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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명동성당 농성 20주년
이주노동자 저항의 잠재력을 보여 주다

2003년 11월 15일 100여 명의 이주노동자와 이들을 지지하는 한국인 활동가들이 서울 명동성당 들머리에 모였다. 고용허가제 시행을 앞두고 정부가 대대적인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을 예고한 것에 맞서기 위해서였다. 380일간 이어진 이주노동자 명동성당 농성의 시작이었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이 투쟁은 한국의 이주민 운동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고용허가제 도입 전까지 이주노동자 유입을 관리‍·‍통제하던 제도는 ‘현대판 노예제’로 악명을 떨친 산업연수제였다. 산업연수제는 이주노동자에게 ‘연수생’ 신분을 부여해 법적으로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저임금, 장시간‍·‍고강도 노동, 고용주의 여권 압류와 폭력에 시달리던 이주노동자들은 차라리 작업장을 이탈해 미등록자가 되는 길을 택했다. 2003년 7월 당시 이주노동자의 78퍼센트가 미등록 상태였다.

이주노동자들은 1994년 경실련 농성, 1995년 명동성당 쇠사슬 농성 등으로 저항했다.

이런 투쟁으로 이주노동자의 현실이 알려지며 산업연수제 폐지 목소리가 높아지자 김대중 정부 때부터 고용허가제 도입이 추진됐다. 그러나 고용허가제는 형식적으로 이주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했지만 사업장 이동 금지, 정주화를 막기 위한 체류 기간 제한 등 산업연수제의 문제점이 그대로 이어졌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7월 고용허가제가 국회를 통과했다. 노무현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자진 신고하면 총 체류 기간이 5년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체류 자격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자진 신고하지 않거나 체류 기간이 5년 이상인 경우 강력한 단속추방을 예고했다.

오랫동안 미등록 체류하며 한국에 적응하고, 노동조건 향상을 위해 사업장을 변경해 본 경험이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계속 머무른다면 고용허가제의 안착이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11월 15일은 자진 신고 기간이 끝나는 날이었다. 단속에 대한 불안과, 열악한 일자리에서 오랫동안 한국 경제에 기여해 온 자신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려는 것에 분노해 서울을 중심으로 전국 여러 곳에서 이주노동자 1000여 명이 농성에 나섰다.

명동성당에는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이하 이주지부)를 주축으로 네팔‍·‍필리핀‍·‍인도네시아 공동체, 민주노총, 이주민 지원 엔지오들의 연대체인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이하 외노협) 등이 공동 농성단을 꾸렸다.

그러나 공동 농성은 이틀 만에 분열했다. 외노협은 고용허가제를 산업연수제에 비해 차악이라고 여겨 지지하는 등 입장 차이가 있었고, 결국 성공회 농성단으로 갈라져 나갔다.

고용허가제는 처음부터 이주노동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사업장 변경 제한 등은 이주노동자를 고용주에게 종속시키고, 이를 어긴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추방이 뒤따를 것도 불 보듯 뻔했다.

고용허가제 지지 여부로 농성은 두 군데로 나눠 이뤄졌지만, 농성장 순회 방문과 공동 집회 등 공동 투쟁은 지속됐다.

고용허가제

농성이 해를 넘기자 1월 17일 노무현 정부는 협상안을 제시했다. 4년 이상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도 자진 출국하면 고용허가제나 산업연수제로 재입국할 때 우선권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재입국 여부가 불확실한 안이었지만, 고용허가제를 지지한 성공회 농성단은 제안을 받아들여 농성을 풀었다. 다른 농성단들도 1월 중순 이후 차차 해산했다.

반면 명동성당 농성단은 제안을 거부하고, 미등록 이주민 전면 합법화와 고용허가제 반대 입장을 유지하며 농성을 지속했다. 명동성당 농성단 대표인 샤말 타파 이주지부 지부장은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는 고용허가제로의 재입국은 지금의 노예생활로 다시 돌아가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2월 15일 정부는 샤말 타파 지부장을 연행했다.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된 샤말 타파 지부장은 단식 투쟁으로 저항했고, 농성장에서도 4명이 동조 단식을 벌였다. 4월 1일 정부는 샤말 타파 지부장을 기습적으로 추방했다.

