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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노조 파업을 돌아보며:
경제 위기를 이유로 파업을 멈추다

전국삼성전자노조 지도부는 파업 25일째인 8월 1일 저녁에 파업 종료를 선언하고, 조합원들에게 5일까지 업무에 복귀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7월 29~31일 교섭에서 사측은 노조의 요구안 수용을 끝내 거절했다. 손우목 삼성전자노조 위원장은 “노조가 손에 쥔 것은 없”이 파업이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이번 파업은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진행됐다.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 경제 전망도 불투명하긴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기업이자 ‘무노조 경영’을 일삼아 온 삼성전자에서 창사 55년 만에 처음으로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선 것이다. 동시에 전 세계 반도체 기업 중에서 처음 벌어진 파업이었다.

또한 삼성전자 파업은 고물가·고금리 등 생계비 고통에 맞서 국제적으로 벌어져 온 임금 인상 투쟁의 일부였다. 한국 노동자들도 실질임금이 2년 연속 하락해 생활고가 크다.

그래서 세계 주요 언론들도 상징성이 큰 삼성전자노조 파업을 주목했다.

보수 언론들은 “귀족 노조”가 웬 파업이냐는 식으로 파업을 비난했다. “나라 경제를 망친다”고도 협박했다.

그러나 보수 언론의 비난과 달리 노동자들의 요구는 여느 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들과 다르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과 성과급 개선, 노조 인정, 휴가 확대 등을 요구했고, 위험한 작업 환경과 고강도 노동 등의 문제가 해결되길 바랐다.

“우리는 사용자 측의 소모품이 아니다”라는 파업 집회의 핵심 구호는 그간 켜켜이 쌓여 왔던 노동자들의 울분을 잘 대변한다.

파업의 정치적 성격

사측과 보수 언론이 한 회사의 경제 파업에 맹공격을 퍼부은 이유는 삼성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이 투쟁이 다른 노동자들의 투쟁 의지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서였다.

반면, 삼성전자 같은 거대 기업에서도 임금 인상을 못 이뤄낸다면, 지금처럼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다른 노동자들은 싸우기 더 어렵다고 느낄 수 있다.

이렇듯 삼성전자노조 파업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 한국의 핵심 기업에서 벌어진 파업이라서 한 회사의 경제 파업이었음에도 정치적 성격을 띠게 됐다. 여기서 정치는 계급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따라서 노동운동 측의 대응도 정치(노동자들의 연대)적이어야 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노조가 사용자 측의 탄압과 언론들의 공격 속에서도 한 달 가까이나 파업을 이어왔던 것에 비춰 보면 노동운동 측 특히 노동조합들의 연대는 매우 미약했다.

이는 삼성전자 사용자 측이 보수 언론과 윤석열 정부의 직·간접 지원을 받은 것과 대비된다.

윤석열은 집권 이후 줄곧 사용자들이 노조에 뻔뻔하게 나올 버팀목이 돼 왔다.

최근 대통령실이 노란봉투법을 “불법 파업 조장법”이라고 맹비난하는 것은 법안 반대를 넘어 파업(을 하거나 하려는) 노동자들을 위축시키고 부담을 주려는 행위다. 윤석열은 2년 전 화물연대 파업을 모질게 탄압했다.

삼성전자 파업 막바지에 윤석열은 김문수를 새 노동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김문수는 파업에 손해배상으로 가정 파탄을 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던 자이고, 최근에는 노조가 없고, 임금이 동종 업계의 40퍼센트밖에 안 되는 광주글로벌모터스 공장에 다녀와서는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정부가 이렇게 나오는 동안, 민주당은 삼성전자 파업을 외면했다. 오히려 이재명 전 대표는 재계가 요구해 온 금융투자소득세, 종합부동산세 완화를 주장해 기업주와 부자들의 사기를 올려 줬다.

투쟁의 저력

이에 맞서 삼성전자 노동자들, 대체로 청년들인 대공장 신규 조직노동자들의 전투성은 향후 경제 위기 고통 전가에 맞선 노동자 투쟁의 가능성을 보여 준 것이다.

노동자들은 파업을 통해 이재용의 ‘무노조 경영 폐기’ 선언은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이 밝히 드러냈다. 삼성전자서비스노조 와해 공작을 펼친 자들답게 삼성은 관리자들을 체계적으로 동원해 파업 조합원들을 협박하며 파업 파괴 행위를 자행했다.

그러나 노조를 만든 지 5년밖에 안 되고 처음 단체행동에 나선 삼성전자 노동자들은 기죽지 않고 거대 자본 삼성에 맞서 한 달 가까이 파업을 이어 나가는 저력을 보였다. 사용자 측은 대체 인력을 투입하고 생산량을 줄여 대응해야 했다.

파업 돌입 이후 8월 5일까지 8000명이 노조에 가입하는 등(전체 3만 6500여 명) 조직이 커졌고, 집단적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용기도 얻었다. 삼성전자노조 파업은 투쟁이야말로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점을 보여 줬다.

25일간 파업에 참가한 삼성전자 평택사업장의 한 노동자는 이번 파업의 성과에 대해 본지에 이렇게 말했다.

