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트럼프의 국가안보전략(NSS) 균형 있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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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5일 도널드 트럼프의 국가안보전략(NSS)이 공개됐다. 트럼프가 직접 쓴 구절은 하나도 없겠지만, 이 문서는 참으로 물건이다.
역대 미국 정부들은 저마다 NSS를 발표해, 자신들이 생각하는 미국 제국주의의 우선순위를 펴밝혔다. 그중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조지 W 부시가 이라크 침공을 앞둔 2002년 9월에 발표한 NSS였다. 그 문서에는 미국 지배계급의 자신감이 흘러 넘쳤다. 냉전에서 승리한 그들은 자국의 군사력으로 뒷받침되는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었다.
부시의 NSS는 미국이 “유일하게 지속 가능한 국가 성공 모델: 자유, 민주주의, 자유 기업”을 대표한다고 으스댔다. 그 문서는 러시아와 중국에 이렇게 경고하기도 했다. “미국은 열강의 경쟁이라는 낡은 패턴이 되살아날 가능성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부시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패배한 후 집권한 민주당 오바마·바이든 정부는 미국 군사력을 직접 투입하는 데서 훨씬 조심스러워했다. 그러나 바이든도 부시에 버금가게 강경했다.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세계적 투쟁을 선포한 것이다.
트럼프의 이번 NSS는 사뭇 다르다. 이 문서는 역시나 트럼프의 자화자찬으로 시작된다. “이 문서는 미국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성공한 나라이자 지구상 자유의 본고장으로 남도록 하기 위한 로드맵이다.” 그러나 이렇게도 적혀 있다. “미국은 자국을 위한 세계 지배라는 실패한 개념을 거부한다.” 중동을 다룬 절에서는 이렇게 선언한다. “[트럼프는 ─ 캘리니코스] 이 나라들, 특히 걸프 연안 왕정들에 전통과 역사적 통치 형태를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미국의 잘못된 실험을 중단시키고 있다.”
트럼프가 면죄부를 주는 대상은 걸프 우방국들의 독재 정권만이 아니다. 1기 때만 해도 트럼프는 러시아와 중국을 “경쟁자,” “수정주의 세력들”이라고 묘사했다. 이번 NSS에서 러시아는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계속 사들이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비현실적 기대”를 하고 있다고 힐난할 때만 언급된다. 중국은 관세를 통한 “균형 무역” 추구 정책으로 대처할 경제적 경쟁자로 주로 제시된다.
유럽을 다룬 절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미국이 나토 동맹국들에 늘상 요구하던 방위비 대폭 증액에서 훨씬 더 나아갔다. 트럼프의 NSS는 올해 2월 뮌헨 안보 회의에서 부통령 J D 밴스가 퍼부었던 마가(MAGA)식 비난을 되풀이한다. 유럽이 대량 이민, ‘워크’ 정책 등 때문에 “문명 소멸”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현재 유럽의 궤적에 대한 저항을 유럽 나라들 내에서 육성”하고 있다고 한다. 그에 따라 트럼프의 NSS는 “애국적 유럽 정당들,” 즉 극우의 “영향력 증대”를 반긴다.
러시아가 이 문서를 두고 “우리의 비전과 대체로 일치한다”고 한 것이 그다지 놀랍지 않다. 트럼프는 중국과 러시아가 부르짖는 “다자주의적” 세계 질서를 수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중국에 맞서기 위한 이른바 “아시아로의 중심축 전환”은 확실히 끝난 것처럼 보인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미국이 새 일본 총리 다카이치 사나에를 미국이 편들어 주지 않아 일본 정부가 “좌절감을 느꼈다”고 보도한다. 다카이치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일본이 군사 개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가 중국 관리들에게서 모욕적인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이것이 미국 제국주의가 끝났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의 NSS는 먼로 독트린의 “트럼프판”을 선언한다. 먼로 독트린은 초기 미국이 아메리카 대륙에 손을 뻗치지 말라고 대륙 바깥의 강대국들에 한 경고였다. 트럼프판은 이런 것이다. “미국은 적대적 외세의 습격이나 핵심 자산 소유에서 자유로운 반구를 원한다.” 이것은 구구절절하지 않지만, 라틴아메리카의 광물·농산물 수출의 주요 시장인 중국에 보내는 경고다.
트럼프의 NSS는 제1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세계 정책의 전통적 목표를 재천명한다. “미국은 세계적, 어떤 경우에는 지역적 수준에서도 다른 국가들에 의한 지배를 막아야 한다.” 그런 지배를 할 수 있는 유일한 후보는 다시금 중국이다.
요컨대 트럼프의 NSS의 진짜 핵심은, 미국 제국주의의 약점을 감지한 경쟁자들이 미국의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상황에서 미국 제국주의가 어떻게 스스로를 부지할지 제시하는 것이다. 유럽과 일본 같은 미국의 전통적 동맹들은 전보다 훨씬 힘들어질 것이다. 트럼프는 최근 이렇게 단언한 바 있다. “우리 동맹들의 많은 수는 친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