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재선 평가
10·26 재선 결과는 무엇을 보여 주는가?
10·26재선 결과는 무엇을 보여 주는가? (Ⅱ)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과 "거리를 둬야" 하는가?
10.26 재선 결과는 무엇을 보여 주는가?
김인식
10월 26일 재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울산 북구에서 의석을 잃었고, 나머지 세 선거구에서는 당 지지율보다 낮은 득표를 했다. 울산 북구에서 수성 실패 때문에 민주노동당은 창당 이래 최대 시련을 겪고 있다.
정말이지, 많은 사람들이 울산 북구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승리해 주류 사회의 탄압과 배제와 무시에 통쾌한 일격을 가하고 싶어했다. 그런 기대가 컸던 만큼 선거 결과에 당원들이 느꼈을 상심은 클 것이다. 특히, 헌신적으로 선거 운동을 했던 사람들일수록 그 결과는 뼈아플 것이다.
우리 당은 지금 시련을 겪고 있다. 그러나 그 시련이 단기간에 그칠지 아니면 장기적이 될지는 예정돼 있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의 시련을 장기적 성장을 위한 교훈을 이끌어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울산 북구의 선거 결과 분석을 중심으로 당의 진로를 위한 교훈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울산 북구의 선거 운동과 그 결과가 당의 가능성과 약점을 모두 분명하게 보여 주기 때문이다.
또한, 나 자신이 민주노동당 선거운동을 하기 위해 울산에 내려가 꼬박 일주일 간 밤낮 없이 돌아다니며 노동자들을(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를) 만난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자신 있게 의견을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계급 투표
10월의 정치 정세는 민주노동당에 유리하지 않았다. 민주노총 강승규 전 수석부위원장의 금품 비리는 ‘민주노총의 당’으로 등식화돼 있는 민주노동당에게는 심각한 악재였다. 강정구 교수에 대한 우익의 마녀사냥도 보수세력의 결집을 자극했다.
전국적인 정치 상황과 함께, 울산 북구의 구체적 상황과 당의 주관적 요소도 선거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후자의 약점이 전자의 불리한 조건을 만회하기 어렵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총선에서 조승수 전 의원은 2만 7천2백12표를 얻어 한나라당의 윤두환보다 7천2백60표를 앞섰다. 그러나 이번 재선에서 정갑득 후보는 2만 2천8백35표를 얻어 윤두환보다 1천7백93표 뒤졌다. 당은 1년 반 사이에 9천53표를 잃었다.
울산 북구 전체 선거인 수는 9만 6천5백90명으로 지난해보다 8천7백30명이 늘었지만, 정갑득 후보의 절대 득표수는 지난해 조승수 후보보다 감소했다. 재선거의 투표율이 총선보다 낮다는 점을 감안해도 당의 절대 득표수는 지난 총선보다 4천3백77표가 줄었다. 지난해 총선 때 당을 지지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당에 묶어두지 못한 것이다.
지지율 하락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영향을 끼쳤다. 10월 27일 당 최고위에서 방석수 기획조정실장은 선거 패인을 이렇게 요약했다.
“△ 촉박한 선거 준비 △ 조승수 의원직 박탈에 대한 대중투쟁 부족 △ 자영업자 주부 등 중간층 확보 실패 △ 비정규노조와 노동자들의 열의를 충분히 조직하지 못함 △ 노동계 비리에 대한 대중적 거부감 △ 당의 지역행정에 대한 주민의 반감 등.”
방 실장이 지적한 선거 패인들은 실제로 당의 선거 운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각각의 선거 패인들이 미친 효과는 결코 똑같지 않다. 선거 패인의 병렬적 열거는 우리 당이 선거 결과로부터 올바른 교훈을 이끌어내지 못하게 하거나 각 경향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엉뚱한 교훈을 내리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주된 요인 요인과 부차적인 요인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방 실장은 구체적으로 지적하지 않았지만, 선거 패인의 핵심은 후보와 관계 있다. 당이 부적절한 후보를 내세웠다는 점이 다른 요인들의 부정적 효과를 상쇄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것은 무엇보다 정 후보의 노조 위원장 시절 전력과 관련 있다. 정 후보는 노조위원장 시절에 비정규직을 16.9퍼센트로 확대하는 데 합의했다. 또, 회사로부터 돈을 받아 자동차 해외매각 반대 광고를 냈고, 이 일로 노조위원장직을 사퇴했다.
민주노동당 후보가 배신적 타협을 한 전력이 있는 노조 지도자 출신이었으므로 노동자들의,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표 열의는 크게 떨어졌다.
비정규직 노동자들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정규직 노동자들도 정 후보에 대해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다. 양정동과 염포동의 선거 결과는 이 점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두 곳은 현대차 공장과 마주하고 있는 노동계급 밀집 거주지역이다. 대규모 현대차 사택도 이 곳에 있다. 또, 노동계급의 집단적 생활 패턴을 전형적으로 보여 주는 곳이다. 양정동과 염포동에서 정갑득 후보는 5천7백83표(득표율 65.7퍼센트)를 얻은 반면, 윤두환은 2천6백72표(득표율 30.4퍼센트)를 얻었다. 정 후보가 3천1백11표 앞섰다. 2004년 총선에서도 조승수 전 의원은 이 지역에서 5천2백28표를 얻어 윤두환(1천9백68표)보다 3천2백60표 앞섰다. 지난해와 올해 모두 이 지역에서 민주노동당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를 3천여 표 앞섰다.
정 후보는 조 전 의원보다 5백여 표를 더 얻었다. 그러나 지난해에 비해 올해 선거인 수가 2천8백73명이 더 증가했다. 늘어난 선거인 수를 고려한다면 정 후보가 더 나은 득표를 했다고 할 수는 없다.
