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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트럼프 재선으로 무엇이 바뀔까?

이 글은 필자가 노동자연대 공개 토론회 ‘트럼프 재선으로 무엇이 바뀔까?’에서 했던 발제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트럼프가 돌아왔다. 2020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M)’ 대중 항쟁으로 위기에 처하고 낙선한 지 4년 만이다.

트럼프 재선은 근래 주요국들에서 잇달아 드러난 중도 정치의 쇠락이라는 패턴에 부합한다. 특히 올해 영국·프랑스·독일 등 주요국의 선거에서 모두 집권 중도 세력이 패배했다. 독일의 ‘신호등’ 연정은 트럼프 당선 바로 다음 날 붕괴했다.

그리고 중도 몰락에서 반사이익을 얻어 극우가 부상하고 있다. 트럼프 재선은 미국과 세계의 파시스트 등 극우를 크게 고무할 것이고, 그에 맞선 저항이 가장 중요한 과제다.

이 글에서 필자는 트럼프 재선으로 무엇이 바뀔지, 그리고 돌아온 트럼프에 맞서 어떻게 저항해야 할지를 다룰 것이다.

ⓒ출처 Donald J. Trump (페이스북)

그 전에, 선거 결과에 대해 잠깐 짚고 넘어가야겠다.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는 해리스보다 선거인단뿐 아니라 표도 더 많이 얻었다. 그래서 민주당과 주류 언론은 크게 당혹스러워 온갖 혼란스런 평가를 쏟아냈다.

가장 어이없는 사례는 해리스를 찍지 않은 아랍계나 무슬림 미국인들을 탓하는 것이다. 적반하장이다.

교육 수준이 낮은 백인 하층민 ‘샤이 트럼프’ 탓으로 치부하거나, 미국인들 다수가 성차별적이라서 해리스가 ‘유리천장’에 부딪혔다는 주장도 있다.

주류 언론 등 기성 체제를 불신하는 ‘샤이 트럼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백인뿐 아니라 대부분의 인종에서 해리스 득표가 트럼프보다 적은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미국인들 다수가 성차별적이어서 트럼프가 이겼다는 설명도 틀렸다. 여러 주에서 대선과 함께 치러진 임신중지권 보호 주민투표 결과를 보면, 트럼프가 다득표한 주들에서도 임신중지권 보호가 과반이었다. 해리스가 승리한 주들에서도 임신중지권 보호 표가 해리스 득표보다 최대 19퍼센트포인트 많았다.

민주당과 주류 언론들의 설명은 진실을 가리는 효과를 낸다. 진실은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를 더 찍은 것이 아니라 해리스를 안 찍었다는 것이다.

개표가 거의 완료된 11월 18일 현재, 해리스의 득표는 2020년 대선 때 바이든의 득표보다 약 800만 표 이상 적다. 반면 트럼프는 2020년 대선 때의 득표를 대체로 유지했다.

이런 일의 책임은 해리스와 민주당에 있다.

바이든-해리스 정부는 미국 사회를 위기에서 구출하겠다고 약속하며 취임했지만, 그 약속을 전혀 지키지 않았다.

바이든 정부하에서 미국의 제국주의는 우크라이나·아시아·중동에서 전쟁, 학살, 지정학적 긴장을 키웠고, 이는 다시 국내 정치의 위기를 낳았다.

또, 대중의 생활고가 극심해지고 그에 대한 분노가 깊어졌다. 그 분노의 일부는 노동자 투쟁으로 발전해, 대선 직전 중요한 파업들이 잇달아 승리를 거두는 일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 대응해 해리스와 민주당은 ‘중원’ 표를 얻겠다며 이민자에 대한 인종차별적 공격을 폈다. 하지만 이는 트럼프를 도왔을 따름이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요인은 바이든-해리스 정부의 이스라엘 인종 학살 지원이었다.

바이든은 노망나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인종 학살을 지원한 탓에 재선 가도에서 끌어내려졌다. 현직 대통령이 대중 항의에 밀려 재선을 포기한 것은 베트남 전쟁 당시 린든 존슨 이후 처음이다.

부통령으로서 해리스도 흔들림 없이 이스라엘의 전쟁 노력을 지원했고, 친팔레스타인 목소리를 냉혹하게 외면했다. 미국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가들의 말처럼 “해리스는 선거 성적을 대가로 치러 가며 인종 학살을 지원했다.”

