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이겨서 당당히 걸어 나가겠습니다”
“노동자가 뭉치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 줍시다”
[아래 글은 70일 넘게 점거 파업에 참가하고 있는 한 쌍용차 조합원이 말한 것을 그대로 글로 정리한 것이다. 가슴을 뒤흔드는 이 글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지금 공장 안은 전쟁터입니다. 8일째 공중에서 최루액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경찰은 산불에 소화가루를 퍼붓듯이 최루액을 뿌려댑니다. 독한 성분의 최루액 때문에 눈도 못 뜰 정도입니다.
어제 파란색 최루액을 발뒤꿈치에 맞았는데, 살 위로 기포가 생겨서 막 올라옵니다. 바닥이나 설비는 아예 손으로 잡지 못할 정도입니다. 잘못 손을 댔다가 그 손으로 눈이라도 비비면 따가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지상에서는 용역깡패와 구사대, 경찰 들이 합동작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경찰이 방패로 지켜주고, 용역깡패들은 그 뒤에서 새총을 쏩니다. 업체에 의뢰해 만들었다는 이 새총은 그야말로 살상 무기입니다. 그것에 맞아 팔이 부러진 조합원이 있습니다. 만약 머리에 맞는다면… 정말 끔찍합니다.
테이저건에 맞은 조합원은 경찰이 겨우 2미터 전방에서 얼굴에 테이저건을 쐈습니다. 항쟁제도 없이 바늘만 빼놓은 상태여서, 살이 썩을 수도 있답니다. 방패에 맞아 무릎 인대가 늘어나고, 곤봉에 맞아 어깨가 탈골된 사람도 있습니다. 전경들에 둘러싸여 짓밟힌 조합원은 온 몸에 타박상을 입었습니다. 내 친구는 용역깡패 진입 소식에 달려 나가다 넘어져 왼쪽 손목 동맥이 끊어졌습니다. 정말 참을 수가 없습니다. 시너를 온 몸에 뿌리고 정문 앞에 서서 불을 질러볼까도 생각했습니다. 진저리치다 못해 욕지기가 났습니다.
저들은 밤에도 옥상에서 라이트를 비치고 새벽까지 선무방송을 해댑니다. 잠을 잘 수가 없게, 지치게 만드는 겁니다. ‘민주노총‧금속노조에 이용당하는 우리들이 불쌍하다’나요. ‘바보처럼 속지 말고 투항하라’고 합니다. 이런 말을 듣고 투항할 것 같았으면 우리는 지금까지 싸우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런 바보가 아닙니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물이 아주 부족하다는 겁니다. 최루액을 뒤집어쓰고도 이걸 씻어낼 수가 없습니다. 8일째 샤워도 못했습니다. 땀과 최루액이 범벅이 된 채 씻지 못하니까 밤마다 모기들이 엉겨 붙어 전쟁을 치룹니다. 물을 내리지 못해 화장실에선 악취가 진동합니다.
양치질한 물을 모았다가 변기 물을 내리곤 합니다. 삼시 세끼 주먹밥에 고추장을 발라 먹는데, 너무 맹숭맹숭 하지만 그나마도 아끼고 또 아낍니다. 밥그릇을 씻을 물이 없으니까 입에 물을 넣고 헹군 다음 밥그릇에 뱉어서 흔들고는 휴지로 닦습니다. 그게 설거지입니다.
우리의 정신은 녹일 수 없다
모두들 비만 오길 바라고 있습니다. 비가 오면 모두 옥상에 가서 발가벗고 샤워하기로 했습니다. 언제 침탈할지 모르는 긴장 속에 있으니까,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습니다. 전투를 치르다가 틈틈이 한두 시간씩 잡니다.
