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에 대한 일말의 환상도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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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세 달간 국민의힘은 자중지란을 겪어 왔다. 표면상 장동혁 지도부의 극우 노선에 대한 논란 같았지만, 국힘 내의 반발은 원칙있는 반극우가 아니었다. 그저 지지율 저조에 대한 책임 공방이었다. 지방선거 이후 차기 당권 다툼 전초전인 셈이다.
그래서 최근 영남권에서 “미워도 다시 한 번” 바람이 일며 국힘 중심 결집이 일어나고 수도권으로도 그 영향이 미칠 듯하자, 국힘은 (여전한 상호 불신 속에서도) 장동혁 체제 아래서 점차 전열을 정비하고 있다.
지난해 탄핵 반대 집회에서 “비상계엄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고 떠들었던 장동혁은 최근 “계엄이 국민들에게 상처를 주고 어떤 혼란을 가져왔을지 모르겠다”며 기회주의적으로 물타기 하는 발언을 했다.
장동혁은 윤석열 정권의 언론 탄압 앞잡이 팀이었던 이진숙·김태규를 나란히 대구 달성, 울산 남구갑 등 당선 유력 지역구에 공천했다. 윤석열 심복 이용도 경기 하남갑에 공천됐다. 그들 모두 계엄 옹호자(“윤어게인”)들이다.
윤석열·한덕수와 통화 후 계엄 해제 표결을 방해한 혐의로 “내란주요임무종사죄” 재판에 넘겨진 추경호를 대구시장에 공천한 직후였다.
사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국힘 자체가 하나의 정당으로서 윤어게인에 연루됐다. 재공천된 국힘 현역 단체장 11명 전원이 지난해 윤석열 체포와 탄핵(파면)에 합동으로 반대했었다. 장동혁에 반발한 오세훈, 박형준이 포함된다.
현재 국힘 광역단체장 후보 7명(부산 박형준, 울산 김두겸, 대구 추경호, 인천 유정복, 세종 최민호, 강원 김진태, 경북 이철우), 기초단체장 후보 4명(경기 성남·광명·포천, 강원 원주)이 윤석열을 옹호했던 극우 김문수를 명예선대위원장에 임명했다.
평택을 재선거에 출마한 국힘 유의동은 중도 보수를 자처해 왔는데, 이번에 김문수를 상임 선대위장으로 임명했다. 전광훈·전한길의 지지를 받은 황교안(자유와혁신)과의 단일화를 고려한 포석으로 보인다. 황교안은 합당을 단일화 조건으로 제시했다.
국힘에서 쫓겨나 부산북갑에 무소속 출마한 한동훈은 전두환·노태우 정권의 악명 높은 공안 검사 정형근을 후원회장에 앉혔다. 정형근은 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 파견 시절, 잔혹한 고문 기법으로 김근태 전 장관을 고문후유증으로 몰아간 이근안 등을 지휘한 고문 수사로 악명 높았다. 윤어게인을 비난하더니 ‘전어게인’을 한 것이다. 한동훈은 비난이 일자, 정형근이 지역 사정을 잘 안다고 군색하게 변명했다. 정형근은 부산북갑 지역에서 국회의원을 지냈었다.
계엄군 현장 지휘관이 국회의원 출마
국힘 지지율은 여전히 민주당에 뒤지지만, 광역별 편차가 크다. 전국 평균 지지율로는 선거 결과를 단정하지 못한다. 만에 하나, 지지층 결집으로 국힘이 영남 5곳을 싹쓸이하고 다른 한두 곳만 건져도 극우 지지자들은 고무될 것이다.
선거 직전이 되자 당장 분위기가 달라졌다. 한 달 전에만 해도 국힘은 대구시장 선거에서조차 밀리는 듯 보였는데, 이제는 영남권에서 모두 국힘 후보가 민주당 후보를 따라잡거나 앞선다. 서울에서도 격차가 많이 좁혀졌다. 아래에서 보겠지만, 민주당의 공천들이 대중에게 실망을 안겨 주고 있어서다.
국힘 바깥 극우도 목소리를 높인다. 12·3 쿠데타 당시 국회에 출동한 특전사 현장 지휘관이었던 김현태가 전한길의 지지 속에 인천 계양을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내란 청산이 얼마나 부실하면, 실탄 든 총을 들고 출동했던 자가 재판 중에 국회의원 출마를 할까.
또한 지난해 구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인종 차별과 혐중 공약을 남발했던 자유통일당 이강산이 오세훈이 못 미덥다며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이런 자들은 선거운동을 쿠데타 지지, 인종차별, 혐중, 반노동, 반좌파, 반페미니즘을 공공연히 선동하는 장으로 삼을 것이다. 이런 자들의 득표는 하나하나가 반동의 탄환이다. 한 표라도 덜 받도록 돼야 하는 이유다.
