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동자들이 사측의 공격을 막아내다
전지윤
보름 가까이 전국적 초점이 됐던 현대차 성과급 충돌이 결국 노동자들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노동자들은 단호한 투쟁을 통해 성과급을 떼먹으려던 사측의 시도를 무산시켰다. 사측은 ‘목표 달성 격려금’이라고 이름만 바꾼 성과급을 2월말에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생산 차질 물량 만회를 조건’으로 했지만, 노동자들이 2월말까지 정상적으로 일하면 어차피 채워질 물량이다.
손배·고소고발·가처분 신청 철회가 합의문에 명시되지 않은 것은 매우 아쉽다. 그러나 현대차노조 집행부는 그것도 이면합의했으며, 합의문의 “금번 사태로 발생한 제반 문제에 대해 조기에 원만히 해결토록 최선을 다한다”는 게 그 뜻이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노조의 무분별한 정치파업 행태에 경종을 울릴 수 있었다”는 현대차 사측의 평가보다는 “결국 ‘울면 준다’는 종전 관행을 되풀이 했[고] … 파업하니 돈 주더라는 이미지를 다시 각인시킨 것”이라는 〈조선일보〉의 평가가 솔직해 보인다.
‘성과급은 받게 됐지만, 잔업·특근 거부와 부분파업으로 생긴 조합원들의 임금 손실도 크다’며 이번 성과를 흠집내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물질적 성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치적·조직적 성과이다.
노동자들은 이번 투쟁으로 노조의 조직력을 더 강화시킬 수 있었다. 집행부 일원의 업무상 배임으로 집행부가 중도 사퇴하는 틈을 노려 노조를 약화시키려던 사측의 시도는 실패했다. 민주노총 정치파업 참여를 빌미로 한 공격을 막아낸 것이기에 투쟁의 정치적 정당성·자신감도 지켜냈다.
이 때문에 다가오는 집행부 선거에서 우파 후보의 위상은 크게 약화됐다고 한다. ‘빨리 투쟁 접고 잔업·특근 열심히 하자’고 했던 ‘뉴라이트 신노동연합’ 쪽은 명함도 못 내밀 분위기라고 한다.
사측의 무기력한 후퇴에 언론과 정치인들의 실망과 한탄이 이어지고 있다. 〈조선일보〉는 “해방구라고 해야 하나? 옳지. 울산 ‘코뮌’이 맞겠다”는 한 관리직원의 말을 인용했다. 노동부 장관 이상수도 “회사가 양보하는 식으로 타협을 한 것은 실망스럽다”고 했다.
“이런 강성노조는 이 땅에 더 이상 발붙여서는 안 된다”던 박근혜의 꿈은 깨졌고, 김근태도 “환율보다 무서운 노조”의 힘을 느꼈을 것이다.
그 힘은 잔업·특근 거부, 상경 투쟁, 항의 집회, 부분 파업 등을 강력히 벌여 온 현장 노동자들에게서 나왔다. 이번 투쟁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열기와 참여 수준은 매우 높았다. 이전과 달리 관리직 조합원들까지 예외없이 파업에 동참했다. 이런 아래로부터 압력이 모든 현장조직들이 선거 연기를 합의하고 공동 투쟁에 나서도록 이끈 동력이었다.
정부와 언론, 사측은 이 동력을 깨뜨리기 위해 온갖 공격을 가했다. ‘귀족노조’ 운운하는 온갖 거짓말과 이간질이 펼쳐졌다. 손배 청구, 고소고발, 가처분 신청이 이어졌고, 노동부 장관 이상수는 ‘경찰력 투입’까지 암시했다. 검찰은 노조 집행부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서겠다고 했다.
지지와 연대
그러나 쏟아지는 공격과 비난뿐 아니라 현대차 노동자들의 힘을 북돋아 준 지지와 연대가 있었다. 1월 10일 현대차 본사 항의집회에는 금속노조 소속 현대차 부품업체 노동자들이 참가했고, 무엇보다 적들의 이간질을 무색케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지지가 있었다.
현대차 아산·전주·울산 비정규직지회는 1월 15일 공동성명에서, 성과급 미지급을 “정규직 노조뿐 아니라 비정규직 노조에 대한 탄압이며 도발”이라고 규정하며 “강탈당한 임금을 찾는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 투쟁”을 지지했다.
1월 16일에는 하이닉스 매그나칩, 기륭전자, 현대하이스코 등 주요 비정규직 노조들이 공동성명에서 “현대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며, 이후 금속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연대 투쟁에 나설 것”을 약속했다. 기아차 정규직 노조도 투쟁 계획을 발표하며 성과급 투쟁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 같은 연대와 단호한 투쟁이 성과를 가져 온 것이다.
물론, 부분파업을 지속하며 전면파업까지 확대했다면 더욱 분명한 승리를 얻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크다. 그러나 이헌구 전 위원장 구속으로 비난 여론과 이데올로기 공세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박유기 집행부는 투쟁의 마무리를 택했다.
이헌구 전 위원장은 2003년에 파업 조기 중단을 조건으로 사측에게 2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아직 진상이 분명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현대차 사측은 노조 상층 간부를 뇌물로 매수해서 현장조합원들의 투쟁을 통제하려 한 듯 하다. 따라서 노조 상층 간부들은 현장조합원들의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하고, 사측과 담합한 노조 간부의 배신에 대비한 현장조합원 운동과 조직도 필요하다.
이번 투쟁과 승리는 엄청난 여론 공세와 탄압에도 생산을 타격하는 강력한 힘으로 맞서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한겨레〉의 지적처럼, 이번 투쟁은 올해 “한국 노사관계의 판세를 가늠하는 기싸움”이었다. 이 기싸움에서 현대차노조를 손 봐서 전체 노동자들에게 본보기를 보이며 기선을 제압하려던 저들의 의도는 실패했다. 노동자들은 되려 노사합의를 어기면 그만한 대가를 치른다는 본보기를 보여 주었다. 이것은 노사합의를 휴지조각처럼 무시해 온 기업주들에게 경고를 보내고, 이에 맞서 힘겹게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다.
모호한 합의문이 남긴 불씨 때문에 언제 다시 사측이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 따라서 현대차 노동자들은 이번의 성과를 바탕으로 다음 투쟁을 대비해야 한다.
이번 투쟁에 대한 지지에 보답하고 저들의 이간질에 맞서기 위해서도 정규직·비정규직 연대에 결코 소홀해서는 안 된다. 강고한 연대는 우리 편의 힘을 배가시키고 저들의 이간질을 무력화시킬 것이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성과급을 돌려주는지 똑똑히 감시해야 한다. 2·3차 하청업체 비정규직에 대한 성과급 지급도 요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저들이 그렇게 못마땅해하는 정치파업과 연대 투쟁을 중심으로 한 산별노조 건설에 주력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친제국주의 정책에 맞선 정치 투쟁에 더욱 앞장 서 참여하는 것이 현대차를 비롯한 모든 노동자들의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