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공동전선론: 국내 팔레스타인 연대체들의 사례와 함께
〈노동자 연대〉 구독
공동전선이라는 용어는 지나치게 폭넓게 사용돼 왔다. 목표가 매우 상이한 연대·연합 일체를 뭉뚱그려 그렇게 부르는 경향이 있다. 그런 연대·연합들 가운데 고전적(혁명적)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제안되고 실행되는 것은 지금까지 거의 없었다. 거의 모든 라운드 테이블은 개혁주의자들이 정책 대안(개혁 강령의 일부)을 내놓기 위한 아이디어를 논의하고, 때때로 자본주의 개혁 정치인들이 그 대안과 그 아이디어를 채택하도록 촉구하는 대중 집회의 개최를 논의한다. 이런 관행과 달리 이 글은 공동전선 문제를 놓고 고전적·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이 제공한 통찰들을 되짚어 본다. 전술을 둘러싼 이론적 논의이니만큼 추상적으로만 흐르지 않도록 국내 팔레스타인 연대체들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자 한다.
*********************
마르크스는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 자신이 이룰 수 있고 또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혁명기가 아닌 평상시에 노동계급의 관념은 지배계급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도 지적했다.
노동계급이 자력 해방을 이룰 수 있다는 것과 그들이 평상시에 지배계급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것, 이 둘은 모순처럼 들린다. 하지만 평상시 현실의 모순을 반영하는 것일 뿐이다. 즉, 노동자들이 생산의 주체인데도 생산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 즉 노동의 소외 때문에 노동계급은 정치·경제·이데올로기 영향력으로부터도 소외돼 있다.
마르크스는 이 모순이 해소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과학적 사회주의, 즉 마르크스주의와 현실 노동계급 운동의 만남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만남의 방식은 교육·선전보다는 훨씬 주되게, 투쟁 경험과 조직 경험이라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강조했다.
특히 레닌은 정치적 경험을 통해 노동계급의 의식이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특히, 1920년 6월 출판된 그의 저작 《좌파 공산주의 – 유치증》에서 그랬다. 그 저작에서 그는 정치적 경험의 진수가 혁명가들이 혁명가가 아닌 사람들과 부득이 타협도 해 가며 공동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듬해인 1921년 레닌은 국제 공산당(이하 코민테른) 대회에서 그러한 공동 활동을 가장 강조하며, 공동전선을 구축해서 그런 활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레닌과 함께 트로츠키도 공동전선에 대해 설명하는 일에서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트로츠키는 이렇게 말했다. “칼을 소유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 칼의 날을 세워야 한다. 칼의 날을 세우는 것으로도 충분치 않다. 그 칼을 어떻게 휘두르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다음 해 코민테른 대회에서도 레닌과 트로츠키는 공동전선 전술을 가장 강조했다.
공동전선 전술은 가장 저차원인 노동조합 활동부터 가장 고차원인 소비에트 활동까지 적용될 수 있는 혁명가들의 전술이다.
공동전선 안에서 혁명가들은 혁명가가 아닌 사람들과 같은 자격으로, 대등한 파트너로 함께 활동한다.
그런 상황이 언제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언제나 필요한 것도 아니다. 즉, 공동전선이 불가능하거나, 불필요하거나, 둘 다인 상황이 존재한다.(트로츠키가 공동전선 논의의 전제로 삼은 이 얘기는 뒤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공동전선이 필요하고도 가능한 경우 혁명가들이 혁명가가 아닌 사람들과 함께 행동할 수 있으려면 혁명가들의 최저 요구들과 개혁주의자들의 최고 요구들이 접점을 이뤄야 한다. 혁명가들은 개혁주의자들과 “엄격히 실용적인 목적에 기초한 합의”(트로츠키)를 맺어야 한다.
그러려면 대개 몇 개 이내의 요구들로 국한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몇 개 이내의 요구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공동전선이 보통의 공동전선, 일반적인 공동전선이다.
보통의, 일반적인 공동전선은 제한되고 구체적인 요구들을 둘러싼 단결된 행동을 추구하는 것이다. 광범한 대중이 동의할 수 있는 요구들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어떻게 스스로를 차별화할 것인가에 집중하지 않고 광범한 대중을 단결시킬 요구들을 제출하고, 그렇게 해서 일어난 대중 행동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종파주의: 기회주의의 좌파적 형태
그런데 공동전선을 처음에 구축하고자 할 때 ‘이 쟁점 추가하자, 저 쟁점 추가하자, 또 저 쟁점 추가하자’며, 선동이 아니라 선전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공동전선에서는 선동을 중심으로 해야 하는데, 그 대신 선전을 하자는 이런 경향을 두고 선전주의라고 하는데, 종파주의의 일종이다.(선전과 선동을 구별해야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본지 웹사이트에 있는 던컨 핼러스의 ‘선동과 선전’을 보시오.)
팔레스타인 연대 공동 활동을 예로 들면, 어떤 사람들은 여성 해방도 추가하자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성소수자 해방도 추가하자고 주장한다. 심지어 반자본주의를 표방하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의 눈에는 이런 문제들을 놓고 일관되지 않은 운동이 미흡하고 부족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정치적 스펙트럼이 다양한 대중 운동에 자신의 강령을 강요하고 싶어 안달인 태도를 두고 트로츠키는 초강경 비타협주의라고 불렀다. 그동안 ‘최후통첩적 태도’라고도 번역됐다. 혁명가들이 공동 투쟁에서 초강경 비타협주의를 삼간다는 것은 싸우기를 원하는 대중에게 자신들의 정치에 대한 완전한 동의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공동전선의 요구를 이처럼 제한적이고 구체적으로 만들려는 것은 대중 운동 건설을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선전주의적 종파주의나 초강경 비타협주의(최후통첩적 태도)는 대중 운동을 위한 연대체를 자신이 원하는 정치 조직의 건설로 연결시키려는 시도다. 공동전선이 아니라 (예비)정당을 건설하려는 것이다.(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룰 것이다.)
