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붕 (‘다함께’ 운영위원회를 대변하여)
한국진보연대(이하 진보연대)가 공식 출범을 열흘 남짓 남겨두고 있다. 진보연대가 한국 진보 운동 전체의 단결체임을 표방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므로, 진보연대에 가입하지 않기로 한 단체들도 입장 표명을 강하게 요구받고 있다. 다함께로 말하자면, 자주계열(NL) 활동가 동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오히려 가입하지 않기로 했다. 이 글은 그에 대한 이유를 설명한다.
맑스와 레닌은 어떤 정치 단체를 판단하려면 그 말이 아니라 행동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레닌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사람들을 판단하는 기준은 그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아니라 그들의 정치 행동이다”(1915년 초반에 씌어진 걸로 추정되는 “잘못된 기치 하에서”라는 글).
진보연대는 상설 연대체를 표방하며 건설되기 시작했다. 연대체는 전통적 용어로는 ‘전선’이라고 한다. 전선체는 정당과 다르다. 어떤 점에서 다르냐 하면 상이한 정치 조류가 한데 모인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과연 진보연대가 그런가?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그저 자주계열 일색이다. 그러므로 진보연대는 전선체가 아니다. 그것은 자주계열의 정당이다. 비록 계열 내에 상이한 분파가 존재할지라도 말이다.
이에 대해 진보연대 간부들은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고 말한다. 즉, 다른 정치 조류가 동참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른 정치 단체는 어떤지 몰라도 적어도 다함께에 대해서는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다른 단체들도 나름의 불참 이유는 있고 진보연대가 그에 대해 설득력 있게 설명한 듯하지도 않다.
다함께로 말하자면, 우리는 진보연대(준) 출범을 위한 논의에 몇 차례 참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진보연대식 모델이 자주계열의 정치 원칙과 우리의 원칙이 충돌하는 경우에는 단결을 강요하고(마치 원칙의 차이가 의미 없고 사소한 문제인 양함으로써), 사안별 연대체 안에서 공동 행동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진보연대의 우위를 고집해(마치 사안별 연대체가 더는 필요 없게 된 양함으로써) 분열을 일으킬 것이라는 점을 우려했다.
진보연대(준) 출범 논의 과정에서 우리는 사안별 연대체를 주변화시키지 않겠다는 진보연대(준) 간부들의 말을 믿고 단지 한 가지만 논의하자고 했다. 연대체는 연대체답게 정치적으로 느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진보연대 출범이 가까워지면서 사안별 연대체에 대한 진보연대 간부들의 태도가 애당초 우리가 우려했었던 대로 흘러가는 듯해, 우리의 회의론을 증폭시키고 있다. 진보연대 간부들은 사안별 연대체가 진보연대의 커버(엄폐물) 구실을 해야 한다고 보거나, 그렇지 않으면 더는 중요하지도 가치가 있지도 않다고 보아, 광범한 운동은 모두 진보연대의 기치 하에 또는 진보연대 간부들의 주도로 구축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예컨대 진보연대는 최근호 진보연대 반전평화위원장을 파병반대국민행동의 상황실장으로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파병반대국민행동의 상황실장 자리는 2004년 8월 이후 공석이었고, 만약 필요하다면 파병반대국민행동 구성원들이 결정할 일인데 말이다.
국가보안볍폐지연대(이하 폐지연대) 사무총장 인선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나타났다. 박석운 집행위원장은 폐지연대 사무총장에 진보연대 한용진 민주민권국장을 내정·통보했다. 폐지연대 활동을 총괄해온 인물이 있는데도, 진보연대 민주민권국장이라는 이유로 폐지연대 회의나 행사에 참석한 적 없었던 인물이 사무총장에 인선된 것이다.
11월 1백만 총궐기 주최 문제도 있다. 1백만 총궐기는 한미FTA 범국본 같은 사안별 연대체들이 결집해 개최하는 게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진보연대는 사안별 연대체들을 활성화시키기보다 진보연대 주도로 조직위를 만들 구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주최 문제는 운동을 확대하기 유리한 방법으로 확정돼야 할 것이다.
