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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노조의 무기한 파업을 지지하라

사용자 측의 버티기와 주류 언론의 비난 공세에도 전국삼성전자노조 조합원들은 일주일 넘게 파업을 굳건히 이어가고 있다. 사용자 측이 1차(7월 8~10일) 파업에도 입장 변화를 보이지 않자 삼성전자노조는 10일부터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보수 언론들은 삼성전자노조의 파업이 “귀족 노조”의 “매국 행위”라는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진보’(사실상 자유주의) 언론은 삼성전자 노동자들에게 동정적이지만, 파업을 확실하게 지지하는 것은 주저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지금의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를 일궈 낸 것은 밤낮으로 “몸을 갈아 넣으며” 일한 노동자들의 피땀이다.

7월 8일 경기도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정문 앞 파업 결의대회 ⓒ조승진

‘귀족 노조’의 이기적 파업?

‘초일류 기업 삼성’이라는 화려한 수식어 뒤에는 엄청난 노동강도와 위험한 작업 환경이 가려져 있다. 반도체 노동자들은 “백혈병을 비롯한 직업성 암, 생식독성 피해(유산, 불임, 자녀의 건강 손상), 난치성 질환에 시달[려 왔다.]”(삼성전자노조 보도자료)

삼성전자에서 1983년 최초로 반도체 생산을 시작한 기흥사업장의 여성 노동자들은 식사 시간이 부족해 “밥을 마신다.” 24시간 돌아가는 반도체 공정의 특성상 사용자 측은 노동자들이 생산 라인을 절대 비우지 못하게 한다. 인력도, 휴게 시간도 턱없이 부족하다.

여성 노동자들은 생리 휴가와 연차 휴가도 마음 편히 사용하지 못한다. 노조에 따르면, 일부 관리자들은 여성 노동자들의 생리 주기까지 물어 보면서 ‘생리 휴가를 쓰려면 진단서를 가져 오라’고 압박한다.

기흥사업장은 2007년 23세의 젊은 나이에 산업재해로 백혈병을 얻어 사망한 고 황유미 씨가 일했던 곳이기도 하다.

열악한 노동 환경은 비단 기흥사업장 여성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천안사업장에서 일하는 11년차 엔지니어 박준우 조합원은 이렇게 말했다.

“작업할 게 너무 많은데도 인력이 부족해서 설비 엔지니어들은 항상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회사는 항상 안전이 경영상의 제1 원칙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말뿐이에요. 모든 작업에서 2인 1조가 원칙인데도 잘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고임금 노동자의 이기적인 파업이라는 것도 가당치 않다. 지난해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들은 적자를 이유로 성과급을 전혀 지급받지 못했다. 물가 급등 상황에서 전체 연봉의 3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성과급을 전액 삭감한 것은 삼성전자 노동자들에게 커다란 생계비 고통을 가했다.

세계적인 자본가 신문 〈파이낸셜 타임스〉조차 삼성전자 노동자들이 받는 대우가 경쟁사에 비해 좋지 않기 때문에 그런 불만이 전례 없는 파업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와중에 삼성전자 임원들은 지난해 수억 원씩 인센티브를 받았다. 이재용은 지난해 배당금 총액이 6.4퍼센트 늘어난 3244억 원을 받았다.

삼성전자의 올해 영업이익은 수십 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지만, 사용자 측은 올해도 아주 적은 성과급만 지급하려고 한다.

노동자들은 이번 파업을 통해 임금 인상과 더불어 유해 물질 누출과 화재 위험, 인력 부족, 휴가 사용 억제 등 열악한 환경도 바꿔내기를 바란다. 7월 8일 파업 집회에서 노동자들은 “우리는 사용자 측의 소모품이 아니다” 하고 절규했다.

일상다반사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반도체 제조 여성 노동자들의 사진. 노동자들은 관절염, 손목터널증후군, 습진, 심지어 정신 질환까지 시달리고 있다 ⓒ제공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고무적이게도 여성 노동자들이 파업에 많이 참가하고 있다. 삼성전자노조는 이렇게 밝혔다. “기흥사업장 6, 7, 8라인의 여성 노동자들이 이번 파업에 대거 참여하면서 해당 라인 가동률이 기존 80퍼센트에서 18퍼센트로 하락했다.”

노조에 따르면, 일주일 간의 파업으로 일부 생산라인의 공정이 지연되고 품질 사고가 일어났다. 사용자 측은 대체 인력을 투입하고 생산량을 줄여 대응하고 있다. 물론 관리자들을 통해 파업 방해와 회유도 일삼고 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파업 동력이 줄고 있다며 노동자들의 사기를 꺾으려 하지만, 조합원들은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있다.

