프티부르주아지의 환멸, 조급함, 절망이다. ... 파시스트들은 대담함을 보이고 거리로 나가 경찰을 공격한다. ... 프티부르주아지는 경제적으로 의존적이고 정치적으로 원자화돼 있다. ... 파시즘은 흩어진 대중을 단결시키고 무장시킨다. 인간 먼지[프티부르주아지]로 전투 부대를 조직한다. 따라서 프티부르주아지에게 독자적 세력이라는 환상을 심어 준다.”

현재 한국 극우가 파시스트들은 아니지만 상황 전개의 맥락을 보면 그 중심에서 마찬가지 역학이 작동하고 있다.

서부지법 폭동 혐의로 구속된 65명(2월 5일 현재) 중 절반 이상이 자영업자와 무직자였다. 극우 폭동의 배경을 분석하는 데서 흔히 나이와 성별에 주목하곤 하는데(“이대남”), 진정으로 중요하게 봐야 하는 것은 계급 배경이다.

2월 1일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극우 집회 ⓒ출처 부산경찰청

거리 시위는 극우에게 자존감을 준다. 전광훈이 민주주의를 들먹이는 것은 가당찮지만 그는 광화문 집회에서 이렇게 연설했다. “집에서 티비 보며 나라의 주인이라고 해 봐야 아무 소용없다. 민주주의의 힘은 광장에서 나온다. 광화문으로 나오라.”

극우가 좌파의 도전을 받지 않고 마음대로 거리에서 제멋대로 집단 행동을 드러낼 수 있게 되면 더욱 자신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극우 집회에 맞대응을 해야 하는 이유

극우와 논쟁하고 그들의 거짓말을 폭로하는 것은 (어느 정도 필요한 일이지만) 극우를 저지하는 최상의 방법이 아니다. 윤석열의 군사 쿠데타를 옹호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극우의 궁극적 목표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조차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극우가 거리에서 활개치지 못하도록 맞대응을 해야 한다. 극우는 거리에서 좌파의 도전을 받지 않을 때 자신감을 얻는다.

반대로 극우에 맞선 대중 동원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극우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고, 우파적인 단순 집회 참가자와 극우를 분리시켜 낼 수 있으며,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높일 수 있다. 사회 전반에서도 냉전주의적·반민주주의적 극우 정치에 대한 반감이 커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극우 집회에 맞선 맞불 집회를 열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극우에 맞선 전투는 지구전이 될 것이기 때문에 전장을 신중하게 골라야 할 것이다.

이런 맞대응에는, 세력 균형이 허락한다면 극우가 집회나 행진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도록 막는 대규모 물리적 대치도 포함된다.

그래서 맞불 집회는 전투적이고 용감한 소수가 극우에 맞서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참가해 극우를 수적으로 압도하는 대중 동원을 구축해야 한다. 1월 초 공수처의 윤석열 체포 1차 시도 때 한남동 관저 앞에서 윤석열 반대 시위대가 대규모로 결집해 극우 시위대와 대결했던 것처럼 말이다.

가장 효과적인 대중 동원은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고 대거 집단으로 집회에 참가하는 것이다.

윤석열 1차 체포 시도 당시 한남동에 대규모로 모여 극우에 맞섰던 반윤석열 시위대 ⓒ조승진

기성 정치 질서와의 타협주의자들은 흔히 이런 맞불 집회를 반대한다. 비상행동은 1월 초 한남동 관저 앞 맞불 집회를 조직하기를 기피했다. 맞불 집회가 괜스레 극우를 키워 준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러니 극우 집회를 무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쟁점은 비상행동이 극우의 부상이라는 당면한 위험에 맞서기를 회피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맞불 집회를 “극우의 거울 이미지처럼 행동하는” 비효과적인 투쟁 방법이라고 본다. 그래서 극우의 폭력을 막는 일은 경찰과 법의 몫이고, 운동은 이성적 논쟁을 하고 존경받을 만한 집회를 열어야 한다고 본다.

비상행동이 1월 초 한남동 관저 앞 맞불 집회 개최를 반대한 주된 이유도 시위 참가자들을 극우와의 물리적 대결이 벌어질지도 모를 위험한 상황에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극우는 이성적인 논리로 지지를 늘리지 않는다. 극우는 체제의 위기가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절망으로 미쳐 버릴 지경이 되는 상황을 이용해 성장한다.

경찰은 극우의 행동이 지배계급의 당면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할 때에 한정해서 처벌한다. 보통은 극우에 관대하다. 전광훈이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대중 집회를 열었을 때 경찰은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지 않았다.

더구나 억압적 국가 기구는 극우에 대한 처벌을 아래로부터의 대중 운동에 대한 통제력 강화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한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권영세가 경찰이 극우 폭동과 민주노총 시위에 대해 이중 잣대를 대고 있다고 비난하자, 경찰은 한남동 관저 앞에서 시위한 민주노총 조합원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민주당은 극우 방화벽이 아니다

맞불 집회 같은 대중 동원 문제는 결국 정치 문제다. 지금 윤석열 반대 운동을 정치적으로 주도하는 것은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쿠데타에 반대했고 옳게도 윤석열 탄핵안 국회 통과를 이끌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극우의 반격에 직면해 “우클릭”을 가속하고 있다. 그러자 권영세는 “이럴 거면 왜 사사건건 발목 잡았나”고 쏴붙였다. 이런 상황은 윤석열 반대 운동 지지자들을 실망시키고 우파의 기를 살려 줄 뿐이다.

따라서 운동은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특히, 민주당에 대해 무비판적이어서는 안 된다.

사실 극우 세력의 부상은 민주당 정부의 배신을 이용해 기회를 포착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배신이 윤석열 정부의 등장을 가능케 했고, 거리 극우도 민주당에 대한 대중의 환멸을 집요하게 공략해 성장했다.

트럼프의 귀환에서 보듯이, 선거에서 극우를 이긴다고 해서 극우 운동이 사라지지 않는다. 경제적·지정학적·정치적·기후 위기 등 재난이 (예외가 아니라) 정상이 되어 있는 오늘날 상황이 극우의 성장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권 교체가 이뤄져 민주당 정부가 등장하더라도(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사회대개혁”을 거의 실행하지 못할 것이다. 이재명은 집권이 코앞에 다가오는 듯하자 지배계급에 아첨하며, 안 그래도 보잘것없던 개혁 약속들을 폐기하고 있다.

그래서 독자적인 대중 운동이 크게 성장하지 않는다면 민주당 정부는 극우에 대한 방화벽이 아니라 극우 성장의 토양이 될 공산이 크다.

민주당이 아닌 좌파가 선거에서 더 많은 표를 얻는다고 해서 극우를 저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물론 혁명적 좌파는 그들의 선거 도전을 지지해야 하지만 말이다). 좌파 정당들이 상당한 득표를 하고 있는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극우 정당들이 광범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극우의 부상을 저지할 수 있는 진정한 희망은 아래로부터의 대중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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