긴장해서인지 자다가 소리질러 욕을 하면서 잠꼬대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울증 증세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굴하지 않고 싸우고 있습니다. 다치고 찢어지고 멍이 들었지만, 겁먹지 않습니다. 아마 경찰과 사측도 징그럽다고 생각할 겁니다. 아무리 스티로폼이 녹아내린다고 해도, 설사 내 살이 녹아내린다 해도, 우리의 정신은 녹일 수가 없습니다.
68일 동안 함께 싸운 동료들을 보면 자신감이 솟구칩니다. 우리는 한 몸처럼 싸우고 있습니다. 쟤네들은 싸우다가 동료고 뭐고 없이 뿔뿔이 도망가기 일쑤입니다. 우리는 절대 그러지 않습니다. 살수차 앞에서도 서로 부등켜 안고 함께 싸웁니다. 동료가 잡혀 있으면 구출하려고 타격을 나갑니다. 이런 걸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나고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이 안에 있는 내 자신이 뿌듯해집니다. 점점 더 반드시 이기겠다는 오기가 생깁니다.
이익 앞에서는 생명의 존엄성조차 따지지 않는 자본에게 무릎을 꿇을 수 없습니다. 저들은 우리를 지게 만들려고, 비굴하게 만들려고 기를 씁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지 않을 것입니다. 반드시 이겨서 당당하게 정문으로 걸어 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테러집단도 아니고, 불법 폭력배들도 아닙니다.
법은 역시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 편입니다. 정부도 가진 사람들만 편듭니다. 이명박은 생색내기 식으로만 “서민” 얘기하지만 수십만 리터의 시너통 위에 있는 우리들이 죽든 말든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용산에서도 그렇게 끔찍하게 사람들을 죽인 겁니다.
내 청춘을 다 바쳐 일했는데, 하루아침에 쫓겨났습니다. 구만리 같은 내 자식 새끼들 공부도 시켜야 하는데, 어디 가서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누구 말처럼, 우리는 생체실험을 당하고 있습니다. 쌍용차에서 해고를 시작해서, 전국으로 확대하겠다는 겁니다. 미디어법이 통과될 때 보니까, 정말 가관입디다. 정부는 가진 자들, 부자들만 살리려고 안달이 났습니다.
한국에는 지금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라는 두 개의 인종이 있습니다. 인종차별은 극심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움츠려 들면 안 됩니다. 전국에 있는 노동자들이 겁내지 말고, 움츠려 들지 말고 당당했으면 좋겠습니다.
7월 25일 전국노동자대회 때 옥상에서 정문 앞에 모인 연대 대오들을 봤습니다. 경찰 떼들에게 동지들이 쫓겨가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모두들 얘기합니다. 우리가 큰 빚을 졌다고. 우리도 끝나면 투쟁하는 곳에 달려가 연대하겠노라고. 전국 곳곳에서 사람들이 와주면 그게 정말 큰 힘이 됩니다. 우리가 지쳐서는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사측은 선무방송에서 ‘민주노총이 혼비백산해서 도망가는 것을 보라’고 말합니다. KT가 민주노총을 탈퇴하고 성폭력 문제에도 휘말린 것을 보라고 합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화가 납니다. 민주노총이 저들에게 약점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금속노조도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저들의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서라도, 연대 투쟁과 파업을 반드시 확대해야 합니다. 우리 파업이 꼭 승리해서 승리의 불씨를 만들어야 합니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강력한 힘이 결집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노동자들이 뭉치면 얼마나 무서운지, 강한지 저들에게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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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영웅들을 지옥에서 구하기 위해 연대 투쟁·연대 파업을 확대하자!
쌍용차 노동자들의 영웅적인 점거 파업이 70일 넘게 계속되고 있다. 이 파업은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일단 이 파업은 이 나라의 짐승같은 지배자들이 노동자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줬다.
경찰이 헬기에서 파업 노동자들에게 비처럼 쏟아붓고 있는 최루액의 ‘인체무해성’을 검증하겠다며 연 시연회 에서 최루액에 젖은 스티로폼이 녹아내리는 일이 벌어졌다.
