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1일 고려대 맞불 시위:
극우가 학교 안에 발도 못 들이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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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1일 고려대학교에서 극우에 맞선 맞불 시위가 통쾌한 승리를 거뒀다.
극우 학생들은 고려대학교 9개 단과대가 새내기새로배움터(새터) 행사를 떠나는 2월 21일 탄핵 반대 시국선언을 하려 했다. 윤석열 탄핵 반대 주장이 지지와 응원을 받지 못할 것을 알기에 일부러 학교가 비어 있는 날을 택한 것이었다.
역겹게도 우익 학생들은 민주광장을 탄핵 반대 시국선언 장소로 택했다. 앞서 서울대학교와 연세대학교에서도 우익 학생들은 의도적으로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장소를 탄핵 반대 시국선언 장소로 정했다가 만만치 않은 맞불 시위에 부딪혔던 바 있다.
고려대에서도 탄핵 찬성 학생들이 맞불 집회인 ‘긴급 고려대 행동’을 공지하며 동참을 호소했다.
“반민주적 폭거인 계엄을 옹호하는 자들이 감히 민주화의 성지에 발을 들여놓으려는 것입니다.
“고려대에서는 지난 12월 학생총회에서 20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모여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를 규탄하고 ‘윤석열 퇴진’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학생총회 정신을 이어 가 선배들이 피 흘리며 쟁취해 낸 민주주의를 지켜 냅시다!”
맞불 집회 주최 학생들은 학내 대자보와 SNS는 물론이고 집회 전날 안국역 앞에서 열린 촛불행동 집회에서도 고려대 맞불 집회 소식을 알리며 지지와 연대를 호소했다.
맞불 집회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단호함에 기가 눌린 것일까? 탄핵 반대 학생들은 시국선언 전날 돌연 시국선언 잠정 연기를 발표했다.
극우 학생들은 고려대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앞선 서울대와 연세대 시국선언 때” 벌어진 맞불 시위가 고려대에서도 벌어질까 “매우 걱정”된다며 시국선언 연기 이유를 설명했다.
극우는 맞불 집회가 “표현의 자유”를 위협한다고 떠벌렸지만, 실상은 고려대 탄핵 지지 학생들에게 기선을 빼앗겨 위축된 것이다.
기선 제압
갑작스런 시국선언 연기 공지에 탄핵 반대 세력 쪽에서는 내분이 일어났다. 그러다가 애초 시국선언을 예고했던 당일 오전, 그들 중 일부가 극우 유튜버 안정권이 집회를 열겠다고 밝힌 학교 정문 바깥쪽에서 시국선언 집회를 열겠다고 다시 공지했다. 안정권은 윤석열의 대통령 취임식에 정식으로 초대받았고 그의 누나가 윤석열 대통령실에 근무했던 자다.
탄핵 반대 학생들은 민주광장에서 시국선언을 하려 했지만, 맞불 시위와 부딪혀야 한다는 압박감과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자신감 없음 속에 결국 집회 장소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집회 당일 오전부터 윤석열 파면을 염원하고 극우에 반대하는 고려대 동문들의 현수막이 민주광장을 수놓았다. 후배들의 맞불 행동에 대한 응원이자 감히 극우가 민주광장에서 쿠데타 옹호 집회를 열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캠퍼스를 지나던 행인들과 새터에 가려는 신입생들, 그리고 캠퍼스 견학을 온 고등학생들은 현수막 문구를 하나하나 읽어 보거나 현수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오후 2시경부터 안정권과 ‘STOP THE STEAL’(부정선거를 멈춰라) 팻말을 든 극우 시위대가 탄핵 반대 학생들을 엄호하겠다며 캠퍼스 밖 정문 앞에 모였다. 졸업 사진을 찍으러 온 졸업생과 가족들은 극우 유튜버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히잡을 쓴 무슬림 유학생 몇 명은 정문으로 나가려다 성조기를 흔드는 극우 시위대를 보고 발걸음을 돌렸다.
민주광장에서도 탄핵 찬성 재학생들과 동문들이 속속 집결했다. 촛불행동 집회에서 온 민주 시민들도 삼삼오오 민주광장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오후 3시 민주광장에서 맞불 집회 제안자 오수진 씨가 포문을 열었다.
“극우는 3월 1일 최대 응집해 압력을 행사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대학에서 그 밑거름을 만들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집회는 극우의 전진을 막는 집회이고, 언제 어느 곳에서도 극우가 환영받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집회입니다.”
