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파괴자와 환경 파괴의 희생자:
《지구를 파괴하는 범죄자들》
〈노동자 연대〉 구독
광우병 파동, 새만금 간척 사업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 시화호의 중금속 오염, 열화우라늄탄으로 인한 희생자 속출. 최근 우리 나라 신문과 TV에서는 환경 파괴 사건들이 자주 보도되고 있다. 끔찍한 환경 오염과 재난은 우리 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구석구석에서 일어나고 있고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환경 위기가 심각해질수록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은 날로 높아가고 있다.
《지구를 파괴하는 범죄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환경 문제를 재미있고 알기 쉽게 쓴 책이다. 이 책은 환경 파괴가 얼마나 끔찍한 재앙을 낳는지를 실감나게 보여 준다.
"반도체 산업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프레온은 엄청난 오존층 파괴를 가져온다 … 프레온의 1개의 염소 원자는 10만 개의 오존 분자를 파괴할 정도로 위험하다. 오존층이 파괴되면 지상에 도달하는 자외선량이 증가해 피부암이 늘어나고, 생태계를 위협하기도 한다.
"반도체 산업에 이용되는 또 다른 맹독성 위험 물질은 공장 노동자들에게 간장·신장 질환을 일으키고 이상 출산, 생식 장애를 가져오고 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그런데도 "한국은 제3세계 국가 중 원자력 발전소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방사능 오염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 수입 농축산물을 비롯한 식품에 대한 검역 제도는 철저하지 못하다. 따라서 우리는 장거리 수송에서 오는 변질, 방부제, 항생제, 발암물질 함유, 방사성 낙진 지역에서 재배한 유해한 식품들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거짓과 위선
정부와 사장들은 마치 환경 문제에 지대한 관심과 열의가 있는 양 떠벌린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이 순전한 위선에 불과하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일본은 1972년에 '산업의 발전과 환경의 조화를 꾀한다'는 명목으로 '산업 생태학 모델'이라는 연구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그러나 그 연구는 수많은 전문가들이 책상 앞에 모여 앉아 부정확한 통계를 근거로 환경 영향에 대한 평가를 해서 실제로는 환경 파괴 실태를 감추는 역할을 했다.
정부는 오존층 파괴를 막으려면 가정용 스프레이 사용을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존층 파괴의 선두 기업인 반도체 공장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또 정부와 사장들은 환경 오염에 대해 모두가 책임져야 한다며 쓰레기 종량제와 재활용품 분리 수거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이윤이 남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체에 치명적인 해를 입히는 산업 폐기물을 마구 버린다. 우리 나라 보원광업은 1978년 7월부터 1980년 3월까지 일본의 오키다니흥업으로부터 돈을 받고 산업폐기물을 위장 수입한 사실이 있다.
일본 정부는 자신들이 무분별한 벌채로 황폐화된 인도네시아·타이·필리핀·말레이시아 등지의 열대우림에 1990년부터 3년간 나무를 심겠다는 정부개발원조(ODA) 계획을 세웠다. 열대우림을 파괴해 버린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기라도 하는 듯했지만 실상은 일본 기업이 다시 벌채하기 위한 나무심기 계획에 불과했다.
환경 파괴의 주범
"환경 파괴는 전 인류의 책임이다"라고 말하는 정부와 사장들이야말로 진정한 환경 범죄자들이다.
사장들은 안전성이 의심되거나 영양분이 적은 유해 식품을 팔아먹기도 한다. 예컨대, 아프리카에서는 네슬레 기업 분유를 먹은 갓난 아기가 영양 부족과 소화기계통의 전염병으로 고통스러워한 일이 있다.
에티오피아는 다국적 기업의 벌채 때문에 국토의 절반 이상을 덮고 있던 열대우림이 지금은 2.5퍼센트도 남지 않았다. 그 결과 표토가 유출되고 가뭄까지 와서 1980년대에는 1백만 명이 넘는 사람이 굶어 죽었다.
각국 정부와 사장들은 이윤을 위해서라면 자연 보호나 사람들의 건강과 안전은 안중에도 없다. 상당수의 기업이 노동자의 안전 비용이나 오염 방지 비용을 쓰지 않으려고 폐기물을 아무 곳에나 버리고 있다.
미국은 자국 내에서만 18명의 여성을 죽게 하고, 임산부 6만 6천 명의 아이를 유산시킨 독성이 강한 피임기구를 제3세계 여성에게 버젓이 팔고 있다.
한국도 국제적으로 인체에 해를 끼치거나 부작용을 우려해 규제하고 있는 50개 의약품(유엔 집계) 중 20개 품목을 거의 무제한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 농수산부는 1983년 벼멸구 파동이 나자 1984년 1천 명이 사망한 인도 보팔공장 사고를 일으킨 맹독성 MIC가스 생산을 독려하기도 했다.
미국산 냉동감자에 안전기준치의 92배나 되는 농약이 들어있다거나 햄·소시지에서 발암 물질인 아질산염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경악케 한다.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은 정부와 사장들의 이윤 추구 때문에 고통받아 왔고, 여전히 위험에 노출돼 있다.
대안
환경 오염으로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고통받는 것은 아니다. 정부와 사장들은 유해 식품을 수출하고 열대우림을 파괴하면서 이득을 얻는다. 반면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에겐 엄청난 피해와 희생이 뒤따른다.
반도체 공장의 유해물질을 다뤄 건강을 해치는 사람은 그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열대우림 파괴로 생활 기반을 잃어버리는 고통을 겪는 사람은 가난한 농어민들이다.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환경을 파괴하는 정부와 사장들은 결코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들이 내놓는 해결책만 봐도 알 수 있다.
한 예로 그들은 지구 온난화를 해결하려면 원자력 발전소를 지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대책을 제시한다. 그러나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후로 핵발전소 방사능 누출 피해가 끔찍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책의 저자는 아쉽게도 환경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산을 축소해야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컴퓨터화 사회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컴퓨터의 발달로 문명 사회의 혜택을 보고 있다. 저자가 얘기한 다양한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기술과 산업 성장은 필요한 일이다.
물론 현실에서 산업의 발달이 환경과 대립하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사회의 환경 파괴는 산업 사회 그 자체가 아니라 이윤을 위한 생산 체제 때문이다. 이윤이 아니라 대다수 사람들의 필요와 요구에 적합한 생산이 이루어진다면 산업 자체는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사용될 수 있다. 그리고 보다 환경친화적인 산업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를 파괴하는 범죄자들》은 환경 파괴의 현실을 생생하게 폭로하고 있는 훌륭한 책이다. 풍부하고 충격적인 사례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환경 파괴의 심각성을 일깨워 줄 것이다. 그리고 환경 문제가 우리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