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박유기 위원장:
나는 왜 민주노총 중집 회의에서 퇴장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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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9월 23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 회의에서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부의 참여당과의 통합 추진을 더 분명히 차단하자고 주장한 금속노조 박유기 위원장이 〈레디앙〉에 기고한 것이다. 필자의 동의를 구해 본지에도 게재한다.
오늘(24일) 아침에 한 인터넷 언론을 보니 “민주노총, 10월 새통추에서 참여당 합류 결정하기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일부위원이 퇴장한 가운데 만장일치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퇴장한 일부 위원 중의 한사람인 내가 민주노총 중집회의 참여에 대한 소회를 정리해 본다.
어제 열린 민주노총 중집회의에서 예상된 대로 가장 큰 쟁점은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이었다. 2호 안건으로 제출된 민주노총의 정치방침 제목은 ‘진보정치 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 관련 건’이었다.
이 안건에서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국민참여당 문제와 관려하여 민주노총 집행부가 제출한 원안은 “국민참여당은 진보정당의 선통합 추진의 대상과 주체는 아님. 다만 5.31최종합의문에 근거하여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참여할 수 있는 대상인지의 여부를 논의할 수 있으며, 그 판단의 주체는 5.31 합의와 8.27 합의에 따라 ‘새통추’가 되어야 함” 이었다. 의장의 제안 설명과 질의응답이 이어진 후 수정동의안이 쏟아졌다.
여러 가지 수정안이 제출되었지만 국참당 문제와 관련해 “국참당을 진보정당 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의 참여 대상임을 확정하자”는 입장과 “국참당은 진보정당 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함께 할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으로 갈렸다. 나는 수정동의안으로 “국민참여당은 민주노총이 추진해온 진보정치 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의 추진 대상과 주체는 아니다”는 내용을 제출하였다.
참여당은 통합 대상 아니다
내가 수정안을 제출한 배경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첫째, ‘국민참여당이 진보정당인가?’라는 문제다. 이날 찬반 토론에서 국참당을 통합 대상으로 포함해야한다고 주장을 하셨던 한 중집위원도 실토했듯이 ‘국참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라 자유주의 정당’이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자유주의 정치세력은 민주노총이 추진하는 진보정치 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함께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국참당은 노무현 정권의 적자임을 스스로 자임하고 있는데, 민주노총이 참여정부가 보여준 정책기조를 용납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민주노총이 신자유주의를 추앙하며 한미FTA를 앞장서서 추진했던 세력인 그들과 한미FTA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는 민주노총이 진보정치를 같이 할 수 있는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정리해고제를 시행하고, 단병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국회경위들이 달려들어 멱살잡고 구석으로 내동댕이 쳐놓고 비정규직법을 개악시켰던 그들과 손을 잡고 진보정치를 한다고?
전쟁 반대와 평화를 주장하는 민주노총이 미국의 침략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총을 쥐어주며 파병을 시켰던 그들과 손잡고 진보정치를 한다? 때가 되면 마석 모란공원, 솥발산 공원묘지를 찾아서 열사의 무덤 앞에 머리 조아리며 “열사정신 계승하겠노라” 다짐하던 민주노총이 김주익, 곽재규, 이해남, 배달호, 이용석, 허세욱.... 이 많은 열사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정치세력과 손잡고 진보정치를 한다? 나는 도저히 동의가 되지 않는다.
셋째, 조합원들에게 그들과 함께하자고 주장할 자신이 나에는 티끌만큼도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시절 민주노총이 대정부 정치파업을 몇 차례나 전개했는지 기억해보자. 그때 나는 정권을 향해 반노동자 세력, 반민중 세력이라고 그렇게 핏대를 올려가며 조합원들을 파업투쟁으로 이끌었던 사람 중의 한 명인데(현대차노조 사무국장과 위원장) 지금와서 그들이 뭐가 달라졌다고 조합원들에게 손잡고 정치를 같이해야 할 집단이라고 말하는가?
이 대목에서 2006년 내가 현대차노조 위원장 시절 때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 한미FTA 반대, 비정규직법 개악 저지 등을 내걸고 1년에 열두 번의 정치파업으로 노무현 정권에 맞섰던 조준호 전위원장(현 민주노동당 당대회 의장)의 국참당 참여 문제에 대한 입장이 궁금하다.
민주노총이 추진해 온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국참당이 참여하는 문제에 대해서 반대하는 나의 이유에 대해서 층분히 공감하는 현장 동지들이 정파를 떠나 상당수가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결국 국참당을 무리하게 끌어들여서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겠다고 밀어붙이면 노동 현장은 극심한 분열과 갈등, 또는 사이비 진보정치에 대한 냉소만 커질 게 뻔하다. 때문에 나는 더욱더 국참당 참여 문제를 반대했던 것이다.
냉소와 분열
민주노총 중앙집행위 회의에서 국참당이 왜 통합의 대상이 아닌지를 충분히 설명했다. 그러나 국참당을 참여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여전히 강경했고, 위원장은 “상임집행위원회 위원이 원안에 대한 다른 입장 제출하는 것은 좀 자제해 달라”면서 중앙집행위 위원들에게 원안에 대해서 동의해 달라고 수차례 주문을 했다.
나와 몇몇 동지들은 원안에 대해서 “국참당이 선통합 대상이나 주체가 아니라는 표현과 새통추 결정 등의 내용으로 결정될 경우 또다른 해석과 논란만 가중시킬 수 있기 때문에 결코 동의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의사 진행과 관련하여 “표결 처리하자”는 주장에 이르러 정회를 했다. 정회 시간에 몇몇 동지들과 상의를 했다. 그 속에서 국참당 참여 문제에 대한 입장이 분명히 드러나 있는 상황이니 중집 성원들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표결 처리보다는 퇴장하는 것이 좋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결국 9월 23일 민주노총 중집회의는 서울, 인천, 강원, 충남, 경북, 대구, 충북, 전북, 제주본부장과 금속노조, 사무금융연맹 등 일부 가맹조직 대표자들이 불참한 가운데 남아있던 성원들의 ‘만장일치(?)’ 찬성으로 결정됐다.
민주노총 중집회의에서 찬반 논쟁이 뜨겁게(?) 진행될 무렵 한 위원이 이렇게 발언했다.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두 당을 하나로 통합하자고, 진보정치 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하자고 나섰는데 이러다가 두 당이 하나가 되는 게 아니라 두 당이 네 개 정당으로 쪼개질 판”이라고.
어쩌면 지금 그 길로 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