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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움 촘스키의 《미디어 컨트롤》 모색출판사, 2004년
촘스키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개입의 추악한 역사와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미디어의 거짓과 위선, 그리고 침묵을 낱낱이 들추어 낸다.
“처음에 대중들은 자신들과 아무 이해관계도 없이 바다건너에서 벌어지는 전쟁터에 나가 서로 죽이고 고통받을 까닭이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대중들을 전쟁터로 유도할 수단이 필요하다.”
전쟁을 싫어했던 미국 대중들을 제1차 세계대전의 열렬한 지지자로 만들기 위해 우드로 윌슨 정부가 만들었던 정부선전위원회의 사례부터 지금 부시가 벌이고 있는 “대테러전쟁”의 위선에 이르기까지 그는 우리가 모르는 사례들을 알려준다.
그는 미디어가 전쟁광들의 도구인 동시에 기업주들의 전유물이라는 점도 지적한다. 미국에서 노동자운동은 1935년에 와그너법을 통해 노동조합 결성권을 쟁취했다. 노동자들의 승리에 위기감을 느낀 기업주들은 “파업가담자들을 사회의 유해요소이자 공동 이익의 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일반 대중들의 적대감을 유발”하기 위해 미디어를 사용했다. 또한 미디어 산업계는 매카시즘의 막강한 후원자이기도 했다.
올바르게도 촘스키는 대중들이 미디어의 여론 조작에 그대로 당하고 있다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왕좌왕하는 소 떼로 비유되는 민중들은 결코 쉽사리 길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끊임없는 줄다리기가 벌어진다.”
촘스키는 흑인 해방 운동과 시민권 운동이 결합되었던 베트남전 반대 운동을 통해 이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미디어가 유포하는 지배적인 사상에 맞서서 이 사회의 진실을 깨닫고 사회를 변혁하기 위한 사상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활동가들의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조직화의 영향은 크다. 조직을 통해 개인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님을 깨닫는다.” “개인은 자기 생각을 더욱 가다듬거나 심지를 굳혀 하나의 신념을 품을 수도 있다.”
이상권
“왜 또 한국은 이라크에 가나? … 한국은 미국이 부르기만 하면 어디나 달려가는 강아지야?”
《랍스터를 먹는 시간》은 네 편의 단편 소설로 구성돼 있다.
〈랍스터를 먹는 시간〉이라는 제목의 단편 소설은 베트남 전쟁의 상처와 한국의 이라크 파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주인공 ‘건석’은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계 조선소에 파견된 관리자이다.
방현석은 조선소의 현지 직원인 러이의 입을 통해 베트남 전쟁의 참혹함을 폭로한다.
베트남 전쟁 때 ‘박정희 군대’는 러이의 가족들을 마을 사람들과 논으로 끌고갔다. 군인들이 타고 온 트럭 위에 설치된 기관총 소리보다 소름끼치는 비명 소리가 나고, 러이가 고개를 들었을 때 어머니는 러이의 머리를 다시 땅바닥에 박았다. ‘박정희 군대’는 살아 있는 자들을 확인하기 위해 씨레이션 깡통을 던졌고 러이는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뒷덜미를 잡는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내달렸을 때 진짜 수류탄이 날아왔다. 러이는 온 몸에 파편이 박힌 채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하지만 러이는 어머니와 여동생이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죄책감과 ‘박정희 군대’에 대한 복수심으로 베트남민족해방전선(NLF)에 들어간다.
‘판 반 꾹’은 ‘리엔’과 결혼해서 베트남에서 살아갈 건석에게 한국의 이라크 파병에 대해 묻는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전망을 담은 판 반 꾹의 질문은 작가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미국과 후세인의 전쟁은 끝이 났지만 미국과 이라크 국민들 간의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야. […] 미국은 이라크에서 지배 전쟁의 수렁에 빠지게 될 거야. 도대체 한국은 무엇 때문에 그 수렁에 뛰어들어 미군을 향해 겨누어진 이라크 인민의 총구 앞에 서려고 하나?”
“우리도 미국이 옳지 않다는 걸 알아요. 그렇지만 아직은 미국의 말을 거역할 수 없으니까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군대를 보내는 거예요. 베트남에 온 군대를 ‘박정희 군대’라고 했듯이 이라크에 가는 군대도 한국군이라고 하지 않고 ‘노무현 군대’라고 불러주면 안돼요?”
“또 미국 핑계인가? … 절망은 당신과 같은 다음 세대가 지난 세대를 답습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거야.”
최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