게다가 이 지역 투표율은 울산 북구의 전체 투표율과 엇비슷한 52퍼센트 정도였다. 양정동과 염포동이 민주노동당의 ‘텃밭’이고 당이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는데도 노동자들의 투표율이 다른 지역보다 더 높지 않았던 것이다. 요컨대, 계급 투표의 양상은 두드러졌지만 노동자들의 투표 의욕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던 것이다.
투표 의사를 밝힌 노동자들도 한결같이 ‘후보는 싫지만 당을 봐서 찍겠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말해, 유명한 영화제목대로 ‘미워도 다시 한 번’ 같은 심정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노동자들의 투표율 제고에 큰 장애물이 됐다.
한나라당 후보는 야비하게도 이 점을 집요하게 물고늘어졌다. 이 자는 ‘비정규직 확대 합의한 노동귀족을 뽑지 말자’고 선동했다. 그러나 정 후보는 한나라당 후보의 우파 포퓰리즘적 선동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정 후보는 자신은 ‘비정규직을 16.9퍼센트로 늘리되 더는 늘리지 않겠다고 합의했는데 회사가 이를 어겨 50퍼센트까지 늘렸다’는 식으로 대처했다. 노동자들은 ‘그렇다고 16.9퍼센트 확대를 합의한 사실이 없어지냐’고 냉소적으로 반응했다.
이 모든 사실들이 뜻하는 바는, 사회 기층의 의식이 진보하고 있는 시기에 민주노동당 후보의 보수성은 득표율 제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동계급과 자영업자
그래서 많은 노동자들은 “앞으로 노조위원장 출신이 민주노동당 후보로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곤 했다. 한 노동자는 “왜 우리에게 이런 선택을 강요합니까” 하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배신적 타협의 전력이 있는 노조 지도자가 당 후보로 나오는 것에 대한 노동자들의 곤혹스러움이 짙게 배어 있다.(이 점에서 당내 경선 때 정 후보를 지지한 쪽은 자신들이 계급적 대의보다 분파적 이해관계를 앞세운 것은 아닌지 반성적으로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당 일각에서는 선거 패배의 충격(그리고 잇단 노조 간부 비리) 때문에 당이 “민주노총과 거리를 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 주장이 정 후보 같은 보수적인 노조 지도자와 거리를 둬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합리적 핵심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직 노동계급과 거리 두기를 뜻하는 것이라면, 선거 결과로부터 완전히 잘못된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노조 상근간부층과 현장조합원을 구별해야 한다.
그 동안 우리 당은 노조 상근간부층을 매개로 현장 노동자들과의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노조 상근간부층이 현장 노동자들의 염원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줬다. 우리 당은 현장 노동자들에 기반해야 한다. 그들의 정서와 투쟁에 접속해야 한다.
방석수 실장이 지적한 자영업자 등 “중간층 확보” 실패도 노동자들의 투표 행태와 모종의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지금으로서는 “중간층”(중간계급)의 투표 행태에 대해 정확한 통계를 제시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정갑득 후보의 절대 득표수는 지난해 총선 당시 조승수 전 의원의 득표수보다 감소했는데, 여기에는 중간계급의 표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기권까지 감안하면 중간계급의 지지는 지난해보다 감소했을 것이라는 점을 미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누가 누구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느냐 하는 것이다. 즉, 이번 선거에서 어느 계급의 투표 행태가 다른 계급의 투표 행태에 영향을 줬는가 하는 것이다. 중간계급의 지지 감소는 노동계급의 투표 의욕 저하와 모종의 관련이 있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자영업자들의 지지 감소가 노동계급에 영향을 미쳤다기보다는 그 반대였다는 것이다.
나는 선거 운동 기간에 한 노동자가 동네 상점주인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1998년 정리해고를 기억합니까. 그 때 우리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당하면서 공장 앞 가게들이 다 망하지 않았습니까. 노동자들이 잘돼야 가게도 살 수 있는 겁니다.” 그 노동자는 노동계급과 자영업자의 관계를 경험을 빌어 쉽게 설명한 것이다.
울산 동구의 한 당원도 나에게 지난해 총선 일화를 들려 준 적이 있다. “공장 앞 고깃집 주인이 공공연하게 한나라당 선거 운동을 했었다. 선거 끝난 뒤 현대차 노동자들이 이 사실을 알고는 그 집에 발길을 끊었다. 얼마 뒤 그 고깃집은 문을 닫았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우리 당이 여전히 계급 투표를 고무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런 염원에 부응하는 후보가 출마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
당의 의석이 법안 발의에 한 석 부족한 9석이라는 사실이 당의 행보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칠 것이다. 벌써부터 열우당과의 ‘개혁’(도대체 어떤 종류의 개혁인가? 친세계화 신자유주의적 개혁?)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것은 자멸적인 전술이다.
울산 북구의 선거 결과는 이 점을 잘 보여 준다. 지난해 열우당 후보는 1만 2백43표(17.5퍼센트)를 얻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고작 2천7백11표(5.4퍼센트)를 얻었다. 지난해 선거가 탄핵 반대 운동의 후폭풍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1년 반 동안 열우당의 인기가 얼마나 형편없이 추락했는지를 뚜렷하게 보여 준다.
우리 민주노동당이 의회적 산술 때문에 열우당과 공조한다는 것은 예정된 그 당의 몰락과 운명을 같이하는 것일 뿐이다. 오히려 이번 선거를 통해 우리 당이 배울 교훈은 현장 노동자들, 더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매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본을 파일(한글)로 첨부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