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사회와 이명박 정부를 뒤흔들며 1백 일 이상 계속된 촛불 운동의
열기가 맑시즘2008로도 이어졌다. 조계사 농성자들의 화상 연설 모습.
‘다함께’가 올해로 벌써 8년째 주최하는 대규모 진보 포럼 ‘촛불들의 축제 ─ 맑시즘2008’이 8월 14일부터 17일까지 고려대에서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특히 올해는 한국 사회와 이명박 정부를 뒤흔들며 1백 일 이상 계속된 촛불 운동의 열기가 맑시즘2008로도 이어졌다.
‘촛불들의 축제’를 막기 위해 고려대 당국은 행사를 불허했고 보수 언론은 온갖 공격을 해댔다. 고려대 당국은 ‘토론 주제로 이명박 반대가 들어가서…’라는 식의 억지 근거를 대며 “행사를 강행하면 해당 건물의 수도, 전기, 네트워크의 불능화 조처”를 할 것이며 “물리적 충돌도 배제할 수 없다”고 협박했다. 〈동아일보〉는 “촛불이 꺼진 자리에 이제 극좌가 다시 판을 벌이려는 것인가” 하며 맑시즘2008을 비방했다.
그러나 학생회 등 고려대 학내 22개 단체가 맑시즘2008을 후원했고 고려대 총학생회와 단과대·학부 학생회로 구성된 중앙운영위원회는 맑시즘2008이 “많은 학우들이 진보적 사상을 접할 수 있는 유익한 기회”라며 행사 불허 조처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또한 민주노동당, 전교조, 금속노조, 한국진보연대, 진보신당 강원도당 등 2백4개 시민사회단체들이 맑시즘2008을 후원했다. 전교조, 공무원노조 등에서는 수많은 장비까지 지원해 줬다. 고려대 출교 철회 투쟁과 촛불집회 등을 통해 다함께를 알게 된 한 일본인은 자신의 가게를 놀이방 장소로 기꺼이 대여해 줬다. 참가자들의 맑시즘2008 후원금도 3백18만 원이나 모였고, 공연팀들은 거의 개런티 없이 공연을 해 줬고, 연사로 초청받아 멀리 마산에서 올라온 백무산 시인은 다함께가 제공한 차비를 후원금으로 냈다.
이런 지지와 후원 덕분에 맑시즘2008은 온갖 방해를 뚫고 1천2백여 명이 참가자로 등록한 가운데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 이것은 이명박과 우파의 공세 속에서 촛불들에게 힘을 줄만한 의미있는 승리라 할 수 있다.
맑시즘2008의 개막식은 조계사에서 농성중인 수배자들을 연결해 이원 생중계로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박원석 광우병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과 한용진 광우병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한국진보연대 대외협력위원장), 김광일 광우병국민대책회의 행진팀장(다함께 운영위원)이 바로 앞에서 말하는 것처럼 생생한 연설을 들을 수 있었다.
박원석 상황실장은 “촛불은 생명을 경시하고 인간다움을 훼손하는 천박한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이었다”고 연설했다. 한용진 상황실장은 “촛불 운동 시즌2를 준비하자”고 했고 김광일 행진팀장도 “이명박의 무덤을 파기 위해, 이윤보다 인간을 위해 촛불을 계속 들자”고 연설했다. 개막식에 참가한 한 시민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마디로 멋있었다. 촛불을 들고 다시 싸울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했다.
촛불들의 축제
이처럼 멋지게 시작한 맑시즘2008에서는 나흘 내내 급진적 주장과 대안이 거침없이 펼쳐졌다. 참가자들은 촛불 운동의 성과는 무엇이고 약점은 무엇이었는지, 이명박 정부에 맞서 어떻게 싸울 것인지를 열띠게 토론했다. 신자유주의와 전쟁에 맞선 저항과 대안을 풍부하고 치열하게 논의했다. 신자유주의와 전쟁에 대한 구체적 분석과 폭로도 넘쳐났다.
영국에서 온 대안세계화 운동가 조너선 닐과 맑스주의 역사가 이언 버철,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과 이정희 의원, KBS 이강택 PD,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 김수행 교수, 정성진 교수 등 40여명의 연사들이 맑시즘2008을 빛내 주며 이런 토론에 기여했다.
촛불 운동에서 만났던 반가운 사람들이 맑시즘2008에서도 그 열정을 마음껏 발산했다. 덕분에 맑시즘2008은 매일 활력이 흘러넘쳤고 청중토론 시간이 항상 부족할 정도로 활발한 주장들이 이어졌다. 서로에게 힘과 영감을 주는 토론들이 가득했다.
참가자 중에서 여성이 절반 이상이었고 대학생도 전체 등록자의 절반을 차지했다. 이주노동자와 청소년들의 참가도 눈에 띄었다. 전국 각지에서 맑시즘2008에 참가했고 한 고등학생은 멀리 정읍에서 새벽 4시 차를 타고 올라와 참가하는 열정을 보였다. 또 촛불집회에서처럼 청소년 자녀의 손을 잡고 함께 참가한 부모님도 많았다.
맑시즘2008 참가자들의 맑스주의 정치에 대한 관심은 대단히 높았다. ‘촛불 서점’에서는 진보적 책들이 무려 1천 권 가량 판매됐다. 연사인 조너선 닐의 새 책 《두 개의 미국》은 1백 부 이상 팔렸고, 《영국 노동당의 역사》,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여성해방과 혁명》, 《민중의세계사》, ‘트로츠키 전기 3부작’(《무장한 예언자》, 《비무장의 예언자》, 《추방된 예언자》) 같은 책들이 많이 팔렸다.