코끼리
다시 정치적으로 느슨할 필요에 대한 얘기로 돌아가자면, 이것은 결국 자주계열의 정치 원칙 문제였다. 우리는 자주계열 동지들에게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으니 ‘민족 자주’와 ‘반미’를 고집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만약 자주계열 동지들이 그런 식으로 자신의 특수 표지를 고수하려 한다면 우리인들 국제주의, 노동자 권력 따위를 앞세우지 말라는 법 있겠느냐며 반문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진보연대(준) 지도부의 대응은 단순한 조삼모사였다. ‘민족 자주’ 대신 ‘나라의 자주권’으로 말을 바꾸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이것은 진정한 논점을 벗어나는 것이다. 표현 자체가 문제 됐던 것이 아니라 그 표현으로 요약되는 좌파민족주의 강령과 이데올로기가 문제 됐던 것이다.
우리는 좌파민족주의 강령과 이데올로기만이 득세하는 분위기 속에서 허구한 날 강령과 이데올로기를 둘러싼 논쟁으로 귀중한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거나 아니면 국제주의나 노동자 권력 같은 자신의 원칙에 충실하지 않은 절조 없는 단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거나 하는 두 가지 나쁜 선택만을 강요받고 싶지 않았다.
이 점은 민주노동당과 비교해 보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은 단지 자주계열뿐 아니라 평등계열(PD)과 그 밖의 다른 조류들도 있는 데다, 수도에서는 자주계열, 평등계열, 그리고 다함께 등 좌파가 대략 3등분하고 있어서 세 조류 사이에서 갈등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협력도 존재한다. 특히, 자주계열과 다함께 사이에서 평등계열이 때때로 충격 흡수 구실을 하게 되곤 한다.
진보연대에는 이런 세력 균형이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다함께가 진보연대에 가입한다면 자주계열과 다함께 사이에 세력 관계의 구조적 불균형이 존재하게 돼, 자주계열은 마치 응접실의 코끼리 같은 신세가 될 것이다.
그리 되면 설사 자주계열이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직무 안배를 한다 해도 소수파인 우리는 불만을 갖게 마련이다. 실세를 갖고 있는 제3세력이 중간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의도하지 않아도 자주계열이 진보연대를 주름잡게 마련이다. 하물며 자주계열은 핵심 간부 임무는 말할 것도 없고 이미 스물대여섯 명의 상근·반상근 활동가를 확보해 놓는 등 개방적인 직무 안배에도 별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전통과 그동안의 전력상 민주적 운영도 기대하기 어렵다.
상설 연대체가 이처럼 경직되게 운영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진정한 행동 통일은 오히려 원칙 문제들을 놓고 분리해야 이룰 수 있다. 원칙 문제들을 놓고 제대로, 조직상으로 분리하지 않는다면 단결이 가능한 당면 이슈들을 제대로 다룰 수 없게 된다. 진보연대 안에서 원칙 문제들을 둘러싼 논란으로 끊임없이 마비된다면, 원칙의 훼손 없이 공동 행동이 가능한 전술 문제들을 일관성 있게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일단 원칙을 놓고 조직 분리를 하면 당면 문제들을 놓고 연대하는 것이 더 쉬워진다.
스탈린주의 유산
예로부터 자주계열 동지들이 애써 전선체를 구축한다면서도 실제로는 의도치 않게 자신들의 정당이라 할 수 있는 조직을 구축하게 되는 아이러니는 바로 그들이 스탈린주의 유산의 일부인 ‘통일전선’ 개념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개념으로는, 다른 사람들과 연대하려면 사회 변혁 사상과 강령을 공유해야 한다.
또한, 그렇게 해서 부자연스럽게 형성된 연대체는 상설이든 한시든 전체 운동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즉, 전체 운동을 반영하는, 전체 운동의 표본이라는 것이다.
이런 개념들의 효과는 이데올로기와 포괄적 강령이 다른 운동 단체들을 이반시키는 한편, 운동을 지배하겠다는 유혹은 자주계열 간부들 사이에서 더 키울 것이라는 것이다.
지면 제약상 말을 맺자면, 진보연대는 진보운동을 단결시키지 못할 것 같다. 오히려 특정 정치 조류 고유의 이데올로기와 포괄 강령을 고집하는 종파적 방식과 운동을 지배하려는 일종의 직·반장(職班長) 같은 태도 때문에 운동을 분열시킬 것 같아 우려된다.
대안은 자주계열이 진보연대를 그냥 자신의 독자 정당으로 보고 오히려 각종 사안별 연대체와 진짜 상설 연대체인 민주노동당을 진정으로 강화하는 일에 인내심 있고 겸허하게 동참하는 것이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 주지 않고 운동을 진정으로 결속시키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물론 다함께는 사안별로 진보연대의 투쟁을 지지하면서, 진보연대의 활동가들과 함께 바람직한 연대 형식의 본보기를 만들려 애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