맞불 집회를 함께 준비한 고려대 학생 이인선 씨도 발언했다.
“저들이 표현의 자유를 말하는데,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국민을 죽이려 한 대통령을 지지하는 자들이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있습니까?”
고려대 동문인 김은진 촛불행동 공동대표, 서울대 맞불 집회 제안자 이시헌 씨 등이 힘차게 연대 발언했다.
민주광장에 이어 정문 앞도 사수하다
3시 30분경 긴급 고려대 행동은 본격적으로 맞불을 놓기 위해 정문 앞으로 출발했다. 캠퍼스폴리스가 행진 대열을 막아 세우려 했지만, 참가자들의 규모와 기세를 감당할 수 없었다.
긴급 고려대 행동 참가자 150여 명이 정문 안쪽을 메웠고 그 수는 이후로도 계속 불어났다. 시국선언 현수막을 들고 서성이던 우익 학생들 서너 명은 긴급 고려대 행동의 규모와 기세에 압도돼 정문 밖으로 쫓겨나듯 나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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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고려대 행동은 “윤석열을 파면하라!” “나가라!” 하고 쉴 새 없이 구호를 외치며 극우 학생들을 압박했다. 극우 학생들은 안정권 집회 품 속에서 시국선언을 시작했다.
탄핵 반대 시국선언자 중 한 명은 집회 현장에서 안정권에게 90도 인사를 하며 “오늘 연락드렸는데 덕분에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했다. 안정권은 고려대 탄핵 반대 시국선언 측에 재정 후원까지 했다고 밝혔다.
잠정 연기 공지와 번복 끝에 강행한 탄핵 반대 시국선언이었지만, 그들 뒤로는 ‘쿠데타 옹호세력 물러가라’ 구호가 적힌 배너와 의기양양하게 윤석열 파면을 외치는 200여 명이 버티고 있었다.
안정권과 극우 시위대는 극우 학생들을 지원한답시고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육두문자를 쏟아 냈지만, 이미 승기를 잡은 긴급 고려대 행동은 점점 더 기세가 올랐다.
이겼다!
맞불 집회의 기세에 눌린 채 간신히 시국선언을 마친 탄핵 반대 학생 다섯 명은 현수막을 들고 기념사진이라도 남기려 교내 잠입을 시도했다. 이들은 탄핵 찬성 측의 눈에 띌까 봐 조용히 들어와 먼 길을 돌아 학교 본관 앞으로 가려 했지만, 금세 긴급 고려대 행동 측에 들키고 말았다.
긴급 고려대 행동 참가자들은 극우 학생들을 에워싸고 윤석열 파면 구호를 외쳤다. 잔뜩 위축된 탄핵 반대 학생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안정권과 극우 시위대가 있는 정문 쪽을 애타게 바라보다 결국 달아나려 했다. 긴급 고려대 행동은 배너와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우익 학생들이 민주광장으로 가지 못하도록 가로막았고, 결국 우익 학생들은 도망치듯 정문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긴급 고려대 행동 참가자들은 “잘 가라!” 하고 외치며 환호했다.
그 사이 정문 앞 한쪽에서는 안정권 등 극우 유튜버들이 캠퍼스 난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탄핵 찬성 유튜버들이 부상을 당해 구급차에 실려 가는 일이 벌어졌다. 한 탄핵 찬성 측 여성 유튜버는 전치 4주의 부상을 입었다.
긴급 고려대 행동은 정문 앞에서 대열을 재정비해 기세 좋게 연신 구호를 외치고 재학생과 동문의 기쁨에 찬 발언을 듣고 집회를 마무리했다.
이날 맞불 집회가 없었다면 재학생 고작 대여섯 명을 앞세운 극우 200여 명이 고려대학교 일대를 활개쳐, 마치 극우가 성공적으로 대학에 세력을 내리기 시작했다는 착시 효과를 줬을 것이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속셈을 간파한 수백 명이 긴급하게 모여 극우를 저지했기 때문이다. 사회자의 말처럼 “오늘 고려대학교에서 극우의 전진을 막아 냈다.”
긴급 고려대 행동 참가자들은 “이겼다!”를 외치며 우익 학생들이 처참히 실패한 본관 배경 기념사진을 찍고 한껏 고무된 표정으로 맞불 집회를 마무리했다.
이번 승리를 자양분 삼아 앞으로도 극우가 학내에서 감히 설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