왜 극우의 주류화가 지속되는가
지방선거를 한 달 앞두고 국힘으로 우파층 결집이 일어나는 것은 극우의 주류화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극우의 주류화를 촉발시킨 것은 12·3 친위 쿠데타 기도였다. 쿠데타 세력 청산 투쟁이 여전히 중요한 이유다.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겠다는 명분이 윤석열 쿠데타의 실제 목적이었다.
경제 침체의 장기화에 따른 이데올로기 위기와 미·중 갈등이 초래한 국제 질서의 불안정 효과는 주류였던 중도 세력의 정치적 위기를 불러왔다. 위기를 극단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극우가 성장하는 원인이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정부의 권위주의적 억압 조처들이 늘어나고, 프랑스, 영국, 인도 등의 선거에서 드러나듯 극우 세력이 중도 몰락의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한국도 이런 국제적 정치 위기와 연동돼 있기 때문에 윤석열 쿠데타가 실패해 (더디고 무르기 짝이 없지만) 법적 단죄 중인데도 극우의 주류화가 계속 진행 중인 것이다.
국힘은 미국 트럼프 극우 정부의 지지를 받아 내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델도 배우려고 하고 있다.
따라서 중도와 상식의 힘을 과대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좌파가 자유주의 정치 세력(이재명 정부와 민주당)과의 정치적 동맹·공조로 국힘을 약화시키려는 것은 큰 실수다.
극우는 민주당의 타협주의를 이용해 성장한다
한국의 민주당도 언제나 정치 위기의 대안이 아니라 문제의 일부였다. 한국 극우의 가장 최근 성장(윤석열의 집권을 포함해) 요인을 따져 봐도,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과 위선이 낳은 분노와 환멸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사실 윤석열 탄핵 운동이 박근혜 탄핵 운동만큼 크지 않았던 것에는 여전히 그 환멸이 크게 남아 있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서민층 청년 세대의 대안 부재감도 그 환멸의 영향을 받았다.
문제는 이재명 정부가 지난 1년간 펼친 정책도 별로 진보적이거나 친서민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말이 정부의 실천에 반영된 것은 유가 최고치 통제 등을 빼면 손에 꼽을 정도다. 정치 질서의 안정을 더 중시하다 보니 쿠데타 세력 숙정도 불충분하다.
오히려 현 정부 아래서 경제 성장, 방위산업 강조, 한미동맹 중시 등 우파의 전통적 의제가 실천돼 왔다. 높은 지지율도 주식시장 활황과 유가 규제, 서민 지원금 풀기 덕분이라 조만간 거품이 터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대통령 자신이 윤석열의 사람들, 심지어 계엄 옹호자들을 청와대와 내각에 임명하려 했었다. 그러니 고위 관료 집단은 물론이고 군·검찰·경찰·국정원 등에서 실질적인 숙정이 진행되기가 힘들다.
민주당의 광역단체장 후보 중 2명이 국힘 출신이고, 평택을 재선거에도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을 비난했고 윤석열 대선 캠프 대변인을 지냈던 김용남을 공천했다.
국힘 출신자들만 문제인 것도 아니다. 여론 조작을 위해 댓글 공작을 사주한 죄로 구속돼 경남도지사를 중도 사퇴했던 김경수를 다시 경남도지사로 공천했다. 민주주의 염원에 대한 배신이다.
트럼프의 아들이 주도하는 미국 극우 조직과 유착한 김부겸을 대구시장에 공천한 것, 거액의 가상 자산을 보유해 코인 투기 의혹을 받은 김남국을 경기 안산갑에 공천한 것 등은 대중의 진보 염원을 무시한 것이다. 부산시장 후보 전재수는 검찰의 불기소 처분으로 가까스로 출마했지만 부패한 극우 기업 조직 통일교 유착 의혹이 풀린 상태는 아니다.
국힘과 극우 후보들이 참패하길 바라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과의 선거 연대와 표 몰아주기로는 서민층과 청년 세대에게서 내란 청산, 극우 반대, 사회 개혁의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물론 개별적이고 지역적인 수준에서 불가피하게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불가피한 경우에도 단 한톨의 환상도 가져서는 안 된다.
극우에 맞서려면, 노동자 투쟁, 반제국주의 운동, 이주민·난민 환영 운동 등이 성장해야 한다. 무엇보다 노동자 운동이 현재의 복합·다중 위기를 해결할 힘을 보여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