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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참패했다. 강원도와 경남 등 텃밭에서마저 패배했다. 특히 이달곤, 정진곤 등 MB맨들이 줄줄이 낙선했다. 통쾌하다.
이명박의 주요 기반이라던 수도권에서도 한나라당은 패배하거나 고전을 면치 못했다. 오세훈은 가까스로 패배를 면했다.
김문수는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 중 하나인 덕분에, 또 아마도 유시민이 국민참여당 후보로 나와 민주당 지지자들의 지지를 충분히 받지 못한 덕분에 그나마 수성할 수 있었다.
높은 투표율이 보여 주듯이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 의사를 표출하기 위해 투표장으로 향했다. 특히 공식 정치에 대한 환멸 때문에 투표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젊은 층들도 과거에 비해 적극 투표에 참가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명박 정부가 지난 2년반 동안 추진한 경제 위기 고통 전가, 민주적 권리 공격, 4대강 삽질 등 친기업·반민주 정책들을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것은 그동안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진정한 대중 정서를 반영하지 못했음을 보여 준다. ‘촛불이 꺼진 후 사람들이 보수화됐고 이명박의 친서민 중도실용이 먹히고 있다’는 관측은 틀렸던 것이다. 반신자유주의 정서와 급진화는 여전히 물 밑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경기 회복을 자랑해 왔지만, 재벌과 부자 들만 그 열매를 가져가고 대중에겐 고통만 전가되는 현실에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것도 드러났다.
이 때문에 이미 몇 달 전부터 이명박 정부의 선거 패배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우파 언론들 사이에서 나왔다. 〈조선일보〉는 3월 말 “청와대에도 ‘이대로는 선거가 어렵다’ ‘민심이 심상치 않다’는 보고서가 연일 올라온다”고 보도했다. 여론조사에서도 ‘국정 안정론’보다 ‘정권 심판론’이 더 큰 지지를 얻었고 ‘개발과 뉴타운’이 아니라 ‘무상급식과 복지’가 핵심 선거 이슈였다.
이 상황에서 3월 26일 천안함이 침몰했고 곧이어 이명박 정부는 북풍 몰이를 시작했다. 간첩 사건이 터져나왔고 한나라당 조전혁의 전교조 명단 공개도 이어졌다. 선거 패배를 모면하기 위해 보수층 결집을 시도했던 것이다. 이명박은 전쟁기념관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며 북풍 몰이를 했다. 오바마 정부까지 “확고하고 분명한 지지”를 보내며 힘을 실어 줬다.
그러나 북풍 몰이는 무리수였다. 특히 젊은층 사이에서 오히려 역풍을 부른 듯하다. 젊은 층은 선거 직전 여론조사들에서 한나라당이 크게 앞선 것으로 나오면서 다소 의기소침했을 법한데, 그럼에도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심정으로 투표장으로 갔던 듯하다.
실제 이명박 정부의 북풍 몰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1990년대 이전의 냉전 상황으로 회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위기감을 느끼게 했다.
뒤늦게 이명박은 북풍 속도 조절에 나섰지만 때는 늦었다.
북풍과 노풍
매섭게 인 반이명박 파고의 수혜를 입은 것은 민주당이다. 한나라당은 ‘과거 정권 심판론’을 내세워 민주당 집권 10년의 부정적 기억을 되살리려 애썼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 대한 대중적 반감에 기대어 ‘노풍’이 불었다. 노무현의 ‘좌희정’ ‘우광재’라 불리던 안희정과 이광재, ‘리틀 노무현’ 김두관이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승리했다. 한명숙도 초반 열세를 딛고 오세훈을 바짝 따라잡았다. ‘노풍’이 ‘북풍’을 이긴 셈이다.
강력한 반이명박 정서가 한때 “폐족”으로 몰렸던 친노 정치인들을 부활시킨 것이다. 그것도 겨우 2년 만에 부활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민주당을 혼쾌하게 지지한다고 보긴 어렵다. 〈한겨레〉는 “야당이 진정으로 좋아서 표를 주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여권 독주에 대한 견제심리가 발동하면서 반사이익을 건졌다는 분석이 더 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도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한 도구로 시민들이 [민주당을] 일시 활용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방선거 패배로 이명박 정부의 집권 하반기 내리막길은 이제 본격화할 것이다. 〈조선일보〉 고문 김대중은 “MB정권의 유효성을 어느 정도 연장시키려면 지방선거의 승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거기서 지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우려한 바 있다.