수많은 미국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이 겪는 부정의에서 미국 사회의 부정의를 보았고, 인종 학살 공범 바이든-해리스에게서 그 학살을 지지하는 기성 권력층을 봤다. 그런 미국인들에게 해리스는 트럼프의 대안으로 전혀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트럼프 공포를 자극하는 민주당의 차악론은 별로 먹히지 않았다.

이 대목에서 민주당과 강하게 유착한 온건 좌파의 책임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버니 샌더스 등 민주사회주의당과 전미여성기구·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 등 주요 여성·유색인종 단체들은 해리스를 트럼프에 맞설 진보적 방벽으로 포장하려 무던히도 애썼고, 해리스의 유색인종 여성 정체성을 극도로 강조했다. 심지어 해리스가 이주민들을 공격하고, 네오콘의 거두 딕 체니의 딸 리즈 체니와 동행 유세할 때조차 그렇게 했다.

그 덕에 트럼프가 기성 권력층의 대항마를 자처할 수 있었다. 이 점에서, 투표 직전까지도 “가자지구는 제쳐두고, 트럼프가 싫으면 해리스에 투표하라”던 샌더스가 지금 와서 바이든-해리스의 생활고 방치와 인종 학살 지원이 패인이었다고 꾸짖는 것은 매우 부정직한 일이다.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며 수많은 미국 서민층의 분노를 이용했다. 대중이 겪는 고통의 책임을 진정한 범인인 사회 시스템과 지배계급이 아니라 “리버럴 엘리트”에게로, 그리고 천대받는 이주민에게로 돌렸다. 트럼프는 “불법 체류자”를 집요하게 공격하며 미국의 극우를 결집시켰고, 극우 운동은 이번에 이질적 집단들을 트럼프 표로 모으는 중심축 구실을 했다.

연속성과 불연속성

이렇게 재선한 트럼프와 그가 저지를 패악에 맞서, 미국과 전 세계 좌파들은 새롭게 전열을 정비하고 투쟁해야 한다. 트럼프가 2016년 11월 당선 첫날부터 임기가 끝날 때까지 대중 저항에 직면했듯 이번에도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물론 지금 상황이 지난 트럼프 재임기와 똑같지는 않다.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

지난 트럼프 재임기에도 미국 경제는 장기 불황 상태였다. 당시 트럼프는 역대급 기업 감세와 중앙은행의 값싼 신용으로 경제 지표를 그럭저럭 유지하다가 팬데믹이 닥치며 심대한 위기에 빠졌다.

이후 바이든 정부하에서 미국 경제는 급격한 인플레에 시달렸고, 현재 경기 재침체가 우려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세계 경제의 다른 두 축인 서유럽과 중국의 경제가 침체·둔화하는 상황과 맞물리고 있다.

이에 대응해 미국 등 각국 정부는 긴축 정책을 유지·확대하는 한편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무역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트럼프의 보호무역 정책이 이단 취급을 받던 8년 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보호무역 정책을 동원한 경제적 쟁투는 지정학적 쟁투와 맞물려 있다. 현재 미국의 제국주의는 중국을 경제적·지정학적으로 압박하고,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와 대리전을 벌이고, 중동에서 이스라엘의 전쟁을 지원하는 등 세 전선에 동시에 대응해야 하는 처지다. 이 세 전선은 각기 첨예해지는 동시에 갈수록 서로 맞물리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세 전선 모두에서 공세를 폈지만 미국 제국주의의 상대적 약화로 거듭 어려움에 직면했다. 트럼프는 지난번보다 위기가 훨씬 심각해지고 미국의 어려움이 커지는 상황에서 재선한 것이다.

트럼프의 목표는 미국 자본주의를 수호하고 미국의 제국주의 패권국 지위를 지키는 것이다. 이런 목표 자체는 바이든과 같지만, 트럼프는 이를 그 나름의 방식으로 이루고자 한다.

하지만 트럼프의 방식은 위기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고, 또 그 방식의 차이는 미국 안팎에서 정치적 갈등을 촉발할 공산이 크다.

예컨대 트럼프는 대규모 기업 감세와 금리 인하로 미국 기업들의 수익성을 높이려 한다. 거기에 더해, 기후변화 부인론자인 트럼프는 환경을 우려하는 시늉도 하지 않고 화석연료 산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공약했다.