혁명가들의 사상과 맑스주의 기본 이론·정치를 다룬 다함께 발행 소책자들도 많은 관심 속에 4백 권 정도 판매됐다.
맑시즘2008은 연대의 장이기도 했다. 이랜드 노동자들은 커피와 책 판매, 모금 활동으로 투쟁기금 1백23만 원을 마련했고, 목숨을 걸고 단식 투쟁중인 기륭전자 노동자에 대한 지지금도 83만 원가량 모였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 투쟁기금 모금과 어청수 파면 촉구 서명, 촛불 수배자들에게 지지 글 쓰기, 강제 추방된 이주노동자에게 편지 보내기 등도 많은 호응을 얻었다. 파병반대국민행동의 반전 사진전도 인기가 많았고, 동성애자인권연대의 행사와 구속노동자후원회, 학교자율화반대 청소년연대의 서명운동도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보다 많은 여성들이 맑시즘2008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준 놀이방에서는 25명의 어린이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시와 문학의 밤’, ‘작은 영화제’, 각종 전시회도 맑시즘2008에 참가한 촛불들에게 많은 즐거움과 영감을 줬다. 이 모든 것은 1백20명이 넘는 진행팀의 노력과 수고로 뒷받침됐다.
한 노동자는 “최근 촛불집회에 참여하며 느낀 게 많았고 이론적 관심도 생겼는데, 맑시즘2008은 갑갑했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줬다. 이번을 계기로 정체성을 찾았고 힘도 생겼다”고 평가했다.
포항에서 온 한 대학생은 맑시즘2008에 참가하고 나서 “하나의 문제가 사실은 다른 문제들과 다 연결돼 있다는 것, 그것이 맑스주의[적 분석]의 매력인 것 같다”고 했다.
이명박에 맞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
중앙대 학생 참가자는 “흔히 소련, 중국, 쿠바 같은 사회주의는 이미 실패했다고 들어 왔는데, 이번에 토론에 참가하면서 그런 사회가 사회주의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까닭에 미래 사회주의에 대한 희망을 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연세대 한 학생은 “평소 들을 수 없는 노동자와 활동가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고, 환경·교육 등 다양한 주제도 좋았다. 고려대 당국이 이런 좋은 행사를 불허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언론노조 최상재 위원장은 “맑시즘2008을 통해 이명박의 언론 장악에 반대하는 공감대가 매우 넓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내가 본 토론회 중 가장 활발하고 정열적인 토론회였다. 깊고 진지한 논의를 할 수 있는 큰 기회였다. 이 촛불들의 축제가 이명박 정부를 좌절시키는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고 맑시즘2008에서 연설한 소감을 밝혔다.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박상표 정책국장은 “청년·학생부터 노년층까지 참가할 수 있는 이런 포럼을 개최해 앞으로 촛불이 나아갈 방향을 함께 논의할 수 있게 한 것은 매우 좋은 시도였다”고 평가했다.
맑시즘2008의 폐막식 ‘세계 경제 위기와 촛불항쟁 ― 이명박에 맞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에서 맑스주의 역사가이며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활동가인 이언 버철은 오늘날 세계가 경제 위기, 전쟁, 기후변화 등 세 가지 중대한 위기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이안 버철은 이 위기 속에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더 큰 고통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세계 곳곳에서 저항이 벌어지고 있다는 데 희망이 있다. 한국의 촛불도 빼어난 저항의 사례다. 세계가 촛불에서 배워야 한다. 중요한 것은 전 세계 곳곳의 저항과 투쟁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결집해서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이라는 것을 확인할 때,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조직으로 뭉쳐 강력한 힘을 가질 때 역사의 흐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더 많은 사람들을 투쟁에 합류시키며 인류를 위협하는 세 가지 위협에 더 효과적으로 맞서야 한다. 우리에게는 쟁취할 세계가 있다.”
이어서 최일붕 다함께 운영위원이 연설했다. 그는 1987년의 위대한 민주화 항쟁 이후 20년 동안 일어난 변화를 분석해 촛불 운동의 과제와 연결시켰다.
“87년 이후의 민주화는 자유주의 야당이 아니라 노동자 대중투쟁으로 얻은 것이다. 지금 이명박의 반동을 80년대식 권위주의로 회귀라 보고 민주당을 연대 세력으로 보면 안된다.
“87년 이후 노동조합, 진보정당, NGO 등 개혁주의자들이 등장했고 이들은 이번 촛불 운동의 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촛불이 어느 선 이상 나가지 않도록 한 것도 사실이다.
“87년 이후 성장한 조직 노동계급의 존재는 이번 촛불 운동의 잠재적 최대 이점이었다. 노동계급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선전·선동·조직해야 했지만, 그런 노력은 크지 않았다.
“촛불 운동은 반정부 투쟁이었고,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이었다. 촛불 운동은 의식과 조직의 성장이라는 가장 중요한 성과를 낳았고, 이명박 지지율은 여전히 20퍼센트 정도에 머물러 있다. 새 세대의 활동가와 투사들도 등장했다.
“자발성이 충만한 새 세대가 적극적인 정치활동에서도 그 자발성을 발휘하길 바란다. 함께 토론하고 행동하자.”
폐막식은 국제 저항운동의 노래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며 끝을 맺었다. 폐막식 이후 고대 민주광장에서는 매가진 킹·윈디시티·킹스턴루디스카가 함께하는 ‘촛불 잔치’가 열려 신나는 음악과 춤, 뒤풀이가 어우러졌다.
맑시즘2008은 끝났지만, 거리에서 촛불들의 축제와 저항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