종파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역사적 사례는 1928년부터 1934년까지 스탈린하의 코민테른이었다. 당시 코민테른은 사회민주주의를 파시즘의 한 형태라고 정의했다. 스탈린주의자들의 말을 빌리면 “파시즘이 부르주아지의 오른손이라면 사회민주주의는 왼손이다.” 이러니 나치의 부상을 막는 공동전선이 성립될 수 없었다. 공산당이 파시즘의 일종인 사회민주당과 공동으로 반파시즘 투쟁을 한다는 것은 애당초 전혀 사리에 맞지 않는 발상이었다.
반면 트로츠키는 심지어 “유혈낭자한 [1929년] 5월”이라는 엄청난 참사에도 불구하고 공동전선을 역설했다. 사회민주당 소속인 베를린 경찰청장 카를 최르기벨이 메이데이 기간 사흘 동안에 공산당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는 것을 지시해, 공산당과 무관한 33명의 시민이 피살되고 200명(그중 극소수만이 공산당원이었다)이 총상을 입은 사건이었다. 그때 수많은 노동자들에게는 사회민주당이 나치의 이중대라는 (공산당의) 주장이 그럴듯하게 느껴졌을 법했다. 그럼에도 당시 반나치 공동전선의 사활적 필요성은 명백했다.
이번엔 근래 한국에서 때때로 보는 종파주의의 사례를 들고자 하는데, ‘성폭력 2차가해’를 명분으로 공동 활동을 거부하는 것이다. ‘성폭력 2차가해’는 독단적인 ‘피해자 중심주의’와 동전의 앞뒤 관계여서 그에 관한 토론이 금기시될 뿐 아니라, 선거와 여론을 중시하는 기회주의자들도 끌어들일 수 있어 종파주의자들에게 유용하고 편리한 무기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나 플랫폼C, 사회주의전진(이하 전진) 등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이하 긴급행동)의 주요 조직자들은 노동자연대의 2차가해 때문에 노동자연대와 연대하기를 거부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이 박원순 사건의 피해자에게 2차가해를 한 볼셰비키그룹과 처음부터 긴급행동에 함께한 사실은 이 변명에 진정성이 없음을 보여 준다.
물론 그들은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분출하기 훨씬 전부터 노동자연대에 적대적이었고, 몇 년 전에는 안티 노연 중상모략자 전모 씨에게 유리한 진술(종종 노골적인 위증이었다)을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그들이 노동자연대에 적대적인 이유는 각각 달랐다. 특히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팔레스타인 연대라는 단일 쟁점 전문 활동가들이었으므로, 노동자연대가 팔레스타인 문제에 능동성을 보이며 달려드는 것이 그들에게는 크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특정한 이유가 있기는 해도 그들 대다수에게는 공통된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자율적 사회운동주의 정서 때문이었을 것이다. 개인주의보다 행동의 통일을 강조하는 노동자연대가 싫었던(혐오스러웠던) 판에 혐오의 명분을 2차가해에서 (재)발견했던 것이다.
‘2차가해’ 무기는 토론과 논쟁에 자신이 없어 회피하고 싶은 자들(대개 개혁주의자들)이 비민주적으로 언론·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면서까지 회피를 정당화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노동자연대 이외의 사례로, ‘촛불행동’을 배척하기 위해 주류 반미자주파가 촛불행동 상임 공동대표 김민웅 목사의 2차가해를 이유로 내세우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이유는 2차가해가 아니라 촛불행동이 좀 더 급진적이고 좌파적이어서 주류 측에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여러 정황적 증거가 있다. 더구나 주류 반미 자주파는 선거와 의회, 언론 등을 의식해서 그러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긴급행동 조직자들의 진정한 패착은 노동자연대의 2차가해를 폭로하면 많은 사람들이, 더구나 팔레스타인인 등 아랍인들이 노동자연대와 결별하(고 자기네 쪽으로 오)리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노동자연대의 해명이나 논박(링크)이 나오기도 전에 먼저 팔레스타인인 등 아랍인들이 긴급행동 측을 비판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 생뚱맞은 이슈를 들이대는 것을 분열주의라고 제대로 이해했다. 물론 긴급행동 조직자들은 2차가해가 ‘생뚱맞은’ 쟁점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공동으로 대중 행동을 일으키기를 원하는 공동전선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접근법은 필자가 위에서 언급한 종파주의에 해당한다. 실제로는 도덕주의를 내세운 위선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 이 얘기를 하지는 않겠다. 다만, 종파주의는 기괴한 식으로 과격한 주장이나 해대는 소종파만의 편향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종파주의는 긴급행동 조직자들에게서 보듯이 종종 기회주의와 하나로 통일되어 나타난다.(긴급행동의 기회주의는 뒤에서 논의할 것이다.)
