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경험들로 살펴본다:
법적 처벌만으로 극우의 전진을 막을 수 없고 맞불 집회를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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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9일 서울 서부지방법원 폭동은 한국에서 극우의 등장을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폭동 직후, 반윤석열 진영의 주요 단체들은 그것을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민주당)이자 “헌법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도전”(참여연대)으로 규정하고 엄벌을 요구했다.
진보당도 대변인 논평을 내어 “헌정파괴 폭력범들”의 “일벌백계”를 요구했다. 그러면서 “극우가 떠받드는 미국에서도” 2021년 1월 6일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극우들이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사례를 들었다.
극우 폭력에 대한 처벌 요구는 필요하고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현재 반윤석열 운동 지도부들이 극우에 맞서는 대중 행동을 호소하기보다는, 경찰과 사법부에 극우 약화시키기 과제를 맡기려 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일이 실제로 그렇게 풀리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경찰은 폭동 가담자들을 구속하고 있고(2월 7일 현재 66명) 전광훈도 수사선상에 올랐다.
구속자들은 공동주거침입,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될 것 같다. 소요죄가 적용될지는 불확실하지만 말이다.
극우의 서부지법 폭동은 좌파에 유리한 법치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법치로 단죄하고 법치를 바로 세우는 것만으로 극우를 저지할 수 있을까?
그와 관련해 시사적인 국제적 경험이 있다. 앞서 언급한 진보당 논평이 나온 다음 날 미국에서는 대통령에 막 취임한 트럼프가 1월 6일 사건으로 구속된 자들을 모두 사면시켰다. 그중에는 미국의 주요 극우 단체인 프라우드 보이스의 리더로, 징역 22년형을 받은 엔리케 타리오도 포함돼 있다.
물론 그 사면 자체가 법치를 무시한 처사라고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가능케 한 세력 관계가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지적하고 설명해야 한다.
엔리케 타리오가 이끈 프라우드 보이스는 2021년 1월 6일 사건 이후 집중 수사를 받으면서 전국 지도부가 사실상 해체됐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가 해결하지 못한 사회·정치 위기와 대중의 고통, 개혁 배신은 프라우드 보이스를 포함한 극우가 계속 활개칠 토양을 제공했다.
지도부가 와해된 후 프라우드 보이스는 여러 지역 조직들로 흩어져 공화당 지역 조직 안으로 진출하고, 지방 선출직에 도전하고, 성소수자 행사를 공격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쿠데타 실패 이후 2년 동안 오히려 더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일부는 더 노골적인 극우 노선으로 급진화하며 분열해 나오기도 했다.
대부분은 트럼프를 중심으로 결집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운동의 일부가 됐다.
미국의 인권단체 남부빈곤법률센터는 이렇게 관측하고 있다. 현재 프라우드 보이스 자체의 영향력은 이전과 같지 않지만, “1월 6일 쿠데타 기도 실패의 여파 속에서 그들이 제시한 구호 ‘프라우드 보이스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말은 미국 우파 내에서 자명한 진리로 통하게 된 듯하다.”
이런 미국의 경험은 법적 처벌이 극우에게 일시적 차질을 줄 수는 있어도, 극우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한국에서도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서부지법 폭동 가담자·관련자들은 이미 우파들 사이에서 ‘순교자’로 여겨지고 있다.
이미 쿠데타 전에도 거리의 극우는 극우화된 집권당 국민의힘을 통해 정치 권력 중심부와 연결돼 있었다. 그 연결은 윤석열 쿠데타(미수) 이후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는 극우가 사회의 ‘정상적 일부’로 용인되는 지경으로까지 세력을 키울 조건을 제공할 것이다.
이는 지도부가 와해된 후에도 미국의 프라우드 보이스가 극우화한 주류 우파 정당(공화당)과 그 밖의 각종 극우, 강경 우익 단체들이 얽힌, 경계가 모호한 극우 생태계 속에서 재편되고 재조직된 것으로도 미루어 알 수 있는 점이다. 게다가 국가 기관들(법원, 검찰, 경찰)은 우익 측에 상당히 관대했다.
따라서 극우에 대처하는 과제를 국가 기관들에 맡겨 둬서는 안 된다. 극우에 맞설 사회 세력이 될 아래로부터의 대중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물론, 이런 전략적 방향이 전술 차원에서 법적 처벌을 요구하는 것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2013년 그리스에서는 파시스트 정당인 황금새벽당의 당원들이 반(反)파시스트 래퍼를 살해한 것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거대한 투쟁이 벌어졌다.
그 요구는 황금새벽당 지도자들의 지시에 따른 좌파 활동가 살해라는 구체적 범죄 행위에 대해 제기된 것이었는데, 무엇보다 그 요구를 내놓고 대중 투쟁을 건설할 수 있었다는 점이 중요했다. 그런 대중 투쟁 덕에 2020년 황금새벽당은 불법화됐다.
극우에 맞선 국제적 투쟁의 경험은 또한 극우와 대결하기 위해 필요한 운동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사례도 제공한다. 현재 반윤석열 운동에서 극우와의 대결을 회피하면서 제기되는 논리 하나는 그런 대결이 참가자들에게 부담을 주고 운동의 폭을 좁힌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대결은 각목을 든 결연한 소수가 극우와 충돌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동원해 극우를 수적으로 압도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지난해 8월 영국에서 극우의 준동을 패퇴시킨 대중 시위가 바로 그런 사례다. 당시에 무슬림 혐오적 헛소문에 근거하여 영국 전국에서 이주민·난민들을 겨냥한 극우 폭동이 일어났다. 이에 대응해 인종차별 반대 활동가들은 전국 각지에서 훨씬 많은 사람들을 동원했다. 많은 지역에서 시위대가 아무리 적어도 10대 1의 비율로 극우를 압도했고, 어떤 지역에서는 2000명의 시위대가 5명의 극우를 에워싸기도 했다. 기가 질린 극우는 거리에서 쫓겨났다.
이는 결코 저절로 이뤄진 과정이 아니었다. 키어 스타머 영국 노동당 지도부에 대응을 맡겨 놓았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여러 노동당 국회의원들은 경찰이 극우를 처리할 테니 맞불 시위에 나오지 말라고 호소했다.
극우를 물리친 행동은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광범한 세력을 결집시키고 기층에서 함께 행동하는 공동전선을 건설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그런 공동전선을 구축하려 한 혁명가들이 핵심적 구실을 했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위기에 처한 사회 체제는 극우를 성장시키는 토양을 계속 제공할 것이다. 그러나 대중이 공동 투쟁으로 극우를 물리치면서 자신감을 얻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런 자신감은 위기에 빠진 시스템의 대안을 제공하는 더 큰 투쟁의 자양분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