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커크 죽음 이용한 트럼프의 극우적 공격 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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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1일(일) 미국 애리조나주(州)에서 열린 극우 선동가 찰리 커크의 추모식은 “성전” 궐기 대회였다. 극우 운동 ‘마가(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주요 인물들이 대거 참석한 그 행사에서 트럼프는 “급진 좌파에 맞선 선과 악의 투쟁”을 다짐했다.
트럼프와 그 일당은 또 다른 제국주의 정당 민주당도 “급진 좌파”라고 부르지만, 그들이 지금 커크를 “좌익 테러리즘”의 순교자로 만들며 겨냥하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최근 몇 년간 미국에서 거듭된 인종차별 반대 운동이다. 트럼프의 첫 번째 재선 도전을 좌초시킨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 바이든의 재선을 좌초시키고 반트럼프 저항의 물꼬를 튼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올해 트럼프에 맞서며 잠재력을 보여 준 이민자 차별 반대 운동 등. 트럼프가 뉴욕시장 후보 조란 맘다니를 “아랍 빨갱이”라 부르며 추방 협박을 하는 이유도 주로 팔레스타인 연대 때문이다.
둘째, 경제 실정(失政)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겨냥하는 것이다. 특히 트럼프의 관세 폭탄이 평범한 미국인들의 생계비 위기를 가중시킬 것이 예상되자, 그 분노가 어디로든 수렴될 가능성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트럼프와 그 일당은 어떤 종류든 진보적 사상을 조금이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격 대상으로 삼으려 한다. 부통령 JD 밴스는 이렇게 엄포를 놓았다. “급진 좌파와 그 주변에 형성된 … NGO·활동가·후원자 등 배후 세력을 해체하기 위해 자원을 총동원하겠다.”
기시감이 든다. 바로 윤석열이 계엄을 통해 이루려 했던 일들인 것이다.
트럼프는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인들을 상무부 산하 연방통신위원회를 통한 압박으로 해고·정직시키고 있다. 또, 이민세관단속국(ICE)은 뉴욕에서 민주당 주의원 10여 명 등 총 71명을 체포했고, 이민법원은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가 마흐무드 칼릴의 국외 추방을 명령했다.
진보적 반대자를 모조리 겨냥한다는 트럼프의 의도는 9월 17일 “안티파”를 테러 단체로 공식 지정한 데서도 드러난다. 안티파는 특정 단체의 이름이 아니라 ‘파시즘 반대’의 줄임말이므로, 그 모호함을 이용해 누구든 공격할 수 있다.
이는 1940년대 반공주의 마녀사냥에서 가져온 수법이다(트럼프는 그 마녀사냥을 주도한 매카시의 측근 로이 콘을 통해 정치에 입문했다). 밴스가 커크를 추모하지 않는 주변 사람을 “색출·폭로하고 고용주에게 [그를 해고하라고] 신고하라”고 지지자들을 선동한 것도 그 수법대로다.
KKK
중요한 점은 이런 공격이 미국 국가 기관 너머 극우 전반을 고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가 미국 제국주의 이익을 수호하는 행정부의 수반인 동시에 세계 최대 극우 운동의 지도자로서 두 의제를 연결시켜 온 것 덕분이다.
일례로 트럼프는 커크 사망 이후 “선과 악의 전쟁,” “복수의 성전” 등 종교적 언사를 부쩍 많이 구사하고 있는데, 기독교 우익을 선동할 의도에서다. 트럼프와 미국 기독교 우익에게는 1960년대 평등권 운동의 성과를 되돌린다는 공통된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정치적 투쟁을 미국의 제국주의적 이익 추구와 효과적으로 결합시켜 온 실천적 경험이 있다.
이에 더해, 트럼프의 공격 수법은 최악의 인종차별적 극우를 고무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이를 보여 주는 소름 끼치는 사례가 9월 15일 미시시피주립대 델타 캠퍼스에서 있었다. 21세 흑인 남성 트레이 리드가 나무에 목 매달려 죽은 것이다.