경찰과 사측의 물, 식량, 의약품 차단으로 6일 동안 당뇨약을 먹지 못한 한 노동자의 발은 검은 빛으로 변해 가며 곪아가고 있다. 이대로 가면 발가락이나 발목을 잘라야 할 수도 있는데 저들은 119 구급차조차 통제하고 있다.
더구나 지금 노동자들이 점거하고 있는 도장공장은 그야말로 “화약고”다. 먼지의 유입을 막기 위해 밀폐돼 있고 내부에 30만 리터의 신나와 페인트가 가득해서 진압 과정의 작은 실수로 화재와 폭발이 일어나면 인명 몰살은 물론 ‘사방 1킬로미터 이상이 날라갈 수 있다’는 게 쌍용차 노동자들의 증언이다. 이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용산 철거민들을 학살할 때 사용한 컨테이너와 특공대까지 대기해 두고 예행연습을 하고 있는 경찰은 미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쌍용차 파업은 무엇보다 노동자들의 초인적인 용기와 불굴의 투지를 보여 주고 있다. 저들의 물, 음식, 의약품 차단과 고사 작전이 본격화된 7월 20일 이후 파업 이탈자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폐렴 때문에 잠깐 나왔던 노동자가 다시 진입을 시도할 정도다. 파업 노동자들은 우리 모두의 일자리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투쟁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중재자인가 투쟁의 지도자인가
따라서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연대다. 금속노조는 7월 13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한 주1회 이상 파업을 실질적으로 조직하고 생산에 타격을 가해 정부와 기업주들이 버틸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민주노총은 계속 전국노동자대회 등을 개최해 물과 식량, 의약품을 전달하고 노동자들에게 힘을 줘야 한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지도부는 이런 연대 건설보다 중재자 구실에 치중하는 잘못을 중단해야 한다. 7월 25일 노동자대회가 맥없이 끝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정부와 사측은 전국노동자대회 직전에 노사정 대화 자리를 마련하고 협상 의사가 있는 척하더니 갑자기 교섭에 불참해 버렸다. 그리고 ‘폭력 집회가 되면 교섭도 없다’는 식의 압력을 넣었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지도부는 이런 덫에 빠져 7월 25일 제대로 투쟁을 지도하지 않았고, 물과 음식을 꼭 전달하자며 전국에서 모인 노동자들은 이리저리 쫓기다 힘없이 해산해야 했다. 오죽하면 쌍용차지부 한상균 지부장도 “공장을 사수하고 있는 사람들 눈에는 [금속노조] 정[갑득] 위원장이 중재자 역할만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아쉬워 하겠는가.
70일 간의 점거 파업의 힘이 지금 저들이 ‘교섭’을 말이라도 하게 만든 것이다. 이제 저들이 교섭 자리로 나와서 의미있는 타협안을 제시하게 만드는 것은 연대 투쟁의 힘에 달려 있다. 따라서 기아차 활동가들은 기아차 파업을 더 분명하게 쌍용차 파업과 연결시켜야 하고 현대차 활동가들은 파업하기 싫어서 사퇴한 지도부의 공백을 메우며 더 많은 조합원들을 쌍용차로 데려 와야 한다. 금호타이어처럼 곳곳에서 자신들의 문제로 파업에 들어가는 것도 쌍용차에 집중된 저들의 힘과 경찰력을 분산시키는 길이다.
당사를 평택공장 앞으로 옮기겠다는 민주노동당의 적극적인 태도도 반갑다. 진보정당들, 시민사회단체, 종교 단체 들의 기자회견이나 농성도 더 확산돼야 한다.
먹지도 씻지도 면도도 못하면서도 여전히 불타는 태양같은 눈빛으로 초인적 투쟁을 벌이고 있는 영웅들에게 최루액과 테이저건이 아니라 물과 음식, 무엇보다 승리가 전달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