수익성 위기에 처한 미국 자본가들은 트럼프의 감세를 기꺼이 환영할 것이다. 또, 화석연료 산업 지원은 현재 세계적 에너지 생산국이 된 미국 자본주의의 이익에도 부합한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중도 정치인들이 그런 친기업 정책을 펴 온 탓에 지금 대중의 생활고가 극심해졌다. 이는 앞으로 생활고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트럼프를 향하게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트럼프의 대중국 관세 장벽 구축, 보편 관세 부과 시도 같은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은 미국 안팎에서 갈등의 소지가 될 수 있다. 물론 바이든 정부도 지난 4년간 대중국 보호무역 규제를 스멀스멀 강화해 왔지만, 트럼프는 중국만이 아니라 유럽·캐나다·멕시코의 상품들에도 고율의 수입 관세를 부과하려 한다.

관세 장벽은 미국 내에서 내수 중심 중소 자본가들에게는 경쟁력을 부여할지 몰라도 세계적 공급망에 의존하는 대자본과 금융권에는 적잖은 부담이 된다. 또, 보편 관세는 미국과 한국 등 친서방 동맹국들 사이에 불협화음을 자아낼 수 있다. 특히, 동맹 네트워크를 결집시켜 미국의 제국주의적 이익을 지킨다는 트럼프의 전략과 모순을 빚을 수 있다.

게다가 관세 장벽으로 소비재 물가가 상승해 대중의 생활고가 더 가속될 수도 있다. 또 트럼프의 보호무역 정책과 그에 대한 각국의 반응이 국제 무역을 둔화시키면 이는 미국 경제 성장에도 반작용할 것이다.

관세 문제는 경제적 쟁투와 지정학적 쟁투가 맞물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트럼프 관세 장벽의 핵심 목적은 중국 견제다. 지난 임기 때도 트럼프는 미중 무역 전쟁을 일으켜 그전까지 추세로 존재하던 중국 적대를 본격화한 바 있다. 게다가 바이든은 트럼프의 중국 적대 정책을 지속하고 더 철저하게 만들었다.

트럼프는 중국을 견제하는 데서 동맹국에 더 많은 비용을 넘기려 한다 ⓒ출처 미 해군

재선한 트럼프도 중국 제지에 역량을 집중하려 할 것이다.

중국 제지라는 목표 자체는 미국 제국주의자들이 모두 공유하는 바다. 하지만 태도와 방법 면에서 트럼프는 바이든 등 이전 집권자들과 차이가 있다. 이른바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인데, 이 때문에 트럼프가 해외의 동맹국들을 대하는 태도는 보호비를 갈취하는 갱단원에 비유되기도 한다.

물론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한다 해서 동맹 네트워크의 중요성 자체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바이든 정부에서 본격화된 쿼드·오커스 등의 동맹 네트워크를 구상한 것도 트럼프 정부였다.

하지만 트럼프는 미국의 경쟁자를 제지하는 데에 동맹국들이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을 부담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에 따라 동맹 관계의 세부 내용을 미국에 더 득이 되게 조정하고 싶어 한다. 이는 단순히 트럼프의 특수성 때문만이 아니라 미국 제국주의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화돼 동맹들에게 이득을 제공할 여유가 줄어든 객관적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한국 우파 일각에서 독자적 핵무장론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미국 자신은 현재로서는 이를 수락할 생각이 전혀 없지만 말이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트럼프의 차기 외교·안보 책임자로 거론되는 리처드 그리넬은 주한미군 철군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청구서에 따라 돈을 내라”고 한다. 즉, 한국이 안보 비용을 더 분담하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철군 자체로 말하자면, 트럼프 자신을 포함한 미국 제국주의자들은 한국을 포함한 세계 곳곳에 미군 기지를 두는 데서 오는 막대한 이득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다. 다만, 엘브리지 콜비 같은 트럼프 측근들의 말을 빌리자면, “주한미군의 주된 임무를 중국 억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좌파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북미정상회담을 할 가능성이 높고, 이번에는 “상호 만족할 수 있는 합의를 도출”할 것이라고 기대도 한다. 그 근거로 “트럼프와 김정은 간의 친밀한 관계”를 드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지난 트럼프 정부 때의 경험을 돌아봐야 한다. 트럼프는 2017년 취임 직후 북한에 “화염과 분노”를 퍼붓겠다고 위협하고, 열병식이 열리는 평양을 핵무기로 공격하는 것을 고려할 만큼 호전적이었다.