팔레스타인인 등 아랍인들이 긴급행동 측과 거리를 두어 온 다른 이유들도 있었다. 이미 긴급행동 초창기에 팔레스타인인 등 아랍인들은 그 집회에 참가해 보고 그들의 메시지가 “weak”하다고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이하 팔연사) 조직자들에게 소감을 말했었다. 확신, 열정, 힘 등이 부족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도 한국어를 온전히 알아듣는 동생이나 1.5세 자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긴급행동의 메시지가 “weak”한 이유는 그들이 이스라엘(과 미국 정부)을 규탄하기는 해도 무장 저항을 분명하게 지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국제주의 사상과 정서의 결여라는 점도 있다.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 참가하는 아랍인들은 대부분 우리와 같은 노동계급 등 서민층에 속한다. 더구나 단지 시온주의에만 반대하는 게 아니라 서방 제국주의에도 반대한다는 점에서 국제주의 안에서 그들과 우리는 하나다. 그렇다면, 긴급행동의 명칭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에 ‘한국’이라는 말이 들어 있는 것 자체가 그들과 일체감을 주기에 부적절하다는 것을 긴급행동 측은 깨달아야 한다. 실제로 긴급행동 인스타그램 게시물(노동자연대와 연대 불가 선언)에는 태극기와 팔레스타인 국기가 나란히 병렬돼 있는데, 이런 발상은 국제주의와는 다른 것이다. 국내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안에서 팔레스타인인 등 아랍인들의 출신국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국제주의는 현존 국가들과의 동일시를 뜻하지 않는다. 긴급행동 조직자들이 국제주의의 이런 불충분성을 의식하지 못한 채 아랍인들을 노동자연대로부터 떼어 내어 자기들 쪽으로 끌어당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도 착각이었다.
공동전선과 흔히들 혼동하는 연대·연합
좌파 단체들의 연대·연합이라고 해서 다 공동전선인 것은 아니다. 앞에서 강조했듯이 공동전선은 혁명가들의 전술이다. 거기서 그들은 개혁주의자들과 동등한 파트너가 되어 중심적 구실을 한다. 만약 혁명가들만이 중심적 구실을 한다면 그것은 united front가 아니라 그냥 front이다.(우리말로는 ‘간판’, ‘커버’, ‘프런트’라고 옮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조직에서는 흔히 개혁주의자가 명목상의 대표를 맡는다. 혁명가들에게 결사의 자유가 거의 또는 전혀 없는 상황에서는 프런트가 필요할 것이다.
노동자연대는 팔레스타인인들과, 또 이집트 혁명에 참가했다 정치적 망명객이 된 이집트인들과 함께 팔연사에서 대등하게 계획을 세우고 대등하게 함께 집행하고 있다. 서방세계 출신 활동가들도 여기에 가세해 능동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모든 개인들과 단체들은 명목상의 리더가 아니라 노동자연대의 대등한 파트너들이다. 그래서 팔연사는 노동자연대의 프런트, 커버가 아닌 명실상부한 공동 프런트, 공동전선인 것이다.
반면 혁명가들이 중심적 구실에서 배제된 채 개혁주의자들만이 중심적 구실을 한다면 그것 역시 공동전선이라고 할 수 없다. 긴급행동이 그런 연합체이다. 긴급행동에는 참여연대·정의당·진보당·민주노총 등 모든 주요 개혁주의 지도부들을 포함해 약 200개 단체가 참가하고 있는데, 혁명적 조직도 두어 군데 참가하고 있다. 그러나 혁명적 단체들은 긴급행동에서 전혀 주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긴급행동의 집회 조직은 팔레스타인평화연대와 플랫폼C 등이 주로 조직하지만 긴급행동의 정치 자체는 참여연대 등 개혁주의 정치 조직들이 설정한 상한선 아래에서 정해진다. 가령 긴급행동 초창기에 어떤 혁명적 조직이 “제국주의”라는 말을 연설에서 사용했다가 참여연대의 날카로운 질책을 받고 이후 언저리로 밀려나야 했다. 참여연대는 많은 소속 인사들이 문재인 정부에 참여한 가장 온건한 주류 개혁주의 정치 조직이다.
개혁주의 주도하에 있으므로 긴급행동은 2023년 10월 하순 이후로도 지금까지 한결같이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인들의 무장 저항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하마스 주도 10/7 선제 공격(이하 10/7)이 민간인 사망과 납치를 포함했으므로 그 직후 약 2주간 주저하고 망설인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심지어 노동자연대 안에서조차 소수는 처음에 그런 입장이었다. 그러나 그 국면이 지나가고 그다음으로 이스라엘군이 제노사이드(팔레스타인인 절멸)를 자행해 온 상황에서도 긴급행동은 무장 투쟁을 지지하지 않았다. 2024년 1월 7일 발표된 긴급행동 성명서는 그 날이 팔레스타인 ‘순교자의 날’임을 지적하지만 그 직전에 벌어진 알아루리의 죽음은 언급하지 않았다. “저항”을 종종 언급하지만 긴급행동은 그 의미를 “집단학살에 삶으로 맞서는” 것(2024.03.16), “자신이 겪는 억압과 부정의를 세계에 알리[는]” 것(2024.05.04 & 07.13), 또는 “삶으로, 역사로 저항하고 있[는]” 것(2024.05.18), “자신의 터전을 떠나지 않으려는” 것(2024.07.13) 등으로 희석시킨다.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인들의 무장 저항을 옹호하지 않는 것은 좋게 말해도 너무 온건해서 함량 미달이며, 직설적으로 말하면 기회주의적 타협(민주당 국회의원들과 매스 미디어 등에 대한)이다. 긴급행동이 거의 2주나 늦게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시작한 것도 바로 하마스의 무장 투쟁, 더 구체적으로 말해 이스라엘 민간인의 납치와 사망이 수반된 하마스의 선제 군사 공격을 옹호할 수 있느냐를 놓고 자유주의자들의 눈치를 봤기 때문이다.(이로 말미암은 주저와 망설임 때문에 실기(失機)한 것을 노동자연대의 2차가해 탓으로 돌린 것은 정직하지 못한 일이다.)
