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전면 파업 선언으로 경제위기 고통전가에 맞선 투쟁의 선봉에 섰다. 정부와 보수 언론들은 이것이 금호타이어 투쟁과 결합되고 ‘노동 유연화’에 걸림돌이 될까봐 조바심을 내고 있다.
이명박과 지배자들은 켜켜이 쌓인 노동자들의 불만이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는 걱정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노동부는 올해 초에 노조의 저항을 단속할 ‘집중관리 사업장’까지 정해놨지만, 그 대상 중 하나인 한진중공업에서 새해 벽두부터 투쟁이 시작됐고 전면 파업으로 발전했다.
이것은 노동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지배자들에게 보내는 통쾌한 경고다. 사측의 악랄한 ‘고통 분담’ 강요를 거부한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전체 노동자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도대체 회사를 이 지경으로 만든 자들이 아니라, 왜 노동자들이 쫓겨나야 하는가? 회사가 어렵다면서 왜 위기의 책임자인 조남호는 수십, 수백억의 주식배당금을 챙겼는가? 그동안 회사를 살려 온 노동자들이 왜 ‘고비용·비효율’의 주범자로 낙인 찍혀 고통분담을 강요받아야 하는가?
보수 언론들은 “기업이 어려울수록 회사에 협력하라”며 한진중공업 파업을 비난한다. 그러나 그동안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회사의 고통강요에 협력할 이유가 없다.
“불똥 맞아 타들어간 작업복[에] 테이프[를] 덕지덕지 넝마처럼 기워 입고, 한겨울에도 찬물로 고양이 세수해 가며”(김진숙 지도위원) 일해 온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고난이 한국을 세계 1위 조선 강국으로 만들었다. 지난 수년 동안 회사에 막대한 부를 안겨준 노동자들은 조남호가 함부로 버릴 존재가 아니다.
정신 나간 탐욕과 무능한 경영으로 위기를 만든 조남호와 조원국 이야말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들이 곳간에 쌓아둔 돈을 내놓고 고용보장과 위기해결의 대책을 내놔야 한다.
폐휴지
지금 사측은 수빅조선소를 들먹이며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임금과 끔찍한 작업 조건, 줄 이은 산재사망으로 점철된 수빅조선소의 ‘죽음의 공장’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노동자들의 죽음과 고통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는 “경쟁력”을 도대체 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가? 최근 벌어지고 있는 도요타의 위기야말로 무리한 원가절감, 비정규직 확대, 해외공장 확대에 기반한 “경쟁력”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보여준 것 아닌가!
지난 2개월 동안 사측의 해고 압박 속에서 수백여 명의 동료들이 울음을 삼키며 회사를 떠났고, 1천명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쫓겨났다. 조남호는 노동자들을 폐휴지 취급하며 기업 경쟁력을 위해 회사를 떠나라고 위협했다. 사측 관리자는 “다수가 살기 위해 작은 것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냉혈한 같은 말도 서슴지 않았다.
따라서 ‘회사가 살려면 노조도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저들의 더러운 강요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사측은 최근 노조의 양보안조차도 거부하며 “물량이 없으면 정리해고밖에 [답이]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노동자들의 일정한 양보로 실리를 챙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더구나 양보는 오히려 우리 편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혼란만 부추길 수 있다. ‘불가피하게 우리도 일정한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을갖게 만들고, 투쟁의 정당성에 확신을 잃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난 두 달간 투쟁을 지속하고 연대를 확대하자 사측이 잠시 한 발 물러섰던 것처럼, 단호한 투쟁을 벌일 때 진정으로 정리해고를 철회시킬 수 있다. 이것은 노동자들을 괴롭히며 파업의 기를 꺾으려는 사측의 야비한 ‘희망퇴직 종용’도 차단할 수 있는 길이다. “단 한명의 정리해고도 받아들이지 않고” 싸우겠다는 지도부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줄 때, 파업대오도 강고해질 수 있다.
무엇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전면 파업에 돌입하고, 그 효과를 극대화시켜 사측을 압박하는 일이다. 사측은 바로 내일부터 협력업체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풀 가동시켜 어떻게든 파업의 효과를 반감시키려 할 것이다.
따라서 1994년과 2003년처럼 공장과 크레인을 점거하고 조업을 중단시키고, 단결의 힘을 극대화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투지와 자신감을 높이고 연대의 초점을 형성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1994년 LNG선 점거파업으로 승리를 거머쥐었던 기억을 다시 끄집어낼 때다.
더불어, 지난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한 비정규직 조직에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이럴 때 사측이 비열하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파업 방해에 이용하려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단결을 통해 투쟁의 힘을 배양할 수 있다. 현재 해고투쟁을 벌이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연대투쟁이 그 첫 출발이 될 것이다.
