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포럼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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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포럼 2004
운동의 전망을 논의하다
지난 2월 13∼15일에 제3회 한국사회포럼이 열렸다. “노무현 정권과 미국, 그리고 사회운동”이 주요 주제였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신자유주의와 전쟁을 분명하게 반대했다. “오늘의 세계가 미국의 패권적 군사주의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했다.”(‘한국사회포럼 2004 결의문’)
많은 참가자들은 미국의 이라크 전쟁 반대의 중요성을 공감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노무현 정부에 대한 비판이 지난해보다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미국의 세계 제패 전략에 맞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
‘우리 안의 미국, 미국을 넘어’라는 대토론회에서는 미국 제국주의와 이라크 전쟁, 주한미군 주둔과 이전 문제, 북한 핵 문제, 반미 운동의 성격 등이 토론됐다.
연사들은 대부분 이라크 전쟁 반대를 강조했다.
재미 언론인 김민웅 목사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반드시 패배해야 한다. … 우리의 운명은 이라크의 운명과 같다.”고 강조했다.
김하영 ‘다함께’ 운영위원은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의 불균형을 지적했다.
“미국의 경제력은 제2차세계대전 뒤 세계 경제의 절반을 차지하던 때보다 하락해 지금은 유럽연합과 맞먹을 정도다. 또 다른 경제대국 일본과 급속하게 성장하는 중국에 위협감을 느낀다.
“그러나 미국은 이 모든 국가들을 합친 것보다 강한 군사력을 갖고 있다. 미국은 자신의 경제력 약화를 만회하기 위해 군사적 우위를 이용하려 한다.”
이회수 전 민주노총 대외협력실장은 “시애틀 시위 이후 반세계화 운동이 확산되고 [있고] 반세계화 운동가들이 반전 운동을 벌이면서 미국에 대한 저항이 확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로 반대했지만, 북한 핵을 둘러싸고는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평화네트워크의 정욱식 씨는 진보진영이 북한 핵도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보진영은 [반핵 주장을 하지 않아] 반핵을 보수진영에 빼앗겼다. 반전 반핵은 국민 70퍼센트의 생각이다.”
윤영상 민주노동당 평화군축운동본부장도 그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정대연 민중연대 정책위원장은 “미국의 북한 압박은 북한의 핵무장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논박했다.
김하영 씨도 양비론을 비판했다. “후세인은 독재자였지만 미국이 대량살상무기를 핑계로 이라크를 침공하려 했을 때 우리는 이에 반대했다. 북한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반미’ 논쟁은 좀더 복잡했다. 반미 운동의 정당성 자체를 문제 삼는 주장, 그 운동의 정당성을 옹호하면서도 반미라는 용어의 모호함을 지적하는 주장, 반미라는 용어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좀더 많은 연사들이 반미 운동은 정당하지만 ‘반미’라는 용어가 모든 미국인들을 반대하는 것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음을 지적했다.
노무현에 대한 ‘짝사랑’을 거둬야 할 때
‘노무현과 사회운동의 전략’의 연사들은 대체로 노무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박석운 민중연대 집행위원장은 “[이제] 노무현 정부에 대한 기대, 노무현 정부가 근본적 개혁과 변화를 추동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사실상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른바 개혁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형성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짝사랑’을 이제 거두는 것까지 판단해야 [한다.]”
그는 지난해에 노무현에 대한 기대 때문에 머뭇거렸던 시민단체들에 서운함을 내비쳤다.
전기환 전국농민회총연맹 전 정책위원장은 “[노무현은] 2002년 대선 직전에 농민대회에 와 달걀을 맞아 가면서까지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고 약속했다. 그 때는 기대했다.
“그러나 역대 정권 중 가장 개혁적이라는 노무현 정권은 이전 정권보다 더 농업을 무시하고 포기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하고 말했다.
최명숙 한국여성민우회 사무처장은 노무현 정부의 여성 공약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는 호주제 폐지를 약속했지만 아직까지 개정되지 않고 있다.
“신자유주의에 대처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에 저항하고 바꿀 수 있는 힘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됐다. 그러다 보니 이 문제는 여성 노동조합 수준에서 많이 다루게 됐다.”
최민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사무총장은 노무현을 비판한 연사들에게 항변했다. “모든 것을 노무현의 한계로 보는 게 타당한가? 노무현을 ‘악의 축’으로 찍으면 모든 문제는 해결되는가?”
그는 또 노동자 운동에 대해서도 간접적으로 도전했다.
“나는 파병을 반대한다. 그러나 파병을 거부하면 미국이 경제 압박을 가할 것이고 그리 되면 신용 위기를 낳아 기업이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노동자들이 이런 불이익을 감수하고 파병을 반대할 태세가 돼 있는가? 또, 한-칠레 FTA 문제를 놓고 노동자와 농민은 단결할 수 있는가?”
