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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노조 첫 파업:
‘무노조 신화’는 신화일 뿐, 삼성에서 노동자 조직이 성장하다

4월 17일 전국삼성전자노조 조합원들이 창사 이래 첫 집회를 한 데 이어, 6월 7일 집단 연차를 사용해 첫 파업을 벌였다.

삼성전자 노동자들은 노조와의 교섭을 통한 임금 결정, 성과급제 개선, 휴가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사용자 측은 여전히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

오랫동안 ‘무노조 경영’으로 노동자들을 쥐어짜고 탄압해 왔던 삼성그룹의 대표 기업에서 노동자들이 저항을 시작한 것은 크게 반가운 일이다.

사용자 측과 친사용자 언론들은 파업으로 인한 생산 차질은 없었다며 삼성전자 노동자 파업의 효과를 애써 깎아내렸다. 파업 당일 집중 집회가 없어 투쟁 규모가 가시화되지 않은 점을 이용해 노동자들의 김을 빼고, 이 파업을 지켜볼 삼성 계열사·협력사 노동자들을 실망시키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현국 삼성전자노조 부위원장은 파업 후 언론 인터뷰에서 “특정 부서가 ‘통으로’ 연차를 내서 파업에 동참한 사례가 확인돼 사측이 (압박을) 느낄 만한 수준의 파업 효과는 확인된 셈”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진보당이 삼성전자노조 파업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대만 타오위안시노총은 “우리는 전국삼성전자노조 파업과 함께 하겠습니다!”라는 응원 영상을 보냈다.(본지도 지속해서 삼성전자노조 투쟁을 지지하는 보도를 해 왔다.)

역사적 유산을 허물고 있는 노동자들

중요한 것은 50여 년의 ‘무노조 경영’이라는 역사적 유산(불이익을 당할까 봐 조합원임을 드러내는 것을 개별적으로 쉬쉬하는 분위기가 아직 있다)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삼성전자 노동자들이 올해 들어 단체행동들을 연거푸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2020년 삼성전자 회장 이재용은 삼성그룹의 노조 파괴 공작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무노조 경영’ 폐기를 선언했다. 그러나 이는 위선이었다.

노조가 생겨도 교섭을 하지 않는 등(노조가 아닌 노사협의회에서 임금을 결정·통보)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행태를 일삼아 왔다.

특히, 사용자 측은 지난해 반도체 부문 적자를 이유로 노동자들의 성과급을 전액 삭감했다.

물가가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전체 연봉의 3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성과급을 전액 삭감한 것은 삼성전자 노동자들에게 커다란 생계비 고통을 가했다.

올해 반도체 수출이 크게 늘어 영업이익이 11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지만 성과급은 여전히 형편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삼성전자 임원들은 수억 원씩 인센티브를 받고 퇴직금도 넉넉하게 챙겨갔다. 이재용은 지난해 배당금 총액이 6.4퍼센트 늘어난 3244억 원을 받았다.

노동자들이 울화가 치미는 것도 당연하다. 고임금 노동자의 이기적인 파업이라는 것도 가당치 않다.

노동자들은 노조에 가입해 집단적 힘을 키우는 것으로 대응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1만 명가량이던 조합원 수는 올해 들어서만 1만 8300여 명이 늘었다. 특히 20~40대 젊은층 비율이 높은데, 변화의 새로운 바람이 일고 있는 것이다.

4월 쟁의행위 찬반 투표는 전체 조합원 대비 86.3퍼센트의 압도적인 찬성률로 쟁의행위를 가결시켰다.

계열사·협력사들이 삼성전자 노동자들을 지켜본다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투쟁은 삼성의 ‘무노조 경영’ 폐기 선언은 위선이었음을 밝히 드러냈고, 노동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집단적 저항에 나설 수 있음을 보여 줬다.

4월 17일 화성시 부품연구동 앞에서 열린 첫 단체행동엔 노조 집행부의 예상을 3배가량 뛰어 넘는 약 3000명이 모였다. 5월 24일 서초사옥 앞 2차 단체행동엔 2500여 명이 참가했다. 수천 명이 함께한 행동은 노동자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한국 경제의 핵심인 삼성전자의 노동자들이 잇달아 단체행동을 벌이고 있다 5월 24일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열린 2차 단체행동 ⓒ이미진

노동자들이 첫 파업에 나서자 친기업 언론들은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서 ‘노조 리스크’까지 더해졌다며 연일 비난했다.

그러나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위기는 노동자 탓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반도체 산업의 경쟁이 심화된 결과다(관련 기사: 본지 508호, ‘경쟁 심화와 거품 우려로 불확실성 커지는 반도체 산업’).

삼성전자가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시장 주도권을 빼앗긴 것도 세계 시장의 압력과 경영진의 경영 전략 탓이지 노동자 잘못이 아니다.

삼성전자 노동자들은 기업 위상에 걸맞게 자신들의 투쟁이 다른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자각하고 있다. 손우목 삼성전자노조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삼성의 많은 계열사들과 그 외 협력사들은 삼성전자의 임금 인상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모든 계열사와 협력사들에게 기준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삼성전자만의 처우 개선이 아닌, 삼성그룹 및 협력사 나아가 국내 모든 기업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많은 국내 언론들과는 달리 여러 외신들은 삼성전자노조 투쟁을 주목했다.

〈뉴욕타임스〉, 〈니혼게이자이〉, AFP통신 등은 삼성전자 파업을 보도하며 삼성그룹이 오랜 기간 노조 결성을 방해했기 때문에 이번 연차 파업이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 기사에서 안주영 류코쿠대 정책학부 교수는 한국의 자동차·조선 등 제조업 노동자들이 파업을 통해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해 온 역사가 반도체 업계에도 파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경제의 핵심 기업인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투쟁은 다른 부문 노동자들을 고무할 수 있다. 일부 경제지들은 삼성전자 투쟁 외에도 현대차, 기아차, 현대중공업 등 한국의 대표 수출 회사들의 임금 협상도 난항이 예상된다며 걱정하고 있다.

이들의 우려를 현실로 만들 투쟁이 확대돼야 한다.

삼성전자 노동자들이 이번 첫 파업을 발판 삼아 계속해서 조직을 성장시켜 경제적·정치적 소득을 얻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