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들에게 보내는 긴급 서한]
민주노총 전 수석부위원장 강승규 구속 여파에 붙여
강승규(이하 존칭 생략) 비리 구속 사태에 직면해 민주노총 소속 현장조합원 대중의 심정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사실, 강승규 비리는 개인 차원의 비리다. 검찰조차 처음에 그를 구속할 때 민주노총 기구 전체 차원으로 해석하지 말아 달라고 주문했다. 물론 검찰은 그를 구속하면서 사람들이 그 사건을 민주노총 기구 전체 차원으로 확대해서 해석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래야 민주노총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이 확산될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개인의 행위를 그가 속해 있는 조직과 단순히 동일시할 수는 없다. 가령 ‘노동자의 힘’ 회원이었던 현대차노조 위원장 이상욱 씨가 비정규직 노동자 저항을 사용자와 거래해 팔아넘겼을 때 양식 있는 좌파라면 아무도 그를 ‘노동자의 힘’ 단체의 표상으로 규정하고 ‘노동자의 힘’ 단체 자체를 배신적 노조 관료집단으로 매도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동안 ‘노동자의 힘’이 이상욱에게 타협했었던 것이었지, 이상욱과 같은 정치를 공유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만일 열우당 개혁파 지지자인 어느 노조 지도자가 이상욱 위원장과 비슷한 행위를 했다면 우리는 그 정파와 그 노조 지도자를 한데 싸잡아 비판했을 것이다. 그 행위가 열우당 개혁파다운 행위였으므로 말이다.
이수호 위원장 등 민주노총 온건파 상근간부 전체가 아무리 강승규만큼 온건할지라도 모두 강승규처럼 사용자로부터 뇌물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양식 있는 좌파라면 민주노총 집행부 전체를 강승규와 동일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개량주의와 수뢰행위는 같은 것이 아니다. 비록 노조 상근간부의 개량주의가 사용자와의 도가 지나친 유착을 불러 심지어 사용자로부터 뇌물을 받는 지경에 이르게 할 수 있다 해도 개량주의가 반드시 수뢰행위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가난이 범죄의 주요 원인이라는 진술로부터 가난한 사람은 대체로 범죄자(잠재적 범죄자일지라도)라는 진술을 도출해 낼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비록 극우파는 그런 편견을 가질지라도 말이다.
그러므로 지금 일부 현장노동자들의 이수호 집행부 사퇴 요구는 비리 면에서 집행부와 강승규를 동일시한 것에서 비롯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동안 이수호 집행부의 개량주의 또는 지나친 온건함에 대한 불신과 관계가 더 깊다.
한편, 민주노총의 일부(대체로 좌파) 상근간부들이 지도부 총사퇴 요구를 들고 나온 것은 자신들이 강승규 비리와 같은 비리의 일부가 아님을 대외적으로 천명하고 실추된 민주노총의 명예를 만회한다는 취지인 듯하다. 물론 차기 지도권을 내다본 움직임이라는 측면도 일부 있을 것이다.
변혁적 반자본주의자들에게 중요한 점은 이 두 가지다. 즉, 집행부 사퇴를 지지하는 일부 현장조합원들의 전투성을 전폭 수용해야 한다는 점과 노조 상근간부층이 좌우로 분열했을 때는 우파와 견주어 좌파를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다함께〉 회원들이 현안인 민주노총 집행부 총사퇴 건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갈등에서 총사퇴 입장을 지지하기 바란다. 총사퇴 직후의 공백은 비대위가 메우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변혁적 반자본주의자는 지도부가 누구로 채워지느냐도 무시할 수 없으나 그보다는 현장조합원들 자신의 투쟁, 구체적으로 말해 하반기에 치르기로 돼 있는 전투를 현장조합원 대중이 잘 싸우도록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해야 한다.
특히, 비정규직과 로드맵 등 현안 노사관계 쟁점들을 둘러싸고 11월로 예정돼 있는 하반기 민주노총 총력파업은 부시 방한과 아펙 개최, 12월 이라크 파병연장 시도, WTO 등 신자유주의 경제정책들의 추진 등등 하반기 투쟁에 거의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배계급은 강정구 교수 마녀사냥, 강승규 구속을 통한 민주노총 전체에 대한 마녀사냥 등을 통해 선제공격을 가하고 있다. 우리 노동계급과 여타 피억압 민중 진영은 선진 노동자와 활동가 전체를 결속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이에 맞서고 반격해야 한다.
2005년 10월 14일
최일붕(‘다함께’ 운영위원회를 대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