트럼프는 이후 협상에 나서기는 했지만,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도 트럼프의 요구 사항은 북한에 상당히 불리한 양보를 강제하는 것이었고, 그나마도 트럼프 자신이 합의문 한 장 없이 일방적으로 회담을 종결시켜 버렸다. 김정은은 커다란 굴욕을 당하고 빈손으로 평양에 돌아가야 했다.

그래도 트럼프니까 회담이라도 한 것 아니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1994년에 북한 폭격을 검토했던 민주당 클린턴 정부도 2000년에는 북미정상회담 성사 직전까지 갔다.

트럼프의 대북 정책은 첨예해지는 제국주의적 갈등에 대응하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자장 속에 있다. 현재 그 갈등은 트럼프 1기 때보다 더 복잡한 고차 방정식이 돼 있다. 뜻밖의 에피소드가 벌어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제국주의적 갈등 심화가 자아내는 불안정에서 한반도가 혼자 동떨어져서 평화로울 수 있다는 전망은 희망에 그치기가 쉽다.

더구나 제국주의간 갈등에서 트럼프는 바이든과 같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 어려움을 잘 보여 준다.

대선 기간에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서 즉각 발을 빼겠다고 공약했다. 그리고 선거가 끝난 지금 트럼프 측에서는 ‘현재 전선을 기준으로 휴전’한다는 구상이 흘러나오고 있다.

트럼프의 관심사는 우크라이나의 평화가 전혀 아니고,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이 발을 빼서 중국 압박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측의 구상은 막상 현실에서 여러 난항에 부딪힐 수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를 장악한 채 전쟁을 끝내는 것은 러시아의 승리를 뜻한다. 하지만 미국이 러시아의 승리를 용인하면, 러시아를 고무할 뿐 아니라 중국이 대만에서 군사적 모험을 꿈꿀 여지도 커지게 된다. 그래서 바이든은 전쟁 피로를 드러내면서도 우크라이나 지원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어찌어찌해서 휴전 협상이 시작된다 해도 그것이 곧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가 걸릴지 모르는 협상 기간에 양측은 조금이라도 땅을 더 차지하려고 유혈낭자한 격전을 벌일 것이다. 정확히 같은 일이 한국전쟁 때 있었다.

그러고도 어찌어찌해서 휴전을 하게 되더라도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첨예한 긴장 상태에 있을 것이다. 러시아 제지가 미국 제국주의에 최우선은 아닐지라도 중요한 과제이고,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러시아와 중국이 거리를 좁힌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이곳에서 핵무장 국가들이 충돌한다는 무시무시한 전망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중동 전쟁은 어떨까? 강경 이스라엘 지지자인 트럼프는 이스라엘 지원을 굳게 유지할 공산이 크다. 서방의 중동 경비견 이스라엘을 보호하는 것이 미국 제국주의의 이해관계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 인도주의 운운하는 위선을 부렸던 바이든과 달리 ─ 이스라엘의 인종 학살을 말리는 시늉조차 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지난번 임기 중에 트럼프는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는 노골적인 도발을 했고,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관계를 ‘정상화’시켜 팔레스타인인들을 고립시키는 이브라힘 협정을 추진한 바 있다.

이란에 대해서도 트럼프는 매우 적대적이다. 그는 2018년에 이란 핵 합의를 파기했고, 이후 이란 최고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 살해를 직접 지시했다. 미국의 솔레이마니 살해는 2020년 초 중동에서 전쟁 위험을 한껏 고조시켰다.

이런 점들을 모두 아는 네타냐후는 트럼프 재선을 기회로 여기고 인종 학살과 대이란 전쟁 몰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모험을 계속 지원할수록 트럼프는 미국 제국주의가 세 전선에서 동시에 허덕이는 상황을 타개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바이든도 그런 와중에 정치 생명이 끝장났고 해리스도 선거에서 패배했다.

요컨대 트럼프도 미국을 짓누르는 중첩된 위기를 해결할 뚜렷한 방책이 없고, 오히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정치 위기를 촉발할 가능성이 더 크다.

위기에 대응해 트럼프는 인종차별적 공격을 가속하고 극우 운동을 부추길 것이다.