이제 권력누수가 심해지고 세종시나 개헌을 둘러싼 한나라당 내부의 아귀다툼도 더 심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경제 위기 고통 전가 노력을 결코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남유럽 재정 위기가 보여 주는 ‘더블 딥’의 압박과 한국의 국가 부채, 재정적자 증가의 압박이 있기 때문이다. 〈중앙일보〉는 “지방선거는 끝났다. … 이제 정치 과잉의 열기에서 벗어나 다시금 경제를 살리기 위해 신발끈을 고쳐 매야 할 때다. … 구조조정, 노사관계 개선, 국책은행 민영화 등 인기 없고 골치 아픈 현안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고 상기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도 어떤 식으로든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이번에 이명박이 너무 싫어서 민주당을 찍은 사람들도 그 당을 지켜볼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 위기 고통 전가, 민주적 권리 공격, 4대강 사업 등에서 민주당이 일관되게 반대해 싸우는지를 말이다.
반MB 민주대연합의 승리인가?
민주노동당은 이번 선거를 “반MB 민주연합의 승리”라고 평가한다.
물론 한나라당이 참패했고, 민주당이 부활했고, 민주노동당은 지난 2006년 지방선거에 비해 전진했다.
분당 전인 2006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광역의원 15명, 기초의원 66명이 당선했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인천 남동구청장과 동구청장, 울산 북구청장 등 기초단체장 세 명과 광역의원 23명, 기초의원 1백16명이 당선했다(여기에 광역의원 3명과 기초의원 22명이 당선한 진보신당까지 합하면, 진보정당들은 2006년에 비해 곱절 성장했다).
선거적 계산으로 본다면 민주노동당은 반MB 민주연합을 통해 분명히 실리를 챙겼다. 민주노동당이 수도권에서 처음으로 기초단체장에 당선한 것(그것도 두 군데에서)은 민주노동당이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을 밀어 준 대가였다.
우리는 이미 선거적 관점에서만 본다면 반MB 민주연합이 민주노동당 같은 군소 진보정당이 의석을 늘릴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민주노동당이 ‘스타’ 정치인은 없지만 기층 조직이 비교적 탄탄하므로 반MB 민주연합을 통해 민주당 후보와 맞붙는 것을 피할 수 있다면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선거적 실리를 챙긴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반MB 민주연합에 더 매달릴 것 같다. 이의엽 민주노동당 정책위 부의장은 “이번에 나타난 민심을 잘 보고, 오는 7월과 내년 상반기와 하반기 모두 세 차례의 재보궐 선거를 시험대로 삼아 2012년 총선과 대선의 선거연합을 잘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계급투쟁의 관점
그러나 선거적 관점에서만 봐서는 안 된다. 계급투쟁과 계급 정치의 관점에서 본다면 반MB 민주연합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첫째, 이번 선거에서 가장 중요했던 수도권 선거에서 진보정당의 목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었다.
민주노동당은 수도권에서 민주당/참여당을 위해 후보를 사퇴했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진보정당으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색깔을 보이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강기갑 대표의 표현)을 무릅쓰고 곳곳에서 민주당 당선을 위해 자당 후보를 사퇴시켰다.
지난 10여 년 동안 진보 염원 대중은 투표와 투쟁을 통해 민주당의 영향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그러나 이번에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민주당을 구하려 애썼다. 진보적 강령을 내세워 진보 염원 대중의 신뢰를 획득한 뒤 이 신뢰를 대부분 민주당에 헌납한 것이다.
그 결과 서울처럼 중요한 지역(반MB 민주연합 압력이 가장 심하기도 했던)에서 민주노동당은 기초단체장뿐 아니라 광역의원 선거까지 전멸했다.(기초의원 3명이 당선했을 뿐이다.) 정당 득표도 전국 평균의 절반 정도에 그쳤다.
반면, 진보신당 서울 구청장 후보들(영등포구, 관악구)은 완주해 각각 7.6퍼센트와 5.7퍼센트를 얻었다.