노동자연대는 한때 긴급행동 리플릿 ‘팔레스타인 평화를 위한 대화 가이드’에 하마스의 선제 공격을 옹호하는 듯한 QnA가 실린 것을 보고 크게 반겼다. 그러나 그 후 이를 삭제하거나 하마스 규탄을 추가하라고 요구하는 사후 압력이 작용했던 듯하다. 이후 긴급행동은 리플릿에서 하마스의 저항을 옹호하는 내용을 삭제했다가 나중에는 결국 하마스 자신의 말을 소개하는 식으로 뉘앙스를 다소 누그러뜨려 복원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무장 저항 대신에 긴급행동 측이 내놓은 대안은 ‘국제사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올해 1월 16일에도 긴급행동의 성명은 하마스의 저항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국제 연대 운동이 하는 구실은 여론의 압력으로 ‘국제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본다. 물론 긴급행동은 이스라엘과 미국이 숱한 국제 기구의 결정을 무시하는 작태를 규탄하고, 미국 등 서방이 말로는 우려를 표하고 이스라엘에 국제법 준수를 촉구하면서도 실제로는 이스라엘을 계속 지원하는 것도 규탄한다. 그럼에도 긴급행동은 “이스라엘이 집단학살을 당장 멈추도록 국제사회가 강제해야 한다”고 연목구어한다(2023.10.22 첫 집회 성명서).
긴급행동은 그동안 발표한 성명서에서 팔레스타인 문제의 뿌리가 1948년부터 이어진 이스라엘의 식민 지배에 있다고 옳게 지적한 적이 여러 차례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1948년의 원죄를 바로잡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국제사회가 1948년이 아닌 1967년의 점령만을 문제 삼을 때 긴급행동은 그 한계에 대해 침묵한다. 가령 “팔레스타인의 목소리가 세계 곳곳에서 다시 들리고 있으며 국제사회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 7월 19일 국제사법재판소(ICJ)는 ⋯ 가자지구, 서안지구, 동예루살렘, 즉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이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유럽연합 11개 국가는 팔레스타인 국가수립 지지를 표명했다.”(2024.07.27)
2024년 1월 말 ICJ가 이스라엘에 인종 학살 방지 명령을 내렸을 때 긴급행동은 그 명령이 “강제할 수단은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명확하고 ⋯ 즉각적인 휴전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도, “세계의 여론이 반영되어, 이스라엘이 처음으로 국제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집단학살 혐의를 제기받게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제 여론이 국제 기구에 반영되는 것에 폭로 이상의 의의(성과 또는 개선이라는)를 두는 것이다. 2024년 3월 말 유엔 안보리가 휴전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을 때도 긴급행동은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례적으로(자신들의 정기 집회가 아닌 때) 성명서를 발표해 결의안의 실행을 촉구하고, 이를 위해 “안보리 산하에 휴전 결의안 이행 감시위원회를 구성”하라는 구체적인 요구까지 내놓았다(2024.03.28).
물론 ICJ의 집단 학살 방지 명령이나 ICC의 네타냐후 체포영장, 유엔 안보리의 휴전 촉구 결의 등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과 국제 연대 운동이 미국과 이스라엘에 가하는 압박의 효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 등 서방 지도자들이 (그들의 제국주의적 영향력에 대한 중대한 위협 없이) 여론의 압력을 실제로 수용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연대는 민족 해방 운동에 대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지지 입장에 근거해 10/7 직후 조금치도 주저하지 않고 팔레스타인 연대 행동에 즉시 착수했다. 그리고 노동자연대 측의 이니셔티브에 즉각 호응한 팔레스타인인들과 이집트인 커뮤니티와 함께 공동으로 운동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팔연사는 팔레스타인인 등 아랍인을 연단 위에 세워 연설하게 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팔연사에서 머리를 맞대고 함께 조직하는 리더들이다. 그리고 팔연사는 단지 중앙 수준에서뿐 아니라 기층과 지역, 일터 수준에서도 공동 활동을 조직했다. 여러 지역에서 팔연사 지지자들은 기층 노동자들과 동남아시아·서남아시아계 노동자 및 팔레스타인계 유학생 등과 함께 거리를 행진하고 홍보전 등을 함께 한다.
이것은 지도부들 수준에서뿐 아니라 아래로부터도 공동전선이 건설돼야 한다는 레닌과 트로츠키와 초기 코민테른의 강조점을 충실히 구현한 것이다. 트로츠키는 이렇게 말했다. “공동전선 문제는 공산당 의원단과 사회민주당 의원단 사이의 또는 두 당 중앙위원회 사이의 상호관계 문제가 아니다.… 진정한 공동전선은 기층에서 건설되는 공동전선이다.”
긴급행동 집회는 대규모로 열리는 경우 개혁주의 정치인이나 노동조합 지도자들, 유명 시민단체 대표들이 우선적으로 연단에 올라간다. 긴급행동 집회 참가자들 거의 전부 또는 대부분이 모종의 단체 리더들과 활동가들이다. 일반인들은 극소수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
긴급행동의 가장 꾸준한 부분은 팔레스타인평화연대인 듯하다. 10/7 후 얼마 안 돼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그 사건에 관한 이스라엘의 거짓말을 반박하고, 그 공격을 설명하려고 애썼다. “압제자가 폭력을 쓴다면 피압제자는 폭력으로 응수할 수밖에 없다.”(당시에 팔레스타인평화연대가 트위터에 올린 글) 하지만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그 공격을 분명하게 지지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2023년 10월 17일, “[10/7이] 팔레스타인의 대의를 진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지는 ... 의심스럽다”고 한 아슈카르의 주장을 소개했다. 이후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그 글을 포함해 이후에 아슈카르가 쓴 글을 모아서 3월 1일 책으로 출판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2024년 6월부터는 10/7과 이후의 무장 저항을 긍정적으로 조명하기 시작했다. 만시지탄이었지만 크게 다행이었다. 그해 6월 7일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탈식민 — 10월 7일과 팔레스타인 무장투쟁”이라는 공개 토론회를 열었다. 그 포럼의 사실상의 주 발제자 뎡야핑은 10/7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중동 정책을 좌절시켰다며 그 의의를 평가했다. 그 이후로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10/7과 이후의 무장 저항을 긍정적으로 조명하는 글들을 간간히 번역했다. 예컨대 2024년 6월 8일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미국 호바트 윌리엄 스미스 대학교 교수 조디 딘의 글, “팔레스타인이 모두를 대신해 말하다”를 번역해서 발행했다. 그 글은 10/7이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창출하며, 그렇게 인민을 절망과 체념으로부터 해방”하여 “주체를 만들어냈다”고 평가한다.