그중 이민 문제가 두드러진다. 트럼프는 선거 내내 가장 앞세운 공약, 즉 ‘취임 직후 대규모 이주민 단속·추방’을 단행하려 준비 중이다. 그런 반이민 공격은 미국 내 이주민과 소수 인종의 처지를 크게 위협할 것이고, 극우가 거리에서 준동케 할 것이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 인종차별과 이민자 공격을 핵심 축으로 삼아 전진해 온 국제 극우 운동도 고무할 것이다.

전선

이민 문제는 미국에서 당면한 가장 중요한 전선의 하나가 될 것이다. 트럼프의 공격에 맞서 이주민을 방어하는 운동이 시급히 건설돼야 한다. 그런 운동은 미등록 이주민 단속·추방뿐 아니라 정주하는 이민자들에 대한 인종차별에도 맞서야 한다.

또, 임신중지권에 대한 우익의 공격에 맞서는 운동도 성장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대중적 임신중지권 지지 정서는 그런 운동의 토양이 충분함을 보여 줬다.

지난번 트럼프가 취임하던 날 미국에서는 수백만 명 규모의 여성 시위가 열려 반트럼프 저항의 포문을 열었다. 이번에도 그런 시위가 벌어진다면 운동을 확대하는 좋은 출발이 될 수 있다.

첫 임기 내내 트럼프는 대중 저항에 직면했다. 이번에도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2017년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 금지’ 행정명령에 항의하는 시위 ⓒ출처 Ted Eytan (플리커)

그런 운동들은 어떻게 건설돼야 하는가? 이번 선거가 준 가장 중요한 교훈은 민주당이 트럼프와 극우에 맞선 방벽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민주당은 공화당의 역겨운 정치에 굴복하며, 투쟁을 단속해 자본가 계급을 위한 완충 장치 구실을 하고, 미국 정치를 오히려 더 우경화시키는 데에 일조한다.

따라서 운동은 그런 민주당에 의존해 개혁을 이룬다는 전략과 단절하고 거리·캠퍼스·일터에서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건설하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미국의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그런 운동들에 교훈과 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 그간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거리와 캠퍼스를 중심으로 강력한 투쟁을 건설해 미국의 정치 지형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이 운동에서 민주당 차악론에 휘둘리지 않고 단호하게 연대 운동을 지속한 부분은 트럼프 당선에도 불구하고 사기를 유지하고 있다. 트럼프 재선으로 이스라엘의 인종 학살과 중동 전쟁 몰이가 강화되는 지금, 그런 운동이 지속되고 다시 확대되는 것이 사활적으로 중요하다.

그와 동시에 미국의 급진적 좌파들은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노동계급 고유의 힘과 만날 수 있도록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

그러려면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제공하는 정치적 자신감을 발판 삼아 노동자들이 자신의 요구를 걸고 투쟁에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

마침 미국의 노동운동은 오랜 침체에서 막 벗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파업 수준이 아직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건수는 꾸준히 늘었다. 대선 직전에 일어난 미국 동부 항만 노동자 파업보잉 노동자 파업 같은 중요한 파업들은 승리를 거뒀다. 이는 미국 노동계급의 잠재력을 보여 준다.

파업은 강력한 잠재력이 있다. 생활고에 맞선 노동자들의 강력한 방어 수단일 뿐 아니라, 노동자들은 그 대오 안에서 인종을 뛰어넘는 단결을 경험할 수 있다. 이는 트럼프와 극우가 토해내는 각종 반동적 이데올로기에도 잘 맞설 수 있게 해 준다.

생활고에 맞선 보잉 노동자 파업은 미국 노동계급의 잠재력을 보여 준다 ⓒ출처 IAM District 142

일터에서 벌어지는 노동자 투쟁, 팔레스타인인 인종 학살에 항의하는 투쟁, 인종차별·성차별에 맞서는 운동들이 공통의 적에 맞서 함께 싸우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좌파들은 거리와 캠퍼스, 일터의 운동들이 서로 맞물리고 연결되며 힘을 배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 일은 결코 저절로 벌어지지 않는다. 혁명적 좌파의 의식적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좌파는 운동을 전진케 할 전략을 운동 안에서 제시하고, 운동을 교란시키는 잘못된 정치에 맞서 운동에 명료함을 부여해야 한다.

