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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악몽이 된 ‘아메리칸 드림’과 트럼프의 귀환

2020년에 조 바이든은 대선에서 승리한 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역사의 “일시적 일탈”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크게 이긴 것을 보면 그것이 틀린 생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에 트럼프가 그토록 큰 표차로 이겼다는 사실은 미국 사회가 얼마나 심각하게 퇴락하고 있는지 선명하게 드러냈다. 그런 퇴락과 민주당의 실패 탓에 트럼프와 극우가 성장하고 사회를 우경화시키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40년 넘게 이어지면서 미국 사회는 트라우마와 공포, 폭력이 가득한 사회가 됐다. 미국은 “자유세계”의 지도자를 자처하지만 실제로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앞서고 있는 것은 자살률, 감옥 수감자 수, 총기 관련 폭력, 마약으로 인한 사망률이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추진한 자유 시장 정책들은 노동계급의 임금을 억눌렀고, 양질의 일자리를 파괴했고, 불평등을 악화시켰다.

오늘날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 중 하나다. 상위 1퍼센트가 전체 소득의 약 20퍼센트를 차지한다. 상위 0.1퍼센트가 소유한 부는 하위 90퍼센트의 것과 맞먹는다.

이런 경제 통계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아픔이 있다. 2022년 미국에서는 4만 950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높은 수치다.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14.3명으로 1941년 이래 가장 높았다. 그러나 그 다음해에는 14.7명으로 더 높아졌다.

고통

마약 중독 문제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마약 오용으로 인한 사망률은 10만 명당 18.75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세계 평균은 2.08명이다. 대형 제약회사가 마약성 진통제 처방을 부추긴 결과로 빚어진 마약류 중독 대유행 사태로 2021년 4월까지 1년 동안 10만 300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펜실베이니아주 존스타운시(市)의 주민들은 마약 오남용으로 인한 죽음이 어떤 것인지 너무도 잘 안다. 원래 존스타운에는 베슬리헴 철강 회사의 제철소들이 수십 년 동안 우뚝 솟아 있었다. 베슬리헴 철강 회사는 한때 미국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기업이었다.

그러나 1992년에 문을 닫으면서 수천 개에 달했던 철강 일자리는 오늘날 거의 다 사라졌다. 이제 존스타운의 메인스트리트를 가득 채운 것은 전자담배 가게, 패스트푸드 식당 그리고 폐업한 가게들이다.

존스타운은 미국의 쇠락을 상징하고 “트럼프 나라”의 아성을 이루는 여러 도시 중 하나일 뿐이다. 트럼프는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결과로 누적된 분노와 울분을 능숙하게 이용해 왔다.

“조 바이든 같은 직업 정치인들이 당신들에게 거짓말을 했다.

“바이든은 당신을 부당하게 대우했고, 당신과 당신의 꿈을 짓밟았고, 당신의 일자리를 빼앗아 중국과 세계 도처 먼 곳으로 외주화했다.” 트럼프가 존스타운 시민들에게 한 말이다.

러스트 벨트의 현실은 미국 정부들의 실패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출처 CyberXRef /Wikicommons

그러나 트럼프는 그 자신이 억만장자이고 상당한 대기업의 지원을 받는 작자로, 노동계급에 속하는 사람들(백인이든 흑인이든 라틴계이든)에게 어떤 것도 제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째서 신자유주의 중도의 위기가 좌파가 아닌 극우의 성장을 불러왔을까?

첫째, 트럼프는 신자유주의 중도가 야기한 위기를 이용하면서도 동시에 신자유주의 중도의 사상을 활용한다. 그간 정치인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시장 경쟁과 적자생존의 개인주의가 인간 번영의 기초라는 자유주의 이념을 설파해 왔다.

미국 작가 애덤 코츠코는 《신자유주의의 악마들》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신자유주의에서 “우리는 강요된 선택에 직면한다. 그런 상황은 사회적 문제의 책임을 겉보기에 개인의 잘못된 결정 탓으로 떠넘기는 구실을 한다.” 이런 논리 때문에 미국의 사회적 위기가 심각할 때 그 해법으로 집단적이고 계급적인 대응이 아니라 오히려 더 우익적인 대안이 제시됐다.

책임 전가

권력층 정치인들이 자신이 망쳐 놓은 결과를 책임지지 않으려고 인종차별을 부추긴 탓에 트럼프 같은 자가 부상할 여건이 마련됐다. 예컨대, 카멀라 해리스는 바이든 집권기에 “트럼프가 떠났을 때보다 미등록 이주민과 불법 이주민 수가 적었다” 하고 자랑했다. 해리스는 트럼프가 미국-멕시코 장벽을 “약 2퍼센트”만 지었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둘째, 트럼프와 극우는 “아메리칸드림”이라는 향수를 자극한다. “아메리칸드림”은 특히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수십 년을 가리키곤 한다. 그 시기는 완전 고용과 생활 수준 향상, 경제 호황과 함께 미국의 세계 패권이 정점에 달한 때였다. 그러나 그 시기는 흑인과 여성, 성소수자에게는 언제나 악몽 같은 시기였다.

1950년대는 남부 주들에서 악명 높은 짐 크로법과 흑백 인종 분리, 린치가 맹위를 떨치던 시대였다. 또한 “핵가족”을 미화하며 특히 여성에게 엄격한 젠더 역할을 요구하던 시대였다.

아메리칸드림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백인 미국인이 풍요로워지는 것은 태어나면서부터 갖는 권리, 즉 ‘생득권’이었다.

