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내쫓기 급급한 정부:
난민법 개악 시도 중단하라
〈노동자 연대〉 구독
정부가 이달 중 난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몇 달간의 정부 발표를 종합해 보면, ‘체류 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난민 제도를 악용하는 가짜 난민 걸러 내기’가 핵심 방향일 것으로 예상된다.
또, 난민 신청 문턱을 높이고 일부 난민들에게는 기본적인 난민 신청 절차도 보장하지 않음으로써 난민들의 처지를 더 악화시킬 내용들일 듯하다. 현행법 하에서도 난민들은 배척적 난민 심사로 고통받는데 말이다.
한국의 난민법은 난민협약상의 난민 규정을 따르고 있는데, 난민협약의 난민 규정 자체가 매우 협소하다.(난민협약과 난민법에 따르면 전쟁 난민은 ‘난민’이 아니다.) 또, 현행 난민법에는 정식 여권을 제시하라는 등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엄격한 기준이 있다. 이 때문에 법적 난민으로 인정받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졸속적 엉터리 심사도 문제로 지적돼 왔다.
난민 심사 기회를 얻는 것조차 제대로 보장이 안 된다. 지난해 12월 28일부터 인천공항에 갇혀 지내는 루렌도 씨 가족은 앙골라 정부의 박해를 피해 도망왔지만 공항에서 이뤄지는 난민인정회부 절차에서 ‘불회부’ 결정을 받아 난민 심사 신청조차 못했다. 겨우 1~2시간짜리 인터뷰만으로 ‘명백히 난민이 아니’라고 판단돼 강제송환을 당할 뻔했다. 이는 루렌도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의 공식 발표에 따르더라도 2013년 이래 출입국항 난민신청자 중 정식 난민 심사 기회를 보장받은 사람은 절반이 못 된다. 정부는 이런 제도를 더 확대하려 한다.
정부는 단기적으로는 난민위원회의 위원을 증원하고 상설화를 추진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난민심판원을 설립하려고 한다. 난민 심사 소요 기간을 대폭 단축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극도로 부족한 인력이 졸속으로 난민 불인정 결정을 하고 있음이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는데, 이에 대한 나름의 방안을 내놓음으로써, 사실상 이 문제점을 인정한 셈이다.
문제는 정부 계획의 목적이 난민 보호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밀려 있는 심사를 빨리 끝내 난민신청자들을 내쫓으려는 의도가 강하다. 난민심판원에 법원 1심 기능까지 부여하려고 하는데, 이는 난민신청자들이 심사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기회를 줄이는 한 차례 줄이는 것이다.
인종차별
정부는 “난민 제도 악용 방지”를 위해 난민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짜 난민들이 난민신청자 지위를 이용해 장기 체류 혜택을 누린다’는 것이다. 난민신청자들이 국내에서 대단한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식이다.
그러나 난민신청자가 한국에서 몇 년이고 제약 없이 생활할 수 있다는 건 참말이 아니다. 엉뚱한 속죄양 삼기의 전형일 뿐이다.
난민신청자가 받는 생계지원금은 취업이 금지된 초기 6개월 동안만 지급될 뿐이고, 1인당 21만~43만 원에 지나지 않는다. 이조차 법이 그렇다는 것일 뿐, 실제로는 지원금 신청 대상자의 극소수(2017년 기준 3.2퍼센트)만이 평균 3개월 동안 지원받았을 뿐이다. 난민신청자들은 안정된 주거지를 갖기는커녕 학교나 병원 같은 기본적인 사회서비스 이용에도 제약이 많다.
체류 자체도 불안정하다. 난민신청자들은 G-1 비자(이름부터가 ‘임시 체류 비자’)를 받는다. 이 비자는 2~3개월에 한 번씩 체류 연장을 받아야만 한다.
난민들을 ‘일자리 도둑’으로 모는 것도 터무니없다. 한 번에 허가되는 체류 기간이 짧아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렵다. 난민신청자의 일자리는 사실상 3D 일자리로 제한된다. 법원에서 난민 인정이 거부되면 그때부터는 취업 자체가 금지된다.
일자리 부족으로 치자면, 한국GM과 조선소 구조조정, 대우조선 민영화 등에서 볼 수 있듯 정부 스스로 상대적으로 괜찮은 일자리를 파괴해 온 것이 진짜 문제다! 실업 문제는 경제 불황, 경제 위기의 책임을 노동자와 차별받는 사람들에게 떠넘기려는 정부와 기업주들의 정책, 계속해서 위기에 빠지는 자본주의의 생태적 속성 때문이지 난민들 때문이 아니다.
난민(신청자)들에 대한 대우가 이토록 형편없는데도 정부가 더 악화시키려는 이유는 난민 스스로 단념해 한국을 떠나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또한 본보기를 보임으로써 한국으로 오고자 하는 난민들을 차단하려는 것이다. 이는 본국에서 이미 고통받은 사람들을 사실상 처벌하는 잔인한 짓이다.
한국 정부에게는 난민을 받을 의지가 없다. 그래서 난민들의 조건을 개선하기는커녕 난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퍼뜨리며 난민들을 더 옥죄려 하는 것이다.
살기 위해 왔건만 다시 벼랑으로
세계 곳곳의 난민들은 모두 다양한 위기의 희생자들이다. ‘경제 난민’은 ‘가짜 난민’이라고들 주장하지만, 현실에서는 100퍼센트 순수한 ‘경제 난민’도 ‘정치적 난민’도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가난과 곤궁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경제 파탄에서 벗어나고자 미국으로 향한 온두라스인들이 비난받아야 할 이유가 없듯이 말이다. ‘경제 난민 불가론’은 중국 당국이 탈북민 탄압을 정당화하는 핵심 논리였다는 점도 봐야 한다.
2013년 이후 시리아 내전과 아랍 혁명 패배로 말미암은 반혁명 등으로 세계적으로 난민신청자가 급증했다. 최근 집단으로 난민 신청을 했던 예멘 난민들도 그 중 일부다.
정부와 우익들의 과장과 달리 그 가운데 극히 일부만이 머나먼 한국까지도 오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한편으로는 국제적 책임 운운하면서도 실상 난민을 차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실제로 이행하는 국제적 책임은 난민 수용을 거부하는 서방 강대국들에게 보조를 맞추는 것인 듯하다. 인종차별을 부추기는 것까지도 그들과 같다.
최근 정부는 탄력근로제 확대와 대우조선 민영화 등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을 전면화하고 있다. 정부의 난민 공격은 이런 노동자 희생 강요 정책과 동전의 양면이다. 노동자들의 불만의 화살을 다른 데로 돌려 책임을 피하려는 것이다. 노동자의 조건 악화에 맞서고자 하는 이들이 난민들도 방어해야 하는 이유다.
정부는 난민들을 더 한층 벼랑 끝으로 내몰 난민법 개악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