그런 혁명적 좌파는 트럼프라는 이 병든 사회의 증상뿐 아니라, 중첩된 위기를 낳고 심화시키는 이 체제 전체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혁명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전 세계 노동자 대중의 적인 트럼프가 돌아온 지금, 그런 일을 할 혁명적 조직을 건설하는 것은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절실하게 중요한 과제다.

다음은 노동자연대 공개 토론회 ‘트럼프 재선으로 무엇이 바뀔까?’에서 나온 청중 발언들의 일부를 〈노동자 연대〉 편집팀이 선정해서 정리한 것이다.


[청중 발언 1]
‘정치적 올바름’ 탓하기는 민주당 책임 가리기

미국 대선에 관해 여러 필자가 페이스북에 올린 정견을 보면, 한편에는 민주당이 너무 차별 쟁점에 집중해서, 즉 ‘정치적 올바름’ 탓에 트럼프가 당선했다는 주장이 있다. 이선옥 작가, 박가분 씨 등이 그렇다. 다른 한편에는 사회진보연대 활동가였던 한지원 씨가 ‘미국의 이대남들이 문제다’는 식의 주장을 한다. 미국 사람들이 너무 성차별적이어서 문제라는 것이다.

두 주장은 상반돼 보이지만 일맥상통하는 가정을 깔고 있다. 차별이 이번 대선의 핵심 쟁점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의 대선 평가에는 팔레스타인의 “팔”자도 안 나오고, 계급 문제의 “계”자도 안 나온다. 너무도 협소한 분석을 하면서 현실을 거기에 끼워 맞추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석은 민주당의 책임, 이번 선거 결과가 민주당의 배신이 낳은 결과라는 핵심을 회피할 수 있게 해 준다.

민주당이 너무 진보적이어서 패배했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미국인들이 너무 후진적이어서 패배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정치적 올바름을 탓하는 주장이든, 미국인들의 후진성을 탓하는 주장이든, 민주당을 방어하고 책임을 엉뚱한 곳으로 전가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많은 여성은 물론 남성들도 임신 중지권을 지지했다.

또, 계급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상당했다. 그 분노한 사람들의 일부가 트럼프의 거짓된 번영 약속을 ‘한 번 믿어보자’ 하면서 트럼프에게 투표했던 것이다.

아까 얘기한 주장들은 사실 2016년에 트럼프가 당선됐을 때에도 유행했는데 이번 대선을 계기로 더 유행할 듯하다.

이미 서구에서는 좌파 내에서도 ‘정치적 올바름’을 극우 부상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오히려 진보·좌파가 인종차별을 수용해서 극우의 표를 뺏어 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트럼프와 같은 우익의 기만 살려주는 꼴이 될 것이다. 그리고 노동계급의 단결을 파괴하고 공격하는 일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런 주장에 반대해야 한다.

이에 관해 버니 샌더스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고 싶다. 2016년에 트럼프가 당선됐을 때 샌더스는 ‘정치적 올바름’이 그것의 한 요인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4년 뒤 선거에서 샌더스는 해리스가 여러 차별 쟁점에서 후퇴할 때 그것을 묵인하고 해리스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다. 이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온건 좌파의 공격이, 심판받는 중도와 다시 손을 잡아서 극우에 맞서려고 하는 부질없고 역효과만 내는 낡아빠진 시도라는 것을 보여 준다.


[청중 발언 2]
트럼프 재선이 낳을 인종차별 강화의 역학과 그것의 세계적 파장

프랑스의 경험을 보면 위로부터의(국가 수준의) 인종차별과, 우익 포퓰리스트 정당이 부추기는 기층 대중 수준에서의 인종차별이 맞물려서 상황이 심각해졌다.

지금 미국도 그러게 생겼다.

트럼프가 2016년, 2020년, 2024년 대선에서 득표수를 유지했다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

한국에서는 잘 보도되지 않았지만, 보수 기독교의 표, 특히 친이스라엘 경향 보수 기독교의 표가 거기에서 매우 큰 역할을 했다.

이 보수 기독교 쪽은 트럼프 집권 말기쯤에 분열했었다. 2020년 1월에 극우가 국회의사당 쿠데타를 기도했을 때, 보수 기독교를 대표하던 부통령 펜스가 트럼프 편을 들지 않은 게 그 쿠데타의 결정적인 패인으로 작용했다. 보수 기독교 쪽의 분열을 드러낸 현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트럼프의 절대 득표수가 유지된 것을 보면, 아무리 분열이 있다고 하더라도 보수 기독교 쪽의 표가 또다시 트럼프에게로 많이 간 듯하다.