“[여러 지역의 사업장을 순회하며 열리고 있는 파업 집회에] 거리가 먼 조합원들은 못 오지만, 파업 참가자는 유지되거나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파업 돌입 후 일주일간 노조에 3700명가량이 새로 가입했어요. 지지는 커지고 있는데 아직까지 겁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분위기는 점점 고무되는 것 같아요.”(박준우 조합원)

사용자 측은 파업이 장기화되면 생산 차질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지금의 파업 대오를 유지하고 더 많은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가한다면, 사용자들의 우려를 현실로 만들 수 있다.

세계가 삼성전자 파업을 주목하고 있다

이번 파업은 전 세계 반도체 기업 중에서 처음 벌어지는 파업이기도 하다.

세계 반도체 산업은 지난해 불황을 겪다가 올해 회복세로 돌아섰다. 특히, AI 열풍을 타고 반도체 수요가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반도체 기업들과 거대 테크 기업들은 삼성전자노조의 파업이 반도체 공급에 악영향을 줄까 봐 우려한다.

물론 다른 반도체 노동자들을 고무할까 봐 특히 걱정한다. “삼성전자노조의 무기한 파업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 회복 중인 기술 및 칩 산업의 노동자들이 비슷한 행동에 나서도록 자극할 수 있다.”(〈블룸버그〉)

삼성전자노조의 파업은 고물가·고금리 등 생계비 고통에 맞서 국제적으로 벌어져 온 임금 인상 투쟁의 일부다. 한국 노동자들도 실질임금이 2년 연속 하락해 생활고가 크다.

주류 언론의 비난이나 기회주의적인 침묵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다수는 이 파업이 자신들의 처우 개선에도 도움이 되길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반도체 기업 지원하자면서 노동자 파업은 외면하는 민주당

민주당은 삼성전자 파업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 지원책은 신속히 내놓고 있다.

최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이 반도체 특별법안(김태년 의원 대표발의)을 당론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반도체 기업들에게 막대한 세금 혜택을 제공하는 게 골자다.

당 대표 연임에 도전하는 이재명 전 대표도 최근 금융투자소득세 시행 연기 추진을 시사했다.

이 전 대표는 또한 그간 적극 주장해 온 횡재세(초과 이익을 거둔 기업들에 대한 과세)는 추진하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 등 기업주들의 눈치를 보며 민주당은 일관되게 기회주의적으로 처신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금속노조)은 실질적인 연대에 나서라

민주노총과 좌파 정당들은 진보당을 제외하고는 삼성전자노조의 무기한 파업에 공개적인 지지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민주노총 금속노조는 무기한 파업 전환 전인 7월 8일 파업 집회에 금속노조 부위원장을 참가시켰다.)

‘반도체를 볼모로 한 고임금 노동자들의 투쟁’이라는 비난에 정면으로, 공세적으로 맞서는 것이 두려워서일까.

정의당과 노동당은 삼성전자 파업 기간에 벌어진 금속노조의 부분 파업(노란봉투법 제정 등이 주요 요구) 지지 성명은 발표했다.(대조적으로 진보당은 금속노조 파업, 삼성전자 파업을 모두 지지했다.)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투쟁보다는 노동계급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개혁 입법이 더 중요하다고 봐서일까.

물론 개혁 입법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경제 투쟁일지라도)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입법의 보조적 수단으로 자리매김돼 제한적으로 벌이는 수준으로는 개혁의 진정한 동력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기층 노동자들이 능동적으로 참가하는 파업이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기업에 이기는 것이 당사자들의 의식과 조직뿐 아니라 계급 전체에 끼치는 영향 면에서 더 크고 중요하다.

삼성전자노조의 파업은 정치적·이데올로기적으로 단순히 한 부문의 투쟁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반도체로 먹고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반도체는 기간산업이자 최대 수출 품목이다. 삼성전자 노동자 투쟁에 해외 주요 언론들이 지대한 관심을 표하고, 보수 언론은 게거품을 물고 삼성전자 파업을 맹비난하는 이유다.

노동조합들은 삼성전자 파업에 전폭적인 지지와 연대를 제공해야 한다.

7월 16일 오전 본지 독자들과 노동자연대 활동가들이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앞에서 노동자들의 파업 지지 활동을 하고 있다 ⓒ이재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