380일의 전투성 명동성당 농성당 대표 표적 단속에 항의해 단식 투쟁에 나선 이주노동자들 ⓒ임수현

이와 같은 정부의 표적 단속 위험에도 농성단은 쌍용차, 외환은행 등 다른 노동자 투쟁이나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 세계경제포럼 반대 행동 등에 적극 연대했다.

10월 17일 국제공동반전행동에 참가한 명동성당 농성단원 자이드 씨는 “이주노동자는 한국노동자와 똑같은 노동자다. 한국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을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것은 한국인과 이주노동자를 분리시키려는 것”이라고 연설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농성이 장기화되자 일을 하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은 경제적 어려움 등에 직면했다. 결국 2004년 11월 28일 농성을 중단했다. 참가자들은 “한국 노동자 이주노동자 단결 투쟁, 노동 해방 쟁취하자, 노동비자 쟁취하자!” 하고 외치며 눈물을 머금고 농성을 끝냈다.

비록 요구 사항을 쟁취하지는 못했지만 380일간의 명동성당 농성은 큰 성과를 남겼다.

우선 단속추방 등 이주노동자의 고통과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을 한국 사회에 널리 알렸다. 명동성당 농성단이 정부의 제안에 타협하지 않고 싸웠기 때문에 고용허가제 폐지 운동을 지속할 명분과 동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정부는 사용자에게 권한을 더 많이 주는 방향으로 고용허가제를 계속 개악했고, 이주노동자를 계속 단속추방했다. 이주노동자들의 저항도 계속됐다. 결국 외노협은 2012년 고용허가제 폐지로 입장을 바꿨다.

또한 명동성당 농성은 이주노동자가 전투적으로 싸워 투쟁의 초점을 제공하고, 한국인들과 노동운동‍·‍진보진영의 폭넓은 연대를 이끌어 내는 계기가 됐다. 금속과 건설 부문의 일부 노조에서 이주노동자를 조직하는 흐름도 나타났다.

무엇보다 농성에 참가한 이주노동자들이 정치 의식을 성장시키고 단단한 활동가로 훈련받는 기회가 됐다. 이들을 바탕으로 이주지부는 2005년 이주노동자 독자 노조인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설립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오늘날에 주는 교훈

20년이 흐른 지금도 고용허가제와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추방으로 인한 고통은 여전하다.

정부는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의 30퍼센트가 입국 후 1년 이내에 사업장을 변경한다며 불평한다. 고용허가제가 사업장 변경을 극도로 제약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주노동자들이 그 제약을 뚫으려고 갖은 애를 쓰며 나름의 저항을 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인구 감소와 몇몇 업종의 노동력 부족에 대응해 이주노동자 유입을 늘리려 한다. 지난해 말 정부는 숙련된 이주노동자에게 10년 이상 장기 체류를 허용하는 고용허가제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최근에는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의 허용 업종과 도입 규모를 크게 늘리겠다고도 밝혔다.

동시에 윤석열 정부는 미등록자 단속추방과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변경 제한은 더욱 강화했다.

그런데 노동운동에서는 이주노동자가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명분을 들지만, 사실상 내국인 일자리가 줄어든다며 이주노동자 유입을 반대하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주노동자가 늘면 열악한 조건을 계속 감내하며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주노동자도 늘어날 것이다. 20년 전 명동성당 농성에 나섰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그랬듯이 말이다.

따라서 한국인과 이주노동자의 연대와 단결이 매우 중요하다. 노동운동은 이주노동자 유입을 조건 없이 환영해야 한다. 이들이 업종이나 사업장 변경 등에 제약 없이 원하는 곳에서 일하고 원하는 만큼 한국에 머물 권리를 지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