이를 종합해서 보면, 바이든 해리스도 인종차별주의자들이었지만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국가 수준에서의 인종 차별이 훨씬 노골적으로 전개될 것이고, 기층에서도 인종차별적인 우익 세력들이 힘을 얻어서 세계적으로도, 미국적으로도 날뛸 것이다. 특히 기독교 보수 세력이 날뛸 것이다.

한국의 매스컴에서는 별로 안 다뤄졌지만, 앞으로 문화 전쟁을 중요하게 봐야 한다. 낙태, 동성애, 가정 가치관, 결혼 문제, [“종교 자유”(특히 무슬림 차별) — 〈노동자 연대〉 편집팀] 등을 둘러싼 문화 전쟁이 강화될 것이다. 이는 한국 상황과도 밀접하게 연결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적·진화적 사고는 커다란 위험을 낳을 수 있다. ‘현재 윤석열 지지율이 17%로까지 낮아졌으니 결정적인 패착 없이 이 상태가 이어지면, 다가오는 지자체 선거에서도 국힘이 패퇴할 것이고 다음 대선에서도 국힘 후보(한동훈이 될 가능성이 크다)의 동력이 약화될 것이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종차별 문제도 있지만 성, 동성애, 낙태 문제를 둘러싼 ‘문화 전쟁’에서도 우리는 싸움을 해야 한다.

이런 문제들을 현재 매스컴이 별로 다루지 않더라도, 개혁주의자들이 ‘워크(woke)에서 깨어나자’면서 잘못되고 엉뚱한 길로 나아가더라도,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 각종 차별 문제와 싸워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한국에서도 상황을 낙관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청중 발언 3]
민주당 향한 분노로 득 본 트럼프 —
그러나 트럼프의 정책도 저항을 촉발할 것이다

《역사의 종말》을 쓴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이번 선거를 이렇게 평가했다. ‘미국 민주당은 노동계급보다는 난민, 이주민, 성소수자, 여성 보호에 더 주력하는 바람에 노동계급과의 접촉점이 끊어져서 패배한 것이다.’

좀 전에 언급된 ‘워크’ 비판의 연장선에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민주당을 찍지 않은 것은 민주당이 정말로 소수자 보호에 열심이어서가 아니라, 민주당이 말 이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미국 선거에서는 팔레스타인 쟁점과 함께 경제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로 제기됐다. 여러 여론 조사에서도 경제 문제를 이번 선거에서 지지 후보를 정하는 기준으로 삼겠다는 답변이 많았다.

그러나 지난 4년 동안 대다수 미국 노동자들의 살림살이는 매우 나빠졌다.

바로 그 점을 파고들어서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고 외쳤다. 해리스의 답변은 ‘미국은 이미 위대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사람들이 해리스를 찍을 동기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트럼프가 내세운 관세 정책 같은 것은 노동계급의 생활을 더 어렵게 할 것이다. 노동자들은 중국산 신발이나 옷을 더 비싸게 사야 될 것 아니겠는가. 신던 신발을 더 오래 신고 입던 옷을 더 오래 입어야 할 것이고, 노동자들의 삶은 트럼프에 의해서 더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트럼프는 경제든, 이주민이든, 임신중지든 모든 분야에서 4년 전보다 훨씬 공격적인 프로그램을 들고 왔다.

트럼프의 리더십 하에 공화당도 변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래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차이는 매우 작았다. 그러나 트럼프가 이끄는 공화당은 유럽의 극우 정당을 연상시킬 정도로 급진화되고 있다.

트럼프의 전 비서실장은 ‘트럼프는 파시스트다. 트럼프는 히틀러를 존경했고 히틀러가 꽤 좋은 일을 했다고까지 말했다’고 했다.

이런 자들이 지금 다시 돌아온 것이다. 민주당은 여기에 결코 저항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바이든이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순조로운 정권 이양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순조로운 정권 이양’이 되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

실제로 선거 다음 날 미국 시애틀에서도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가 있었고 워싱턴에서는 여성들이 반 트럼프 시위를 벌였다. 미국 대통령 취임식 직전에도 워싱턴에서 다시 한 번 대규모 시위가 준비되고 있는 상황이다.

극우적·인종차별적인 공격에 호락호락 당하지 않을 것임을 트럼프에게 투쟁으로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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