또, 2024년 8월 13일 탐사 언론 ‘드롭 사이트’의 “하마스 공식 인터뷰”를 번역했는데, 그 글은 상이한 관점의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뒤죽박죽이지만 전반적으로는 무장 저항에 우호적인 쪽으로 약간 쏠려 있다.
이처럼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반이스라엘과 반미에서 급진적이다. 하지만 참여연대(와 피스모모), 플랫폼C 등이 하마스의 ‘하’, 무장의 ‘무’ 자도 꺼내지 못하게 긴급행동의 정치를 제어하고 있는 상황에 직면해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이들에 대한 비판을 삼가고 있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도 (긴급행동 자체처럼) 국제사법재판소나 국제형사재판소와 유엔 등 국제사회의 개입과 휴전을 지지하는 것에 비교적 큰 의의를 두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이는 팔레스타인 해방의 전략을 놓고 팔레스타인평화연대가 혁명적 사회주의와 다른 점인데,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이집트 등 중동·북아프리카 노동계급의 혁명을 자신의 전망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결국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어하는 듯하다. 긴급행동과 참여연대도 잡고 싶고, 팔레스타인인 등 아랍인들도 잡고 싶다. 그러나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팔레스타인인 등 아랍인들의 이반을 노동자연대 탓으로 돌리지 말고 자신의 기회주의 탓으로 돌려야 한다. 이스라엘군에 대한 무장 저항의 사활적 필요성이 긴급행동의 공식 입장에서 배제되는 것을 방임하고, 또 연대 거부에 앞장선 것은 다름 아닌 자신들 아닌가.
플랫폼C
긴급행동 조직자들 가운데 ‘참여연대 좌파’ 같은 성격은 플랫폼C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와 함께 긴급행동의 가장 주된 기층 조직자인 플랫폼C는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문제의 양비론자들을 비판한다”라는 제목을 붙여 사리 막디시의 글을 번역해 발표했다(2023.10.31). 거기서 아이티 혁명 등 무장 저항이 동반된 “피식민지 반란자들”의 역사를 언급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와] 다를 것이라고 기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고 옳게 반문한다. 즉, (참여연대와 달리) 저항자들의 폭력을 비판하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그 글은 이렇게도 덧붙인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것[10/7]을 정당화하려는 게 아니라, 이해하려는 것이다.” 즉, 10/7에 대한 플랫폼C의 입장은 이스라엘을 강하게 규탄하며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을 이해하려 하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가 하마스의 무장 투쟁이 승리하기를 바라며 주저 없이 지지하는 것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2024년 4월 12일 긴급행동이 주최한 공개 토론회에서도 플랫폼C의 홍명교 씨는 “팔레스타인 국제 연대 운동 현황과 사회운동의 과제”에 대해 발표하면서 하마스의 무장 저항에 대한 지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플랫폼C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과 관련해서도 레바논인들의 무장 투쟁을 지지하기보다는 “국제적인 반전평화 운동만이 세계 민중을 공멸로 내모는 현 상황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들을 비롯해 중동 민중 자신의 무장 저항을 빠뜨린 채 “국제 연대 운동”만 강조하는 것은 (긴급행동 자체의 입장처럼) 국제 여론을 형성해 제국주의 국가의 정부들이나 국제 기구를 압박하자는 방침을 반영하는 듯하다. 실제로 홍명교 씨는 위 언급된 2024년 4월 토론회 발제문에서도 이렇게 주장한다. “국가권력의 외교정책 결정과정에서 때로는 이익보다 여론이 보다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 [여론]은 국내 정치의 판도를 바꾸고, 국제 정세를 변동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 대중운동만이 팔레스타인 및 기타 지역에서의 학살을 저지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전쟁이 한창인 와중에 무장 투쟁 지지를 삼가다니 전략 치고는 공허하다.
본지 강동훈 기자는 2024년 11월 19일 이렇게 보도했다. “긴급행동 초동 주체들이 첫 집회를 한창 준비하던 지난해 10월 18일 플랫폼C의 리더 홍명교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남겼다. ‘지금 ‘하마스’를 쟁점으로 삼는 건 어느 쪽이든 현명해 보이지 않는다. 한가해 보인다. 지금 당장 하마스에 대해 비판하거나 옹호하고 싶어서 미치겠으면 의견 많은 분들끼리 만나서 당신들끼리 했으면 좋겠다.’ 플랫폼C는 긴급행동의 초기 발의 단체로, 그 리더 홍명교 씨의 이 언급은 긴급행동의 설립과 가입의 가이드라인이라고 볼 만하다. 하마스를 옹호하고 싶은 사람들은 따로 하라는 것이다. 이후 실제로 긴급행동은 하마스의 저항에 대해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민중전선, 범좌파 정당, 급진좌파 정당
위에서 “대중 운동을 위한 연대체를 자신이 원하는 정치 조직의 건설로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공동전선이 아니라 (예비)정당을 건설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매우 제한되고 구체적인 쟁점이나 요구를 둘러싸고 대규모 행동을 건설해야 하는 마당에 자기 전략에 따라 이러저러한 표지를 내세우며 경계를 (너무 넓거나 너무 좁게) 확정지으려 하는 건 공동전선이 아닌 다른 무엇을 지향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여기에는 세 가지 지향이 있다. 첫째, 진보당계의 민중전선 지향. 둘째, 범좌파 정당 지향. 셋째, 급진좌파 정당 지향.
