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그린란드 위기가 보여 주는 골육상쟁 제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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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를 둘러싼 미국과 유럽의 갈등에 관해 맨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둘 다 그 섬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럴 권리는 오직 그곳의 다수 주민 [그리고 선주민 — 역자] 이누이트에게 있다.
그린란드는 덴마크의 식민지다. 덴마크는 1815년 덴마크-노르웨이 동군연합이 해체될 때 그곳을 단독 지배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은 1917년 덴마크령 서인도 제도(오늘날의 미국령 버진 아일랜드)를 사들이는 조약을 체결하면서 덴마크의 그린란드 지배를 인정했다. 트럼프는 덴마크로부터 그린란드를 사들여 이런 식의 식민지 땅따먹기를 되풀이하려 한다.
그린란드는 대체로 미개발된 천연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그리고 북극으로 가는 관문에 있기도 하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북극권은 제국주의 경쟁의 주요 무대가 됐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의 강대국들이 북극의 항로와 광물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트럼프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그가 개발하려 하는 “골든 돔” 미사일 방어 체계에서 그린란드가 중요한 구실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덴마크의 사회민주당 정부는 미국이 그린란드를 병합하지 않아도 트럼프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호소해 왔다. 사실 덴마크는 미국의 나토 동맹국들 가운데 가장 순종적인 축에 속한다.
1951년에 체결된 협정에 따라 미국 군대는 그린란드를 사실상 아무 제약 없이 이용해 왔다. 덴마크는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점령에도 동참했다.
그러나 그린란드 위기는 미국이 동맹국들에 부여하는 가치가 하락했음을 반영한다.
1945년 이후 미국의 패권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을 미국에 엮어 놓는 방식으로 행사됐다.
그러나 트럼프는 그 때문에 동맹국들이 미국을 등쳐 먹고 미국의 부와 힘에 편승해 왔다고 주장한다. 트럼프는 이제 “미국 우선”을 주장한다.
트럼프는 그린란드를 확실히 미국의 통제하에 두기 위해 그린란드를 병합하려 한다. 그리고 병합에 반대하며 그린란드에서 보잘것없는 군사 훈련을 벌인 유럽 8개국(영국 포함)에 10퍼센트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그 유럽 국가들은 트럼프에게 나토 우방들이 그린란드의 안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긴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는 의도였지만 오히려 커다란 역효과를 냈다.
관세 부과 위협으로 유럽연합과 영국은 난처한 처지에 놓였다.
그들은 그동안 트럼프를 달래려 해 왔다. 영국 총리 키어 스타머는 트럼프에게 후한 아첨을 해 왔고, 유럽연합은 지난여름 대미 수출품에 15퍼센트 관세 부과를 수용하는 굴욕적인 무역 협상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그들은 트럼프가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먹잇감으로 던져 주는 일을 막기를 바랐다. 그리고 미국이 계속 나토를 통해 유럽의 안보를 뒷받침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제 그린란드를 둘러싼 대치로 서방 제국주의 블록 내에 깊은 균열이 생기게 생겼다. 물론 트럼프의 관세 발표는 대개 협상의 서곡이다.
한 투자 전략 회사가 작성한 “관세 대처 전술”은, 트럼프가 고율의 관세를 발표하는 시점이 대개 시장이 폐장하는 주말이었다고 지적한다. 트럼프는 관세 유예 기간을 설정해 협상할 시간을 벌고, 결국에는 양측 모두 성공으로 내세울 만한 내용으로 타결하는 패턴이라는 것이다.
지난가을 미·중 무역 전쟁도 그렇게 전개됐다.
과연 그답게 트럼프는 그린란드를 둘러싼 새 관세를 2월 1일부터 적용할 것이고 6월에 관세를 더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트럼프가 원하는 것이 단지 돈이라면 무역 협상 때와 마찬가지로 액수를 흥정하다가 결국 각자의 몫을 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트럼프가 원하는 것은 거대한 섬이다. 훨씬 타협이 어려운 것이다.
틀림없이 트럼프는 성공적인 베네수엘라 침공으로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다. 유럽 정부들은 그동안 트럼프를 지지한 것을 후회해야 마땅할 테다.
유럽연합은 일단 말로는 대차게 대들고 있다. 미국에서 오는 수입품에 대한 806억 유로에 달하는 보복 관세 패키지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타머는 영국이 보복에 나서지 않겠다고 하려는 듯 보인다.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
미국 재무장관 스콧 베선트는 이렇게 말했다. “유럽 지도자들은 제정신을 차릴 것이다. 자신들이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에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할 것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캐나다 총리 마크 카니가 지난주 베이징을 방문해 무역 협정을 체결한 것은 오랜 동맹이 훼손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트럼프의 깡패짓은 훨씬 불안정한 골육상쟁의 시대를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