“[전엔] 개인들로 흩어져 있었다면 [파업을 통해] 모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 [그리고] 이제는 사람들이 회사에 할 말을 하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파업으로 노동자들의 의식과 조직이 성장한 것이다.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파업은 경제 위기 고통 전가에 맞선 노동자 투쟁의 가능성을 보여 줬다 7월 8일 경기도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정문 앞에서 열린 파업 결의대회 ⓒ조승진

연대 부족

삼성전자 노동자들이 악조건 속에서 나름 힘을 발휘하는 동안, 양대 노총 모두 삼성전자 파업을 공개 지지하거나 보수 언론의 비난으로부터 방어하지 않았다.

삼성전자노조는 한국노총에 속해 있지만, 이번 파업에선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실무적 지원과 조언을 받았다.

금속노조의 개입을 고려한다면,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공개적으로 삼성전자 파업을 지지하고 조합원들을 동원하는 연대 행동을 했어야 한다. 삼성전자라는 기업의 상징성을 본다면,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어느 노총 소속인가는 중요치 않았다.

삼성전자노조가 무기한 파업으로 전환한 7월 10일 금속노조는 노란봉투법 제정 등을 요구하며 부분 파업을 하고 집회를 열었다. 이를 삼성전자노조 파업 지지와도 연결시키지 않았다.

한편, 그동안 ‘재벌 개혁’(또는 ‘재벌 해체’)을 외치며 삼성그룹의 부패를 규탄해 왔던 노동계 좌파 정당인 정의당과 노동당이 (어떤 이유에서든)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파업에 일언반구조차 하지 않은 것도 낯부끄러운 일이다.

반면 진보당은 삼성전자노조 파업을 방어·지지하는 입장을 꾸준히 냈다. 그러나 진보당이 가진 자원을 생각하면 아쉽다. 유일한 원내 좌파 정당으로 국회의원 3명 모두 민주노총 출신인데도, 의원직을 활용한 파업 지지 활동(말과 행동)은 없었다. 기층 당원들을 참여시키는 연대 활동도 거의 없었다.

경제 위기와 개혁주의 지도부의 소심함

양대 노총을 포함해 노동계 개혁주의 지도부 대부분은 경제 침체 상황에서 삼성전자 파업을 지지했다가 자칫 자신들이 국가 경쟁력을 해친다는 비난을 받을까 봐 두려웠을 것이다. 어쩌면 경제 상황 때문에 이기기가 어렵다거나 투쟁을 자제해야 한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

AI 반도체 거품론이 제기되는 등 세계 반도체 시장의 불확실성이 늘고 있는데, 반도체 산업은 한국 수출의 약 20퍼센트를 차지한다.

보수 언론들이 이번 파업에 “귀족 노조”의 “매국 행위”라고 비난한 것은 국가 경제에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노조 상층 관료들의 소심함과 애국주의적 약점을 찌른 것이다.

노조 상층 지도자들의 개혁주의는 노동조합의 기본 활동이 자본주의 안에서 노동자들의 노동력 판매 조건을 둘러싸고 협상하는 것이라는 성격에서 비롯한다.

노조 상층 지도자들은 자기 조합원들의 이익을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지키려 하므로, 위기가 심해지면 보수성을 드러내며 투쟁을 조직하는 데 더욱 주저한다.

그러나 IMF 위기 때의 경험을 생각하면, 투쟁을 자제한다고 노동자들에게 득 될 것이 하나도 없다.

노동자들이 희생한다고 경제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아닐뿐더러 사용자들이 경제가 회복됐다고 참아 준 노동자들의 처우를 알아서 개선해 주지도 않는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장이자 부회장인 전영현은 노사 교섭 결렬 바로 다음 날인 8월 1일 사내 게시판에 “2분기 실적 개선은 근본적인 경쟁력 회복보다는 시황이 좋아진 데 따른 것”이라며 “근원적 경쟁력 회복 없이[는] … 작년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노동자들에게 올해 실적 개선에 따라 요구와 기대를 갖지 말고 자제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지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기업주들이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것에 맞서 단호하게 반대하고 저항에 나서는 것이다. 또한 투쟁이 보편화(노동자들의 연대 확산)해야 한다. 노동조합 운동에도 계급투쟁적 마르크스주의 정치가 필요한 이유다.

투쟁을 이어나가자

사용자 측이 완강하게 나오는데, 파업이 전면 파업에 이르진 못하고, 공장 바깥에서 우군이 형성되지 않으니, 노동자들의 의식도 노동조합의 시야를 넘어 정치적으로 확장되긴 어려웠다. 이 경우, 파업 장기화로 늘어 나는 임금 손실이 더 크게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집중 교섭 마지막 날인 7월 31일에 미국의 주요 반도체 기업인 인텔이 대규모 인력 감축에 나설 것이라는 소식은 파업 종료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곧바로 미국 경제가 둔화하고 있다는 자료들이 잇따라 나오며 세계적인 경기 침체 위험성이 커졌다. 8월 2일 새벽부터 반도체 기업들을 포함해 세계 주식시장이 폭락했다.

삼성전자노조 지도부는 투쟁이 끝난 것은 아니며 지속 가능한 장기 투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조직을 재정비하고, 이재용의 ‘무노조 경영 폐기’ 약속 불이행을 사회적 쟁점화하고, 기습적인 부분 파업 등을 준비하겠다고 한다.

노동자들의 투쟁적 연대를 키우는 정치가 필요하다.

이번 파업은 아쉽게 마무리됐지만 삼성전자 노동자들이 보여 준 저력과 교훈을 토대 삼아 다음 번 투쟁에선 전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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