민중전선
민중전선(인민전선)은 공동전선과 가장 흔하게 혼동되는 것이다. 공동전선이라는 말만큼 오·남용돼 온 말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일찍이 1924년 트로츠키는 이렇게 강조했다. “공동전선은 이러저러한 의회적 목표를 추구해 지도부들 수준에서 맺는 선거 연합이 결코 아니다.” 좌파와 자유주의 세력의 전략적 연대·연합은 공동전선이 아니다. 그것은 민중전선이다.
민중전선은 1935년부터 1946년까지 존속하며, 각국 공산당이 반자본주의적·반제국주의적 지향을 갖지 않도록 소련 공산당이 세심하게 고안한 전략이었다. 그 전략은 정치적 재앙을 부르기도 하는 등 완전한 실패작이었다. 1936~39년 스페인이나 1970~73년 칠레처럼 극우에 의한 대량 학살 등 정치적 대참사에 기회를 제공했거나, 아니면 1994~2024년 남아공 아프리카국민회의 정부처럼 30년에 걸쳐 노동계급 사람들에게 신자유주의라는 독약을 조금씩 투약하는 일과 같은 커다란 정치적 불행을 안겨 줬다.
지난 총선 국면에서 결성됐던 진보당과 민주당, 새진보연합 간의 민주연합은 민중전선의 일종이었다. 민주연합 같은 민중전선은 앞으로도 거듭 등장할 것이다. 실제로 현재 윤석열 탄핵 국면에서 좌파 측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부상한 연대체 ‘비상행동’은 민중전선의 초기 국면을 나타낸다.
민중전선은 공동전선과 달리 부르주아 정당, 즉 터놓고 자본주의적인 정당을 포함한다고 흔히들 말한다. 그래서 몇 달 전 프랑스 총선을 앞두고 결성된 신민중전선을 민중전선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구민중전선과 신민중전선이 전혀 다르다고 보는 것은 내면적 실재나 의미보다는 외형이나 모습에 주목하는 형식주의적 관점이다. 그런 관점은 신민중전선에 참여하고 있는 전임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와 그의 사회당이 부르주아 정당이 아니라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라고 강조한다.
물론 사회당은 노동조합 관료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민주당 같은 터놓고 자본주의적인 정당이 아니라고 형식적으로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당은 1997년 집권 이래 4반세기 동안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시행해 수많은 노동계급 사람들을 빈곤과 고통에 빠뜨렸다. 다른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들은 ‘사회적 자유주의’라고 불렸다. 우리말 식으로 옮기면 ‘좌파 신자유주의’가 되겠고, 실제로 노무현은 2006년 3월 자신의 정부를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규정했다.
4반세기 동안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노동계급에 강요해 오고 인종차별을 부추겨 온 자들, 노동계급과 이주민들도 이젠 너무도 그 피해를 뼈저리게 느끼는 그런 자들의 본질이 노동조합 관료 기반이라는 형식적 사실로 무마될 수는 없다. 노동조합 기반이라는 특징이 어떤 다른 맥락에서는 변별력이 있겠지만, 신민중전선의 본질을 바꾸지는 못한다.
신민중전선은 좌파 연합이지만 1930년대 중반의 구민중전선도 그랬다. 중요한 것은 좌파가 좌파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즉, 형식적으로만 반자본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행동으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반대해야 한다. 장뤼크 멜랑숑 등 급진좌파가 프랑스 자본주의와 프랑스 제국주의를 한결같이 수호해 온 자들을 형식적 좌파성을 이유로 환대하고서는 좌파 연합을 구축하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프랑스 신민중전선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돌아보자. 신민중전선은 1차 투표에서 3위를 한 후보들을 결선 투표에서 사퇴시키고 마크롱의 후보들에게 투표하라고 호소했다. 그런데 좌파의 표를 가져간 마크롱은 몇 달 뒤 인종차별적인 보수 정치인 미셸 바르니에를 총리로 임명했다. 그리고 얼마 전 바르니에가 불신임 당해 사임해야 했는데도 마크롱은 (좌파가 아니라) 중도계 정치인 프랑수아 바이루를 총리직에 임명했다.
역사적으로 스탈린주의자들은 민중전선을 강력히 제안해 왔다. 지금 진보당이 참가하고 있는 윤석열 퇴진 연합체 비상행동은 민중전선의 초기 국면을 나타낸다. 문재인 정부 이후 지금까지 진보당은 선거를 겨냥해 민주당 등 주류 개혁주의자들과의 연합을 구축해 왔다.
범좌파 정당
이는 주류 사회민주주의가 불신받는 시기에(2010년대 초반 이후) 좌파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다. 한국에서 PD계 좌파 단체들은 민주노총의 좌파 지도자들,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등이 함께하는 범좌파 정당 설립을 추구하고 있는 듯하다. 전직 민주노총 사무총장이 이끄는 노동조합 좌파 활동가 그룹은 노동당을 중심으로 장차 녹색당과 정의당 등을 끌어들여 진보당과 경쟁하려 애쓰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노동당이 민주노총을 통해 다른 좌파 정당들과 조율해 세운 울산 동구 국회의원 후보의 정치를 보면, 이주 노동자 문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쟁점을 놓고 좌파 사회민주주의 경향을 드러냈다. 좌파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민주노총의 좌파 관료에 기반을 두려 한다.
그런데 역사적 경험을 돌아보면, 범좌파 정당도 민중전선을 거부하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프랑스 신민중전선에는 범좌파 정당을 지향하는 멜랑숑의 불복종 프랑스 LFI와 심지어 반자본주의신당 NPA도 참여하고 있다.