최명숙 씨는 최민희 씨의 반론에 “호주제가 개정되지 않은 것은 국회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상당히 후퇴한 안이 행자부에서 국회로 넘어갔다.”고 답변했다.
‘다함께’의 김우용 씨는 기아차 공장에서 반전 운동을 건설한 자신의 경험을 빌어 노동자들이 결코 전쟁과 반전 운동에 무관심하지 않음을 주장했다.
누가 당선돼야 하는가?
‘2004년 총선과 사회운동의 대응’에서 시민사회운동은 총선에 대한 태도를 놓고 크게 갈렸다.
이근원 민주노총 공공연맹 정치국장은 “인물뿐 아니라 정책·이념도 중요하다. 물갈이가 아니라 판갈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민영 참여연대 시민감시국장은 “시민운동은 계급적이지 않기 때문에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운동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물갈이연대’의 정대화 교수는 “당선 가능성으로 국민 후보를 선택하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이 불리할 것이라는 것은 [당선운동을] 예단한 것”이라고 반론을 폈다.
그러나 김형탁 민주노동당 과천지구당 위원장은 “기준에 맞는 복수의 후보가 있을 경우 어찌할 것인가. 복수에 대한 당선운동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에 결국 당선 가능성이 주요한 판단 기준이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대기업 노동자들은 ‘귀족’인가?
‘새로운 사회 상황과 운동방식’에서는 ‘노동귀족론’을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먼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박승옥 씨는 “노동귀족론이 다수 국민에게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1970년대 평화시장 여공들의 상황과 비교해 지금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생활은 상당히 나아졌다.”
기아자동차 조합원 김우용 씨는 “과연 우리 대기업 노동자들의 삶이 비난받아야 하는가.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을 동결할 것이 아니라 재벌들의 이익을 돌려서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나는 어제 12시간 야근을 하고 왔다. 여기 와 있는 내 동료들도 야간 근무 마치고 왔다.
“1분 30초마다 차가 한 대씩 지나간다. 꼼짝 않고 두 시간 일하고 10분 쉬었다를 반복한다. 새벽 3∼4시까지 일하다 보면 내가 일하는 건지 기계가 일하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오건호 민주노총 정책부장도 ‘노동귀족론’을 공박했다. “대기업 노동자인 아버지에게, 대학 졸업한 당신 자식이 실업자가 된 것은 당신 때문이라고 말하는 게 옳은가.
“대기업 노동자들의 권리는 기득권이 아니라 투쟁을 어렵게 쟁취한 기본권이다. 이들이 힘들게 쟁취한 기본권마저 빼앗으려는 자들이 비난받아야 한다.”
청중 토론에서 한 참가자가 “요즘 노동운동에 감동이 없다”며 비판했다. 김우용 씨는 이렇게 답변했다.
“노동자들이 단지 임금뿐 아니라 전쟁에 반대해 파업한다면 그게 바로 감동일 것이다. 신자유주의, 환경 파괴, 전쟁에 맞서 우리는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지독하게 끔찍한 폭력 체제이다. 이것에 맞서기 위해 우리는 힘을 집중해야 한다. 3·20 전세계 반전행동에 모두 함께하자.”
이윤 중심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네트워크 ‘아래로부터 세계화’가 주최한 ‘세계사회포럼과 대안 세계화 운동의 전망’에는 70여 명이 참가했다.
김어진 ‘아래로부터 세계화’ 운영위원은 “이번 세계사회포럼은 반전 운동과 반신자유주의 운동이 결합돼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면서 공동의 적에 맞서자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공무원 노동자, 보건의료 활동가, 학생, 동성애자, 환경 운동가, 이주노동자 지원 활동가 등이 나와 세계사회포럼이 자신을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를 말했다.
허영구 ‘아래로부터 세계화’ 운영위원은 “IMF 위기를 겪은 뒤 국제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연대와 집중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창근 민주노총 국제부장은 대안 세계화 운동이 중요한 분기점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국제적 공동행동과 일국적 투쟁을 어떻게 결합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또한 다양한 쟁점들 중 무엇이 우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저항하는 운동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층에 뿌리를 내려야 하며 특히 노동운동과 긴밀히 결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토론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모두 6월 세계경제포럼 동아시아 경제정상회의와 11월 홍콩 WTO 각료회담 항의 운동을 협력해 건설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다함께’가 주최한 ‘세계화와 전쟁’ 토론에는 50여 명이 참가했다.
전교조 교사 박민경 씨는 “미국을 등에 업은 다국적 기업들은 세계 곳곳에서 자신들의 이윤을 추구하려 하고, 그것이 수월치 않을 때에는 국가에 압력을 넣고 있다. 이런 행태가 가장 노골적으로 나타난 곳이 이라크다.” 하고 말했다.
‘다함께’의 김광일 씨는 “반전과 반신자유주의의 결합은 운동을 통해서 나타나야 한다. 따라서 이라크 침략 1년이 되는 3월 20일에 전 세계적 반전행동을 크게 건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