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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자금과 노무현 측근 비리 공방

대선자금과 노무현 측근 비리 공방

최근 〈교수신문〉은 2003년 한국 사회의 특징을 요약하는 사자성어 1~5위에우왕좌왕, 점입가경, 이전투구, 지리멸렬, 아수라장을 뽑았다. 이 단어들은 최근 노무현과 기성 정치권의 행태를 묘사하는 데 딱 들어맞는다.1년 전 대선에서 노무현이 당선했다. 노무현은 구체제와 기성 정치권에 주된 기반이 있지 않고, 시민단체와 심지어 민중운동의 일부에까지 기반을 둔 포플리스트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지금 노무현에게 투표한 사람의절반 가까이가 후회하고 있다. 이회창이라는 구정물보다는 노무현이 나을 것이라고 본 사람들은 이제 노무현도 구정물이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2급수가 1급수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점입가경'과 '이전투구'

국가 기구를 장악해서 위로부터 개혁을 할 수 있다는 착각과 달리 국가는 오로지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한 기구다. 비록 노무현의 사회적 기반이 중간계급과 일부 노동계급에 있다 해도 그가 대통령이 된 이상 따라야 할 것은 지배 계급의'시장 논리'이다. 손석춘이 지적하듯 노무현은 1년간 "부자 신문의 논리에 굴복했다 ‥‥ 노정권은우향우 해 왔다"이윤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냉혹한 시장 논리는 인권·평화·환경·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 그래서 기성 체제와시장 논리에 굴복한 노무현은 1년간 2백4명의 노동자를 구속하고, 집시법을 개악하고, 이라크 파병과 부안 핵폐기장을 폭력적으로 추진해 온 것이다. 반면 노무현 지지자 가운데 상당수는구체제에 맞서서 인권·평화·환경·민주주의 같은 가치들을 옹호해 왔다. 노무현은 작년 11월 말 SBS대담 때 파병·노동탄압·부안 핵폐기장 문제로 "지지도가 빠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저로서는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노무현이 추락하는 지금 구체제의 우익지배자들은 이를 틈타 빼앗긴 권력을 되찾기 위해 나서고 있다 《월간조선》의조갑제는 벌써 노무현 탄핵 뒤 조순형차기 대통령, 이후 개헌' 시나리오를 내세우고 있다. 권력을 놓고 투쟁하는 지배계급 소수파인 노무현은 '판을 깨자'고 맞서고 있다.

대선자금 전면조사에 이어 '불법 대선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 이상이면 사퇴하겠다"고 나섰다그러나 노무현의 모험은 큰 정치적 변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탈리아에서1992년부터 2년간 국치의원 1백50명을구속한 반부패 캠페인인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 캠페인의 결과, 40년 동안의기민당-사회당 권력 구도가 무너지고 정치 신인과 신당 돌풍이 일어난 바 있다. 부패 정치권에 대한 대중의 분노, 권력을 잃은 우익, 권력 기관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노무현이라는 구도속에서 벌어지는 검찰의 대선 자금과 측근 비리에 대한 수사는 '성역 없이 부패를 척결하는검찰'이라는 신화를 만들어 내고있다1993년 이후 일당 독재의 붕괴로 지배계급과 중간계급 안에서 자유가 늘어나마침내 여야간 정권 교체가 가능해진 지금, '검찰이 집권 여당의 시녀'라는 성격을 부분적으로 벗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집권 1년 만에 현직 대통령의 '오른팔', '왼팔', '집사', '부통령'이모조리 구속되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검찰이 진정으로 부패를 척결할수는 없다. 검찰 자신이 지배계급의 일부이자 부패 구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재벌 총수들에 대한 수사와 구속에머뭇거리고 있다. 검찰도 연루됐다는 의혹이 있던 굿모닝 게이트는 윤창렬 개인비리로 축소뤘다 이탈리아에서는 '마니풀리테'의 영웅 피에트로 검사 자신이 나중에 부패 혐의로 물러났다. 무엇보다, 검찰이 여야사이에서 '중립'일 수는 있지만 계급적으로 '중립'일 수는 없다. 검찰은 얼마 전 건설 자본들의요구에 따라, 산재로 두 다리와 한 팔을잃은 건설노조 활동가를 '금품을 갈취'한 '공갈 협박범'이라며 구속했다.

'지리멸렬'과 '아수라장'

노무현이 한나라당과의 권력 투쟁에서 쓰고 있는 또 다른 카드는 '한나라당이냐 노무현이냐'를 선택하라는 '벼랑끝 전술'이다. 노무현은 '총선에서 민주당을찍으면 한나라당을 도와 주는 것으로 인식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신임 문제도 총선과 연계해, '노무현을 찍지 않으면 차떼기당을 찍겠다는 거냐'며 울며 겨자 먹기식 선택을 강요하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차떼기가 드러났을때만 해도 이런 구도가 가망이 있어 보였다. 최병렬은 김윤환의장례식장에서 "차떼기 때문에 망했어" 하고 망연자실 했다. 그러나 노무현의 측근 비리에 대한 검찰 발표가 있은 이후 노무현의 지지도는 바닥에 이르고 있다.

더구나 야 3당과 열린우리당이 힘을 합쳐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켜 준 지금, 정치권 모두에 증오는 폭발 직전에 이르고 있다.

지금 한나라당과 민주당, 열린우리당은 지지율 10퍼센트 선에서 서로 도토리 키재기를 하고 있다. 어떤 당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 50퍼센트에 이른다.

심화하는 경제 위기가 낳는 계급 양극화가 심화하는 정치 위기의 근원이다.

위기가 심화할수록 지배계급의 권력 투쟁과 분열도 심화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5·6공 인물' 청산을 둘러싸고 분당까지 예고하는 내분을 겪고 있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도 인물 영입과 당권 등을 둘러싸고 분당까지 예고하는 내분을 겪고 있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도 인물 영입과 당권 등을 둘러싸고 중진과 소장파, 구주류와 신주류가 서로 갈등하고 있다.

〈한겨레〉의 여론 조사 결과, 응답자의 57.2퍼센트가 내년 총선에서 참신한 정치 신인을 뽑겠다고 했다. 62.5퍼센트는 진보적 또는 다소 진보적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답했다.

이런 정서를 의식해 한나라당마저 5·6공 인물 물갈이와 당명 교체 등으로 차떼기에서 벗어나려 애쓰고 있는 판이다.

그럼에도 노무현의 우향우는 지속할 것이다 강금실처럼 '〈한겨레〉처럼 말하고 〈조선일보〉처럼 행동하는' 장관들은 안병영 ·오명처럼 말과 행동 모두 〈조선일보〉 코드인 사람들로 바뀌고 있다. 사실, 권력 투쟁을 벌이는 자들 사이에 정책 차이는 거의 없다. 노무현도 1년을 돌아보며 "정책 측면에서는 정부가 한 일을 (한나라당이 다수인) 국회가 대부분 수용해 고맙게 생각한다"고 인정했다

따라서, 이들 사이의 크지도 않은 차이를 애써 찾으며 총선을 기다리기보다 이들 모두가 지지하는 파병과 신자유주의 정책 등에 맞서 지금부터 싸우는 것이 가장 좋다. 우익들의 공세가 아니라 이런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통해 노무현이 물러나게 된다면 커다란 진보가 될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