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
〈노동자 연대〉 구독
교육과학기술부가 2013년부터 사용될 역사 교과서에서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라고 지침을 내린 것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는 반공주의의 다른 이름으로, 그리고 독재와 권위주의를 정당화하는 용어로 쓰였다.
일본의 치안유지법을 베껴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저항 세력을 탄압·학살하고, 사사오입이라는 선거 부정까지 저지르고, 마침내 4·19 혁명으로 쫓겨난 독재자 이승만이 북한 스탈린 체제에 대당하는 것으로 내세운 것이 ‘자유민주주의’였다.
1961년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1972년 자신의 영구 독재를 위해 유신헌법을 만들었는데, 이때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라는 말을 헌법 전문에 삽입했다. 이것이 우파와 뉴라이트가 찬양하는 ‘헌법 정신’의 기원이다.
박정희 정권은 노동운동과 좌파는 말할 것도 없고 김영삼·김대중 같은 온건한 자유주의자들까지도 탄압했다.
그 뒤를 이은 정권들도 전혀 ‘자유민주주의’적이지 않았다.
전두환의 신군부는 1980년 5·18 광주항쟁에서 공수부대까지 투입해 학살을 벌였다. 한국의 우파는 중동에서 학살을 벌이다 쫓겨난 독재자들을 욕할 처지가 못 된다.
노태우 정권은 1987년 항쟁의 성과를 되돌리려고 1989년 봄부터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을 대대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고 울산 현대중공업 파업에는 군대까지 투입했다. 이런 독재자들이 항상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함이라고 자신을 정당화했다.
언론·출판·결사의 자유를 부정하는 악법인 이 나라의 국가보안법도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지키기 위한 법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처럼 지금 한국의 우파들이 고집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예나 지금이나 원래 의미의 자유민주주의(부르주아 민주주의)보다 훨씬 저급한 것을 가리킨다. 이런 ‘자유민주주의’를 되살리려는 한국현대사학회 등 뉴라이트와 우파들의 시도는 반대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원래의 자유민주주의(더 정확하게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조차 근원적 한계가 있다.
첫째, 19세기 중반부터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지에 독립적인, 또는 부르주아지에 맞선 노동계급의 투쟁 덕택으로만 발전할 수 있었다.
부르주아지의 보수성
서구에서 자유민주주의(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봉건제를 폐지하고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혁명 과정에서 탄생했는데, 봉건제에서 조금씩 힘을 키워 가던 신흥 부르주아(자본가)들이 이 혁명들을 이끌었다. 부르주아지는 봉건 지배자들에 맞서는 투쟁에 농민과 도시 하층민 들의 지지와 동참을 이끌어 낼 명분을 발전시켰다. 이것이 서구 자유민주주의의 출발이다.
이 시기의 부르주아지는 진보적이었고 혁명적이었지만, 새로운 체제의 지배계급이 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급격히 혁명성을 잃어 갔다. 1848년 유럽 혁명 때는 부르주아지의 보수성이 일반적 현상이 됐다. 부르주아지는 기존 봉건 질서와 타협했다.
자본주의 산업이 발전하면서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는 사람들”이라고 부른 노동계급이 성장했고,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목을 겨눌 수 있는 노동계급에게 정치적 권리를 주는 것을 꺼렸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요소인 보통선거권조차 영국에서 1928년에야 시행됐고, 재산에 따른 차등이 없는 1인1표제가 시행된 것은 1948년이었다. 이조차 민주주의 확대를 위한 아래로부터의 끈질긴 투쟁의 결과다.
한국에서도 1987년 6월 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의 여파 덕분에 ‘민주화’로 나아갈 수 있었다.
둘째, 자유민주주의가 가장 발전한 나라에서조차 행정기관의 수장과 입법기관을 제외하면 선출되지 않는다. 치안·사법·군사기구들은 대중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지만 대중의 통제를 전혀 받지 않는다.
셋째, 가장 중요한 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적 평등의 확산과는 별개로 경제적 불평등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경제는 한 사회를 운영하는 데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분야인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는 극소수 자본가들의 손아귀에 있다.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무슨 목적으로 생산할지는 대중의 의지와 완전히 동떨어진 곳에서 결정된다. 이런 정치와 경제의 분리 덕분에 자본가들은 직접 통치하지 않으면서도 사회를 지배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극소수를 위한 민주주의, 부자들을 위한 민주주의,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 사회의 민주주의”라는 레닌의 지적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모든 사회구성원의 합의를 바탕으로 통치하는 정치 체제를 의미하는 민주주의의 참모습이 발현되려면 민주주의가 경제 영역으로까지 확장돼야 한다. 이를 현실에서 보여 준, 자유민주주의와는 다른 민주주주의의 역사가 있다. 노동자 권력이었던 1871년 파리 코뮌과 1917년 러시아 소비에트가 그것이다.
파리와 러시아의 대중은 잠깐 동안이나마 사회를 직접 통제했다. 첫째, 대중의 통제를 받지 않는 경찰과 상비군이 해체되고 대중이 자발적으로 무장했다. 둘째, 모든 국가기관은 대중이 선출한 대표자로 구성됐고, 대표자들은 노동자 평균 임금만 받고 일하며 직무 수행에 적합하지 않으면 바로 소환됐다. 무엇보다 집단적이고 민주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노동 대중이 생산과 경제에 대한 결정권을 가졌다.
이처럼 자본주의의 틀을 뛰어넘어서 노동자·민중이 스스로 정치·경제 권력을 장악할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가능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