악명 높은 기독교 극우 조직 KKK를 연상시키는 이 죽음을 경찰은 자살로 단정짓고 서둘러 봉합했다. 그러나 이는 당연히 광범한 의심을 사고 있다.
미시시피주에는 1960년대 흑인 평등권 운동가들이 KKK에 살해당한 역사가 있다. KKK는 트럼프 1기 정부 때도 인종차별적 폭력을 저지르고 반인종차별 시위대를 습격한 바 있다.
트럼프의 국가 기관이 인종차별적 공격을 시행하고 그것을 반좌파 공격으로 더 첨예하게 만들수록, KKK와 그 동류인 인종차별적 극우·파시스트들이 고무돼 날뛰고, 사회 전반을 더욱 양극화하는 압력이 커질 것이다.
시급
트럼프의 반좌파 공격으로 고무받는 것은 미국 극우만이 아니다.
9월 13일에는 영국 파시스트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독일에서는 파시스트가 주도하는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창당 이래 최대 지지율을 누리고 있다. 15일에 치러진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독일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주다) 지방선거에서도 AfD는 득표를 이전보다 세 배 가까이 늘리는 등 약진했다.
근래 AfD는 일론 머스크를 통해 마가와 탄탄한 연계를 구축해 왔다. AfD는 머스크가 유럽에서 마가를 본따 만든 운동 ‘메가(Make Europe Great Again, 유럽을 다시 위대하게)’의 중요한 일부다. 커크 사망 이후 AfD는 커크를 영웅시하는 선동을 광범하게 벌이며 이를 자신의 반이민 운동과 결합시키고 있다.
한국 극우들 역시 기세를 올리고 있다. 커크 사망 직후, 한국의 극우 조직들은 커크와 트럼프가 제시한 제국주의적·극우적 의제들에 강하게 공명하며 행동에 나섰고, 대학 캠퍼스에서도 선동을 강화했다.
무엇보다, 한국 극우의 지도적 정당인 국민의힘이 이재명 타도를 공언하며 대선 패배 이후 최초로 수만 명을 동원해 거리 시위에 나섰다.(관련 기사)
그들은 트럼프가 커크 추모 연설에서 “한국에서 성조기를 든 군중” 운운하며 자기네를 치하한 데에 한껏 고무됐을 것이다.
이는 한국에서 당면한 쟁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지난달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가 “숙정 혹은 혁명” 운운한 직후 한덕수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그즈음부터 내란 특검이 부쩍 둔화됐다. 올해 초 극우 폭도들의 서부지법 난입도 일론 머스크가 한국 극우 운동을 띄워 준 지 2주 후에 벌어진 일이다.
친제국주의적 한미동맹 강화를 최우선시하는 한국 극우는 트럼프의 반중·반좌파 선동에 특히 강하게 동조화돼 있다. 미국 극우 운동의 지도자이자 미국의 대통령인 트럼프의 한국 극우 고무 효과는 매우 강할 것이다. 한국 자유주의 진영 일각의 바람처럼 이재명 정부가 수사·처벌로 극우를 숙정할 것이라고 기대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한미동맹 강화를 이재명 정부 자신이 능동적으로 (즉, 한국 자본주의의 경제적·안보적 이익을 노리고) 추진하는 것은 극우의 정당성을 강화하고 그들의 기세를 올려 준다. 극우로서는, 한미 극우 연계 고리가 있는 자신들이 이재명 정부보다 트럼프 정부와의 관계를 훨씬 더 잘 구축할 수 있다고 내세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트럼프가 미국과 세계 극우에 지극히 위험한 전진 나팔을 불고 있는 지금, 그 뜻대로 되지 않게 하겠다는 결연한 대중 저항을 건설하는 것이 한국, 미국,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더없이 중요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