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드러난 팔루자의 진실
살람 이스마엘 박사는 11월 팔루자를 구호차 방문했다. 이스마엘 박사(28세)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기 전까지 바그다드 청년의사회 대표였다. 그는 지난해 4월에 미군이 팔루자를 공습했을 때 부상자를 치료하기 위해 팔루자에 있었다. 그가 지난해 11월 조지 W 부시가 재선된 직후 미군이 어떻게 한 도시를 파괴했는지 증언한다.
처음 나를 엄습한 것은 형언하기조차 힘든 냄새였고, 그 냄새는 절대 가시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것은 죽음의 냄새였다. 수백 구의 시신이 가정집과, 마당, 팔루자의 거리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남자들과, 여자들, 어린애들의 시체들이 죽은 자리에서 그대로 썩어 가고 있었고, 그 중 다수는 야생 개들에게 반쯤 뜯긴 상태였다.
증오의 물결이 도시의 2/3를 날려버렸고, 집과 사원과 학교, 병원들을 파괴시켰다. 이것이 바로 미군 공격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내가 그 후 몇 일 동안 들은 이야기들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아마도 팔루자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진실은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처참하다.
팔루자 인근 임시 난민 수용소인 사클라위야에서 우리는 17살 된 한 소녀를 만났다.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저는 팔루자의 욜란지구에서 온 후다 파우지 살람 이사위입니다. 55세의 이웃 노인을 비롯해 우리 다섯 명은 포위공격이 시작된 후 우리 집에서 함께 갇혀 있었습니다.
11월 9일 미 해병대원들이 우리 집에 왔습니다. 우리 아빠와 이웃어른은 그들을 맞이하러 현관으로 갔습니다. 우리는 투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겁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베일을 쓰러 부엌에 뛰어들어갔습니다. 외간 남자들이 집에 들어올 때 맨 머리카락을 보이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 덕분에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우리 아빠와 이웃어른이 현관에 다가가자 미군들이 발포했습니다. 아빠와 이웃어른은 즉사했습니다.
저와 13살 난 제 동생은 부엌에 있는 냉장고 뒤에 숨었습니다. 군인들은 집안으로 들어와서 우리 언니를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우리 언니를 마구 때린 다음 총으로 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저희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집기들을 부수고 우리 아빠의 주머니에서 돈을 훔치고 난 후 곧바로 떠났습니다.
후다는 코란 경전을 읽어주며 죽어가는 언니 곁을 지켰다. 4시간 후에 후다의 언니는 죽었다. 후다와 그녀의 남동생은 살해된 친척들의 시신을 곁에 두고 사흘 동안이나 지냈다. 그러나 그들은 목이 말랐고 먹을 것이라고는 몇 개의 데이트(-중동지역의 대추야자) 밖에 없었다. 그들은 군대가 되돌아 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마을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들은 미군 저격수에 의해 발각되었다.
후다가 다리에 총을 맞자 남동생은 곧 달아났지만, 등에 총을 맞아 그 자리에서 죽었다. 그녀는 말했다. 저는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자 미군에게 발견되었고 그녀는 저를 병원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녀는 마침내 살아남은 가족들과 재회하게 되었다.
나는 욜란지구에 살던 또 다른 가족의 생존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미군의 포위 공격이 시작된 후 둘째 주가 끝나갈 무렵 미군은 욜란에 진격해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라크 방위군은 주민들에게 모든 짐을 챙겨 백기를 들고 집밖으로 나오라고 확성기로 소리쳤다. 그들은 마을의 중심인 자마 알푸르칸 사원 주변으로 모이라고 명령했다.
11월 12일 에야드 나지 라티프와 이제 겨우 6개월 된 아기를 포함한 여덟 명의 가족들은 지시 받은 대로 짐을 챙겨 한 줄로 서서 사원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사원 밖 큰 길에 다다랐을 때 어떤 고함소리를 들었지만, 그들은 그 소리가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에야드는 그 소리가 영어로 "당장!" 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서 곧 발포가 시작되었다.
미군들은 집 주변의 지붕 위에서 발포했다. 에야드의 아버지는 심장에 총을 맞고 그의 어머니는 가슴에 총을 맞았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즉사했다. 에야드의 두 형제들도 한 명은 가슴에, 또 한 명은 목에 총을 맞았다. 두 누이들도 한 명은 손에, 또 한 명은 다리에 총을 맞았다.
그리고 나서 저격수들은 에야드의 한 형제의 부인을 죽였다. 그녀가 쓰러졌을 때 다섯 살 난 아들이 달려와 그녀의 시체에 다가 섰다. 그러자 그들은 아이마저 쏴 죽였다.
생존자들은 군인들에게 쏘지 말라고 필사적으로 호소했다.