범좌파 정당 전략도 (민중전선 전략처럼) 기성 지도부들이 노동계급 등 차별받는 대중의 운동을 대표한다고 전제한다. 레닌은 바로 카우츠키주의가 그런 가정을 전제로 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 가정에 따르면, 기존 조직들/운동들 바깥에는 정치적 의식이 존재하지 않으며, 권력을 잡아야 하는 것은 노동자 평의회에 기반을 둔 노동자 국가가 아니라 정당(물론 범좌파 정당)이다. 트로츠키는 이런 전망 속에서는 정당이 계급을 대신한다 하여 ‘대리주의’라고 불렀다.
대리주의는 10/7 직후 노동자연대의 공동 행동 제안을 거부한 팔레스타인평화연대 등 긴급행동 조직자들의 사고에도 반영돼 있다. 똑같은 쟁점을 놓고 뒤늦게 출발한 그들이 팔레스타인인·아랍인들에게 제시한 암묵적 메시지인즉슨, ‘만약 당신들이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하려면 (확장성 없는 혁명적 조직 말고) 운동을 대표하는 우리의 지도를 받아야 할 것이다’였다. 이들은 한국의 “시민사회”가 “모두” 긴급행동으로 결집했고 노동자연대는 자기 혼자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팔연사에 동참한 다른 단체들은 안중에 없었음은 물론이고 팔레스타인·아랍인 스스로가 (혁명적 조직과 함께) 운동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급진좌파 정당
급진좌파 조직 전진은 범좌파 정당 지향과 동시에, 이 범좌파 정당 지향 활동 속에서 좀 더 좌파적인 조직들을 결집시켜 급진좌파 정당을 결성하려 애쓰는 듯하다. 그러나 트로츠키는 공동전선이 혁명적 당을 대체해서도 안 되고 혁명적 당이 공동전선 속으로 용해돼서도 안 되며, 공동전선이 혁명적 조직들의 연합도 아니라고 강조했다.
물론 전진은 혁명적 좌파가 아니지만, 그래도 트로츠키의 지적은 유효하다. 혁명적 좌파였던 노해투가 변혁당 잔류파, 페미니스트 인권 활동가들과 통합한 결과 전진은 이미 중간주의 조직이 됐다. 강령에는 혁명을 지지하는 것으로 돼 있지만 실천은 변혁당 시즌 2 비슷해, 강령의 혁명적 규정은 실천적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마르크스는 어떤 정당이 뭐라고 주장하든, 심지어 자기 자신에 대해 뭐라고 주장하든 그들의 말, 당명, 강령 문서, 성명서 등에 현혹되지 말고 그들의 실천을 먼저 보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1930년대 프랑스 민중전선 안에서 활동하고 소기의 목표를 전혀 달성하지 못한 채 뒤늦게 사회당을 떠난 마르소 피베르의 사회당 좌파의 명칭은 심지어 ‘혁명적 좌파’였다.
전진이 여기서 더 나아가, 급진좌파 재결집 정당을 건설하려면 상이한 정치 강령들, 정치적 기본입장들의 통일을 이뤄야 한다. 더한층의 타협이 불가피하게 된다.
전술 문제에서는 혁명가들은 어쩔 수 없이 타협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무기한 파업을 해도 사용자에게 양보를 얻어 내기가 결코 쉽지 않은 판에 하루 파업을 하자는 안이 대다수 조합원들의 지지를 얻을 때 “에잇, 기회주의자들, 당신들과 함께하지 않겠어!” 하며 등 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강령(정치적 기본입장)은 얘기가 다르다. 중간주의 조직과 타협하며 공동의 정당을 결성하기 위해 혁명가들이 자본주의 국가기관들을 강제 해산시키고 노동계급의 새로운 민주적 기관들에 기반을 둔 노동자 국가를 세운다는 강령을 포기할 수 있을까? 또, 가령 이슬람주의와 성소수자를 서로 맞세우는 전진 같은 조직과 타협하기 위해 우리가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민족 해방 운동에 대한 조건 없는 지지라는 원칙을 폐기해야 할까?(전진은 성소수자와 여성의 해방을 받아들여야만 이슬람주의 지지자들과 팔레스타인 연대 행동을 함께 할 수 있다고 본다.)
강령을 타협한다는 것은 기회주의적 행위다. 따라서 공동전선 전술을 구사한다며 혁명적 정치를 개혁주의 정치에 종속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 비판과 선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합의는 공동전선이 아니다. 긴급행동 안에는 혁명적 조직이 포함돼 있는데, 그들은 참여연대 등 개혁주의자들과 타협하느라 선동(“제국주의”라는 말조차)의 자유를 스스로 제한했다.
필자는 앞에서 선전주의(적 종파주의)자들이 “대중 운동을 위한 연대체를 자신이 원하는 정치 조직의 건설로 연결시키려, (예비)정당을 건설하려” 애쓰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전진 같은 급진좌파 조직이 왜 한편으로 종파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기회주의적인지를 설명해 준다. 범좌파 정당은 급진좌파 조직에게는 너무 넓고 공동전선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 좁기 때문이다.
공동전선이 언제나 가능하고 필요하지는 않아도
혁명적 좌파의 입장에서는 공동전선이 언제나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문제가 있다. 노동자연대는 처음에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 공동 행동을 제안했다. 그러나 그들은 노동자연대와 공동행동 하기를 거부하고 대신에 플랫폼C와 참여연대, 진보당 등 개혁주의 정당들과 단체들, 그리고 자율주의/아나키즘을 아직도 일정 부분(특히 에토스로서) 견지하는 많은 소그룹들을 끌어들여 긴급행동 구조물을 세웠다.