최근 사측은 교섭에서 현 사태가 “한진중공업 노사 간의 문제가 아니라 재계와 노동계 [사이의] 문제”라고 했다. 한진중공업 구조조정을 통해 ‘노동 유연화’의 길을 닦겠다는 이명박과 지배자들의 이해관계가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은 한진중공업 파업이 승리할 수 있도록 시급히 연대투쟁을 조직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올해 노동자 투쟁의 시발점이 된 한진중공업 파업이 승리해야 금속노조, 민주노총 소속의 더 넓은 노동자들의 투쟁에 활력과 자신감을 불어 넣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삼호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사들을 비롯한 경남지역 노동자들의 연대투쟁이 중요하다. 조선업 구조조정이 확산되고 있는 지금, 함께 힘을 합쳐 중공업 노동자들의 힘을 보여주자.
그 동안 정부와 보수 언론들은 쌍용차 파업을 투쟁 단속용 무기로 활용해 왔다. 저들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불법 폭력파업을 했다가는 쌍용차처럼 당할 줄 알라’는 협박을 반복했다. 하지만 저들의 협박은 오히려 대량해고에 맞선 강력한 점거파업의 ‘악몽’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기도 하다.
물론, 적잖은 노동자들이 ‘쌍용차처럼 격렬하게 싸우면 고립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갖고 있다. 쌍용차 파업은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지만, 일종의 ‘패배의 기억’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77일 간 영웅적 파업을 벌인 쌍용차 투사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말할까?
파업 직후 구속됐다가 최근 석방된 고동민 동지는 보수 언론들이 쌍용차 파업을 거론하는 이유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한다. “정부와 언론들은 쌍용차처럼 싸우면 노조를 다 말살하겠다고 하는데, 이것은 거꾸로 그들이 점거 파업을 겁내고 있는 것입니다. 무서우니까 오히려 불안감을 조성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지난 1월 석방된 양형근 동지는 “우리는 강력히 싸워서 고립된 것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점거파업은 오히려 연대의 초점을 만들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연대에 나섰습니다”
고동민 동지도 이렇게 말했다. “해고되고 구속되고 돌아가신 분들도 있었지만, 이런 고통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우리 투쟁을 지지하고 엄호했던 동지들 때문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는 “점거 파업 만큼 노동자들에게 단결을 일깨워 줄 수 있는 것은 없다”고도 했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니까, 동지애가 생기고 투지가 높아졌습니다. 파업이 노동자의 학교였던 것입니다.”
양형근 동지는 한진중공업에서도 공장 점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조합원들이 개별적으로 있으면 나약해지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점거 파업을 통해 하나로 뭉쳐 있었기 때문에 힘이 생겼습니다. 서로 격려하고 어깨 두들겨 주면서 갈 수 있었죠.”
쌍용차 파업이 고전을 겪은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쌍용차 투사들은 이구동성으로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연대 부족을 지적했다. 박금석 전 쌍용차 지부장 직무대행은 특히 이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쌍용차 파업은 총 자본과 정권에 맞선 투쟁의 대리전이었습니다. 그런데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전면적으로 투쟁을 조직하고 책임지지 못했습니다. 강력한 힘이 발동되지 못해 고립된 것입니다.”
쌍용차 파업이 절정에 달했을 때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지도부는 ‘계급 대리전’ 성격에 걸맞는 광범한 노동자 연대를 조직하지 못했다.
고동민 동지도 연대 투쟁 건설보다 양보 압박에 힘을 쏟은 금속노조 지도부를 비판했다. “금속 지도부가 양보론을 얘기했는데, 이게 정말 싫었습니다. 98년 현대차 파업에서도 양보에 매달려선 안 된다는 평가가 있었는데 말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폐착의 원인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처음에는 설마 2천6백46명을 전부 자르겠냐고 생각했는데, 자본은 정말로 모두를 해고했습니다.”
양형근 동지도 ‘선제적 양보론’을 비판했다. “우리가 늦게 양보안을 내서 문제였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양보는 소용 없는 일입니다. 얻는 것은 없이 현장만 혼란스러워지고 자신감만 다운됩니다. 게다가 한 번 양보로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한진중공업 노조가 [사측이 요구하는] 무급휴직을 받아들여도 그걸로 끝이 아닐 겁니다. ”
그는 힘이 있을 때 단호하게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쌍용차 싸움을 두고 사람들이 패배의식을 가질까봐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옳았습니다. 투쟁이 정당하다면 싸움을 주저해선 안 됩니다. 해고자 명단이 발표되기 전에, 힘이 있을 때 강력히 싸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