그러나 에야드는 그들 중 어느 한 명이 백기를 들려고 할 때마다 총을 맞았다고 말했다. 몇 시간 후 그는 백기를 든 팔을 올리려고 했다. 그러나 미군은 그의 팔에 총을 쐈다. 마지막으로 그는 손을 들어 보이려 했다. 그러자 그는 손에 총을 맞았다.
6개월 된 아이를 비롯한 다섯 명의 생존자들은 7시간 동안 길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러다가 그들 가운데 네 명은 대피할 곳을 찾아 가장 가까운 집으로 기어갔다.
다음날 아침 목에 총을 맞은 에야드의 남자 형제도 가까스로 안전한 곳으로 기어왔다. 그들 은 그 집에서 8일 동안 머무르며 풀 뿌리와 아기에게 줄 물 한 컵으로 살아 남았다.
8일째 되던 날 그들은 어떤 이라크 방위군 대원들에게 발견되어 팔루자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들은 미군들이 젊은 남자들을 모조리 잡아가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병원에서 도망쳐 나와 결국 인근 마을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들은 지시대로 사원에 간 다른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거리가 온통 피바다였다고 말했다.
나는 영국에서 기부금으로 조성된 인도적 구호물품 호송단의 참가자로서 지난 1월 팔루자에 왔다.
우리의 작은 호송단은 트럭과 밴에 밀가루 15톤, 쌀 8톤, 의약품, 그리고 고아들에게 줄 900벌의 옷을 싣고 왔다. 우리는 마을 외곽에 위치한 4개의 수용소에 수 천명의 난민들이 극도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곳에서 우리가 들은 얘기들은 집안에서 가족들이 살해된 얘기, 길거리에 끌려 나온 부상자들을 탱크가 깔고 지나간 얘기, 481구의 민간인 시체가 있는 어떤 컨테이너, 계획된 살인, 약탈, 그밖에 믿기 힘들 정도의 잔인한 만행들에 관한 것들이었다.
폐허의 한가운데서
그래서 우리는 팔루자로 들어가 실상을 조사하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도시로 들어갔을 때 나는 과연 이 도시가 첫 포위공격이 있었던 2004년 4월에 내가 의료봉사 했던 그 도시가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우리는 폐허 속을 유령처럼 헤매는 사람들을 목격했다. 어떤 이들은 친척들의 시체를 찾고 있었다. 또 어떤 이들은 파괴된 집안에서 소지품들을 되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여기 저기서 작은 무리의 사람들이 연료와 식량을 받으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줄에 서 있던 몇몇 생존자들은 담요 한 장을 두고 싸우고 있었다.
나는 눈이 온통 눈물로 짓무른 한 할머니가 내게 다가왔던 기억이 난다. 그 할머니는 내 팔을 움켜잡고 공중 폭격 때 미군의 폭탄에 맞아 자신의 집이 어떻게 부서졌는지를 말해 주었다. 19살 된 아들 위로 천장이 무너져 내려 아들의 양쪽다리가 잘려나갔다.
그녀는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미국인들이 지붕에 저격수를 배치해 두고, 심지어 한밤중에도 밖으로 나오는 사람은 모두 죽이고 있었기 때문에 길거리로 나올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지혈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이 죽을 때까지 아들 곁을 지켰다. 그가 숨을 거두기까지는 4시간이 걸렸다.
포위공격 첫날 미군은 팔루자의 가장 큰 병원을 장악했다. 다른 유일한 병원인 헤이 나잘도 미군 미사일에 두 번이나 폭격을 당했다. 병원의 약품과 의료 장비는 모두 파괴되었다.
앰뷸런스조차 없었다. 부상자를 이송하러 온 두 대의 앰뷸런스는 미군들의 총격으로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도시 북서부에 위치한 가난한 노동자들의 주거지역이자 4월 공격 때 저항의 중심지였던 욜란지구의 집들을 보러 갔다.
두 번째 공격이 감행되는 동안 미군은 마치 이 지역을 처벌대상 1호로 지정한 것 같았다. 우리는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침대 위에 죽어 있거나 거실이나 부엌에서 죽은 가족들을 발견했다. 집집마다 집기들은 부서지고 가재도구들은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몇몇 곳에서는 검은 옷에 탄약 띠를 맨 저항군의 시체가 발견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집안에 있던 시체들은 민간인들이었다. 많은 이들은 실내복을 입은 채였고, 많은 여성들은 얼굴을 베일로 가리지 않은 상태였는데, 이는 집안에 가족 외에 다른 남자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기도 없었고 탄약을 사용한 흔적도 없었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이 대량학살의 현장, 그것도 힘없고 무방비 상태의 민간인들에 대한 냉혈한 살육의 현장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점령군은 지금 자신들의 범죄를 은폐하려고 그 지역을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있다. 팔루자에서 일어난 일은 잔학한 만행이다. 전세계는 진실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