노회찬 진보신당 서울시장 후보는 반MB 민주연합의 압착이 너무 심해 평소 지지율의 절반에 그치긴 했지만 말이다.(이번 선거에서 진보신당은 두 가지 길 — 경기와 부산에서 반MB 민주연합을, 서울에서는 독자 완주를 — 채택했는데, 두 길 모두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둘째,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반MB 민주연합을 호소했지만(이것은 민주당 지지를 호소하는 것이었다), 1백52만 명(7.2퍼센트)이 광역의원 비례투표에서 민주노동당에 투표했다. 진보신당 정당 득표(3.1퍼센트, 65만 명)까지 합치면 2백17만 명이 민주당이 아닌 진보정당들에 투표했다.
이것은 상당수 대중이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민주당 지지 호소를 순순히 따르지 않음을 보여 주는 지표다.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는 1936년 6월 프랑스 공산당의 민중전선 정책의 모순을 이렇게 지적했다.
“[공산당은] 인민 앞에서 급진당의 수호자가 됐다.
“이들은 노동자와 농민에게 완전한 구원은 바로 달라디에[급진당(친자본주의 중간계급 정당) 지도자] 내각이라고 확신시키고 있다.
“이것이 바로 선거 운동 기간의 주제였다. 이에 대한 대중의 응답은 무엇이었는가? 공산당을 철저한 좌익으로 인정하고 이 정당에게 엄청난 표와 의석을 선사한 것이었다.”
셋째,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반MB 민주연합 전략은 머지않아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인천에서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통해 당선한 민주노동당 구청장들은 인천시장으로 당선한 송영길이 앞으로 펼칠 시 재정적자 해소 정책이 노동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단지 인천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대선에서 민주대연합을 통해 연립정부를 구성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지도부의 의도와 다른 현실이 펼쳐질 수도 있다. 사태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가 곧이어 위기를 맞는 경우는 허다하다. 민주당은 과거에도 동요하다 배신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핵심 지지 기반의 계급적 성격 때문이다. 그래서 〈한겨레〉와 〈경향신문〉도 반MB 정서가 이렇게 강한데도 민주당 지지율이 형편없다고 자주 개탄했었다.
이런 이유로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반MB 민주연합 프로젝트가 옳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완전히 일면적이다. 모순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고 기계론적인 것이다.
넷째, 무엇보다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반MB 민주연합을 위해 반MB 진보연합을 희생시킨 것은 커다란 정치적 패착일 수 있다. 진보적 정치 대안의 전망을 부재 상태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의엽 민주노동당 정책위 부의장은 “선거연합이 성사된 곳은 MB심판이 효율적으로 이뤄졌고, 그렇지 못한 지역에서는 좀 아쉬운 면이 있다”고 했다. 반MB 민주연합이 언제나 선거적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것처럼 암시한 셈이다.
이번 선거에서 반MB 민주연합이 전국 수준에서 선거적 성공을 거둔 것은 사실이다. 광범한 차악次惡(민주당) 선택 정서 덕분이다.
그러나 반우파 국민연합이 언제나 선거적 성공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차악도 악이긴 마찬가지’라는 정서가 더 광범하면 그렇게 된다.
가령 2004년 미국 대선에서 미국 진보진영은 ‘부시만 아니면 누구든 좋다’며(Anybody But Bush) 민주당 후보 존 케리를 지지했지만 패배했다. 존 케리와 민주당이 이라크 전쟁을 지지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지지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 지난 3월 이탈리아 선거에서 재건공산당은 민주당과 반(反)베를루스코니 연합을 이뤄 대항했지만 패배했다. 민주당의 배신적 전력으로 대중이 투표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6·2지방선거는 지난 3월 프랑스 지방선거와 더 유사한 면이 있다. 우파 대통령 사르코지에 맞서 ‘복수좌파’ 연합이 집권당을 패퇴시켰다.
요컨대, 반MB 민주연합의 선거적 성공은 예정된 결과가 아니라 구체적 상황에서 동맹 세력(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대중 정서와 관계 있다.
우리는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선거에서 “국민적 승리”라는 포퓰리즘적 관점에서 반MB 민주연합을 추구하지 말고 계급 정치의 관점에서 반MB 진보연합을 추진할 것을 다시금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