앞서 지적했듯이 10/7과 이후 무장 저항 문제가 연대 거부의 진정한 요인이었다. 그러나 심지어 이보다도 훨씬 중요하게 작용한 요인이 있다. 그것은 주류 개혁주의 단체들을 끌어들이면 커다랗고 효과적인 운동을 건설할 수 있다는 기회주의적 발상이다. 그렇게 하면 노동자연대가 주도하는 팔연사보다 훨씬 크고 훨씬 효과적인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구축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면, 팔연사를 지지하는 팔레스타인인과 아랍인들을 자기네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혹시 한국 정부가 시온주의자들의 가자지구 말살을 노골적으로 지원한다든가 해서 거대한 분노가 분출된다면 몰라도 지금과 같은 대중 의식하에서는 주류 개혁주의 조직들은 팔레스타인 연대에 커다란 의욕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혁명가들이 움직여야만 대학 캠퍼스에서도 자그마한 행동이나마 일궈 낼 수 있는 게 지금의 구체적 상황이다. 온건할수록 더 광범한 지지를 대중으로부터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은 현 정세 속에서는 기회주의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만일 긴급행동과 팔연사가 통합하면 시너지를 고려하지 않아도 지금보다 훨씬 큰 운동을 건설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 둘이 통합하면 혁명적 단체는 그 통합 연대체 안에서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이미 긴급행동 안에서 볼셰비키그룹이 그랬듯이). 참여연대와 진보당 등 대형 개혁주의 단체들과 규모의 차이가 너무 커서 혁명적 단체는 계속 중심적 구실에서 밀려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2003~04년 이라크전 파병반대국민행동 안에서도 벌어졌던 일이었고, 2008년 광우병국민대책회의에서도 점차적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연합의 중앙이 이렇게 되면 기층과 지역, 일터 수준에서의 활동도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외국인들의 능동성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저 이스라엘 규탄만을 하지 팔레스타인인들의 무장 저항과 아랍인들의 혁명적 투쟁은 과소평가하는 지도부한테서 영감과 고무를 받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트로츠키는 힘의 합성이 플러스가 아니라 마이너스가 되는 상황에 대해 얘기했다. 바로 민중전선이 그렇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태도, 계급적 지향성이 정반대인 세력들이 연합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겠느냐는 것이다. 긴급행동이 민중전선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동전선도 아니다. 혁명가들이 독립성(비판이 핵심 요소다)과 주도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연대·연합은 개혁주의가 지도력을 행사할 것이고, 그런 개혁주의적 연대·연합으로는 대규모 행동을 건설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긴급행동이 “200개가 넘는 단체들이 결집했다”고 종종 자랑해도 500명 넘는 집회를 단 한 차례도 열지 못했던 사실을 성찰해 봐야 한다.(양경규 정의당 소속 전 의원 자신이 팔레스타인 저항 1년 기념 긴급행동 집회에 대해 아쉬워한 대목이다. 비록 이틀 후 기자회견에서 긴급행동 측은 그 집회에 2천 명이 참가했었다고 공개적으로 터무니없이 부풀렸지만 말이다.)
맺음말: 한국에서도 극우에 맞선 진정한 단결이 필요하다
이런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연대는 긴급행동 측과 간혹 공동 집회 정도는 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우리가 무색하게도 긴급행동 조직자들은 ‘노동자연대와 연대 불가’ 성명을 발표해 버렸다. 우리가 먼저 연대 제안을 했더라면 정말 겸연쩍고 낯부끄러운 일이 될 뻔했다.
그러나 우리가 겸연쩍고 낯부끄러워졌을 것임이 문제가 아니다. 사실 긴급행동 조직자들이 겸연쩍고 낯부끄러워했어야 한다. 실제로 그들은 그런 허접스런 발표를 하기 전에, 스스로 그런 일이 떳떳하지 못함을 알고 있었다. 그런 성명 발표를 위한 의사결정의 절차(특히 대표성 결여 문제)와 성명 내용의 비민주성은 성명서에 제목도 달지 않고 발표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필자는 이 문제를 더 다루고 싶지는 않다. 다만, 긴급행동을 보며 이 나라 운동의 당면 전망 자체가 걱정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윤석열이 찬양·고무하고 있는 쿠데타 지지 세력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들은 국가 기관들에 똬리를 틀고 있고, 그들의 기층 지지자들은 거리에서 적어도 10만 명을 동원한다. 후자도 폭력을 기꺼이 행사할 태세이고 실제로 폭도처럼 행사했다.
이 글은 앞에서 독일 히틀러 부상 전야에 독일 공산당이 취한 종파주의에 대해 언급했고, 프랑스의 (1930년대 중반) 구민중전선과 지금의 신민중전선이 보여 주는 기회주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한국은 트로츠키가 말한 “결합된 불균등 발전”을 해 온 나라다. 1980년대 이래로 처음으로 극우가 국가 수준에서뿐 아니라 기층 수준에서도 위협을 제기하고 있는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종파주의와 (민중전선형) 기회주의, 둘 다 운동에서 유력한 형국이다. 극우의 위협 앞에서 한가하게 위로부터의 개혁 프로젝트를 강조하거나, (극우에 맞설 태세인데도) 연대 불가 장벽을 세우는 경향들이 운동을 어디로 끌고 갈지 우려된다. 1930년대에 트로츠키는 코민테른과 소속 공산당들의 종파주의와 기회주의 대신에 대안을 내놓았다. 바로 공동전선이다.
행정부 극우 윤석열, 국회와 정당 정치 극우 국힘, 거리 극우 전광훈 일당 등을 패퇴시키려면 선거 중심으로는 안 된다. 선거를 무시하자는 게 아니다. 대중 투쟁(특히 노동자 대파업이 수반되는)을 중심으로 선거와 국회 책략을 부차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이 추구돼야 하고, 대중 투쟁은 특수한 공동전선들을 가동시키며 연결하는 식으로 건설돼야 한다.
앞으로 몇 달이 결정적일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든 한국 정치는 위아래로 격랑 속에 휘말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