많은 노동계급 사람들이 투쟁의 성과로 1950년대에 더 높은 생활 수준을 실제로 쟁취했다. 1936~1937년 미시간 플린트에서 있었던 제너럴모터스 점거 파업 같은 노동자들의 전투성 때문에 미국 지배계급은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 반란이 더 커질 것을 우려한 미국 정부와 일부 대기업들은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타협했다. 동시에 1940~1950년대 “반공주의” 마녀사냥을 벌여 좌파를 분쇄했고 그 여파는 한 세대 동안 이어졌다. 번영이 “타고난 권리”라는 생각이 대중 의식 속에 깊이 자리잡았다.

트럼프는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했던 악명 높은 연설에서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쏟아 냈다. 그 연설은 극우의 주요 수법을 보여 주기도 했는데, 수백만 명에게 고통을 안기는 사회적 위기를 거론하며 해리스가 “4년도 안 되는 기간에 … 우리 중산층을 산산조각 냈다”고 비난했다. 트럼프는 사람들이 겪은 큰 아픔을 이주민을 향한 반감으로 비틀었다.

“나는 노동자들을 보호할 것이다. 일자리를 보호할 것이다.” 뒤이어 트럼프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국경을 보호할 것이다. 우리의 위대한 가족을 보호할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강력한 나라에서 살아갈 생득권을 보호하겠다.”

아메리칸드림에서 말하는 ‘생득권’이라는 개념은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과 떼어 놓을 수 없다. 그런 인종차별은 노동자와 빈민 사이에서 분열을 조장하는 구실을 한다.

1965년 공민권 운동 활동가 마틴 루터 킹은 이렇게 말했다. “남부의 귀족들은 가난한 백인들에게 짐 크로를 줬다.

“그의 굶주린 배가 음식을 요구하지만 호주머니에 돈이 없어 음식을 장만할 수 없을 때 그는 짐 크로를 먹는다. [영어로 ‘크로’는 까마귀라는 뜻도 있다] 이 심리학적인 새를 먹으면서 그는 자신이 아무리 누추할지라도 적어도 백인이고 따라서 흑인보다는 낫다고 느낀다.”

이 또한 트럼프의 전략 중 일부이다. 트럼프는 사람들의 분노를 엉뚱한 방향으로 돌리려고 인종차별을 부추기고, 이주민을 희생양 삼고, “진보 엘리트”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그 결과, 트럼프 자신이 속한 진정한 엘리트(억만장자, 사장, 은행가들)들은 분노와 관심 대상에서 비껴간다.

4년 전, 트럼프는 존스타운 유세에서 이렇게 약속했다.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공장을 다시 불러들일 것입니다.” 이것은 트럼프가 지키지 않은 거짓 약속이었지만, 그래도 그는 지지를 잃지 않았다.

트럼프는 범죄, 마약상, 이주민, “정치적으로 올바른 좌파(워크)”를 비난하면서 사람들의 자존감과 지위를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했다.

희망

미국의 위기로 우파가 성장하는 것은 필연이 아니다. 강력한 사회 운동이 미국 사회를 뒤흔든 바 있다. 예컨대, 대학 캠퍼스의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 지난 트럼프 정권하에서 벌어진 각종 대규모 반대 운동이 그렇다.

수많은 사람들이 버니 샌더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OC)와 “스쿼드” 등 민주사회주의자들을 자처한 이들에게 기대를 품었다.

그들은 노동계급 사람들을 위해 양질의 고임금 일자리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는 그린뉴딜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후 바이든의 “발전적 재건” 프로그램에서 그 약속은 축소됐다.

이후 바이드노믹스는 사실상 군비 증강 프로그램이 됐고 녹색 일자리는 눈곱만큼 만들었다. 그런데도 샌더스와 AOC 등은 바이든을 옹호하고 민주당을 통해 개혁을 추구해야 한다는 정치를 고수했다. 그들은, 위기를 심화시키고 노동자들을 위해서는 거의 하는 것이 없는 바이든 정부를 계속 편들었다.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의 메시지는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자(MAGA)”였다. 민주당은 “미국”이 이미 위대하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이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민주당의 득표는 2020년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노동계급의 잠재력을 보여 준 보잉 파업 ⓒ출처 Luis Feliz Leon / Labor Notes

다른 대안이 있어야 한다. 트럼프의 인종차별 부추기기에 맞서려면 민주당에 기대지 않고 거리와 작업장 투쟁을 중시하는 좌파가 필요하다.

최근 보잉 파업과 항만 파업에서 그런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고, 트럼프가 추진할 각종 사안마다 계급적 전투가 크게 일어날 것이다. 좌파는 극우와 인종차별에 맞서 싸울 뿐 아니라, 자본주의에 대한 진정한 대안도 제시해야 한다.

미국의 위대한 흑인 시인이었던 랭스턴 휴스는 1930년대에, 허구적인 미국 과거의 향수를 부추기는 사람을 다음과 같이 꼬집었다. “미국은 결코 내게 미국이었던 적이 없다.”

휴스는 진정한 과제가 “다시 미국을 만드는 것”, 즉 착취와 억압의 폐해에서 벗어난 다른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갱단에 의한 죽음이 초래하는 고통과 황폐함, 강탈과 횡령, 음모와 거짓에서 벗어나” 민중은 이 나라와 그 방대한 부를 “되찾아야 한다.”

오직 극우와의 투쟁, 그리고 그런 극우를 낳는 이 체제와의 투쟁을 통해서만 이를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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