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기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꿈은 패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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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12년 전(2000년)이었다. 현대차 울산 3공장에서 자신이 일하던 공정이 사라진다는 이유로 잘릴 위기에 처해 있던 하청 노동자가 찾아왔다. 당시엔 비정규노조도 없고 달리 도울 수단도 마땅치 않아 법적 구제책을 찾아보라 권했는데, 그는 이미 “노동부, 노동상담소, 노무사, 변호사까지 만나봤지만 방법이 없답니다” 하며 고개를 저었다.
며칠 뒤에 그는 같은 3공장에서 일하던 정규직 노동자들을 데려왔다. 함께 몇 년을 같은 콘베이어에서 일해 온 터라, 딱한 사정을 듣고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하고자 하는 이는 방법을 찾고 회피하려는 자는 구실을 찾는다 했던가? 대자보도 붙이고, 선전전도 하고, 하청업체와 원청에 항의 면담도 해서 해고를 피할 수 있었다. 석·박사 출신들도 포기하는 일을, 그는 법적 구제도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면서도 “노동자 단결”이란 길을 찾아냈다.
하지만 그 해법은 오래가지 않았는데, 업체는 석달 뒤에 다른 사유로 또다시 해고하고 말았다. 우리의 노력은 그의 파리 목숨을 겨우 3개월 연장시킨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잊지 않고 우리를 다시 찾았다. 비록 잘렸지만 도와줘서 고맙다고, 혼자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으니 됐다고.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지 않겠냐고.
8년 전(2003년), 그처럼 “좋은 날”을 꿈꾸던 비정규직 노동자 1백27명이 울산에서 현대차비정규노조를 결성했다. “비정규직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것이 그들의 ‘소박한’ 꿈과 희망이었다. 정규직이 되면 인간답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들의 꿈과 희망은 ‘정규직화’로 집약됐고, 이를 위해 정말 열심히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들이 찾은 방법은 ‘불법파견’이었다. “파견법은 자본가의 법률일 뿐”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정말 열심히 뛰었다. 공장 곳곳을 돌고 쓰레기통까지 뒤져 가며 불법파견 증거를 수집했고, 교육·설문은 기본이요, 조합원 가입 운동도 맹렬히 펼쳤다. 2004년 마침내 노동부가 현대차 모든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임을 판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예상대로 불법파견 판정 이후 정부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검찰은 불법파견 고발 사건을 2년이나 질질 끌며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자본가의 불법 행위를 시정하라고 요구한 비정규직 노동자 2백여 명이 해고됐고, 류기혁 열사는 노동 탄압에 항거하며 목을 매 자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5년여 소송 끝에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은 현대차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에 해당하며 근속 2년이 넘은 노동자는 이미 정규직이라고 판시하기에 이르렀다.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드디어 “좋은 날”이 다가왔다며 노동조합으로 몰려들었다. 노조를 만들던 처음에 이들은 막연히 정규직 되는 것이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지만, 6~7년의 노조 활동, 자본과 정권의 탄압에 맞서 본 경험은 이를 좀더 구체화시켰다. “비정규직 없는 공장을 만들자!” “우리 아이들에게는 비정규직 명찰을 물려주지 말자!”
“좋은 날”
2010년 11월 15일부터 다시 한 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파업에 돌입했다. 울산 1공장 CTS(도어 탈착 공정)를 점거한 채 무려 25일간 생산을 멈췄다. 또다시 1백여 명이 해고되고 1천여 명이 징계를 맞으며 탄압 당하고, 수백억 원대 손배가압류와 10여 명의 구속자가 나오며 파업은 패배했다. 그러나 이들이 내세운 ‘비정규직 없는 공장’이라는 꿈과 희망이 패배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 10년 동안 정권과 자본의 탄압은 이들을 의식적으로, 계급적으로 무장시켜 줬다. 불법파업에는 공권력을 투입하면서, 8년 전에 노동부가 불법파견이라 판정한 자본에게는 절대로 공권력을 투입하지 않는다. 현대차와 노동부는 “사내하청도 고임금”이라며 각종 증거를 들이밀며 정규직 대비 73퍼센트, 수천만 원 연봉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 똑같은 일을 하는데 누구는 1백만 원 받고 누구는 73만 원 받아도 감지덕지 하란 말인가? 차별을 없애겠다고 만든 비정규법이 모조리 사기였음을 투쟁 속에서 몸으로 체득하기 시작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노동부는 자본의 편일 뿐이라고, 비정규법·파견법은 자본의 법률일 뿐이라고, 이제 더는 교육할 필요가 없어졌다. 지난 10년의 경험은 이들에게 그 문제를 ‘상식’으로 만들어 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불법파견 정규직화”가 아니라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요구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만장일치로 확정됐다.
이명박 정부의 첫 노동부 장관을 지낸 이영희 씨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은 사회주의 하자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나는 그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도 비정규직 없는 세상쯤은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그의 말이 모종의 두려움을 표현한 것이라면,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슬로건 자체는 자본주의를 일부 개량함으로써 가능할 수도 있지만, 그런 세상을 만들자는 운동과 열망, 그리고 이를 위한 노동자 투쟁 과정은 분명히 노동해방 새 세상으로 가는 다리를 놓아 주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소박한 꿈과 희망이었던 “좋은 날”이 ‘비정규직 없는 공장 만들기’로, 더 나아가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로 나아간다면, 그 꿈은 노동해방과 맞닿기 시작한다. 비정규직 없는 공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비정규직만이 아니라 정규직과 굳게 손을 잡아야 한다는 의식이 싹트게 된다. “공장 내 모든 노동자들의 단결”이라는 단순한 진리는 점점 현대차 울타리를 넘어 전국으로 확산되며 “모든 노동계급의 단결이 필요하다”는 사상으로 커 나간다. 그런 사상이 바로 노동해방 아니던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그저 소망해 보는 꿈이 아니다. 이처럼 소박한 꿈과 희망이었던 “좋은 날”이 ‘비정규직 없는 공장 만들기’로, 그리고 더 나아가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로 나아가기까지 무엇이 결정적인 구실을 했는가? 그렇다. 사회주의자를 비롯한 저들이 얘기하는 ‘외부세력’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이 체제가 끊임없이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차별과 억압·착취를 중단하지 않는 이상,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는 머지 않은 미래에 보편적인 노동계급의 ‘상식’이 될 것이다. 그것이 상식이 되는 날, 이 땅에 ‘비정규직’이란 단어는 박물관이나 고어 사전 등록을 기다리고 있지 않겠는가?