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대학 총학생회 선거를 돌아보며
2005년 대학 총학생회 선거 결과를 두고 학생 운동 내에서 논란이 많은 듯하다. ‘비운동권’을 표방하는 후보가 연세대, 이화여대, 한양대, 성균관대, 한국외대, 서강대 등 수도 서울의 주요 사립대학에서 대거 당선했다는 점 때문이다.
〈조선일보〉와 같은 우익들은 이 점을 이용해, 마치 운동권 쇠퇴와 비운동권 강세가 장기적 추세인 양 호들갑을 떤다. “비운동권의 약진은 …… 학생운동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쉽게도 일부 학생 운동 활동가들도 이런 패배적 생각을 공유하는 듯하다. 학생운동 내에서도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구분은 무의미해졌다”는 평가들을 심심치않게 듣게 됐다.
그러나 올해 선거를 사회 전체의 세력 관계와 연관지어 바라본다면, 이러한 분석이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올해 선거는 대중 급진화와 노무현의 우경화 과정에서 진행됐다는 점에 큰 영향을 받았다.
노무현 정권은 자본가 계급의 일부 뿐만 아니라 피억압 대중 조직의 일부에도 자신의 지지 기반을 두고 있는 포퓰리즘 정권이다. 이 점 때문에 탄핵에 반대하는 시위 규모와 노무현의 파병 강행에 반대하는 시위 규모 사이에 커다란 격차가 발생했던 것이다.
그런데 탄핵 이후, 그리고 최근에 가속화되는 노무현의 우경화 때문에 노무현의 왼쪽 지지 기반에 정치적 공백이 생겨났다. 지난 2002년 대선 때 노무현을 지지했고 올해 초 탄핵에 반대했지만, 노무현의 우경화를 접하고 실망하면서 아직 새로운 정치적 거처를 찾지 못하여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바로 올해 대학 총학생회 선거는 노무현의 우경화에 따라 노무현 왼쪽 지지 기반이 급진화함과 동시에, 이 급진화가 아직은 학생 운동 조직 좌파의 이데올로기보다는 오른쪽에 머물면서 형성되는 정치적 공백을 메우기 위한 경쟁의 장이었다. 이 때문에 운동권과 비운동권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중도자유주의 혹은 중도좌파적 스펙트럼으로 수렴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 벌어졌던 것이다.
가령 이화여대의 경우 탄핵반대 운동에 적대적이던 우파적 후보가 당선했는데, 이들이 선거 운동 기간에는 탄핵반대 운동과 반전 운동에 대한 우파적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자신들의 우파적 원칙을 그대로 내보였다가는 분명히 낙선할 것이라는 급진화 압력이 작용했을 것이다.
반면 학생 운동 좌파들은 대다수 급진 좌파이기 때문에 앞서 지적한 정치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타협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실제로 학생회는 공동행동기구이므로, 당연히 이전의 관성대로 정치조직의 강령을 학생회에 그대로 적용하는 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현명한 태도가 아닐 것이다. 게다가 경제불황의 심화에 따라 학생들이 느끼는 교육서비스 저하와 경제적 압력의 증가에 대한 불만을 투쟁으로 조직해야 한다는 압력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의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복지 공약이나 등록금과 청년 실업 문제 등을 주요 정책으로 내놓는 것을 두고 ‘운동권의 비권화’라고 비판하는 것은 부적절한 비판일 것이다.
그러나 일부 운동권 후보들은 타협의 정도가 지나친 경우도 있었다. 가령 서강대의 한대련 계열과 연세대의 한대련+PD 계열 후보들은 학생회의 ‘정치적 중립성’ 압력에 타협함으로써 의도치않게 비운동권 후보의 의제에 더 힘을 실어주는 격이 됐다.
고려대와 서울대의 반미청년회 계열 후보들은 노무현 왼쪽의 정치적 공백을 좌파민족주의적 의제로 메우려 했다. 그런데 이들은 “강한 나라 강한 고대”, “동북아 물류, 교통의 중심지. 경제강국 COREA” 같은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한국 지배계급과 노무현이 갖고 있는 아류제국주의적 열망에 무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과도한 타협을 취했다.
사실 올해 총학생회 선거가 앞서 지적한 정치적 공백을 메우기 위한 경쟁이었다면, 그 공백을 누가 메우느냐는 전적으로 정치적?조직적 영향력에 달려 있다. 서울대, 경희대, 고려대 같이 학생 운동 조직 좌파들이 강력한 곳에서는 비운동권이 이 공백을 메우지 못했다. 반면 비운동권이 당선된 한국외대나 신촌 지역 대학들의 경우 좌파가 취약해진 대학들이었다.
학생 운동 조직 좌파가 일부 대학에서 취약해진 데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는 조직 좌파의 이데올로기 위기와 학생회 개입의 문제점에서 찾을 수 있다.
조직 좌파의 이데올로기적 위기는 그들이 추구했던 대안 사회(북한 혹은 소련)가 위기를 겪으면서 커졌다. 이 과정에서 조직 좌파 내에서 점차 이데올로기적 분화가 촉진되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부분적으로는 정치조직과 학생회를 뒤섞어서 활동한 문제점도 있었다. 이것이 낳는 두 가지 측면의 문제점을 지적해보겠다.
첫째, 공동행동기구인 학생회를 정치조직처럼 운영하다보니 새롭게 급진화하는 학생들을 충분히 개방적으로 대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몇 년 전부터 학생들의 급진화가 종종 기존 학생운동 조직의 영향력 밖에서 표현되는 것을 보게 됐다. 가령 여중생 촛불 시위나 탄핵 반대 시위 등에서 많은 학생들이 학생 운동 조직 좌파가 운영하는 학생회와 별도로 개별적으로 참가했다.
둘째, 정치조직이 학생회 활동에서 비롯하는 개량주의적 압력들로부터 자유롭지 않게 돼, 급진 정치조직의 이데올로기를 발전시키거나 활동가들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재생산하는 능력이 저하됐다.
앞서 나는 공백을 메우느냐는 좌파의 영향력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좌파가 얼마나 회복하느냐에 따라 내년 선거 결과는 올해와 또 달라질 수 있다. 실제 몇 년 째 비운동권이 당선된 성균관대의 경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조직 좌파들이 몰락해 커다란 공백을 낳게 됐지만 최근 연대회의와 한총련 등의 좌파들이 그 공백을 메우기 시작했다.
역대 비운동권을 표방한 총학생회는 대부분 학생들의 경제적 권익을 보호하는 데에도 운동권 총학생회보다 못한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비운동권이 단과대 학생회까지 뿌리를 내리거나, 비운동권의 강세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대학은 거의 드물었다.
이는 앞서 언급한 ‘비운동권 대세론’이 큰 그림에서 보자면, 설득력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존 운동권의 정치적 위기가 영향력의 축소를 가져오긴 했지만, 여전히 건재하다.
또한 새로운 급진화의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물론 학생들의 의식 급진화가 곧바로 행동으로 표현되지는 않고 있다. 이는 학생들을 짓누르는 사회적 압력이 경제 불황 때문에 매우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급진화는 폭발적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여중생 촛불시위나 탄핵 반대 시위 등에서 언뜻 이런 잠재력을 보았다.
새 세대 학생운동은 우익에 맞서는 운동, 학생들의 교육 서비스와 경제 조건 악화에 맞서는 투쟁, 전쟁과 신자유주의와 같은 세계적 부조리에 맞서는 급진적 저항을 얼마나 더 굳건히 건설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달려 있을 것이다.
정병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